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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신학/기타미분류

멀러의 테제와 멀러리안들

멀러의 테제와 멀러리안들
우병훈 목사
이 글에서 나는 멀러 교수(칼빈신학교, 교회사)의 테제를 소개하고, 어떤 학자들이 그 테제에 동의하는지 밝히며, 이 테제가 나오게 된 배경과 의의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한다.
1. 멀러 테제
멀러 교수의 테제 즉, “16세기 개혁파와 17세기 개혁파 사이에는 아주 강한 연속성이 존재한다”는 테제는 이제 ‘멀러 테제(Muller’s Thesis)’로도 알려질 정도로 이쪽 분야에서는 유명하다.
이 테제는 “16세기 신학은 역동적이고 성경적인 신학이었는데 반해, 17세기 신학은 경직되고 아리스토텔레스적이며 사변적인 스콜라 신학이었다”는 교회사의 유서 깊은 테제를 반대한다.
이 주장을 모두 담은 책은 아래의 방대한 저서이다.
Richard A. Muller, Post-Reformation Reformed Dogmatics: The Rise and Development of Ed Orthodoxy, Ca. 1520 to Ca. 1725, 2nd ed. 4 Vols. (Grand Rapids, Mich: Baker Books, 2003).
* 멀러의 연속성 테제에 대해서는 아래의 글을 참조.

2. 멀러 테제를 강화하기 위한 하위 테제들
멀러 교수는 자신의 테제를 강화하기 위해서 다음을 주장한다.
(1) 17세기 개혁파 신학자들이 사용했던 스콜라적 방법은 방법론에 불과했으며, 신학의 내용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참고로, 스콜라 방법론은 말그대로 “학교(=스콜라)에서 사용한 방법론”으로서 중세 대학에서 사용된 교육 방식이다. 즉 테제를 하나 제시하고, 그것에 대한 반론과 그 반론에 대한 재반론으로 내용을 풀어나가는 방식이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을 연상하면 되겠다.]
물론 스콜라적 방법론을 씀으로 인해서 이전에는 신학적 주제가 안 되었던 것이 중요한 주제로 부각되기도 했다. 그러나 17세기 개혁파 신학자들은 자신들이 물러 받은 16세기 전통을 언제나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그 내용들을 이어갔다.
(2) 17세기 개혁파 신학자들의 저서들은 다양한 문체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들의 모든 신학 저술이 스콜라 방식으로 저술된 것은 아니었다.
즉 17세기 문헌들 가운데, 주석은 주석대로, 교리문답은 교리문답대로 그 내용에 따라 다양한 방법론이 적용되었다. 그들이 천편일률적으로 스콜라 방법론을 적용해서 책을 쓴 것은 결코 아니다.
(3) 17세기 개혁파 신학도 여전히 성경적인 신학이었다.
멀러 교수는 16-17세기에 나온 주석들을 모두 모은 결과 레터지로 250매에 해당하는 서지 목록을 작성할 수 있었다고 한다. [참고로, 그 중에 95%를 멀러 교수는 pdf파일로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이중에 17세기 신학자들이 쓴 주석은 엄청나며, 그들의 주석법은 철저하게 원어와 문법, 배경 연구(랍비 문헌 및 그레코-로만 문헌들)에 기초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4) 16세기 신학자들 역시 스콜라적 방법론을 일부 사용하고 있으며, 스콜라 신학 일체를 거부한 것이 아니었다.
16세기 신학자들 역시 중세 스콜라 신학이 남긴 수많은 주석들을 참고하였고, 그들이 학교에서 가르칠 때 여전히 스콜라식 방법론을 차용했었다. 한 예로 루터는 멜랑히톤의 교수 방법을 스콜라적 방법론이라 우호적으로 부르고 있다. 칼뱅이 『기독교 강요』 라틴어판에서 스콜라 신학자들을 비판할 때는 특정한 신학자들을 염두에 두고 있다. 칼뱅이 직접 쓴 『기독교 강요』 불어판에서는 동일한 자리(스콜라 신학자를 비판한 자리)에서 칼뱅은 “소르본느의 [가톨릭] 신학자들”이라고 적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실들은 루터나 칼뱅이 중세 스콜라 신학의 내용은 부정한 적이 있더라도, 그 방법론 일체를 거부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5) 17세기 개혁파 신학자들은 결코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이 아니었다.
물론 그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신학에 이용하였다. 특히 신학적 주제들을 논증함에 있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을 자주 사용하였다. 하지만 그들 중에 그 누구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맹목적으로 따라간 사람은 없었다.
멀러 교수는 오히려 17세기 신학자들이 “절충주의”(eclecticism)를 신학 방법론에 전략적으로 사용하였음을 증명하였다. 그들은 아리스토텔레스뿐 아니라, 플라톤, 토마스, 스코투스 등등 그들이 자료로 가질 수 있는 모든 저작들을 두루 인용하면서, 성경에 근거하여 비판하고 유익한 것은 도입하여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3. 멀러리안들
이 테제에 동의하는 멀러리안(Mullerian)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여기서 멀러리안이란 말은 위의 멀러 테제에 동의하는 사람만을 뜻하기 위해 쓴다. 즉, 멀러리안이라고 해서 멀러 교수가 어떤 학파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아래에 언급하는 멀러리안들은 독자적으로 연구하는 자신들만의 연구 주제들이 다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말처럼 17세기 연구는 멀러 이전과 멀러 이후로 나뉜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이 분야에서 멀러 교수의 영향력은 크다.]
멀러의 테제에 동의하는 이들 가운데는, 다른 누구보다 우트레흐트 대학의 반 아셀트(Van Asselt)가 있다. 이 학자는 멀러 교수와 독립적으로 17세기를 연구하다가 멀러 교수와 동일한 결론에 이른 사람이다. 하지만 멀러의 테제가 위력을 떨치기 전까지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가, 그 이후에 덩달아서 학계에 많이 알려진 학자이다.
또한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칼 트루먼(Carl Trueman)이 있다. 트루먼은 존 오웬 연구로는 미국에서는 선두 주자 중 한 사람이다. 트루먼과 멀러 교수는 상당한 친분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사실상 트루먼의 거의 모든 책에는 멀러 교수가 언급이 안 될 때가 없을 정도이다.
스위스 제네바 대학의 이레나 바쿠스(Irena Backus)라는 유명한 여자 교수도 동일한 생각을 갖고 있다. 바쿠스 교수 역시 16-17세기 연구에 있어서 세계적인 대가이다. 하지만 멀러 교수에 비해 볼 때, 신학적 관심보다는 “순수 역사적 주제”에 관심이 많다.
칼빈신학교 근처에 있는 퓨리턴리폼드 신학교(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PRTS)의 총장인 조엘 비키(Joel R. Beeke)도 역시 멀러 교수와 동일한 생각을 갖고 있다. 멀러 교수와 조엘 비키는 아주 친하여 거의 메일 이메일을 주고 받는 사이라고 한다. 비키는 청교도 연구로 매우 유명한데, 나와 개인적인 대화에서 “영국의 청교도들 중에서도 대륙의 개혁파 신학자들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보다 스콜라주의적인 성향을 많이 띤 청교도들이 신학적으로 훨씬 더 깊이가 있다”고 말해 주었다. 비키가 가장 좋아하는 청교도 신학자는 토마스 굿윈, 존 오웬 등이다.
* 박사 학위를 여러 개나 소지한, 지금도 엄청나게 논문을 쏟아내는 이레나 바쿠스 교수의 홈페이지는 아래를 참조.
* PRTS의 교수진에 대해 아래를 참조.
4. 스타인메츠 그룹
물론 멀러 교수의 스승인 스타인메츠(David Steinmetz)는 당연히 동일한 견해를 갖고 있다. 특히 스타인메츠는 종교 개혁 신학자들의 신학은 서로 연결되며, 루터나 칼뱅은 동시대 신학자들(멜랑히톤, 버미글리, 부커, 츠빙글리, 불링거, 무스쿨루스 등등)의 작업과 연관 지어 연구할 때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멀러 교수는 이 작업을 17세기까지 연결시킨 것이라 볼 수 있다.
David Curtis Steinmetz, Calvin in Context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5).
David Curtis Steinmetz, Luther in Context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Press, 1986).
스타인메츠는 많은 제자들을 길러 내었다. 이 중에서 풀러 신학교의 존 톰슨(John L. Thompson)이나 시카고 대학의 수잔 슈라이너(Susan Schreiner)도 16-17세기 관계에 있어 멀러 교수와 동일한 생각을 갖고 있다. 서든 뱁티스트의 교회사 교수들 중에 2명(이름 기억 안남)도 멀러 교수에게 배운 이들로서 멀러 테제에 동의한다.
* 수잔 슈라이너의 홈페이지는 아래를 참조.
* 풀러의 존 톰슨 교수.
5. 독일의 크리스토프 슈트롬
독일 교회사가들 중에서는 여전히 16세기와 17세기의 단절성을 강조하는 이들이 많은데, 그도 그럴 것이 19세기 말의 유명한 독일 교회사가들은 대체로 그렇게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교회사 연구의 대가였던 아돌프 폰 하르낙과 그 제자들이 있다.
이들이 16-17세기의 단절성을 강조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루터에 대한 칭송과 스콜라주의에 대한 지극한 반감 때문일 것이다. 크리스텔러는 독일 역사학자들이 유난히도 스콜라주의에 대한 반감이 크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하지만 독일에서도 멀러 테제에 동의하는 사람이 있다. 그중에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개혁파 신학을 가르치는 크리스토프 슈트롬(Christoph Strohm)은 멀러 교수의 테제(16세기와 17세기의 연속성)에 아주 강하게 찬성한다.
“Methodology in Discussion of "Calvin and Calvinism",” in: Herman J. Selderhuis (Hg.), Calvinus Præceptor Ecclesiæ. Papers of the International Congress on Calvin Research, Princeton, August 20-24, 2002 (Travaux d'Humanisme et Renaissance, 388), Genf 2004, 65-105에 실린 슈트롬 교수의 글을 보면, 거의 멀러 교수의 글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따라 가고 있다.
멀러 교수도 나와 개인적 만남에서 “독일 학자인데, 나와 독립적으로 연구해서 거의 나하고 같은 결론을 가진 사람으로 슈트롬이 있다”고 하셨다.
* 크리스토프 슈트롬 교수에 대해서는 아래의 홈페이지를 참조.
6. 루터파 신학자 로버트 콜브
한편, 루터파 신학을 연구하면서, 멀러 교수와 동일한 견해를 가진 학자 중에 콘코르디아 신학교의 명예 교수인 로버트 콜브(Robert Kolb, 1941~)가 있다. 그는 16세기의 루터 및 루터파 신학과 17세기의 루터파 신학이 연속성이 강하다고 주장한다.
멀러 교수는 나와 개인적인 대화에서 “내가 개혁파에 적용한 테제를 그대로 루터파에 적용해서 연구하는 학자가 있는데, 콜브다. 나랑도 매우 친하다”라고 하셨다.
콜브 교수가 이번 봄에 PRTS에 와서 강의를 한다. 멀러 교수는 그를 초청해서 칼빈신학교에서도 특강을 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나에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콜브 교수가 최근에 편집한 아래의 저서에 실린 그의 글은 16-17세기 루터파의 신학 교육 상황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 책은 16-17세기의 루터파 신학자들 모두를 망라해서 부록으로 싣고 있다.
Kolb, Robert. Lutheran Ecclesiastical Culture, 1550-1675, Brill's companions to the Christian tradition, v. 11 (Boston: Brill, 2008).
7. 한국의 멀러리안들
한국의 멀러리안들은 누구일까? 당연히 멀러 교수 밑에서 배운 박사 제자들이다. 그 외에도 멀러 교수들에게 석사 과정에서라도 배운 제자들은 대부분 다 멀러의 테제를 받아들일 것이다. 엄청난 자료 연구를 바탕으로 쉽게 반박할 수 없게끔 탄탄하게 세운 테제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멀러 교수는 16-17세기 자료만 몇 테라 바이트를 갖고 있다고 한다. 수업 시간에 또 하나의 외장 하드 드라이브를 싸게 구입한 것을 자랑할 정도로, 자료 모으는데 엄청난 열정을 갖고 있다.]
8. 멀러 자신의 주장
하지만 멀러 교수는 늘 말한다. 자기는 이 테제를 새롭게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다만 폴 오스카 크리스텔러(Paul Oskar Kristeller, 1905-1999)나 하이코 오버만(Heiko Augustinus Oberman, 1930-2001)과 같은 르네상스와 중세 연구의 대가들이 이미 주장하고 있던 것을 16-17세기에 적용했을 뿐이라고.
이 두 사람 모두 하버드에서 가르쳤던 사람들이다.
크리스텔러는 중세와 르네상스 인문주의는 서로 연결되며, 중세에 이미 르네상스 인문주의와 비슷한 현상들이 나타났었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중세와 르네상스를 강하게 단절시켜 왔던 오랜 편견을 뒤집는 테제였다.
Paul Oskar Kristeller, “Humanism and Scholasticism in the Italian Renaissance” in Renaissance Thought: The Classic, Scholastic, and Humanist Strains (New York: Harper&Row, 1961), pp. 92-93.
Paul Oskar Kristeller, Philosophy and Humanism in Renaissance Perspective (Columbus: Ohio State University Press, 1966).
오버만은 중세 신학과 종교 개혁 신학은 서로 연결되며, 종교 개혁은 어떤 면에서는 중세 신학의 결실임을 잘 논증해 주었다.
Heiko Augustinus Oberman, The Harvest of Medieval Theology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63).
정리하자면, 크리스텔러, 오버만, 스타인메츠, 멀러 교수로 이어지는 이 계보의 주장은 아래와 같다.
“역사에 있어 이전 시대와 완벽한 단절 현상이나, 전혀 예상치 못했던 급진적 현상은 일어나지 않는다. 한 시대는 그 이전 시대와의 연속성 가운데 파악되어야 한다. 그럴 때에 진정으로 그 시대만의 독특성 또한 알게 된다.
그 어떤 인물이든지 그 시대의 맥락 속에 놓고 이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한 인물은 동시대 사람들과 비교하여 파악해야 한다. 그럴 때에 진정으로 그 사람의 특성이 제대로 드러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