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라는 것....
노승수 목사
요즘 드라마나 영화의 주요한 코드가 있다면 복수가 아닐까합니다. 그런데 복수는 성경에서도 주요한 코드입니다. 왜 요즘 시대에 사람들을 복수를 꿈꿀까? 생각해봅니다. 그렇지 않고야 복수에 관한 생각들이 이렇게 넘쳐나긴 힘들겁니다. 아마도 현실에선 이룰 수 없는 사람들과의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복수를 꿈꾸지 않을까합니다.
신자들이라고 다르지 않을 테지요. 오히려 신자들은 더 하지 않을까요? 불신자 친구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습니다. "야 너 빛과 소금이라는데, 빛인 줄은 모르겠는데, 소금인 것 확실해 얼마나 짠지, 불신자들은 그냥 술 한잔 먹고 푸는데 얼마나 오래가는지, 정말 소금인건 확실하다" 뭐 이런 이야기를 듣습니다.
사실 사랑을 해야하지만, 그러나 사람 마음이 언제 자기 마음대로 되던가요? 마음이 우리 마음대로 안되는 까닭은 우리가 자신을 잘 모르기 때문이며, 또 우리 마음이 그렇게 넓지 못하기 때문입니다.<에너지 보존의 법칙>은 자연계의 법칙만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법칙이기도 합니다.
갈등은 미움을 부르고 미움은 우리 마음에서 저절로 해결되지 않는 법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이런 내면적 필요 때문에 성경이 복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은 복수는 나의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자가 자신의 내면의 질서를 세우기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롬 12:19) 성경은 하나님에 대해서 증거하길 복수하시는 보수자 또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시 7:11)으로 그려집니다. 재판은 여호와께 속한 것입니다.
우리도 그 진노의 대상이었지만 그의 긍휼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어린 시절 가장 원수 같은 존재는 내 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어느 날 동생이 놀이터에서 맞고 들어온 것입니다. 그럴 때 마음에 차오르는 분노 뭐 그런 느낌을 하나님께 빗댄다는게 우스운 일이지만 분노 그것은 하나님의 우리를 위한 사랑이었습니다.
그날 나는 동생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당신의 택한 자녀가 당하는 불의를 그저 지켜보시지만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 복수는 그런 것입니다. 우리를 위한 사랑 뭐 그런 거... 속내를 드러내기 쑥스러워하는 그러나 의외의 장소에서 그의 사랑을 확인하는 뭐 그런 거... 하나님의 복수는 뭐 그런 의외의 장소에서 확인하는 그분의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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