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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칼럼

부르심에 대한 인간의 세가지 반응

부르심에 대한 인간의 세가지 반응


노승수 목사


하나님의 부르심은 율법을 지켜보려는 열심에서 보통 시작합니다. 단지 순수하나 열망입니다.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열망이죠. 그런데, 어느 시점에 다다르면 세 가지 방식으로 갈라지게 됩니다. 


첫째는 율법주의입니다. 율법은 그저 우리를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수단일 뿐인데, 율법 자체에 안주하고 율법을 지키는 자신의 행위에 안주하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이 부류의 특징은율법의 정죄를 못 견뎌서 그 정죄를 피해보려고 자기 의를 구축하는 게 특징입니다. 게다가 타인에 대한 정죄도 심하게 나타나는데 거의 '투사'입니다. 


둘째는 쉬운 믿음입니다. 죄에 대한 각성을 피하고 곧바로 죄 용서함과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로 이동하는 것이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니 염려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수용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사랑받기에 합당한 사람이란 메시지를 바로 수용합니다. 죄를 슬퍼해본 적이 없거나 드물고 죄의 비참도 거의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마지막 세번째는 진정한 믿음입니다. 믿음의 첫 관문은 역시 유법를 지키려다가 죄를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서 인도함으로 율법 안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합니다.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무능력을 발견하고 자신의 죄와 비참한 처지를 각성합니다. 


무능력에 대한 각성과 율법이 안내하는 그리스도를 보고 믿음이 나타나게 됩니다. 깊은 회개와 그리스도의 피를 믿음으로 오는 하나님과 화목됨에서 오는 안식을 경험합니다. 의롭다 하심을 확신하게 되고 뿐만 아니라 약속하신 성령을 받습니다. 


이 성령을 인하여서 이제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의 수단들 즉, 말씀과 성례와 기도가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우리에게 흘러들믿음으로 말밈암아 지킬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이 때 율법은 자기 의가 아니라 나를 건져 주신 것에 대한 감사이며 동시에 하나니믕로 부터 오은 은혜로 인한 지킴임으로 이전의 율법주의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겸손하게 의를 이루고 성령의 열매들을 맺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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