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통상적 의미와 은혜의 방편
노승수 목사
은혜란 말의 통상적 의미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요리문답들에 "은혜의 방편"이 등장하는 이유도 이것 때문인데, 은혜의 방편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까닭은 이 은혜의 방편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실제로 신자의 삶에 들어오고 그 구원이 몸과 영혼에 이뤄지는 삶을 염두에 두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중생한 신자의 삶에 전에 이룰 수 없었던 율법의 요구가 이뤄지도록 하는 능력을 공급받을 실제적이며 일반적 방편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하도록 하는 내적 준거가 바로 '믿음'이고 이 믿음을 확증짓는 것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믿음 있는 자가 은혜의 방편을 사용할 때, 성령께서 그 구원의 능력이 신자의 몸과 영혼에 임하도록 하고 신자의 삶이 거룩해지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신앙고백서들과 요리문답은 율법주의나 반율법주의와는 명백하게 선을 긋는 것입니다. 어디서 그어지냐면, 바로 이 은혜의 방편들에서 그어집니다.
좀더 나아가보면, 은혜를 이와같이, 다시 말해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정의할 때, 사실상 일반 은총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전적 부패와 무능력의 교리가 전제 되기 때문이지요. 그럼에도 일반적 은혜와 준비되는 은혜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근접해오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참 신자가 되기 위해서는 '구원 얻는 믿음'과 '생명에 이르는 회개'가 있어야 하고 이는 하나님의 '효력 있는 부르심'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문제는 이 효력 있는 부르심은 그것이 드러나기 전까지 누구도 확신 할 수 없다는 게 문제겠지요.
아무튼 모든 신자는 자신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은혜 얻는 방편을 부지런히 사용하지 않고 믿음으로 승리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 방편이 뭐냥고요? 바로 말씀과 기도와 성례이지요 ^^
2014.02.24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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