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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칼럼

인격적 사랑의 관계는 거리가 결정한다.

인격적 사랑의 관계는 거리가 결정한다. 


노승수 목사 


스톡홀룸 신드롬, 납치 피해자가 납치 가해자를 사랑하게 되는 증후군을 일컫는 말, 이 현상은 언뜻 잘 이해가 안되지만 사실은 우리 주변에 아주 흔한 증후군이다. 예들 들어, 가정 폭력의 피해자들의 심리상태는 거반 이런 상태에 놓여 있다. 
한 쪽은 위력을 가지고 있고 다른 한 쪽은 마치 부모 손에 놓인 갓난 아기처럼 무기력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상대방이 결정하도록 해야 하는 상황에 대한 일종의 병리적 적응이다. 
납치나 가정 폭력에서 한쪽의 위력이 피해자의 인격적 자기 결정을 붕괴시켰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이런 상황에 놓인 피해자들은 살아 남기 위해서 가해자를 이해하려는 심리 내적 노력을 보이게 된다. 그런 중에 가해자의 상황과 성장 배경, 트라우마에 대한 일종의 공감이 형성되면서 생기는 심리 현상이다. 
이 정도의 병리는 아니라도 가정 내에는 '상호 의존'이라는 결속도 있다. 겉으로 보기엔 매우 화목한 가정이지만 서로가 없이는 안되는 독립이 불가능한 가정도 있다. 이런 경우 결혼과 같은 역동의 변화와 더불어 갈등이 수면위로 드러나는 게 보통이다. 
심리적 건강이란 우리의 감정이 상황에 맞아야 하고 엄격하게 자동화 되어서 우리 이성과 의지에 반하게 어떤 상황이면 반사적으로 동일한 심리 상태를 갖게 되는 데서 벗어나서, 상황과 관계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인격이 persona_가면이란 뜻인 것도 이런 유연성을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위력을 가진 분이시다. 그에 비해, 우리는 자신의 인생을 결정하는 데서 한 없이 무기력한 존재이다. 그럼에도, 이 관계는 병리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한 없이 자비하시기 때문이다. 그분이 죄에 대해 진노하는 것도 로마서에 나타난 대로 내어 버려두시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권능의 차이라는 말을 갖다 붙일 수 없게 압도적 차이다. 하나님이 그런 인간을 만드시고 교제하신다고 할 때는 그 섬세함과 배려는 사실 우리가 상상하기 힘들다. 그러나 신앙이 병들게 되면, 아니 처음부터 병리적 심리 상태가 신앙을 갖게되면 이런 병리 현상이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하나님께 내 인생의 모든 사건에 대해서 사사건건 묻고 어떻게 할지 답을 듣는다. 매우 경건해 보일지 몰라도 또 사람들의 부러움을 살지 몰라도 이런 상황은 거의 스톡홀룸 신드롬의 상황과 유사하다. 신사도류의 직통계시들이 이런 경우다. 
지상에서 가장 가까운 관계는 아마 부모 자식 관계 일 것이다. 이 경우 상당한 정도 부모가 자녀의 삶에 개입한다. 이런 경우라도 아이가 자랄수록 자기 결정권이 증가하고 더 많은 부분에서 자신의 선택에 의해서 살아가는 게 성장이며 하나님이 가정에 남기신 설계이다. 
그런데 신앙 성장을 반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더 자주 묻고 내가 말씀을 따라 합당하게 여기는 바를 스스로 결정하고 해 나가는 게 아니라 '아버지 점심은 뭐 먹을까요' '오늘은 누굴 만날까요' '집에 있을까요 나갈까요' 이런 식에 기도와 그 응답을 듣는 것은 결코 신앙의 성장이 아니며 신앙의 체험도 아니다. 그저 병일 뿐이다. 
건강한 관계는 서로의 인격이 독립적이고 존중받는 관계다. 그래서 사랑은 특히나 그리스도와 연합은 자아의 붕괴와 소멸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류의 동양 종교적 사상은 환상이다. 우리의 미약한 자아를 섬세하게 보존하시면서, 우리가 그 위엄과 권능에 눌리지 않도록 우리를 배려하신다. 때론 침묵으로 때론 여러 간접적 방법들로 인도하신다. 이 놀라운 사랑 앞에 우리는 그분이 창조주이고 우리가 피조물이라는 이 너무나 상식적 관계를 쉽게 잊는다. 
사랑은 거리다. 적절한 거리, 그것이 우리가 표현할 수 있는 가장 큰 존중이며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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