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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신학/예배학

부활절은 성경적인가? 전통적인가?

부활절은 꼭 지켜야 하나? (부활절은 성경적인가? 전통적인가?)
해마다 4월이 오면 거의 대부분의 모든 교회들이 부활절을 지키게 된다. 비단 개신교뿐 아니라 캐톨릭은 오랜 전통 속에서 부활절을 절기로 지켜 온지 오래다. 그래서 다가오는 부활절을 생각하며, 우리 개신교회도 캐톨릭처럼 부활절을 절기로 꼭 지켜야 되는지를 모든 신학자들에게 한번 묻고 싶고 부활절에 대한 필자의 의견을 피력하고자 한다.
1. 안식 개념과 주일 개념에 대한 이해
부활절을 논함에 있어 예수님의 부활과 관련된 구약의 안식일 개념과 주일 개념을 먼저 언급하고 부활절 무용론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안식일과 예수님의 부활은 떼려야 뗄 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개혁주의자들은 구약 백성들이 지켜오던 모든 절기의식이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 되어질 구원의 실질에 대한 모형적 예표이며 잠정적 제도였음을 주장하고 있다. 이는 구약의 모든 율법적 제도들이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한 그림자 역할을 했지만 그림자의 실체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말미암아 구약의 모든 절기는 마감되어졌다고 보는 것이다.
이와 같은 원리 안에서 구약의 안식일은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도께서(마12:8) 안식 후 첫날(요 20:26)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여 신약의 모든 주의 백성들이 이날을 주일(主日)로 지키고 있는 것이다. 이는 예수그리스도께서 구약에서 상징적으로 예표되어진 모든 절기의 성취자이시며 완성자이심을 신약의 모든 성도들은 신앙으로 고백하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릴 영원한 안식을 소망하면서 주님께서 부활하신 이날을 주일로 지키고 있는 것이다.
주일개념과 관련하여 예수님의 제자인 도마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기 전에는 주님과 함께 죽을 수도 있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기도 했었다(요 11:16). 그러나 예수님께서 막상 원수들의 손에 붙잡혀 가시게 되자 다른 제자들과 더불어 도망갔던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는 다른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실에 대해서 말하자, 자신은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손과 옆구리에 자신의 손을 직접 넣어 만져 보고 확인하기 전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절대 믿지 않겠다고 고백한 사람이다(요 20:25).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시어 못 박힌 주님의 손과 창으로 찔리신 예수님의 옆구리를 직접 만져보고 확인하라고 하셨을 때(요 20:26~27), 예수님을 향한 도마의 신앙고백은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 20:28)라고 말한다. 이는 예수님께서 참된 생명의 주인이심과 더불어 그가 곧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고백한 것이다.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눈으로 확인한 도마가 이렇게 고백하는 내용은 오늘날 주님의 날, 곧 주일을 지키는 모든 성도들의 신앙고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도마의 이러한 신앙고백은 마태복음 16장 13절 이하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 16:15)라고 물었을 때, 제자들을 대표해서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나이다”(마 16:16)라고 고백한 신앙고백보다도 한층 더 성숙해진 신앙고백이라고 볼 수 있다.
이때 베드로가 고백한 신앙고백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는 미쳐 생각할 수 없었던 고백인 반면에 도마는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확인하고 고백한 신앙은 부활하신 예수님 앞에서 자신의 존재가 어떠함을 밝히는 아주 중요한 신앙고백적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는 생명의 주인이 예수님이시며, 그는 곧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사실 속에서 자신은 단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로서의 종이 될 수밖에 없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러한 제자들의 신앙고백의 토대 위에서 초대 교회 성도들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안식 후 첫날(요 20:26)을 자연스럽게 받아드리고 이날을 주일(主日)로 정하여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참된 생명의 주인으로 삼고 종의 심정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종이 된 성도들은 철저하게 주인에게 종속되어 있음을 알아야 참된 예배를 드릴 수 있었던 것이며,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는 일이었다.
종은 자신의 뜻을 정하고 자신의 목표와 꿈을 이루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심정을 헤아리고 주인의 뜻에 순종하는 자임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신앙을 가지고 주님을 섬기는 자들은 자신이 행한 일을 가지고 자랑하지 않는다. 다만 무익한 종(눅 17:7~10)의 심정을 가지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였음을 고백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오늘날의 성도들은 예배자로서 주일을 지키는 일에 있어서 항상 유념해야 하는 일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셔서 영원한 생명의 주인이심을 보여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영원한 안식일의 주인이 되시고 창조주가 되신다는 사실과 더불어 우리의 생명까지도 주님의 소유임을 인식하는 가운데, 종의 심정을 가지고 그 분께 알현하는 것이 예배자의 자세이다.
2. 새로운 경륜으로서 주일 개념
구약에서 말하는 안식일 개념이 안식일의 주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성취된 신약교회의 주일개념은 일주일 가운데, 첫날인 일요일을 주일로 정하여 지키고 있다. 이는 앞서 언급한 대로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이 안식 후 첫날인 일요일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들이 지키는 주일개념은 예수님의 부활 사건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교회들은 캐톨릭의 전통과 의식을 따라 부활절을 별도로 지키는 것은 깊이 생각해 볼 문제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우리가 매주 지키는 주일 자체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재창조의 첫날이기 때문이다. 이는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안식에 동참할 수 없었던 인간들 중에서 하나님이 택하신 주의 백성들에게 새로운 영원한 안식을 주시고자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베푸신 최고의 선물인 것이다. 이 선물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절대 허용되질 않는다. 오직 하나님을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주인으로 모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부활절을 별도로 지키는 교회들은 춘분이 지나고 만월(滿月)을 넘긴 첫주를 부활절로 지킨다. 그리고 부활절을 앞둔 일주일은 고난주간이라고 선포하고 특별한 행사를 하면서 어떤 교회들은 금식을 강요하기도하고, 여러 가지 오락을 금하기도 한다. 이는 주님께서 고난당하신 모습들을 상상하면서 주님의 고난을 조금이나마 체험하기 위한 일이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의식에 불과할 뿐 신앙과는 상관없는 일회성 단발 행사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어떤 교회들은 고난주간에 금식을 선포하고 금식하여 저축한 쌀을 불우한 이웃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하지만, 이것도 형식에 치우칠 때가 많다.
사실 우리가 매주 맞이하는 주일이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는 날인 줄도 모르고 일 년에 한 번씩 다가오는 부활절에만 열심을 내는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행사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매주 맞이하는 주일이 어쩌면 습관화 되어 부활의 정신을 잊어버리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그래서 일 년에 한 번만이라도 부활절을 지키는 것이 예수님에 대한 예의라고 스스로 치부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오늘날의 부활절(Easter-Sunday)은 이교도의 축제일을 절묘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계하여 로마교회가 AD321년 로마 황제 콘스탄틴(Constantine) 의 주재로 개최된 역사적인 니케아 종교회의(the Council of Nicaea)가 승인한 것이지만, 이는 로마교회의 역사적인 산물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개혁교회가 아무런 논의 없이 받아들이고 지키는 것은 생각해 볼 문제이다. 자세한 것은 교회사에 나타난 부활절 논쟁에 관한 글들을 접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당시의 사도 요한의 제자인 폴리캅 (Polycarp. A.D.155)과 더불어 에베소교회의 감독 폴리크라테스(Po-lycrates. A.D 130-196) 등은 로마교회가 승인하기 오래 전부터 부활절을 새롭게 만든다는 것을 반대해온 인물들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매주 지키는 주일이 곧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이기 때문에 별도로 부활절을 만드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주일을 지키는 것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의 참된 생명의 주인이심을 믿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들이, 자신들이 소유한 모든 물질과 명예와 권력과 지혜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명까지도 주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며, 우리가 숨 쉬며 살아가는 모든 날들조차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임을 깨닫고 주님 앞에 나아가 예배하는 것이다. 일주일 가운데 매주 첫날인 일요일을 주일(主日)로 지키는 것은 일요일뿐 아니라 모든 날들이 주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대표적인 날이기도 하다.
마치는 말
개혁자 칼빈이나 루터는 주일만 거룩하다고 지키는 것은 율법적이라고 말하면서 일주일의 모든 날들이 주님의 것임을 아는 것이 중요함을 인식하고 일주일의 모든 날들을 거룩하게 지켜야할 의무를 가진다고 말한다. 물론 필자는 그렇게 주장하는 칼빈이나 루터의 입장을 지지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주일을 지키는 것은 율법적 개념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일주일의 모든 날들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대표적인 의미가 있음을 말하고 싶다.
아무튼 우리가 매주 지키는 주일이라는 개념 속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상징하는 풍성한 의미가 포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혁교회들이 캐톨릭의 산물인 부활절을 지키고자 하는 것은 주일이라는 개념 속에 주님께서 부활하신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너무 간과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교회사를 돌아보며 주일의 의미를 재정립했으면 좋겠다. 바로 우리가 지키는 주일이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 김영길 목사, 더불어사는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