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실천신학/예배학

헌상 : 구원얻는 신앙의 표지

헌상 : 구원얻는 신앙의 표지


신자에게는 어떤 목표를 향해서 자꾸 장성해 가는 모습이 있습니다. 그의 아는 것이나 그의 정서와 의지에서 비롯되는 생활이 점점 성숙을 향해서 향상되어 나아가는 생활의 자태가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불신자에게도 있는 것이고 불신자 역시 구하고 나아가는 바이지만 신자의 장성한 생활은 불신자가 자기의 도덕적인 완성이라든지 인격적인 성숙을 향하여 가는 장성의 자태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 다른 점들에 의해서 장성의 차이점이 더 명료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신자의 경우, 장성한 삶을 향하여 자꾸 나아가게 되는 출발점은 자기의 도덕적인 완성이라든지 인격적인 성숙에 있지 않습니다. 그런 것을 목표로 삼기 때문에 뭔가 애쓰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자가 장성한 삶을 항하여 자꾸 나아가는 그 기초에는 먼저 전적으로 주님께서 자기를 전부 헌상했다는 사실이 기본적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만약 예수를 믿고 나온 사람이 주께 자기를 드린다는 정신이 없을 때에는 그것이 그에게 구원의 신앙의 도리로서는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구원의 신앙이란 전적으로 주를 의지하고 자기 일생의 길을 주께 다 맡기고서 지금까지 자기가 구상하고 계획하고 경영하던 것을 일단 다 포기하고 새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어디서 시작하는 하면 자기를 완전히 드리는 데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나와서도 자기를 드리기를 꺼린다면 그것은 예수님을 빌어서 자기의 유익과 행복을 추구하는 공리적인 요구에 무엇을 덧붙이려고 하는 이기적인 욕망에서 믿는 것이지 죽은 사람이 새 생명을 받아서 새로운 생명으로 환연히 깨어난(중생한) 자태는 아닙니다. 여기에서 세상의 종교와 기독교가 분명하게 구별됩니다. 예수를 믿고도 아직 자기를 주님 앞에 전부 드렸다는 정신과 자세를 갖기를 꺼리고 적당히 자기를 수양하는 의미로, 그렇지 아니하면 좀더 지적인 것이나 좀더 앞선 어떤 것을 얻어 보려고 하는 자기의 이익에 대한 고려가 늘 앞서 간다면, 그것은 공리 종교이지 참된 기독교는 아닙니다. 

이렇게 드렸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드렸다는 것은 우리의 관념에서 '자기'라는 생각, '내 것'이라는 생각을 떼라는 것입니다. 다 드렸으면 그 다음에 내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내가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다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직도 마음 가운데 꺼림하게 생각하고 명확한 태도를 취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오늘이라도 명확히 취하는 것이 참으로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정당한 도리입니다. 자기가 기독교를 이용해서 기독교 안에서 출세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면, 그것을 포기하고서 이제 주님 앞에 다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주께서 원하시는 대로 우리를 경영하신다는 것을 믿고 드리는 것입니다. 

김홍전, '성신의 가르치심과 인도하심'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