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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수의 강해설교/마태복음강해

비밀스런 천국과 그 열매(마 13:31-43)

비밀스런 천국과 그 열매(마 13:31-43) 

노승수 목사

[31]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32]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33]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34]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35] 이는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36] 이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사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밭의 가라지의 비유룰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 [37] 대답하여 가라사대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38]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39]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40]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41]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42]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43]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있는 자는 들으라
1. 겨자씨와 누룩 비유(31-35)
씨는 작은 것입니다. 눈에 띄지 않지요. 그러나 싹이나고 자라게 되면 사람들에 눈에 띄게 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여전히 식물의 전문가이거나 그 식물에 대한 지식을 가지지 못했다면 그것이 어떤 종류의 나무인지 분별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가을이 되어 추수때가 임박하게 되면, 그 열매가 드러나게 됨으로 누구든지 그것이 어떤 종류의 나무인지를 알게 되는 것이지요. 천국은 마치 이와 같은 비밀입니다. 세상에 드러난 것이지만 세상 사람들이 알아차리지는 못합니다. 오늘 말씀에 주님이 비유로 베푸시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13장은<천국 강화>로 마태복음에 세번째 등장하는 예수님 강화입니다. 천국은 우리 가운데 은밀하게 들어와서 드러나게 열매를 맺습니다. 겨자씨 한 알 처럼 눈에 띄지 않지만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가 깃들 정도가 됩니다. 이 비유의 요점은 왜소함으로 시작하여서 끝의 영화로움이 대비되는데 있습니다. 믿음이란 바로 이런 영적 안목입니다.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시작단계로부터 마지막의 영광을 꿰뚫어 보는 것입니다. 
누룩이 밀가루 전체를 부풀게 하듯이 질적 변화를 가져옵니다. 겨자씨 비유와는 달리 누룩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적 변화를 야기한다는 점, 적은 양의 누룩이 부풀린 많은 양의 가루의 대조가 강조되고 있습니다. 33절의 갖다 넣어'의 원어는 '숨겼다'라는 뜻입니다. 천국은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극소량의 누룩이 숨어 들어 밀가루 전체를 부풀게 변화시키는 것이라는 대조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이는 천국의 비밀스런 성격을 보여줍니다. 앞의 겨자씨 비유 역시 이런 대조점이 있지만 믿음이란 가능태 속에서 천국이란 현실태를 발견하는 안목에 집중되어 있다면 누룩 비유는 누룩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밀가루 반죽을 변화시킨다는 사실에 초점이 있습니다. 천국의 성격이 이와 같다는 것이지요. 천국은 반드시 우리 삶과 인격에 변화를 가져옵니다. 내가 천국 백성이 되었다는 증거는 아마도 이런 변화로 감지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강조점은 천국이 이처럼 비밀스럽게 증거된다데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비유로만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시지 않은 이유를 35절에서 구약 예언의 성취로 설명을 합니다. 상반절은 직역을 하면, '나는 비유로 내 입을 열리라'가 됩니다. 이 상반절은 시편 78:2절의 70인역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후반절 곧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 함'은 히브리 성서를 자유롭게 옮긴 것으로 보입니다. 본문에서 특이한 점은 시편이 선지자로 간주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역시 예언적 관점에서 읽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창세부터 감추인 것이 무엇이냐가 최대 관심사이겠지요. 이는 다름이 아니라 구속(救贖)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의로우신 행위들(Lindars)이며 과거의 사건들이 지니고 있는 하나님의 크고 깊은 영적 가르침입니다. 이것은 이제 예수의 가르침과 기적과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 밝게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예수는 전에 감추어져 있던 것을 드러내시는 계시자(啓示者)인 동시에 자신에 대해서 이미 예언, 선포되었던 구속의 역사를 성취하시는 완성자가 되십니다. 이는 아직 구속이 성취되기 전임으로 이와 같이 비밀한 방식으로만 백성들에게 들려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자들은 듣게 됩니다. 들을 귀가 있음으로 이 비밀을 듣게 됩니다. 믿음이 있는 자들은 겨자씨에서 겨자 나무를 보게 됩니다. 보이지 않는 누룩에서 전체를 부풀게 할 천국의 가르침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믿음은 그것이 씨앗으로 있는 동안에는 우리가 구별하여 알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 씨앗과 누룩은 반드시 드러나는 방식으로 우리 삶에 변화와 열매를 가져오기 때문에 어느시점 적어도 자신은 그 결과를 알게 됩니다. 나는 참으로 믿음에 속한 사람입니까?
2. 가라지 비유의 해설(36-43)
24-30절에서 가르치신 주님의 비유에 대해서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이 때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밝히 말씀하십니다.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 곧 심판의 주로 오시는 그리스도이며 밭은 세상이고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며 가라지를 심는 이는 원수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의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라고 밝히 일러 주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강조점은 이것이 심판의 때라는 것이며 인자는 곧 심판의 주인으로 오시는 그리스도임을 보여주는데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최종적 심판의 때 곧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24-30절의 경우 천국의 현재성에 대한 강조점이 있었다면 오늘 본문은 천국의 미래적 성취에 강조점이 있습니다. 
가라지를 뽑지 말고 그냥 두어라고 주인이 말하는 까닭이 알곡이 상할까 염려함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종국에 인자가 심판을 하러 오실 때에는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가라지 곧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을 것이라고 합니다. 두 가지는 지적하셨는데요.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 곧 미혹하는 것과 모든 불법 곧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것을 말합니다. 이 시대는 참 미혹과 배도의 시대인 것 같습니다. 깨어있지 아니하면 이 미혹에 넘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자들을 다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저 넣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합니다. 그 때에 알곡 곧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라리고 말씀합니다. 이는 귀 있는 자들만 듣습니다. 누구나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 그가 결실하는 자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좋은 씨를 뿌렸음에도 세상이 악함으로 길가나 돌밭이나 가시밭으로 인해 결실을 못합니다. 세상은 우리를 결실치 못하게 합니다. 이 세상은 염려와 재리, 이거나 환난을 만날 때 드러나는 뿌리 없음입니다. 그러나 악의 미혹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알곡 사이에 가라지를 흩뿌립니다. 가라지의 특징은 멀리서 보면 알곡과 구분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라는 동안에는 더 그렇습니다. 논을 메어 보신 분들을 아시겠지만 피와 벼를 구분하는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마귀는 미혹을 위해서 짝퉁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그것을 교회 가운데 흩뿌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욕심에 이끌리어 이 짝퉁에 끌려 가게 됩니다. 이도 알곡을 보호하기 위함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미혹은 우리 욕심 때문에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비슷해도 짝퉁이 불법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쓰지 않겠지요. 그것을 쓰는 이유는 우리 마음의 허영 때문입니다. 허영은 마귀의 최고의 기호품이지요. 사기를 당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마음에 허황된 욕심이 없다면 사기를 당하지 않습니다. 정당한 댓가를 정당하게 지불할려는 마음을 먹으면 미혹을 당하지 않을텐데, 편법과 탈법, 그리고 정당하지 못한 방식으로 댓가를 얻고자 하다가 미혹을 당하는 것이지요. 
마지막 때에 심판의 대상이 된 사람들은 바로 이 알곡 속에서 자신이 알곡이라고 착각하던 가라지들입니다. 애시당초 자라지도 않는 밭은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겠습니까?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들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주목하셔서 보셔야 합니다. 그들이 슬피 우는 까닭은 억울해 하기 때문입니다. 천국에는 의외의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정말 천국에서 꼭 만나리라 생각했던 사람을 못만나는 경우, 저 사람이 천국에 갈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던 사람을 천국에서 만나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사람은 사람의 속을 알 수가 없지요. 심지어는 스스로를 속이기까지 하는 것이 인간이니까요?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그리고 해처럼 빛나게 될 의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그의 말씀 앞에서 자신을 정직하게 돌아보는 사람들입니다. 나는 어디에 속한 것 같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