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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수의 강해설교/마태복음강해

성령 훼방 죄(마 12:31-37)

성령 훼방 죄(마 12:31-37) 
노승수 목사
[31]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32]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33] 나무도 좋고 실과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실과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실과로 나무를 아느니라 [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35]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37] 네 말로 의롭다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1. 성령을 모독하는 죄(31-32)
요 며칠 사이 매일성경의 본문 구문은 좀 마음에 많이 들지 않습니다. 사실 31-32절은 어제 본문이랑 연결되는 것이 더 좋습니다. 아무튼 매일성경에 따라 묵상하는 것이니까? 구분한대로 가보겠습니다. 어제 본문부터 등장한 주요한 단어가 '성령'입니다. 벙어리 되고 소경되게 한 귀신을 쫓아내시는 과정에서 사람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해졌습니다. 혹시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는 수군거림이 일자 바리새인들은 급히 진화에 나섭니다.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낼 수 없다'고 억지스런 주장을 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럼 너희 제자들은 누구를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느냐? 고 반문하시면서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했다' 하시면서 성령이 등장을 했습니다. 즉, 성령은 어제 설명드린 대로 하나님 나라의 도래의 약속과 맞물려 있습니다. 
제가 여러 차례 성경의 모든 계시의 정점은 그리스도라고 말씀을 드린 바 있습니다. 구약의 모든 계시가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고, 그 구약의 마지막 계시가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그래서 여인이 낳은 자 중에 가장 크다는 그의 인품이나 그의 학식이나 그의 능력이 크다가 아니라 최종 계시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근접성이라고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렇지 않고야 신약을 사는 우리가 모세보다 다니엘보다 더 크다는 말을 납득하기 어려워집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이 구원 계시의 종결에 해당하십니다. 그리스도 외에 다른 계시가 필요치 않고 그 계시의 완성에 해당한다는 말입니다. 그 그리스도의 구속 계시가 어디에서 그럼 완성되느냐? 두 가지 정도의 시점을 구분하여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오순절입니다. 성령의 강림으로 말미암아 종말의 심판이 이미 성취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오순절을 베드로가 설교하면서 '여호와의 날'의 성취 곧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날의 성취로 설명했다는 점입니다. 또한 성령이 임하는 장면의 상징들, 급하고 강한 바람과 불은 심판의 상징입니다. 즉,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듣고 회개하고 믿는 자들에게는 죄 사함을 얻고 성령을 선물로 받는 날이요.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믿지 않음으로 심판을 받는 날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체로 학자들은 이 오순절을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의 최종적 완성으로 보는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한 가지 견해는 제가 몇 차례 언급 드렸던 것처럼 예루살렘의 멸망을 그 시점으로 잡는 경우입니다. 성전 제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죄의 그림자임을 신약은 여러 차례 확증한 바가 있습니다. 게다가 이 복음의 우선권이 유대인에게 있음에도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으로 넘어지게 되고 그들의 넘어짐은 완전히 넘어짐은 아니로되 복음의 우선권이 이방인에게 넘어가게 되는데 이는 유대인으로 시기 나게 하기 위함이라고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씀합니다(롬 11:11). 그리고 이 넘어짐은 이방인의 충만수가 들어오기까지라고 합니다(롬 11:25). 마태복음 20장에 가면 보다 자세히 다룰터이지만 먼저된 유대인이 나중 되고 나중된 이방인이 먼저 되는 구원의 경륜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유대인의 넘어짐의 시점 즉, 이방인의 충만수가 들어오기까지 넘어지는 시점이 바로 예루살렘의 멸망이라는 견해입니다. 이미 설명 드린 대로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속죄를 성취하셨음으로 그 그림자인 성전은 필요가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조상과 율법과 성전을 의지하던 유대인들이 도리어 넘어지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수께서 바로 이 예루살렘의 멸망 때의 징조에 대해서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예루살렘의 멸망과 종말의 때가 서로 뒤섞여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이미'로서의 성취 곧, 장차 재림으로 다시 오실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를 제외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와 부활과 그가 약속하신 성령의 오심으로 성취하신 하나님 나라와 종말의 완성을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보는 것입니다. 지금은 조금 어려울 수 있는데요. 이 정도로만 이해해두셔도 됩니다. 차차 나오게 되기 그 때 다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어제 본문이 설명하는 대로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다고 하는 말씀처럼 성령의 강림은 곧 하나님 나라의 강림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어제도 인용했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롬 14:17)입니다. 그리고 이 구절은 오늘 본문은 앞뒤 부분을 핵심적으로 요약한 구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본문의 문맥과 성경 전체의 사상을 고려해서 오늘 본문을 해석해야 합니다. 사실 '성령 훼방 죄'에 대해서 이견들이 너무나 분분합니다. 일단은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용서를 받지 못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성령강림의 종말론적 성격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성령을 선물로 받는 것은 마치 하나님 나라의 입장권 혹은 열쇠를 선물로 받는 것과 흡사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거절했으니 용서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 성령이 우리 가운데 오셔서 하시는 가장 중요한 사역은 성도로 하여금 중생케 하시고 거룩해지도록 하는 사역을 하십니다. 성령을 훼방한다는 것은 이 사역을 방해한다는 것입니다. 중생을 거부하니 당연 구원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럼 거룩해지는 사역은 어떨까요? 성경은 이에 대해서도 같은 입장을 취하는 것 같습니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갈 5:19-21) 이런 육체의 일에 속한 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럼 우리가 중생하고도 거룩함에 이르지 못한다면 결국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뜻일까요? 그런 뜻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중생했다면, 생명은 근본적으로 자라는 속성을 가진 것처럼 그 삶의 열매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물론 성장의 과정에서 어려움과 넘어짐을 경험하기는 하여도 아주 넘어지는 경우는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 결국 그가 처음부터 중생하지 않았다고 해야지 성령으로 말미암아 중생하였는데 아주 타락하여 버림바 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13장에 가서 보게 되겠지만 돌짝밭이나 가시밭도 기쁨으로 말씀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결실하는 밭은 옥토밭 외에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런 현상은 모두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은혜, 곧 선인과 악인에게 공히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점을 기억해야겠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31절의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문맥 속에서 읽어져야 합니다. 31절이 '그러므로'라는 인관관계를 나타내는 접속사로 시작합니다. 이는 앞의 사건 벙어리 되고 소경된 자의 귀신을 쫓아내신 주님의 사역을 두고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한 말에 대한 주님의 답변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일을 염두에 두고 '훼방'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용서를 받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용서하심을 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다음 절까지 함께 보고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고 합니다. 지금 바리새인들이 말로 주님을 훼방한 것이지요. 그것을 사함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앞서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주님께서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했다'고 하셨습니다. 이들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있는 것이지요. 사람들은 이 사태를 보면서 각자의 판단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의 자손이다' '아니다 귀신의 왕을 빙자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을 판단하는 것이 우리에게 무슨 대수로운 일이겠습니까? 강 건너 불구경이나 다름이 없지요. 그러나 결국 그 사건은 내 영혼에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대한 이해와 판단을 가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미 우리 가운데 임해 있음에도 어떤 사람들은 성령의 이런 사역 특별히 자신 안에서 일하심을 훼방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32절의 '인자'에 대해서는 이미 설명을 드렸습니다. 세상을 심판하실 사람의 아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주로 심판과 관련 있는 문맥에서 주로 등장합니다. 그를 거역하여도 사하심을 얻지만 조금 결정적 표현이 등장하는데요.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마음으로도 아니고 말로라고 하니 참 두렵기만 합니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을 나타내고 자신의 말에는 그만큼 책임이 따르는 것이지요. 그러니 우리가 혹여 라도 성령을 거스르지 않는지 주의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훼방죄를 생각함에 있어서 주의할 것은 성령이 더 탁월하거나 예수님의 속죄 사역에 어떤 결함이나 불충분성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앞서 설명 드린 대로 성령의 역사가 분명한 것임을 인지하면서도 의도적으로 그것을 거부하고, 성령께서 인간의 내면에 들어오셔서 감동, 감화하심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고의적으로 배척하는 것은, 곧 용서의 가능성을 완전히 막아버리는 일아 됩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훼방하는 것'이란 어떤 특수한 경우에만 적용시킬 수 없는 일로서, 죄를 깨닫게 하고 참회케 하는 성령의 사역을 적극적으로 방해하거나 고의적(故意的)으로 성령에 대항하려는 고집스럽고도 악의에 찬 심령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한 가지 더 묵상할 것은 32절의 '이 세상과 오는 세상'이란 표현입니다. 문맥으로 보면 이 세상은 지금 자신들이 살고 있는 세상으로 단순히 물리적 세계나 사람들을 의미하기보다 골로새서의 표현대로 '흑암의 나라'(골 1:13)를 의미할 것입니다. 오는 세상은 앞서 28절에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이며 이는 곧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골 1:13)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 나라는 성령의 역사로 이미 너희에게 임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 나라에 들어가는 일이 성령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것이지요. 성령을 훼방하는 일이란 결국 이 나라로 우리를 부르시는 부르심을 훼방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이 세상을 살면서 오는 세상 속에 속해 살고 있습니까? 그것이 바로 구원의 참된 의미입니다. 그런 자가 장차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오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입니다. 나는 참으로 성령 안에서 거하는 자입니까? 
2. 마음과 그 열매인 말(33-37)
이어지는 33-37절은 전혀 다른 문맥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오순절의 성령을 자꾸 은사를 주시는 일로 기억하시면 곤란합니다. 오순절의 성령 강림을 보고 유대인들이 뭐라고 합니까?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행 2:11)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큰 일이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에 대해서 거기서 16개국 백성들에게 동시통역으로 계시의 내용이 전달된 사건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거기서도 패거리가 둘로 갈리지요. '어찐 일이냐?' 하며 두려워하는 이들이 있는가하면 '새 술에 취하였다'고 조롱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행 2:12-13). 지금 사람들이 말하는 방언이 오순절 역사라면 첫째, 하나님의 큰 일 곧 구원의 계획에 대한 하나님의 경륜이 계시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방언이 어디 그렇습니까? 둘째 이 일이 다시 될 수 없는 이유는 이미 최종 계시인 그리스도, 그리고 그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성령의 강림으로 계시가 완성이 되었음으로 다시 이런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셋째, 이 계시의 내용을 알아들었고, 그것을 기초로 베드로가 요엘서의 '여호와의 날'의 성취를 설교했는데, 비해, 지금 방언들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그것을 풀어 전해주지도 않습니다. 
우선 오순절 사건은 은사의 강림 사건이 아니라는 점을 아셔야 합니다. 오순절은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하시기 가능하도록 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과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승리하신 부활과 승천이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이 성령의 선물을 우리가 받게 되면, 죄 사함을 받고 중생하며 열매를 맺게 되는데 그 열매는 은사가 아니라 인격의 열매입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갈 5:22-23에서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라고 합니다. 유념하여 보셔야 할 것은 '열매들'이라고 되어 있지 않고 '열매'라 하여 단수로 되어 있습니다. 근데 그 내용을 보십시오.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삶 가운데 변화가 일어나는 데 그것이 능력과 권능이 아니라 인격의 열매입니다. 능력과 권능은 본질적으로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하나님의 것이 우리에게 잠시 머무는 것에 불과합니다. 인격의 변화가 성령의 열매라는 것이지요. 
오늘 본문은 성령 훼방 다음에 무엇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까? 나무가 좋으면 실과도 좋고 나무가 나쁘면 실과도 나쁘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나무는 무엇입니까? 다음 34절을 보시면 '마음'입니다. 그럼 실과는 무엇일까요? 입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을 대변합니다. 마음에 쌓은 것을 입으로 내기 때문이지요. 앞서 '말로 성령을 훼방하면 사함을 얻지 못한다.'라는 문맥 속에서 이 말씀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선인은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인은 쌓은 악에서 악을 낸다고 합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말입니다. 그걸 어디서 알 수 있습니까? 다음 36절에 뭐라고 합니까?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라고 했지요. 그러니 35절의 선학 것과 악한 것은 곧 '말'인 것입니다. 어떤 말은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자신의 말로 정죄함을 받는다는 것은 또 무슨 뜻입니까? 이것 역시 성령과 연관 지어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 주님이 이 성령 훼방을 어떤 문맥에서 말씀하고 있습니까? 예수께서 귀신들린 자를 고치시는 사역에 대해 바리새인들이 악한 말로 바알세불을 힘입어 한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들은 자기 안에 있는 '선악간'의 것들에 의해서 나온다는 것이지요. 특히 하나님의 사역 곧 사람을 중생케 하시는 하나님 사역에 대해서 이와 같은 훼방을 하는 일이 곧 무엇 성령을 훼방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교회와 관련한 일들을 말함에 있어서 말하기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마음에 악함이 가득하니 하나님의 성령이 오셔서 사람의 영혼을 중생케하는 일을 보고도 그 마음에 이르기를 그것은 귀신을 힘입은 일이다고 중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중상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것이 주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어제도 설명 드렸다시피 자기방식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자기 마음에 있는 악으로 악한 것을 말하는 것이지요. 다른 한 가지는 성령은 은사를 중심하지 않고 우리의 인격을 변화시키는 일이 주된 사역이라고 했습니다. 그럼 그 인격의 거처가 어디이겠습니까? 당연히 마음이지요. 마음에 악독이 가득하니 성령이 그 마음에 회개를 촉구하여도 '새 술에 취하였다' 혹은 '바알세불을 힘입고 한다.'는 식으로 그 성령의 부르심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나무 곧 마음이 그 열매 곧 말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마음의 이 악함을 버리는 사람입니다.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골 3;5-9) 성령을 우리가 선물로 받게 되면 우리 안에 이렇게 옛사람이 죽는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인격을 대변하는 말로 드러나는 법입니다. 나의 언어생활은 어떻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