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기술 : 온유
노승수 목사
성령의 열매 중 온유-πραύτης-는 신약성경에 7회 정도 언급된다. 온유는 친철이나 혹은 겸손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마태복음 11장 29절에는 온유의 형용사형 πραυ?? 로 나타나는데,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라는 표현으로 등장한다. 여기에서 헬라어 και-그리고-는 "그리고"라는 용법 외에 흔히 "곧"이라는 용법으로 사용된다. 예컨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에서 '나라와 의'는 '나라 곧 의'로 읽어도 무방하다. 요한복음의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의 '물과 성령'은 '물 곧 성령'으로 읽어도 무방하다. 이처럼 '온유 곧 겸손'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11장 29절에서 온유로 번역된 형용사 프라우스는 마 21:5에서는 겸손으로 번역된다.
그러므로 온유하다는 말은 곧 겸손하다는 뜻이다. 신약성경이 프라위테스를 주장할 때, 그것은 순전히 인간의 의지에 따라 좌우되는 태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구원의 징표이다. 즉 그것은 '부름'(엡 4:2)과 선택(골 3:12)의 표식이며 성령의 역사(갈 5:23)이다. 그것은 헬라적 의미에서의 미덕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하여 주어진 생활과 행위의 가능성이다. 그것은 인간의 한 기질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이 그리스도와 연결되고 그의 형상과 일치될 때에 생겨나는 것이다. 우리가 겸손할 때에만 그리스도와 연결되고 그의 형상에 일치되며, 성령이 우리를 마음껏 사용하실 수 있다.
그러므로 온유는 우리가 주님께 잘 길들여질 때 나타나는 성품이다. 모세는 살인자였다. 애굽인을 때려서 죽일 만큼 성정이 급하고 모가 많이 진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광야 40년을 하나님의 훈련학교에 입학하여 훈련되었다. 그 후, 구스 여인을 첩으로 취한 사건으로 그 누이 미리암과 형 아론이 비난할 때, 그의 온유함이 온 지면에 승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에 보면 이 길들임에 관한 좋은 예가 나온다. 어린왕자는 여우랑 친하고 싶어서 가까이 하길 원하지만 여우는 점점 멀리 도망을 간다. 가까이 갔다 싶으면 도망을 간다. 왜 도망가느냐?는 어린왕자의 질문에 여우는 사랑은 길들여지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대충 옮기면, " 내가 당신을 사랑하게 되면, 당신의 금빛 머리칼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금빛 머리칼을 사랑하게 되면, 금빛 머리칼을 닮은 밀밭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황금 빛 들녘의 밀밭을 사랑하게 되면 그위를 스쳐 부는 바람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나뭇가지 사이로 바람만 스쳐 불어도 당신을 기억하며 눈물 짓게 될 것입니다" 여우는 모든 상황을 어린왕자와 결부짓게 되는 그것을 길들여지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이것을 다시 신앙의 개념으로 옮기자면, 우리 삶의 모든 것이 길들여져 모든 상황을 하나님과 결부짓게 되는 일, 그것이 온유의 본질이다. 온유한 사람 그는 항상 하나님 면전에 서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일까? 예수께서는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얻겠다고 하셨다. 히브리인에게 있어서 땅은 하나님의 언약의 표징이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 그것은 가난 곧 복있는 땅이었다. 예수께서 온유한 자가 땅을 얻는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셨던 약속을 유업으로 잇게 되는 것을 말한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잘 길들여진 그가 하나님 나라를 상속할 것을 설명하신 것이다.
온유는 우리 생각의 친절이나 부드러움, 동정심 따위를 넘어선 것이다. 하늘의 성품이며 주께 결탁되어 있음의 표지이다. 나는 어떤가?
그러므로 온유는 우리가 주님께 잘 길들여질 때 나타나는 성품이다. 모세는 살인자였다. 애굽인을 때려서 죽일 만큼 성정이 급하고 모가 많이 진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광야 40년을 하나님의 훈련학교에 입학하여 훈련되었다. 그 후, 구스 여인을 첩으로 취한 사건으로 그 누이 미리암과 형 아론이 비난할 때, 그의 온유함이 온 지면에 승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에 보면 이 길들임에 관한 좋은 예가 나온다. 어린왕자는 여우랑 친하고 싶어서 가까이 하길 원하지만 여우는 점점 멀리 도망을 간다. 가까이 갔다 싶으면 도망을 간다. 왜 도망가느냐?는 어린왕자의 질문에 여우는 사랑은 길들여지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대충 옮기면, " 내가 당신을 사랑하게 되면, 당신의 금빛 머리칼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금빛 머리칼을 사랑하게 되면, 금빛 머리칼을 닮은 밀밭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황금 빛 들녘의 밀밭을 사랑하게 되면 그위를 스쳐 부는 바람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나뭇가지 사이로 바람만 스쳐 불어도 당신을 기억하며 눈물 짓게 될 것입니다" 여우는 모든 상황을 어린왕자와 결부짓게 되는 그것을 길들여지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이것을 다시 신앙의 개념으로 옮기자면, 우리 삶의 모든 것이 길들여져 모든 상황을 하나님과 결부짓게 되는 일, 그것이 온유의 본질이다. 온유한 사람 그는 항상 하나님 면전에 서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일까? 예수께서는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얻겠다고 하셨다. 히브리인에게 있어서 땅은 하나님의 언약의 표징이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 그것은 가난 곧 복있는 땅이었다. 예수께서 온유한 자가 땅을 얻는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셨던 약속을 유업으로 잇게 되는 것을 말한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잘 길들여진 그가 하나님 나라를 상속할 것을 설명하신 것이다.
온유는 우리 생각의 친절이나 부드러움, 동정심 따위를 넘어선 것이다. 하늘의 성품이며 주께 결탁되어 있음의 표지이다. 나는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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