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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신학/예배학

성경적 배경에서 본 개신교 목사의 예배용(禮拜用) 복장 원리

성경적 배경에서 본 개신교 목사의 예배용(禮拜用) 복장 원리

한제호 목사

I. 머리말


1. 한국선교 초기 개신교 선교사들의 정당한 선택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십자가 순난을 수일 앞두시고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주셨던 많은 교훈들 중에서 오늘 기독교의 목사들의 예배인도시 복장과 관계되는 다음과 같은 말씀들을 하셨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않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까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그 차는 경문(經文)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시장에서 무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마태23:1-7).
그런데 이 말씀 앞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이런 과오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마태22:29).
성경에는 구약에서나 신약에서나 이처럼 우리의 의복에 관계되는 말씀들이 비교적 많습니다. 우리의 의복(衣服)은 우리를 추위나 더위에서 보호하고, 외모의 유지에도 도움을 주며, 우리의 직업과 신분을 나타내는 기능도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 특히 개신교 목사의 예배인도시의 복장은 성경적 배경에서 볼 때 단정한 평복(平服)이어야 함을 ‘성경을 오해함 없이 바르게 알고, 또 하나님의 능력을 바르게 의지했던’(마태22:29) 존 칼빈 선생과 그의 견해를 따랐던 한국 선교 초기의 개신교 선교사들의 결정의 정당성을 논의하고자 함이 이 글의 목적입니다. 19 세기 말에 영국, 미국, 호주 등지의 선교사들이 우리 나라에 개신교를 전했을 때 그 선교사들이 천주교의 신부들 처럼 성직자용의 특별한 복장을 가지고 들어와서 한국 목사들에게 입게하지 않았던 것은 그 선교사들의 개인적 의견들이나 자의적(恣意的) 결정의 결과가 아니었고, 그것은 성경의 교훈과 지난 19 세기간의 교회의 역사와 전통을 깊이 고려한 후에 그들이 내렸던 성경 중심의 결정의 결과였습니다. 따라서 그 이후 오늘까지 개신교 목사들의 대다수(약 80%)는 여전히 예배인도시에 평복을 착용하는 것은 그들의 개인적이고 자의적(恣意的) 결정의 결과가 아니고, 성경적 원리가 그러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현재 이 문제에 대한 한국 개신교회의 의견의 변화 동향은 우리의 이런 성경 중심적 전통을 떠난 매우 우려할만한 것이므로 이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필자는 확신합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 목사인 필자가 제목의 문제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게 된 일차적 동기는 우리 나라 개신교 목사들의 예배 인도시의 복장이 1951년에 일어났던 6.25 동란을 계기로 해서 급속한 변화를 보이게 된 기현상(奇現象) 때문이었습니다. 개신교 목사들이 예배 인도시에 개신교의 전래(傳來) 이후 6.25 동란까지 70 여년 동안 입었던 평복(平服) 대신 갑자기 소속 교단이나 어떤 연구단체들과의 아무런 합의(合意)도 없이 개인마다 처음에는 검은 색 가운을 입더니 점차 그들 개개인의 취향(趣向)을 따라 천주교나 성공회, 루터교의 성직자들의 복장을 닮아가게 되었읍니다. 근일에 교단 차원에서의 예배의식에 관한 관심과 연구들이 진행중이긴 하지만, 거기서 제시되는 변화 수용론의 근거들이 필자의 보기에는 성경에 비추어 보면 의심스러운 점들이 많습니다.
이 문제를 사소하게 여길 수도 있으나, 동일한 기독교의 이름으로 불려지는 천주교, 성공회, 루터교 성직자들의 예배 인도시 복장의 화사(華奢)를 극한 채색 옷과 전통적 개신교 목사들의 평복 차림과의 외견상 차이는 참으로 너무나 커서, 그런 외면상 큰 차이를 낳게 한 그 내면상의 차이는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인가를 필자는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만일 이 두 흐름 중 어느 한편이 옳고 어느 한편이 그르다면, 도대체 어느 편이 옳으며 어느 편이 그른가 하는 문제는 그대로 넘어갈 수는 없는 문제라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이 상이점의 판단 기준은 결국 성경에서 찾아야 하고, 이 문제에 관한 구약과 신약의 많은 교훈 중에서 우선 위에 인용한 예수님의 두 말씀이 우리의 논의에 중요한 빛을 던지고 있습니다. 
먼저 이 논의에 들어가기 전에 목사의 예배용 복장의 예전화(禮典化)를 거부하는 우리의 심리가 사회의 기득권자들의 기품(氣品) 있는 복식(服飾)에 대하여 질시(嫉視)하는 반사회성(反社會性)의 부정심리(否定心理)에 의해 충동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그의 공생애 초기에 그의 안내자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입었던 “약대 털 옷과 허리에 띤 가죽 띠” (아마 그의 한 벌뿐이던 일상복<日常服>(마4:4)와 이와는 극단적으로 대조되는 “왕궁에서 부드러운 옷을 입고 지나는 자들”(마11:8)의 화사(華奢)한 복식(服飾)을 예의(銳意) 비교하시면서 말씀하셨고, 그의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을 이틀 앞두시고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소매 긴 옷과 넓은 경문(經文)”을 엄책(嚴責)하셨던(마23:5) 그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위풍 있는 외양(外樣)을 질시하는 심리에서 그들을 책망하지는 아니했던 사실을 우리가 믿음으로서 우리의 죄성(罪性)을 사함 받고, 우리의 거부심리의 순수성 유지에 우리가 응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을 인식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 논의의 궁극적 목적은 13세기에 구라파에서 일어났던 르넷산스의 지적(知的) 기여와 이어서 그곳에서 일어났던 16세기 이후의 종교개혁의 영적 의의(意義)를 아울러 오늘에 재현시키고자 함에 있음을 말씀드립니다. 
필자는 이 머리말에서 먼저 한국 개신교에서 예배학(禮拜學)의 권위자인 정장복 교수(장신대)가 최근 역간(譯刊)한 토마스 레쉬만의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예배와 설교아카데미, 2002)의 내용과, 정교수가 통합측의 교단 기관지의 하나인 ‘목회자신문’(週刊)에 기고한 두 차례의 글들에서 우리의 주제와 관련해 참고될만한 점들을 다음의 세 항목으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종교개혁 이후 세계의 개신교계에서 일어난 예배 의식(儀式)의 변화 추구 역사의 개요.
2. 이 문제에 대한 공개적 논의의 필요성. 
3. 이 변화 추구에 대한 바람직한 시정(是正) 노력의 방향. 
1. 종교개혁 이후 세계의 개신교계에서 일어난 예배 의식의 변화 추구 역사의 개요
1) 레쉬만의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에서 발췌: 
(1) ‘이 문제는 목사 각자의 식견에 달린 문제이고, 그 관심의 타당성 결정은 권고사항이기 때문에 목사들의 자의(恣意)가 나타나 의견이 백출(百出)한다’(p.86).
(2) ‘종교개혁자들은 개혁할 문제가 산적해 있음을 발견하고, 이 일은 학문과 경건을 겸비한 목사들의 임무라고 생각하였다’(p.146). 
2) 정장복 교수의 ‘목사의 가운은 동복(冬服)과 하복이 없습니다’라는 제목의 글(목회자신문, 2002, 8, 3)에서 발췌:
‘종교개혁이 일어난 후 개혁자들에 따라 예배는 크게 네 줄기로 나누어 그 줄기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예배의식을 존엄하게 보존하려는 루터 계열이었습니다. 말씀과 성찬식을 매주일 지키는 예배의 지속이었습니다. 둘째는 설교만을 예배에서 존속시키고 모든 예배의식을 경시했던 쯔빙글리 계열이었습니다. 그는 예배당 안의 어떤 성상(聖像)도 인정하지 않고 모두 철거시켰고 심지어 예배용 악기들도 없애버릴 정도였습니다. 셋째는 초대교회의 모습을 찾아 말씀을 강조하면서도 성찬식을 매주일 거행할 것을 주창하면서 예배의 존업성을 그대로 살려나가려고 했던 칼빈과 부쳐의 계열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직 말씀만을 중심하고 회심과 죄씼음을 강조하면서 성인(成人) 세례만을 고집했던 재세례파입니다. ---. 
칼빈은 예배 때 마다 당시 제네바의 법관들이 입던 검정 가운을 입고 예배를 정중히 집례하고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 후 스코틀랜드 교회를 비롯하여 세계의 장로교는 나라마다 자신들의 고유한 성직자 복장을 만들어 입거나 제네바 가운을 입는 것을 하나의 전통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성탄절과 부활절 만은 흰 가운을 입고 예배를 인도하였습니다. 남은 주일들은 여전히 검은색 가운을 입었습니다. ---.
통합측에서는 1993년 제78회 총회에서 ‘목사와 장로의 가운에 대한 연구위원회’를 조직하여 연구를 거듭한 결과 중요한 결정을 내렸는데, ‘목사의 가운과 스톨 연구위원회’의 보고를 받아들여 ‘가운의 형태는 칼빈의 전통을 이어받아, 색깔은 성령님을 뜻하는 비둘기 색과 밝은 색의 가운을 입되, 셔츠는 노예의 상징을 나타내는 성직자 셔츠를 입도록 하고, 색깔은 검정색 일변도가 아닌 교회력의 색깔에 맞추어 자연스럽게 한다’고 정했습니다. 
장로교는 비록 엄연한 총회의 결정이 있더라도 시행은 개교회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기에 이러한 결정도 강제 규정이 아닌 권장사항으로 정한바 있습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밝아진 가운의 색깔을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언제인가 한국교회의 이러한 결정은 자랑스러운 결정이 되고 우리 교회 성직자들의 고유한 복장이 되리라고 봅니다. 
그런데 이러한 자랑스러운 결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성직자의 가운이 동복(冬服)과 하복의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이것은 실로 부끄러운 현실입니다. 목사가 예배 인도시에 입는 예전복(禮典服)은 교회력에 따른 변화를 줄 수 있습니다. --- 그러나 어느 경우도 목사의 예전복인 가운을 동복과 하복의 개념으로 색을 달리하면서 입는 경우는 없습니다. 여름철이기에 흰 가운을 입는 것이 아니라 1990년의 경우 4월 4일 주일이 부활절이었기에 흰 가운을 입기 시작하여 그 기간이 끝나는 부활절 마지막 주일(5월 16일)까지 흰 가운을 입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력에 따른 예전(禮典) 색깔의 변화는 가능하나 계절에 따라 변하는 예전 색깔이나 하복과 동복이란 없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3) 정장복 교수의 ‘성직자 셔츠는 신부만의 것이 아닙니다“라는 제목의 글(목회자신문, 2002, 8, 17)에서 발췌:
‘어느 목사가 넥타이 대신 빳빳한 흰색의 성직자 셔츠를 입은 것을 보고 선배 목사가 크게 노를 발하였는데 이 선배 목사의 마음에는 성직자 의상이란 천주교 신부만의 것이라는 고정된 생각이 굳어 있었나 봅니다. 또 어느 천주교 신부는 신문에 성직자 셔츠는 독신자(獨身者)인 신부(神父)의 신분을 나타내는 복장인데, 개신교 목사들이 입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의견을 실었습니다. 이 두 가지 의견들은 바르지 못한 이해라는 평을 받게 됩니다. 
성직자 셔츠는 독신(獨身)의 표시가 아니라 노예들이 목에 두르고 끌려 다니는 목줄과 같은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일만을 충실히 행하는 종의 신분을 뜻합니다. --- 지금까지 한국의 장로교는 탈예전적(脫禮典的)인 교회로서 출발하였기에 예배의 내용과 형태를 비롯하여 예복이나 기타 성구(聖具)들에 대한 깊은 이해를 외면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 준 선교국들의 교회는 예배복원운동을 펼치면서 개혁자들이 고수했던 많은 것들을 복원한지가 벌써 오래인데, 한국 개신교는 여기에 대하여 정보나 교류를 거의 갖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신학교육에서 예배학이라는 과목마저 없이 한 세기를 넘긴 바 있는 부끄러운 기록을 남긴 교회가 되었습니다. --- 성경에서는 예배를 집례하는 성직자가 일상의 복장을 입은 그대로 성단(聖壇)에 오르는 것을 금한 바 있습니다(출28:42, 43). 이러한 가르침은 기독교의 오랜 전통이 되어 예배를 위한 예복뿐만 아니라 일상복까지 성직자 셔츠를 입게 하였습니다. --- 장로교의 창시자인 존 낙스 역시 성직자는 성별된 복장을 입을 것을 제도화 한 바 있습니다. 스코틀랜드 교회를 방문하여 확인한 보수적인 목사일수록 성직자 셔츠를 철저히 입고 지내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넥타이를 대신하게 되는 빳빳한 흰 깃(襟)은 그 근본 뜻이 노예의 상징입니다. 영예롭고 화려한 의미는 전혀 없습니다. 실질적으로 목사가 성직자 셔츠를 입고 바깥 출입을 하고 교인들을 만난다는 것은 참으로 고된 사역입니다. --- 그의 언어와 행동과 몸가짐 전체를 함부로 할 수 없도록 하는 철저한 제어장치입니다. 넥타이를 한 목사가 술집이나 홍등가를 가도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직자 셔츠를 입은 목사는 그 근처에도 갈 수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효과성은 대단한 것입니다’. 
2. 이 문제에 대한 공개적 논의의 필요성
1. 초대교회의 예루살렘 공회(행15장)는 이방인들을 교회에 영입하는 일의 여부(與否)와 그들을 영입한 이후의 지도 지침 등에 대하여 각각 의견을 달리하는 지도자들 사이에서 “많은 변론”(7)이 있은 후, 마침내 지상(地上) 교회가 다 함께 따를 영구한 방침을 수립, 공포하였듯이, 이 개신교 성직자의 예배인도시 복장 문제도 그러한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보며, 이 문제에 대하여 지금 온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백출(百出)하는 의견들’(레쉬만, p.86) 중 하나로 필자의 의견도 독자들이 살펴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2. ‘칼빈은 평화를 위해 진리를 너무 가볍게 양보하지 말고 “참신한 분쟁”(fresh conflicts)의 계속을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통일과 분리에 대한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그는 세계적 협의체의 필요성을 주장했고, 그 협의체는 이념, 인물, 방법을 바르게 선택할 때 제 기능을 할 수 있음을 제시했습니다’
3. 레쉬만의 견해에 대한 우리의 의견: 
1) ‘종교개혁자들은 앞서 간 사람들이 계속 추가하기를 고집했던 많은 미신적, 우상적 오류들을 발견하고 그 시정(是正)을 위해 노렸했다’는데(레쉬만, p.39, 40), 성직자의 복장 문제도 미신, 우상적 오류들과 관계되는 것이므로 이 문제는 세계적, 범 교단적 차원에서 넓게, 더 명확히 논의해야 할 것이고, 그 해결의 길은 성경의 바른 고증(考證)이라는 좁고 단순한 길에 의해서만 용이하게 찾을 수 있습니다. 
2) 레쉬만은 ‘17세기 이후 스코틀랜드 등에서 예배의식이나 복제(服制) 문제등을 논의할 때 매우 신중하게 하였다’고 거듭 강조했는데(p.20, 38, 42, 149, 150), 천주교나 통합측 총회는 이 문제를 스코틀랜드 교회 처럼 ‘매우 신중하게’ 대하고 있는지를 재고할 여지는 없을까요? 
3) ‘종교개혁 후 스코틀랜드 목사들은 천주교와 영국 교회의 예식을 복종하지 않았다’고 했고(p.31), 그들은 이를 강요하는 왕명(王命)에 목숨을 걸고 항거하다가 마침내 많은 수난자들을 뒤에 남기고 화란이나 미국으로 도피했다는데, 이런 역사적 사실의 의미도 논의되어야할 것입니다. 
4) ‘18세기에 영국에서 비국교도의 개혁의 효과로 의식의 엄숙함이 약화되었고, 새로 유입된 만은 것들은 세속적인 부가물(附加物)들로 흐릿해졌다’는데(p.29), 금일의 한국 장로교의 의식(儀式)이나 복식(服飾) 변화 추구도 이와 동일한 ‘혼란의 계속’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는 기우일까요? 이 예측되는 ‘혼란’의 방지는 오직 성경의 정신에 따라서 이런 무용(無用)한 관심을 일소(一掃)함으로서 가능합니다. 
5) ‘칼빈이 예배인도시에 당시 법관들이 입던 제네바 가운을 입었다’는 정장복교수의 견해의 출처는 어디입니까? 필자는 칼빈이 ‘성직자의 예배 인도시 복장은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외출복이면 가하다’고 답하였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또 칼빈은 검은 색 가운만을 입었다는데, 오늘의 개신교 목사들의 예배 인도시의 복장은 날로 다양한 색깔을 따라가고 있으니, 이 추세를 어떻게 막을 수 있습니까? 이 경박성(輕薄性)의 근거 이해와 그 제거의 길은 오직 “성경과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오해”(마22:29)의 극복에서만 찾아야 합니다. 
6) 통합측 총회 결정은 ‘성직자의 가운이나 성직자 셔츠의 색깔은 검정색 일변도가 아닌 교회력에 준한 밝은 색깔이 가하다’고 했는데, ‘교회력’의 근거와 ‘성령의 색깔은 비들기 색깔’(목회자 신문, 2002, 8, 3)이라는 이론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그것들은 개신교에서는 이미 16세기에 개혁된 천주교의 허망한 잔재가 아닌지요.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법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갈2:18)에 해당되지 않는지요.
7) 통합측 교회는 ‘비록 엄연한 총회의 결정이 있더라도 시행은 개교회 중심으로 이뤄진다’고 하는데(목회자 신문, 2002, 8, 3), 그렇다면 그 총회의 결정의 의미는 무엇이며, 이런 총회의 애매한 지도 원리가 가져올 혼란의 수습은 오직 성경의 보다 더 명확한 고증(考證)에 달려 있습니다. 
8) ‘교회의 직제(職制)들이 국가에 부담이 된다’(레쉬만, p.145)는 문제; 즉 독일 같은 기독교가 국교(國敎)인 나라에서는 ‘교회의 예식, 특히 예전복(禮典服) 등의 비용이 국가에 재정적 부담을 준다’는 사실과 연관하여 우리 나라에서도 교회의 허례와 허식을 위해서 사용되는 비용을 다른 곳에 써야하지 않을까요. 또 ‘국가에 대한 부담’은 다만 나라의 재정적 문제만이 아니라 례쉬만이 누누히 지적한대로 ‘국민의 신앙과 정신에 미치는 위화감(違和感), 거부감의 부담’이 더욱 큰 것이며, 이 거부감이 복음의 전도에 최대 장애가 되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불교나 무속(巫俗)종교의 그럴듯한 복식(服飾)이 몽매한 우상교의 추종자들에게는 존경과 애착의 대상이 될 수 있으나, 참 지성인들에게는 그것들이 다만 멸시와 혐오감의 대상 이외에 아무것도 아님을 우리는 모두 인정합니다.
9) 천주교나 통합측 78회 총회 의결에서 성직자 셔츠를 ‘노예의 상징’으로 해석하는 견해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개신교 성직자는 어떤 인간, 어떤 기독교인보다도 성경의 복음이 선포한 ‘자유인(自由人)’의 긍지(눅4:18, 요8:32, 롬8:21, 고전7:22, 9:1, 10:29, 갈2:4, 4:22, 23, 26, 30, 31, 5:1, 13, 약2:12, 벧전2:16)를 몸으로 살아가면서 그 자유의 정신을 세상 앞에서 높이 선양(宣揚)해야 하는 사람인데, ‘노예의 상징’을 목에 걸고 다닐 수 있습니까? 
10) ‘술집이나 홍등가 출입을 성직자 셔츠의 제어장치를 통해서 제어 받을 수 있다’고 하는데, 개신교 성직자의 자주적 윤리의식(倫理意識)의 일반적 낮음이 그렇게 피상적으로 상정(想定)되어질 수 있고, 그렇게 안이하게 대처될 수 있습니까? 
11) 목사가 ‘예전복에 동복과 하복의 구별을 두는 것은 부끄러운 무지’라고 정교수는 개탄했는데(목회자 신문, 2002, 8, 3), 오히려 “성경과 하나님의 능력을 오해한”(마22:29) 교회 지도자들의 성경에 대한 무지가 이런 부끄러움의 원인을 제공한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선진교회들의 예배복원 운동의 실정(實情)에 대하여 무지함’을 정교수는 탄식하는데, ‘선진교회의 예배복원 운동’의 실체 역시 더 세밀하게 살펴야 합니다. 정교수가 주장하는 ‘종교개혁자들이 고수(固守)했던 예배 의식의 계승에 대한 우리의 의무’(목회자신문, 2002, 8, 3)에 대하여 그 개혁자들이 ‘고수했던 것’이 진정 무엇이었는지 다시 세밀하게 고증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12) ‘총회의 결정이 있어도 그 실행은 개교회 중심으로 하면 된다’는 통합측 총회의 애매한 자세는 결국 모든 질서룰 무너뜨리려고 교회에 ‘가만이 숨어서 들어오는 악’에게 길을 열어 두는 결과를 초래합니다(갈2:4, 딤후3:6, 벧후2:1, 유다1:4).
13) ‘목사가 성직자 셔츠를 입고 사역하는 일은 고역(苦役)’이라고 하지만, 그 고됨은 그런 셔츠를 입었기 때문이기 이전에 “성경과 하나님의 능력을 오해하는” 목사의 영적 무지에서 오는 영혼의 불안과 양심의 갈등 때문인즉, 그 고됨을 극복하기 위해 먼저 성경을 오해 없이 이해하고, 목사의 예복 같은 아무 힘도 되지 않는 외양(外樣)의 힘에 의지하려는 사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바르게 의지하는” 사역을 지향하도록 상회에서부터 목사들을 바르게 지도해야 합니다.
3. 목사의 예배용 복장의 변화 추구에 대한 바람직한 시정(是正) 노력의 방향
1. 레쉬만은 ‘종교개혁자들이 개혁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음을 발견하고, 이 일은 학문과 경건을 겸비한 목사들의 임무’라고 했는데(p.146), 첫째, ‘산적한 개혁할 문제들’ 중에서 성직자의 예복 문제도 중요하다는 사실과, 둘째, 레쉬만이 말하는 많은 문제들의 ‘개혁’의 근본 방향은 그것들의 ‘폐지’와 ‘일소(一掃)’ 또는 ‘간소화’라는 점, 셋째, 이 문제를 취급해야 하는 목사의 ‘학문과 경건’의 기초는 무엇보다도 ‘성경을 오해 없이 이해하고, 예복 같은 외양(外樣) 의존적 사역을 과감하게 떠나서, 하나님의 능력을 진솔하게 의지하는 길을 지향하는데 있습니다.
2. 선진(先進) 장로교회들의 이 개혁작업에 임했던 최고의 신중성(레쉬만, p.20, 38, 42, 149, 150)을 우리가 심도 있게 참작해야 합니다. 우선 다음 같은 구체적 문제들을 좀 더 성경적으로 깊이 고려해야 합니다. 
1) 레쉬만: ‘예배당 안의 성화(聖花)와 성의(聖衣) 제도는 개혁에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했던 에리자베스 여왕이 주창한 것이며, 따라서 스코틀랜드 목사들은 천주교와 영국 예식에 복종하지 않았다’(p.31)고 했는데, 그들의 이런 결정은 예배시의 꽃들과 흰 띠(白帶) (성직자의 예복의 일부) 등을 성경에 비추어서 미신으로 보고 거부했던 사실(p.142)은 그 목사들의 상식이나 상상의 결과로서의 결정이 아니었고, 성경이 그런 것들은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었으며, 그들이 그렇게 불복종하고 거부하기 위해서 그들은 얼마나 많은 성경의 고증 노력과 논의를 거쳤을 것이 분명한데, 우리 나라 개신교에서는 이러한 신중한 성경의 고증이 거의 완전히 탈락되어 있습니다. 참으로 진지한 성경의 연구와 논의가 우리에게서도 앞서야 한다고 봅니다.
2) 스코틀랜드의 개혁자들은 천주교와 영국교회의 예배 예식과 복장 등은 ‘부적절하고 부담만 주는 절차들’이라고 보았으며(39), 이런 제도들은 ‘성직자와 신도들의 양심을 무디게 하고, 그들에게서 기쁨을 빼았는다’고 하였고(39-40), ‘이런 교회의 고위 성직자들의 횡포로 무지와 미신과 우상이 교회 안에 만연되고, 고위 성직자들은 이런 제도들을 읊조리면서 자신들을 더욱 무지하게 만들어 지식과 경건을 좇는 일에 무관심하게 만들었다’(p.40)고 하였으니, 이런 성경 오해의 전철(前轍)을 우리는 철저하게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3) ‘교황주의자들은 날마다 새로운 것을 교회에 강요한 결과 나태하고 미숙한 목회를 성행(盛行)케 하였다’(p.40-41)고 했는데, 한국 개신교에서도 예견되는 이런 교회의 문란(紊亂) 상태와 퇴영(退嬰)의 진행을 선교 초기의 선교사들의 바른 선택을 따라서 목사의 예배용 복장 같은 공허한 논의를 일소(一掃)하고, 한국 개신교의 천주교화(天主敎化)를 사전에 방지하는 일에 온 교회가 주력해야 합니다. ‘천주교의 육(肉)과 혈(血) 중심(=미신적 형상<形象>중심)의 의식들의 폐지를 과감하게 결정했던 스코틀랜드 교회’(p.41)의 선례를 우리도 본받아서 차라리 지금까지 경솔하게 채용한 혼란스러운 새 복식(服飾) 제도들을 일소(一掃)하고, 우리 개신교 초기의 평복 사용 전통으로 돌아가는 방향으로 숙고해야 할 것입니다. 
4) ‘이런 교황주의자들의 횡포로 스코틀랜드 교회에서는 개혁 지향의 목사들에게 올가미가 씨워지고 그들의 수난이 이어졌으나(p.41-42), 그 결과 거기서 오류들과 미신들이 발견되는 동시에 더 좋은 많은 지도이념들도 발견되어, 교회는 신성(神聖)의 신비를 깨닫게 되었으며, 설교와 기도의 은사를 누리게 되었다’(p.41)고 했는데, 이런 선한 결과들은 모두 성경의 상고(詳考)의 결과였음을 우리는 인식하고, ‘교회가 전하는 복음과 보여주는 예배의식의 정화(淨化)를 위해 교회의 기도를 장려하는’ 올바른 방향으로(p.56) 우리도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5) 선진국들의 장로교회들이 도모했던 ‘예배의 일치’ 운동(p.41)을 그 최선의 방향으로 추구하게 되도록 교회의 지도자들은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6) 예배당의 건물의 일부나 그 안의 특별한 방향(方向)(예컨대 동방<東方><p.89>)이나 강대상 뒤의 십자가나 성경 안치대, 목사의 특별한 예복 등을 신성시(神聖視)하는 미신적 행위들의 원인은 성경에 대한 무지의 결과입니다. 선진교회에서는 장례식 때에 묘지에서의 하관식(下棺式) 예배를 미신 행위로 보고 금지했으며(p.75), 스코틀랜드의 개혁가 사뮤엘 루더포드(Rutherford, c. 1600-1661)의 지도하에서 청교도들은 상복(喪服)을 '위선(僞善)은 아니라도 미신적이라고 보아 금지했던 사실’(p135)도 우리는 고려해야 하겠습니다.
7) ‘목사의 예배용 복장의 동복(冬服)과 하복의 구별 착용’ 같은 논의는 성경에 명시된 자연에 순응하는 ‘자유의 법 안에서’(롬8:21, 고전10:29, 갈5:1, 약5:12, 벧전2:16) 아무 어려움 없이 해결됩니다. 
레쉬만과 정장복 교수의 글들에서 발췌한 이상의 내용들을 보면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이 기독교 목사의 예배인도시의 복장 문제는 극심한 혼란을 이르키는 문제인데. 필자는 이 혼란의 원인이 성경에 대한 이해의 부족 때문으로 봅니다. 


II. 차이점들의 해결의 길을 성경에서 찾자.
1. 한국 개신교 목사의 예배인도시 평복 사용은 성경에 근거하였다. 
우리 나라에 개신교를 전했던 영국, 미국, 호주 등의 개신교 선교사들은 종교개혁의 정신을 잘 이어 받은 건전한 개혁주의적 청교도(淸敎徒)의 정통적(正統的) 신앙과 생활을 한국 교회에 전파했었고, 따라서 그 선교사들은 천주교나 성공회 등의 목사들의 예배시 복장을 성경적 견지(見地)에서 의도적으로, 자신들부터 입지 않았고, 한국 교역자들에게도 입게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나라 개신교 목사들의 지금까지의 예배시 복장이 평복인 이유는 무원칙(無原則)의 산물이 아니었고, 어디까지나 기독교의 토대인 성경의 원리를 충실히 반영한 신앙 고백의 한 표지(標識)였으며, 따라서 그것은 공교회(公敎會)의 오랜 기간의 훌륭한 불문율(不文律)의 전통을 이어온 관례였던 것입니다. 비록 이 합의(合議)가 이뤄졌던 시간이나 장소나 조문(條文)들이 충분히 제시되지 못해도, 기독교는 그와 같은 성경에 근거한 불문율의 암묵적(暗黙的) 합의를 귀중히 여기는 종교입니다.
그런데 1960년경 이후부터 한국 개신교 목사들 중에서 상회나 연구단체와의 합의도 없이, 개개인이 자기 취향에 맞는 예배용 복장을 목사 각자가 자의(恣意)대로 마련하여 사용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契機)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필자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6.25 동란 이후 군목(軍牧)제도가 실시되어 군인들에게 군영(軍營) 안에서 전도와 예배의 기회가 주어졌는데, 당시 군대의 영내(營內)에는 예배당이 흔하지 못했기 때문에 개신교와 천주교의 성직자들이 한 예배당에서 시차제(時差制)로 군인들의 예배를 인도한데서부터 변화의 계기가 주어졌던 것으로 봅니다. 물론 우리 나라보다 먼저 군목제도를 실시해 온 주한미군의 군목들도 구교와 신교의 성직자들이 한 예배당을 사용한 예는 허다했습니다. 
사람이란 오관(五官) 중에서도 시각(視覺)의 호소에 가장 끌리기 쉽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개신교의 군목들이 천주교 군목들의 착용한 유별나게 휘황찬란한 제복(祭服)의 모양과 색깔에 마음이 끌린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갈 만한 일이었으나, 그 배후에는 그들의 성경 지식의 취약성이라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첫째 오해는 동일한 기독교라는 신앙을 초신자들이 대부분인 군인들에게 전하면서 동일한 성직자의 복장이 너무나도 다른 것이 포교(布敎)에 지장이 될 것 같이 착각을 했던 점입니다. 그들의 둘째 오해는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인 현상이지만 유독 복색(服色)과 의장(儀杖)에 예민한 군인 사회이기 때문에, 개신교의 군목들이 그들의 밋밋한 평복(平服) 위에 천주교의 군목이 어깨에 드리운 화려해 보이는 ‘스톨’ 하나라도 걸치고 싶은 욕망이 생겼던 것도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그 군목들의 그와 같은 선택은 그들이 개신교의 성경 중심적, 청교도적 실질검박(實質儉朴)한 신앙과 생활의 전통을 그들이 너무 쉽게 떠난 유감된 처사였음을 우리는 지적하는 바입니다.
2. 4세기 구라파 교회와 20세기 한국 개신교회 일부의 오류의 공통성
천주교나 성공회, 루터교의 성직자의 복장의 기원(起源)에 대해서는 교회사에서 설명된 바와 같이 그것이 일종의 허망한 동기에서 생겼던 것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는데, 오늘 논의되고 있는 한국 개신교의 예배용 복장 문제도 이와 동일한 성질의 기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2세기 말까지 로마제국의 열 차례에 걸친 박해로 300만 명의 신자들이 신앙 때문에 생명을 잃었고, 그 순교자들은 문자 그대로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암혈(巖穴)과 토굴에서 유리했으나,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히11:37, 38) 참된 삶의 본을 교회에 남겼던 것입니다. 그러던 추세가 4세기 초부터 일변했습니다.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로 개종하고, 기독교의 포교 자유가 허락되자 그리스도인의 처지는 급속히 변했습니다. 
특히 기독교의 지도자들은 지금까지 히브리서의 말과 같이 ‘양과 염소의 가죽을 쓰고 암혈과 토굴에서 유리하던‘ 신세가 그야말로 하루 아침에 일변하여, 황제들과 귀족들의 존대를 받으면서 왕궁과 귀족 가문들에 출입을 자주 해야 하는 신분들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기독교의 감독들과 장로들의 복장에 급격한 변화가 생겼습니다. 황제와 귀족들은 자기들의 궁중의 규모에 알맞는 의관(衣冠)들을 기독교의 성직자들에게도 제공하기 시작했고, 기독교의 성직자들은 그것을 입어야 그들의 새로운 환경에서 처신이 자유로울 것으로 착각했는데, 이는 그들의 성경에 대한 무지의 결과였습니다. 이리하여 천주교의 성직자들의 복장은 오늘에 보는 바와 같은 화사한 모양과 색깔로 점차 규격화되어서 지금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4세기부터의 구라파 교회의 이러한 성경의 원리로부터의 일탈과 변질의 본질은 다름 아닌 성경에 계시된 구원의 복음을 근본부터 부정하는 그들의 율법주의와 권위주의에에로의 퇴행(退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치명적인 퇴행 즉 구원사(救援史)에의 역행(逆行)은 그때부터 오늘까지 천주교회나 성공회 안에서는 시정되지 아니하고 그대로 줄곧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4세기 이후 교회의 이와 같은 속화(俗化) 추세에 경종(警鐘)을 울렸던 진정한 지도자들도 많았던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제롬(히에로니므스, 345-420)과 그의 동료 수도사들은 로마 황실의 사치와 일락(逸樂)에 급속도로 깊이 빠져 들어가는 도시 교회를 혐오(嫌惡)하고, 또 그와 같은 교회를 혁신하고 구출하기 위해 산 속과 광야로 들어가서 금욕생활에 힘쓰면서, 성경연구와 저술과 교육에 주력(主力)했던 사실은 널리 기억되고 있습니다. 도시를 점점 더 멀리 떠난 제롬이 광야를 헤매다가 마침내 사자 굴에까지 들어가서, 사자 앞에서 돌로 자신의 몸을 치면서 기도했다는 전설은 레오날드 다빈치(1452-1519)에게 큰 감명을 주어서, 그로 하여금 사자 굴 속의 제롬을 주제로 한 그림을 여러 번 그리게 했던 것도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그뿐 아니라 6세기의 수도사 베네딕트(Benedict, 480-550)는 그의 추종자들과 함께 검은 색의 도복(道服)만을 입고, 검소한 생활을 제창했으며, 13세기의 성 프란시스와 그의 문도들은 새끼 띠를 띠고 검약생활(儉約生活)을 힘쓰면서 수행(修行)과 자선(慈善)에 정진했던 것도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사실이며, 또 마틴 루터는 종교개혁 사업에 투신한 이후로는 항상 농민의 의복을 입고 일생 지냈다는 사실도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이들 모든 수도사들의 옷은 그들이 가정에서 입던 옷, 즉 평복이었습니다. 수도사가 수도에 나서면서 옷에 마음을 쓴다면 그는 수도사가 아닙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오늘의 기독교 성직자의 예배인도시의 복장에 관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III. 목사의 예배용 복장과 복음의 관계


비(非)복음적 교회들이 성직자의 예배 인도시의 복장에 제복(祭服)의 의미를 붙여서 착용하게 된 사실의 배후에는 두 가지의 큰 오류가 깔려 있는데 그 첫째는 신약시대의 복음에 대한 근본적 오해이며, 둘째는 비기독교적인 권위주의에의 집착(執着)이었습니다.
1. 구약성경의 교훈
1) 모세오경의 교훈
모세오경에 기록된 제사장들의 복장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그 모양과 재료와 만드는 법과 입는 법까지를 일일이 모세에게 지시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제사장들의 복장은 한 때는 하나님의 구원 계시의 매체(媒體)였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 자체이기도 했습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봉사할 때 착용했던 복장들은 오늘의 천주교 등의 제복(祭服)들처럼 인간의 고안물(考案物)이 아니었음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그것들은 출애굽기 28장과 31:10-11, 35:35, 39장, 대상28:11-19 등에 기록된 바와 같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나타나셔서 모세를 통해 그 예복들의 재료, 모양, 만드는 법, 입는 법까지 세밀히 계시하신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구약 계시는 이제 모두 과거의 유물이 되었습니다(히9:9, 10). 
출20장에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말씀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어서 이렇게 분부하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비겨서 은으로 신상(神像)이나 금으로 신상을 너희를 위하여 만들지 말고 내게 토단(土壇)을 쌓고 그 위에 너의 양과 소를 너의 번제와 화목제로 드리라 내가 무릇 내 이름을 기념(記念)하게 하는 곳에서 네게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 네가 내게 돌로 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지라 네가 정(釘)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 너는 층계로 내 단에 오르지 말라 네 하체가 그 위에서 드러날까 함이니라”(출20:23-26, 신27:6, 수8:31).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말씀하신 직후에 하나님께 대한 예배의 의식과 형식을 말씀하시면서 ‘토단(土壇)’과 ‘다듬지 아니한 돌’을 제단으로 사용하라고 말씀하신 뜻은 하나님께 대한 예배의 의식이나 형식의 근본 정신이 간소(簡素)함과 실질검박(實質儉朴)함에 있슴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층계로 오르내릴 때 드러나기를 두려워해야 할 하체’는 육신의 하체보다도 ‘마음의 망령됨’을 뜻합니다. 따라서 구약시대의 제사장들이 성전에 출입할 때에 제복(祭服)으로 가리웠던 부끄러운 하체(下體)는 신약시대에는 ‘그리스도의 옷’으로 완전히 아름답게 가리워졌다고 신약성경은 말합니다(막5:15, 눅15:22, 갈3:27, 계3:5, 7:9, 14).
이스라엘 민족이 시내산 밑에서 지었던 성막(聖幕)이 비록 정묘(精妙)한 기공(技工)을 다한 것이었으나 그것의 근본정신은 ‘토단’과 ‘다듬지 않은 돌’의 간소(簡素)한 정신에 있음을 기억케 하시려고 하나님은 십계명의 분부 직후에 이 말씀을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근본원리(根本原理)와 지엽(枝葉)의 관계를 구별하는 성경적이고 영적인 안목의 필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모세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정성을 다 드려서 건조(建造)했던 성막은 결국 그것을 통하여 나타내신 하나님의 구원의 계시를 실질검박(實質檢朴)한 실천생활로서 나타내지 못하고 ‘외식(外飾)’과 ‘경박성’으로 변절시켰던 이스라엘의 변절(變節)의 죄 때문에 결국 그 성막은 때로는 블레셋 사람들에게 뺏기기도 했고, 사울 왕 때에는 벽지(僻地)의 숲 속에 버려지기도 하다가(시132:6), 마침내는 이스라엘 민족의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는 그 자취를 아주 감추게 된 사실이 주는 교훈을 우리는 명심해야 만 합니다. 따라서 이 과정에서 하나님이 계시하신 뜻은 구약의 의식(儀式) 중심의 신앙과 예배는 “참 것의 모형과 그림자”(히9:23-24)일 뿐이며, 그 “예법들은 개혁의 날까지만 두었다가 소멸될 것”(히9:10)이라는 교훈입니다.
출32장-33장에 모세가 두 번째 호렙산에 올라가서 하나님께로부터 십계명의 돌 판을 다시 받는 동안 산 아래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아론의 허락으로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경배한 큰 죄를 지은 기록이 있습니다. 이 범죄가 있은 후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라”고 분부하신 다음, “그러나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중로(中路)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 다음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백성이 이 황공한 말씀을 듣고 슬퍼하여 한 사람도 그 몸을 단장(丹粧)하지 아니하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라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순식간이라도 너희 중에 행하면 너희를 진멸하리니 너희는 단장품(丹粧品)을 제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할 일을 알겠노라 하셨음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호렙산에서부터 그 단장품을 제하니라”(출33:1-6)
이 말씀도 구약에서나 신약에서나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와 일상 생활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단장품(丹粧品) 즉 복식(服飾)은 원칙적으로 간소(簡素)해야 함을 가르치고 있으며,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차는 경문(經文)을 넓게 하고 옷술을 크게 하는 외식을 책망하신” 예수님의 뜻(마23:5, 6)과 일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의 목사들도 예배 인도시의 복식(服飾)은 화려하면서도 ‘목이 곧은’ 완악한 무지와 불순종의 생활을 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순식간이라도 동행하실 수 없는’ 위태로운 신앙생활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이런 위태로운 생활로 나가는 단서(端緖)의 하나가 불필요한 복식(服飾) 같은 것으로 자신과 신도들의 영의 눈을 가리우는 것이고, 그런 우리들과 우리의 교중들은 하나님도 “어떻게 행하실 바를 모르시게 되는”(출33:5), 즉 하나님이 버리신 무리가 되는 것입니다.
2) 솔로몬 성전이 남긴 교훈 
솔로몬이 그 화려한 성전을 다 건축하고 준공식을 마친 후 여호와께서 밤에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말씀하시기를 “네가 만일 내 앞에서 행하기를 네 아비 다윗과 같이 하여 내가 네게 명한 모든 것을 행하여 내 율례와 규례를 지키면 내가 네 나라 위를 견고케 하되 전에 내가 네 아비 다윗과 언약하기를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한대로 하리라 그러나 너희가 만일 돌이켜 내가 너희 앞에 둔 내 율례와 명령을 버리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숭배하면 내가 저희에게 준 땅에서 그 뿌리를 뽑아내고 내 이름을 위하여 거룩하게 한 이 전(殿)을 내 앞에서 버려 모든 민족 중에 속담거리와 이야기 거리가 되게 하리니 이 전이 비록 높을지라도 무릇 그리로 지나가는 자가 놀라 가로되 여호와께서 무슨 까닭으로 이 땅과 이 전에 이같이 행하셨는고 하면 대답하기를 저희가 자기 열조(烈祖)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자기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에게 부종(附從)하여 그를 숭배하여 섬김으로 여호와께서 이 모든 재앙을 저희에게 내리셨다 하리라”(대하7:17-22)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교훈도 우리 예배의식(禮拜儀式)과 우리의 신앙 정신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잘 보여 줍니다. 신앙은 예배당 건물이나 목사의 복장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 아니고, 무엇보다 먼저 목사와 신도들이 성경을 바르게 알고 하나님의 능력을 바르게 의지하는데 달렸습니다(마22:29). 그러나 솔로몬은 하나님의 이 경고를 잊고, 애굽과 이방의 많은 여인들을 비빈(妃嬪)으로 두고, 그 이방 여인들이 가지고 온 우상들을 예루살렘에 가득히 세워서 마침내 예루살렘을 “멸망산(滅亡山)”(왕하23:13)으로 만들었었는데, 그 원인은 솔로몬의 성경에 대한 무지 때문이었습니다. 
기독교의 목사들이 예배당과 그 안의 장식들과 그들의 복식(服飾) 등을 솔로몬 같이 화려하게 꾸미며, 바리새인들처럼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행동’에만 관심을 두고, 명예욕의 노예가 되어 ‘옷술’만을 크게 하기에 몰두하면 그 결과는 하나님의 버리심을 받게 되는 단서(端緖)가 생겨납니다.
2. 신약성경의 교훈
신약성경에는 예배시 성직자의 복장의 제도에 관계되는 계시는 흔적도 없습니다. 신약성경은 오히려 구약의 제사제도들을 근본부터 부인하며, 구약의 의식중심(儀式中心)의 신앙은 구원의 복음을 계시하는데 있어서 고작해야 ‘몽학선생’(蒙學先生) (갈3:24-25)에 불과하다고 했으며, 그것들은 ‘개혁’의 때가 이미 지난 역사의 유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예수님과 사도들의 글에 밝히 나타났습니다. 
(1) 마태복음 11:7-14
“저희가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 입은 자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려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니라 --- 세례 요한의 때부터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았느니라”.
세례 요한은 이사야서와 말라기서에서부터 예언되었던 예수님의 전령(傳令)이요 선구자였고(사40:3, 말3:1), 그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같은 인물이 아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의 뜻은 예수님이 선포하신 복음의 정신이 “부드러운 옷”에나 관심을 두는, “바람이나 갈대 같이” 경망(輕妄)하고 부박(浮薄)한 것이 아니라, 세례 요한의 장렬(壯烈)한 죽음이나 예수님의 십자가를 향한 직선적인 전향적(前向的) 정신을 본받아서 철두철미 실질적이고 강건한 것임을 천명하신 것입니다. 기독교는 예수님과 세례 요한에 의해서 창건(創建)된 이래 예수님의 이 말씀에 굳건하게 서서, 히브리서의 말씀 같이 복음 진리를 위하여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아도 굴하지 않는,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들”(히11:37-8)의 정신을 세계 앞에 세워 주는 종교입니다. 시대와 지역의 변천이라는 하위개념(下位槪念)의 요구는 예수님과 세례 요한의 걸어 간 실질강건(實質剛健)한 정신이라는 상위개념(上位槪念)을 결코 움직이지 못합니다. 기독교회의 지도자는 이 견고한 정신을 교중과 세상에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에 그 자신부터 예배 인도시에 입는 의복 등에 정신과 시간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천국의 침노자”라는 말에서 “침노”의 원어의 뜻은 ‘백병전(白兵戰)’을 의미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 말씀의 실질, 검박성의 강조는 교회가 시대와 환경에 따라서 변개할 수 없는 영구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런 원리의 터득을 위하여 우리는 성경을 더욱 바르게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2) 마태복음 12:1-8, 막2:23-28, 눅6:1-5.
마12:1-8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는데, 이 말씀은 구약의 율법적인 예배의 시대가 지나갔고, 신약의 복음적인 예배의 때가 홀연 당도한 사실을 가장 밝히 웅변적으로 전해주는 말씀들 중의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그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 쌔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고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 한 자들이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리라 인자(人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이 말씀은 구약의 율법을 완성하신 예수님이 바로 구약이 오랫동안 대망하고 예고한 참 안식을 죄인들에게 주시는 ‘안식일의 주인’ 되심을 그 자신의 말씀으로 선포하신 중요한 복음 계시들 중에서도 가장 으뜸가는 계시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이 말씀을 선포하시게 된 배경에는 예수님의 신분과 사역에 대한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성경에 대한 무지가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타인의 밀밭에서 밀 이삭을 잘라서 비벼 먹은 행위는 신23:25의 율법에 의해 허락된 행위였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지적하신 바와 같이 신명기의 이 말씀을 알지 못했거나 혹은 잊어버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힐난했습니다. 
거듭 말해야 할 것은 바리새인들의 이 비난은 예수께서 지적하신 바와 같이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지 못했던 그들의 성경에 대한 무지에서 온 결과였습니다(3,5,7). 
신약에서 예수님이 ‘성경에……라고 기록된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고 물으신 경우는 언제나 ‘그 성경의 뜻을 어찌하여 모르느냐?’, 또는 ‘어찌하여 그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지 못하느냐?’는 뜻으로 말씀하셨습니다(마19:5, 21:16, 21:42, 22:32). 
따라서 예수께서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마22:29)라고 말씀하신 바와 같이, 성경을 오해(誤解) 없이 해석할 수 있을 때에만 하나님의 능력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완전함을 깨닫고, 그 결과 이미 지나간 구약의 율법이나 예배용 복장 같은 문제에 대해 비로소 바른 인식을 우리가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의 힐난에 대해 예수님은 첫째로 바리새인들이 성경을 오해하고 있기 때문에 그와 같은 과오를 범하고 있음을 밝히 지적하신 다음, 삼상21장-22장에 기록된 다윗의 체험을 인용하심으로서 그들의 잘못을 근본적 차원에서 깨우치셨습니다. 예수께서 신23:25 만을 인용하지 아니하시고 사무엘서에서 다윗의 체험도 인용하신 사실에서 그의 차원(次元) 높은 성경 정해(正解)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다윗이 아직 사울 왕에게 핍박을 받으면서 주변 나라들을 유리(流離)하고 다니던 시절에 그와 그의 추종자들이 대제사장 아히멜렉과 그의 동료들 85인의 제사장들과 그 가족들이 사울을 피해 모여 살던 놉에 이르렀습니다(삼상21장). 다윗과 그의 종자(從者)들이 시장하여 아히멜렉 대제사장에게 식물을 요구했던 바, 대제사장은 다윗과 그의 종자들이 “사울 왕의 명을 받고 급히 왔다”는 다윗의 거짓말을 그대로 믿고, 또 그들의 몸이 성결하다는 고백을 그대로 신임하고,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하는 진설병(陳設餠)을 다윗과 그의 종자들에게 주었고, 그들은 그것을 먹고, 또 골리앗의 검을 받아 가지고 놉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율법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이 성물(聖物) 모독의 죄와 거짓말의 죄, 그리고 왕에 대한 반역의 장면을 사울 왕의 목자장(牧者長)이던 에돔 사람 도엑이 지켜보고 있었습니다(삼상21:7). 얼마 후 다윗을 죽이려고 찾아 나선 사울이 기브아에서 자기 신하들 중에 다윗과 내통(內通)한 자들이 있을 것이라는 의구심(疑懼心)을 토로하면서 신하들을 꾸짖게 되자, 도엑이 일어나 놉에서 있었던 아히멜렉 대제사장과 다윗의 ‘율법에 대한 범죄와 왕에 대한 반역’을 왕에게 고했습니다. 
대노한 사울 왕은 당장 놉에 사람을 보내어 아히멜렉과 그의 동료 제사장 85명과 그들의 가족들과 재산을 모두 그의 앞에 끌어오게 했고, 부하 군인들이 주저하자, 에돔 사람 도엑을 시켜서 제사장들과 그 가족을 모두 죽였습니다(삼상22장). 이 역사상 유례(類例)가 드문 대참사(大慘事)에서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은 거의 멸종될 뻔 했고, 아히멜렉의 아들들 중에서 아비아달 하나만이 간신히 도주하여 다윗에게 피신함으로서 제사장의 대가 끊어짐을 면했습니다.
이 대참사(大慘事)에서 다윗의 지은 율법상의 죄들을 더 상세히 짚어 보는 일은 신약의 복음을 이해하는데 매우 유익을 줍니다.
이 때에 다윗은 율법적으로 진단하면 도저히 용서받을 수가 없는 대죄를 여러 가지 지었었습니다. 첫째는 사울 왕에게서 쫓겨난 처지이면서 “사울 왕의 비밀한 명을 받들고 급히 왔노라”는 거짓말을 했습니다(삼상21:2). 둘째로는 예수님도 밝히 짚으신 대로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자신 뿐 아니라 부하들도 함께 먹었습니다’. 세 번째 대죄는 왕에 대한 반역의 표시로 골리앗의 칼을 제사장으로부터 받아 가지고 길을 떠났습니다. 율법서에 의하면 진설병은 레위인이나 제사장들 이외의 다른 지파 사람들이 만지거나 먹기는 고사하고 드려다보기만 해도 죽음의 벌을 받았습니다(민4:20, 삼상6:19, 삼하6:7). 
다윗의 네 번째 대죄(大罪)는 위의 범죄의 결과로서 제사장 85인과 그 가족 전부와 그들의 재산이 진멸 받게 한 죄입니다. 그 85명의 제사장들과 그 가족들은 다윗의 거짓말 한마디 때문에 진멸되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사울이나 도엑은 그들을 진멸하면서 율법적으로는 떳떳했습니다. 다윗에게 진설병을 주어 먹게 한 제사장들의 죄는 율법적으로는 열 번 죽어도 마땅했고, 따라서 다윗의 죄는 그만큼 더 컷습니다. 
그런데 마12:1-8의 예수님의 판단은 이와 같은 율법의 판단을 근본부터 부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판단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a. 첫째로 ‘다윗에게는 죄가 없다’는 것이고, 그 판단의 근거는 하나님은 “인애(仁愛)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시기 때문이며”(시40:6, 51:16, 17, 호6:6) 따라서 다윗과 그의 종자(從者)들도,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바리새인들이 정죄하는 죄에 대하여 무죄하다는 것입니다. 이 경위(經緯)는 더 해명되어야 할 다윗사(史)의 사실(史實)들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신23:25에서 허락된 행동을 했기 때문에 ‘무죄’하다는 말씀만이 아니고, ‘성전보다 더 크시고’ ‘안식일의 주인’이신 메시야의 선택과 속죄의 복음을 그들이 믿고 그분과 동행 중이기 때문에 그들은 무죄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 보다 1000년 전에 살았던 다윗이 복음을 이미 이해했고 이신칭의의 은혜를 이미 받았었다는 성경의 계시는 목사의 예배용 복장과 관련하여 어떤 교훈을 우리에게 줍니까? 
다윗이 메시아를 믿은 사실은 삼하7장이나 시편 2편, 8편, 16편, 22편, 40편, 51편, 110편, 141편 등에 밝히 나타났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 사실을 오순절에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그(다윗)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位)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그가 그리스도를)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여 저가 음부(陰府)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행2:30-32). 
거짓말로 제사장을 속여 진설병을 먹고, 그 결과 85명의 제사장들과 그 가족들과 재산을 다 진멸 당하게 했던 다윗의 크나 큰 죄가 “무죄”라는 예수님의 판단을 받은 이유는 오로지 “성전보다 더 크시고 안식일의 주인”이신 구제주의 속죄를 예수님이 오시기 1000년 전에 그가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이외에는 아무런 이유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b. 둘째는 이 말씀을 통하여 예수께서 선언하신 큰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구약시대에나 신약시대에나 율법의 속박에서 완전히 해방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다윗)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와 함께 한 자들이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고 물으시는 예수님의 질문의 뜻은 다윗과 그의 종자들이 율법상으로 보면 크나 큰 죄이지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믿음으로 사죄(赦罪)의 은혜를 입었고,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서 인간을 속박하고 있는 율법의 저주(갈3:13)에서 이미 해방되고, 더 나가서는 그들이 참된 신약의 제사장이 되었기 때문에 성전에 들어가서 진설병을 먹는 큰 자유까지도 허락 받았었다는 것이 예수님의 논리였습니다(롬10:4).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구약의 성전에는 레위 지파의 제사장들 외에는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다윗과 그들이 아론 지파가 아니면서 성막에 들어간 행동부터가 그들이 율법의 속박에서 완전히 해방되어서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는 자유를 얻은 신약의 신자의 예표(豫表)였음을 예수님은 보증(保證)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성전에 들어가서 진설병을 먹은 사실을 무죄하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본질은 구약시대에 ‘안식일에 성전 안에서 일하여도 안식일을 범하지 아니하는 제사장’ 이상의 분이시며, 따라서 율법에서 해방된 신약시대의 신자들도 예수님 처럼 참된 구원의 안식을 이미 누릴뿐 아니라, 더 나가서 천국을 위해 일하는 왕 같은 제사장의 신분과 자유를 충분히 누리는 상태에 이미 들어왔음을 다윗이 예표(豫表)한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신 것입니다(벧전2:9, 계5:10, 20:6).
c. 세 번째는 예수께서 선포하신 복음은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하신 말씀에 나타난 바와 같이, 기독교는 구약의 제사제도(祭祀制度)의 ‘무자비한’ 저주에서 인간이 완전히 해방되어 하나님의 사랑의 복음으로 구원받았음을 예수님이 선언하셨습니다.
우리는 위의 교훈에서 신약시대는 말할 것도 없고 구약시대에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기만 하면 다윗과 그의 종자들이 레위지파나 제사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성전에 자유롭게 들어간 것 같이 누구나 예수 안에서 하나님 앞으로 담대히 나가서 그의 생명 떡을 받아 먹을 수도 있었고, 또 그의 제사장의 사명까지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더욱이 지금 신약시대에는 복음 안에서 율법의 휘장들과 의식(儀式)의 장애(障碍)들이 다 제거되었습니다(마28:51, 눅1:74, 75, 히9:8-11, 10:1-10).
여기서 우리가 분명하게 기억할 일은 다윗과 그의 종자(從者)들이 놉의 성전에 들어갈 때에 제복(祭服)이나 특별한 옷이나 일정한 예식을 갖추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사람들은 이미 구약시대부터 신앙의 열매로서의 바른 생활을 의미하는 신앙과 실천의 예복은 입어야 하나(마22:12), 율법의 의식을 위해서 제복(祭服) 같은 것을 입을 필요가 없음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하지 아니하였으리라 인자(人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7-8)고 하신 주님의 말씀에서 신약시대에도 예배시에 제복(祭服)을 입고 회중 앞에 나타남으로서 회중에게 구약의 속박을 계속 지우며, 구약시대와 같이 성직자와 회중들을 구별짓고, 교역자가 회중 위에 군림(君臨)하려는 분위기를 만드는 천주교와 성공회와 루터교와 일부 개신교 목사들은 ‘자비를 원하지 않고 제사를 원하는’ 무자비한 사람들이요, 예수님이 주시는 참 안식을 자기들부터가 아직 누리지 못하면서 고통 중에 여전히 방황하고 있는 불신자들임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천주교는 연옥(煉獄)의 교리를 주장합니다. 그들은 연옥교리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죄와 부활의 생명을 누리는 신자들의 자유를 자신들과 이웃들에게서 빼았고 있으며, 예수님의 십자가가 단번에 이루신 완전한 제사를 부인하고, 연옥 교리를 통해서 계속적으로 ‘제사를 요구하고 자비는 저버리는’ 그릇된 기독교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믿고 세상을 떠난 신자들을 ‘연옥’에 가둬 놓고, 그들을 그 불의 고통에서 해방시켜 준다는 위협을 통해서 죽은 신자들의 살아 있는 친척들로부터 속전(贖錢)을 거둬 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마12:1-8의 기록에서 신약시대에는 구약적 제사제도가 완전히 폐지된 것을 모르고 있는 천주교나 성공회나 루터교회나 근일 한국의 개신교의 일부 목사들이 예배 인도시에 구약적인 예복을 착용함이 성경의 원리에서 어긋난 것임을 지적했는데, 여기에 몇 가지 첨부해서 연구할 문제들이 남았다고 봅니다.
첫째는 다윗이 비록 놉의 성전에 들어가서 진설병을 먹을 때 제사장의 옷을 입지 않았으나, 그는 후일 하나님께 기도할 때 제사장을 시켜서 제사장이 입는 에봇을 가져오게 하여 그 앞에서 기도한 일이 있었고(삼하23:9, 30:7), 또 다윗이 예루살렘에 왕도(王都)를 정한 후 하나님의 법궤를 길르앗 야베스로부터 예루살렘의 기브온 산당으로 옮겨올 때에도 그가 에봇을 입었던 사실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삼하6:14; 대상15:23). 
또 대상23장의 기록에는 다윗이 만년에 왕위(王位)를 아들 솔로몬에게 물려 준 후 자신은 레위 사람 38,000명을 소집하여 그들에게 성전의 제사제도들을 친히 가르치고 독려한 일이 있었습니다. 또 그가 아들 솔로몬을 시켜 건축했던 성전에서 앞으로 시행될 모든 제사제도들과 함께 에봇 같은 제복도 지어서 제사장들이 사용하록 미리 가르친 사실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첫째로 다윗이 망명생활 중에 자신의 갈 길을 하나님께 물을 때 제사장의 에봇을 가져오게 하고 그 옷 앞에서 하나님께 물은 것은, 그가 놉에서는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인도로 신약시대에 이루어질 복음(마12:1-8)을 예표하는 상위개념(上位槪念)의 행동을 명백하게 했을지라도, 이 후자의 경우에서는 그는 아직도 구약시대의 인물로서 복음의 몽학선생(蒙學先生)인 율법의 도구로도 사용되는 하위개념(下位槪念)의 행동을 했었다고 할 수 있는데, 우리는 성경에서 이 상하(上下) 개념들의 구분을 명백하게 이해하기 바랍니다. 
대상23장에 기록된 만년의 다윗의 제사제도에 대한 교육이나, 나가서는 아들 솔론몬에게 그 막대한 금과 은을 유산으로 주어서 성전을 건축케 한 사실(하위개념의 행동)의 구속사적(救續史的) 해석도 동일한 원리로서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할 일은 구약시대의 다윗과 신약시대의 복음의 전파자들이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다윗은 아직도 미래에 완성될 복음을 예표한 인물이었고, 신약시대의 전도자들은 이미 완성된 복음 계시를 증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양자(兩者) 사이의 차이는 엄청나게 큰 것입니다. 신약성경이 처음부터 끝까지 그토록 강하게 증명한 사실이 바로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의 이 큰 차이점이었습니다(마23:1-11, 히10:1-18). 목사의 예배용 복장에 관한 논의에서 구약의 제사제도를 근거로 제시하는 입장들은 바로 이 큰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는데서 일어납니다. 
또한 다윗이 성막(聖幕)을 예루살렘으로 옮겨 올 때 그 자신이 에봇을 입었던 것은(삼하6:14, 대상15:27) 위에 언급한바와 같이 복음의 몽학선생으로서의 제사제도를 그가 사용한 하위개념의 행동이었다는 의미도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몸소 제사장의 에봇을 입은 것은 그의 무지에서 온 분수(分數)를 넘은 망령된 행동이었습니다. 따라서 그와 같은 그의 망령된 행동은 그의 아내 미갈이 그를 마음으로 멸시한 동기가 되었고, 결국은 미갈이 왕비의 자리에서 쫓겨나게 됨으로서 하나님의 징벌을 다윗의 집에 초래했던 것입니다(삼하6;20;-23).
삼하7장에는 다윗의 만년에 그가 성전을 건축할 의사를 선지자 나단에게 알렸을 때 나단이 응했었으나, 바로 그날 밤에 하나님이 나단에게 나타나셔서 다윗의 성전 건축을 금지하셨을 때에, 다윗은 얼마나 크게 당황했을 것이고, 나단의 처지는 매우 어려웠을 터인데도, 그가 마지못하여 다윗 앞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이 뜻을 사실대로 고했을 때, 다윗은 하나님의 금지의 뜻에 대해 의문(疑問)을 아뢰거나 나단에게 노하는 대신, 바로 일어나서 하나님의 존전에 나아가 평안하게 “앉아서”(18절) 하나님의 뜻을 명쾌하게 납득한 자신의 심중을 매우 심오하고 아름다운 감사의 기도로 나타낸 기록이 있습니다. 이 극히 의미심장(意味深長)한 기록에서 우리는 첫째로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우선 성전을 구하거나 예배용 복장 등에 마음을 쓰면 다윗 같이 언제까지나 마음에 안정을 얻지 못하고 좌불안(座不安)의 정신상태에 있어야 하지만, 그런 정신상태를 탈피하자 즉시 “하나님 앞에 들어가 바로 그의 존전에 평안하게 앉아서” 예배를 드리게 된다는 진리를 깨달으며, 둘째로는 따라서 이미 구약시대부터 성전은 무용(無用)했고, 더욱 신약시대에는 목사의 특별한 예배용 복장 같은 것은 있을 여지가 없다는 명백하고 유쾌한 교훈을 배웁니다. 
그리고 다윗이 그의 만년에 레위인들에게 친히 제사제도를 가르쳤고(대상23장), 또 아들 솔로몬을 시켜서 그처럼 화려한 성전을 짓게 하였으나, 대상21:29-22:1에 기록된 다윗의 말씀은 다윗이 성전을 손수 건축하지 않았던 이유와 궁극적으로 성전의 신약적 의미를 그가 이미 깨닫고 있었던 사실을 우리에게 명쾌하게 보여 줍니다. 
“옛적에 모세가 광야에서 지은 여호와의 장막과 번제단이 그때에 기브온 산당(山堂)에 있으나 다윗이 여호와의 사자의 칼을 두려워하여 감히 그 앞에 가서 하나님께 묻지 못함이라 다윗이 가로되 이는(=아라우나의 밭에 새로 설치한 제단) 여호와 하나님의 (새) 전이요 이는 이스라엘의 (새) 번제단이라 하였더라”. 
이 기록과 삼하7장의 기록을 종합하여 우리가 얻는 결론은 다윗은 역시 구약시대의 인물이었으므로, 한편으로는 복음의 ‘그림자’ 또는 ‘몽학선생’으로서의 제사제도를 완전히 탈피하지는 못했으나, 그는 이미 모세 율법에 정한 옛 성막과 제단을 과감하게 폐지하고 그에 대치(代置)되는 새 제단을 몸소 싸음으로서 구약의 ‘그림자들’(히9:24)을 넘어서 1000년 후에 오실 복음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던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행2:30-31). 
“나는 저희가 드리는 피의 전제(奠祭)(율법의 제사)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시16:4)라고 읊었던 다윗이기에 그는 같은 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까지도 예언할 수 있었고, 따라서 베드로는 그를 ‘선지자’로 호칭했던 것입니다(시16:8-11, 행2:25-33).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의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도소이다 내가 들어 말하고자 하나 주의 앞에 베풀 수도 없고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 주께서 나의 귀를 통하여 들리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치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그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시40:5-7)라고 기록했던 다윗의 말을 히브리서 기자는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초림시(初臨時)의 선언으로(!) 보았을 정도로 다윗은 그리스도의 초림 전 1000 년에 구속주를 바르게 알았습니다!(히10:5-7). 
그런데 시편 40:7, “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라고 한 다윗의 말에는 기독교인이 성경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참고해야 할 매우 중요한 교훈 하나가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동일한 하나의 두루마리 책, 즉 한 권의 성경에서 다윗과 그 당시의 제사장들이 전혀 반대의 교훈과 진리를 배우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즉 다윗은 그 두루마리를 읽는 중에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기뻐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치 아니하신다”(6), 즉 율법의 완전 폐지를 선언하시는 교훈을 받고 있는데(시16:4, 51:16, 17), 이와는 정반대로 당시 기브온의 성막에서 레위 지파의 제사장들은 여전히 계속해서 “제사, 예물, 번제, 속죄제물”들을 율법대로 열심히 드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정반대의 교훈이 한 두루마리에서 동시에 얻어집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어 구약시대부터 이미 그리스도의 복음을 확실히 믿었던 다윗과, 그렇지 못하고 미구(未久)에 개혁되고 버려질 구습을 여전히 고집하고 있던 제사장들 사이의 신앙의 차이 때문이었습니다(삼하24:18-25, 대상21:28-22:1 참고). 이처럼 오늘 개신교 목사의 예배용 복장에 관한 성경적 지식도 동일한 성경에서 정반대의 교훈을 들고 나오게 되는데, 그 정반대의 차이는 양자의 복음 이해의 정반대의 차이에서 오며, 복음의 이런 바른 이해는 성경 본문에 대한 성실한 관찰적 연구에서 옵니다. 
그는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는 그리스도’까지도(!) 보았고(시110:1,5, 마22:44, 막12:36, 눅20:42, 행2:34-35, 고전15:25, 히10:13),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이 믿음 때문에 그의 그토록 큰 죄과들을 사함을 받고 새 언약의 제사장도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자신을 가리켜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다”(마12:6)고 말씀하신 뜻은 구약의 성전제도가 폐지될 것을 선언하신 것이었습니다. 또 “인자(人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고 말씀하신 뜻은 인간의 참된 안식은 메시아를 신앙함에서 얻어질 뿐이요, 율법을 지킴으로 얻을 수 없음을 천명하신 것이었습니다. 
신약시대의 성직자들이 예배 인도시에 구약적인 제복을 입지않는 까닭은 신약교회는 이와 같은 성경의 원리 위에 섰기 때문입니다.
마12:1-8에서 구약 시대의 제사제도의 폐지를 보는 해석법은 어렵고 우원(迂遠)한 일 같으나, 신약성경은 마1:1부터 시작하여 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아브라함과 다윗을 비롯한 구약시대의 신자들도 “율법을 주시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받았던 믿음의 의”(창15:6, 롬4:9-10, 갈3:6,17, 히7:10)에 의해 온전히 의롭다 하심과 구원을 받은 기록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이 해석을 어렵다거나 우원(迂遠)하다고 볼 수가 없습니다. 
(3) 마태복음 23:1-12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않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집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그 차는 경문(經文)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 받는 것을 좋아하는니라”(1-8) 
마21:23-23:39의 말씀은 예수께서 그의 고난주간의 초반 약 이틀 동안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주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세계와 유대인의 미래에 관한 중요한 교훈들을 주신 내용입니다. 
이 교훈들이 매우 중요한 이유는 두 가지인데, 첫째 오랫동안 하나님의 선민(選民)의 특권을 누려온 이스라엘 민족이 특히 그들의 종교적 위선(僞善)과 외식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일시적인 버리심을 받게 될 것을 예수께서 선언하셨기 때문이며, 둘째로는 이제부터 이스라엘 민족 대신에 이방인들에게 율법과는 판이(判異)한 구원의 은총의 문이 열렸음을 예수께서 선언하셨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3장에서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이 일시적이나마 하나님의 버리심을 받은 주요한 이유는 바로 그들의 신앙생활에 속속들이 스며 있는 ‘외식’(外飾)의 죄 때문이었음을 예수님의 보기 드문 노성(怒聲)을 통해서 밝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外飾)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라는 ‘외식’에 대한 예수님의 엄책(嚴責)이 여섯 번이나 되풀이 기록됬는데, 그 ‘외식’의 구체적인 표시의 하나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복식(服飾) 즉 그들이 즐겨 입고 차고 다녔던 ‘소매 긴 의복과 넓은 경문(經文)’이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하고 행치 아니하며”라는 말씀의 뜻은 무엇입니까? 
“모세의 자리에 앉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구약의 율법시대가 이미 지나간 과거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성경에 대한 그들의 무지 때문에 여전히 ‘모세의 자리’, 즉 율법의 의식(儀式)을 고수(固守)하는 구습(舊習)에 머물고 있음을 예수께서 지적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 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의 뜻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외식(外飾)‘의 근본 성질을 보여 주신 말씀입니다. 즉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듣고 행해야 하는 하나님의 복음 계시를 실천은 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하는 행위’는 그들의 가르침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주목할 점은 복음 계시와 괴리(乖離)되는 그들의 행위들 중의 으뜸이 “그 차는 경문(經文)(=오늘의 이른바 ‘스톨)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는 것”(5) 즉 그들의 복식(服飾)의 과장이라고 예수님이 지적하셨던 점입니다. 
“그 차는 경문(經文)을 넓게 한다” 하심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율법을 항상 기억하게 하실 목적으로 율법의 말씀을 그들의 이마나 손목이나 옷술이나 옷단 등에 표시하게 하셨는데(출13:9,6, 민15:37-39, 신6:8, 11:18),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그 말씀들을 행하지는 않고 오직 ‘사람들에게 보일’ 목적으로 다만 그 글씨들만을 점점 더 크게 써서 몸에 차고 다녔습니다. 오늘 성경을 오해하는 목사들이 예배용 복장이나 스톨과 강대에 드리우는 수건 등에 금색, 은색, 홍색, 자주색으로 십자가, 비들기, 감람 나무 가지 등을 수놓으며, 그런 예복을 입게 되는 허영심의 동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께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외식(外飾)의 목적을 지적하시기를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천주교, 성공회, 루터교와 근년 한국 개신교의 일부 목사들이 그들의 복식(服飾)과 강대상 치장(治粧)에 큰 관심을 쏟고 많은 금전을 드리는 목적이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에게 그것들을 보이고자 함입니까, 아니면 사람에게 보이고자 함입니까? 그들의 양심은 그것들을 하나님에게 보이려 한다고는 도저히 대답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한편 그들의 목적은 오직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자신들의 그럴듯한 외모뿐입니다. 
마23:4에서 예수님이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한다”고 하셨는데, 기독교의 성직자는 그 입는 복식(服飾) 같은 외견상(外見上)의 권위를 내세울 것이 아니라 사람이 보지 않는 곳에서 실천을 힘쓰는 일이 더욱 중요함을 교훈하신 주님의 뜻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도 천주교나 성공회나 루터교 등 성경에 무지한 일부 성직자들의 무원칙적(無原則的)인 사고(思考)를 따르는 한국 개신교의 목사들이 경솔하게 입으려는 예배용 복장이 신약 성경의 뜻을 대강이라도 깨달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정신적으로 얼마나 ‘무거운 짐’이 되는지를 예수님의 말씀이나 위의 레쉬만의 말들을 통하여 기독교 지도자들은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마23:8).
예수님의 이 말씀은 기독교의 목사가 신도들의 스승이 될 만한 자질(資質)과 지도력을 갖추었는데도 불구하고 “선생”의 칭호를 받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뜻은 ‘선생’의 칭호를 명예욕으로 구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중심(中心)에는 ‘성경과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오해’(마22:29)가 있으면서 ‘옷술’이나 크게 함으로써, 또는 ‘잔치의 상좌와 회당의 상석과 시장에서 문안이나 받기 위한 외식’의 도구로서의 복장이나 화려하게 차려 입음으로서 유지되는 “선생”의 칭호는 구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앞에서 이미 언급한대로 우리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는 기득권자들의 위풍 있는 복식(服飾)을 질시(嫉視)하는 반사회적 심리에서 이런 논의를 제기하지 않도록 먼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지위를 질시하지 않으셨던 그리스도를 믿고, 또 우리 자신의 완고해지기 쉬운 심리를 엄히 단속하면서 이 논의를 제기합니다.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니라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마23:9-10)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은혜 안에서 새 피조물(被造物)이 된 기독교의 목사들과 신도들은 하나님과 예수님의 참 권위와 지도력 앞에서 모두 신분이 동일한 형제들이 되었은즉, 다 같이 겸손하게 되어, 옷술이나 크게 하는 복식(服飾)의 권위 같은 것은 피차의 안중(眼中)에도 없는 참된 새 인격체(人格體)인 참 교회를 추구하라는 교훈입니다. 
예수님은 이 교훈을 다음과 같이 매듭지으셨습니다.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23:11-12).
천주교, 성공회, 루터교와 오늘 한국 개신교의 일부 목사들이 예배 인도시에 울긋불긋한 화려한 예복을 입는 목적이 진정 교중들을 섬기려는 자세의 표시(標示)인가, 그렇지 않으면 교중 앞에서 ‘자기를 높이려는’ 표시인가는 물을 필요도 없습니다. 구약시대의 제사장의 옷과 중세 이래의 천주교의 사제들의 제복 같은 옷을 흉내 내려는 목사들의 심성(心性)은 교중을 섬기기보다는 교중의 존경을 받는데만 관심을 가지며, 자신을 낮추는 대신 자신을 높이려는 심성뿐입니다. 그와 같은 심성을 가진 기독교의 목사들은 하나님께서 낮추시게 될 것입니다.
참 교회의 목사들이 예배 인도시에 특별한 복장을 입지 않는 전통은 이와 같은 성경의 원칙을 따른 데서 유래했습니다. 
(4) 마태복음 24:1-2, 요한복음 2:13-22.
예수께서 그의 고난주간에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셔서 먼저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에게 주로 그들의 외식의 죄 때문에 그들이 하나님의 버리심을 받을 것을 단호하게 선언하신 후에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마23:38-39)고 하시는 엄숙한 선고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남기시고 그는 결연(決然)히 성전을 떠나셨습니다. 
그때 제자들이 헤롯의 지은 그 성전의 화려함을 가리켜 말했을 때 예수께서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24:2).
예수님의 이 말씀은 그에 앞선 23장에 기록된 유대인 지도자들에게 이스라엘의 일시적 유기(遺棄)를 선고하신 말씀의 중요성에 비취 보든지, 이 말씀 자체의 내용의 중요성을 보든지, 그리고 주께서 이 말씀을 하신지 불과 40년 후인 주후 70년에 로마군에 의한 예루살렘의 파괴가 있었고, 그 후 오늘까지의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의 의미를 보면 그 말씀에는 실로 막중(莫重)한 뜻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과 의미상(意味上) 밀접한 관계에 있는 요2:18-22의 뜻을 볼 때 이 말씀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의한 신약의 복음의 의미를 명백히 계시하신 동시에, 신약시대 교회의 예배의식과 그와 연관되는 성직자의 예배시 복장 등이 어떠해야 할 것을 예수께서 보여주신 말씀으로 우리가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말씀들과 그의 행동들을 통해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의 유기(遺棄)의 선언만을 하시지 않고, 새 이스라엘의 출현도 예고하셨습니다. 
마23:39에서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뜻은 구약을 바르게 이해하고 그 언약대로 오신 메시야 예수님을 영접한 신약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과 재림까지, 그리고 그가 영원히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시는 모습까지도 항상 뵈오면서 찬송을 부르는 참 예배를 드릴 수 있고 참된 생활을 할 수 있음을 예언하신 말씀입니다. 이들은 곧 구약에서부터 예언된 새 이스라엘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처럼 “옷술이나 크게 하여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행동”에나 시간과 힘을 소비하는 “외식자”들은 승천하여 하나님의 보좌 곁에 앉아 계시는 예수님을 볼 수도 없고 찬송하지도 못하며 거짓된 예배만을 계속 드리게 된다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의 뜻입니다.
즉 우리가 예수님의 이 말씀에서 깨달을 수 있는 우리의 예배의식과 성직자들의 예복 등의 형식에 관한 보다 깊은 교훈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고 말씀하심으로서 이스라엘이라는 한 나라가 일시나마 멸망할 것이라는 지정학적(地政學的) 예고 만을 하신 것이 아니고, 구약의 율법적 예배의식은 이제부터 완전히 도태(淘汰)되고, 신약시대의 새로운 예배의 정신과 의식, 곧 ‘신령과 진정의 예배 의식’(요4:24)이 출현할 것을 예고하셨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임금의 아들의 혼인 잔치에 초청된 사람들이 예복(禮服)을 입어야 한다는 비유(마22:11-14)의 뜻은 이미 위에서 말한바와 같이 구원받은 성도들의 도덕적 행실의 의무를 말씀한 것이지, 성도들의 예배시에 특별한 예복을 입고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말씀이 아니고, 하물며 성직자가 예배 인도시에 신도들과는 유별난 복장을 입어야 한다는 말씀은 더욱 아닙니다. 
요한복음2:13-20에 기록된 예수님의 성전확청(聖殿廓淸) 후에 하신 말씀도 마태복음23:38-24:2의 말씀과 같은 뜻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2:19). 예수님의 이 말씀의 뜻은 사도 요한이 풀이한 대로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한 바와 같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속죄로 구약시대의 의식중심(儀式中心)의 예배가 이제는 끝났고, 신약시대의 ‘신령과 진정’ 중심의 예배가 확립된 것을 선포하신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성전이 버린바 되리라”(마태22:38), “성전이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무너뜨리우리라”(마태24:2), “이 성전을 헐라”(요한2:19) 등의 극단적으로 분명한 말씀들을 통하여 구약의 의식중심의 예배를 부정하셨는데, 그의 이런 말씀들은 예루살렘의 제사장들과 빌라도가 예수님을 사형에 처하게 했던 그의 죄목(罪目)의 하나였으며(마태26:61), 그가 십자가에 못박혀 고통하실 때에 지나가는 자들이 그를 모욕하는 말에서도 쓰여졌습니다(마태27:40).
성전에 관한 예수님의 이와 같은 말씀들과 그의 행동과 그 결과로서 그가 당한 수난(受難)에서 일관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는 명료합니다. 그것은 이제 더 이상 구약시대의 성전 중심과 의식 중심의 예배는 계속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새롭고 참된 예배 - 오직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그의 독생자이신 예수와 같은 새 성품을 소유하게 됨으로서 신약시대의 신자들은 전혀 새로운 신앙과 생활을 해야 한다는 대선언(大宣言)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그의 쓴 계시록에서 “하늘에는 성전이 없더라”고 기록했습니다(계시록21:22). 개신교 목사들의 검소한 무제복(無祭服)의 원리가 된 것은 이와 같은 신약성경의 명백한 교훈들이었습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1세 여왕(1533-1603)이 종교개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구교와 신교의 알력을 진정시키려고 영국 성공회를 창설하고(1559), 당시 이미 영국민들 중에서 큰 힘을 가지고 있던 장로교(청교도)의 목사들을 통제하기 위해 그들에게도 성공회의 신부들과 동일한 복장을 입도록 명령했으나, 청교도의 성직자들은 죽음을 걸고 왕명을 거절하다가, 드디어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화란이나 미국으로 떠났던 사실도 같은 맥락(脈絡)의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5) 요한복음 4:20-26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고 하셨던 말씀은 구약시대와 신약시대를 막론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원리를 충분히 계시하신 말씀입니다. 신약시대에는 구약시대와 특별히 다른 예배의 원리가 있는데, 그 원리가 곧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원리”임을 예수님은 강조하셨습니다.
‘신령과 진정의 예배’ 개념에서 예수님은 크게 두 가지를 교훈하셨는데, 첫째는 구약적인 율법적 의식 중심 예배는 신령과 진정의 예배가 아니라는 점과, 둘째는 신령과 진정의 예배는 곧 누구든지, 사마리아 여자처럼 어떤 외양(外樣)의 치장도 없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믿음으로 나오는 예배라는 점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20)라는 말로 예배의 장소(場所)를 물음으로서 예배의 의식(儀式)에 대한 해답을 요구한 사마리아 여자에게 예수님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고 말씀하심으로서 무엇보다도 ‘예루살렘에서의 예배’ 즉 구약시대의 율법적 의식 중심의 예배가 끝난 사실을 고하셨습니다. 
다음으로 이방인인 사마리아 여자가 예수님을 즉석에서 믿고 그의 앞에 빈손으로 섰으나 그녀는 이미 그리스도를 고백했다는 한 가지 사실 때문에(25) 그는 온전히 구원받은 신자로서 구주를 바르게 예배하는 자가 된 사실이 바로 ‘신령과 진정의 예배’의 본질임을 요한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25-26).
사마리아 여자는 이방인이요, 여자요, 죄도 많은 초신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예수님을 발견하고 믿은 순간 그는 그의 종전의 모습 그대로 그가 서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이미 “진정과 신령의 예배자” 곧 참 신자로 변화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예수님을 만나 믿은 즉시 그의 죄가 다 용서 받았고, 그와 예수님 사이의 거리는 다 사라지고, 그녀는 복음의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이신 메시아께 경배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 후에 그가 자신의 동리에 달려가서 마을 사람들을 예수님 앞으로 인도해 온 행위가 그녀의 제사장 된 신분을 보여줍니다. 
이와 같은 신약시대의 예배원리를 따라 신약교회는 예배의 처소나 예배당의 식양(式樣)이나 예배의 순서나, 특히 예배시 성직자의 복장 등에 아무런 규제(規制)가 없이 삼위(三位)의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게 되었으며, 한국의 개신교 목사들이 초창기부터 예배인도시에 평복을 입었던 근거가 여기 있습니다. 
(6) 사도행전 7:46-53
이상과 같은 예수님의 선언들의 정신은 사도들에게서도 동일하게 나타났으며, 따라서 모든 사도들의 교훈 중에 목사가 예배를 인도할 때에 어떤 특별한 복장을 입으라는 말은 일언반구(一言半句)도 없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7장에는 초대교회의 첫 순교자였던 스데반 집사의 긴 설교와 그의 순교의 장면이 기록되었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그의 설교의 끝 부분에서 이렇게 말함으로서 구약의 성전 중심적인 예배가 끝난 사실을 선포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케 하여 달라 하더니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의 말한바 주께서 가라사대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뇨 이 모든 것이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행7:46-51).
스데반 집사의 이 마지막 말에는 첫째로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한다”는 말씀대로 구약적 성전중심의 예배가 지나갔다는 선포가 들어있으며, 둘째로는 구약의 의식중심의 예배를 떠난 사람들만이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고, 성령을 거스리지 아니하는” 참 예배자가 될 수 있다는 신약적 예배의 원리가 선포되었습니다.
스데반의 이 설교를 들은 무리들은 두 부류(部類)로 나뉘었고, 한 부류의 사람들은 구약적 의식중심의 예배를 절대시(絶對視) 하여 스데반을 돌로 쳐 죽였고, 다른 한 부류의 “경건한 사람들은 스데반을 장사하고 크게 울고 나서”(8:2) 스데반의 전한 복음대로 모든 구약적 예배의식들을 떠나서 참된 예배와 생활을 힘쓰는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참된 교회의 믿음과 예배와 삶의 규모에 관한 성경의 교훈을 배우게 됩니다. 오늘까지 세계의 참 교회들에서 성직자가 예배 인도시 평복을 입는 이유가 이와 같은 성경의 원리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개신교의 경건한 신도들은 구약적으로 의식을 절대시하는 예배를 드리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7) 사도행전 17:29-31
사도 바울은 헬라의 아데네에서 아레오바고에 모인 그리이스의 철학자들과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에게 그의 유명한 철학적이고 변증적(辨證的)인 설교를 했는데, 그의 설교의 끝 부분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너희가) 신의 소생(所生)이 되었은즉 신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考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29). 
구약시대의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에 금과 은과 돌과 직물(織物)들을 사용하여 조각(彫刻)하고 수를 놓은 성소(聖所)의 기구(器具)들을 통해서 하나님께 경배하도록 하나님으로부터 교육을 받았었습니다. 그러나 그 구약적 성전과 기구들과 의식들을 통해 하나님을 예배하던 시대는 지금은 완전히 지나갔고,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30,31)고 한 사도의 말과 같이, 예수의 속죄와 부활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그 믿음이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율법적 행위의 표시가 아니라, 그들이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의 증거이므로 금과 은과 돌 등의 구약적이고 율법적인 조각품들을 통한 예배는 필요 없다는 것이 바울의 설교의 결론이었습니다.
오늘도 구약적 의식중심의 예배를 드리는 교회들은 예배당의 도처(到處)에 금과 은과 비단으로 장식을 하고, 그것들이 없으면 그 모조품(模造品)이라도 사용하여 하나님, 예수님, 천사들의 형상들을 나타냅니다. 천주교와 성공회와 루터교의 성직자들은 그 의관(衣冠)에 금사(金絲) 은사(銀絲)로 하나님을 나타내는 표호(票號)나 십자가나 비둘기 등의 형상을 수놓고 있습니다. 그런 표시들은 이미 초대교회 때에 스데반 같은 지도자들이 그 무용함을 목숨을 걸고 가르친 것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도적교회(使徒的敎會)의 바른 교훈을 굳게 지켜 나가야 하겠습니다. 세계의 참 교회들이 예배시에 특별한 의상을 입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와 같은 성경의 원리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예배시의 복장에 대해 언급(言及)한 말씀으로서는 단 한 곳 고전11:5, 6에서 여신도들이 머리에 수건(手巾)에 쓰라고 명한 것은 여신도들의 경건의 표시를 위함이요, 성직자의 의무조항이 아닙니다. 그가 로마서13:4에 “오직 그리스도로 옷입으라”고 명령한 것도 신앙의 교리와 실천을 옷 같이 신자의 삶을 통해 나타내라는 뜻이지, 예배시에 특별한 옷을 입으라는 말이 아니며, 물론 성직자에게만 주는 말도 아닙니다. 요한계시록19:1의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도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설명되었습니다.
(8) 갈라디아 3:24-26, 4:8-11, 골로새 2:20-23
성경에 계시된 복음의 효능(效能)들 중 하나는 복음을 믿고 그리스도의 새 생명을 받은 사람들은 먼저 영혼의 자유를 누리게 되는 일인데(요:8:32-36, 롬8:1-2, 갈5:1), 그 자유는 새 생명을 자라나게 하여서 그의 새로운 인성(人性)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도 자라게 만든다고 기록되었으며, 그리스도인은 이 참된 자유와 인격의 성숙(成熟)과정을 통해서 “은혜에서 은혜로” 전진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영성(靈性)의 성장은 지적(知的) 성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즉 영적 성장은 반드시 지적 성장을 동반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천주교회, 성공회, 루터교 등에서는 성직자들이 첫째는 성경에 대해 무지하고, 둘째는 그들이 구약적 의식주의를 버리지 못함으로서 자연히 자신들과 신도들을 지적으로 유치한 구약신앙의 상태에 그대로 매어 두게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복음 진리의 터득은 베뢰아의 신자들 같이 오직 성경을 신도들이 열심히 연구함으로서만 가능합니다(행17:11). 그러나 천주교 신자들은 4세기 이후로 교부(敎父)들의 전통(傳統)만을 맹목적으로 묵수(墨守)하도록 규제를 받아왔고, 따라서 성직자나 신도 개인이 성경을 직접 연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천주교의 성직자들과 신도들은 다 같이 성경 자체에 대하여 암매(唵昧)한 지경을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천주교가 406년에 번역이 완성되었던 라틴어 성경(Vulgate)을 15세기까지 1000 년 동안이나 전 구라파의 교회들에게 그 교회들이 어떤 국어들을 사용하든지 물론하고 그 라틴어 성경 하나만을 읽도록 강요했던 사실은 그들이 지혜의 근본인 성경(욥28:28, 잠1:6, 딤후3:16)을 신도들에게서 빼았으므로서 그 지도자들과 신도들의 우매성의 원인을 스스로 만들었음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그들은 당연히 의도적(意圖的)으로 신도들에게 우민정책(愚民政策)을 쓰게 됩니다. 예컨대 한국의 개신교는 이미 1883 년에 만주(滿洲)에서 선교중이던 스코틀랜드 연합장로교회 선교사 존 매킨타이어(J.McIntyre)와 존 로스(J.Ross)가 만주에서 만났던 두 한국인 청년들 서상륜(徐相崙)(1849-1926)과 이응찬(李應贊)과 더부러 한글로 성경을 번역하기 시작하여 1887년에는 이미 신약성경을 전부 번역했고, 오래지 않아 구약성경도 번역되었습니다. 그들이 국내에 잠입해 들어와서 권서(勸書) 활동을 통하여 전도와 성경 보급을 시작했습니다. 개신교에서는 성경의 보급은 그 초창기부터 시작되었읍니다. 존 로스는 이미 1884년에 이런 보고서를 모국에 보냈습니다. 
‘한국에서 지금 종교는 성서의 지식, 하나님 말씀, 바로 그것이 이 백성들을 죽음에서 생명으로 이끄는 힘이라고 하는, 그 소망과 확신을 주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천주교는 그 최초기 신자 이승훈(李承薰)이 1784년 북경에서 믿고 세례를 받은지 100 여년이 넘도록 겨우 신약성경의 일부들만을 번역하여 유포시키다가 1960년에 이르러서야 이른바 신구교(新舊敎) 공동번역(共同飜譯) 형식으로 마지못해서 성경전서를 출간(出刊)하게 된 것은 천주교가 성경을 대중에게서 숨김으로서 고의적(故意的)으로 우민정책을 유지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사실입니다. 
천주교가 신도들이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것을 은근히 두려워하고 금하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필자가 1954-1960년 사이 대구의 기독교부흥협회(基督敎復興協會)에 재직하던 때에 협회의 전도용 기관지 ‘승리의 생활‘에서 필자는 천주교의 연옥교리(煉獄敎理)를 비판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 당시 천주교의 최고 지도자의 한 사람이던 윤모(尹某) 신부가 경향신문, 대구매일신문 등에 필자의 글을 반박하는 글을 실었고, 필자는 부흥협회의 편집부원으로서 답변하는 글을 준비하다가 천주교의 성경을 참고하려고 대구의 천주교 서점들을 다 돌았으나 천주교의 신구약 전서를 구하지 못했습니다. 끝으로 대구에서 제일 큰 계산동 성당에 들렸더니, 한 할머니가 맨땅에 보자기를 펴고 몇 권의 성경과 기도서(祈禱書)를 팔고 있었는데, 그 성경은 사복음서와 사도행전 만이 수록(收錄)되었을 뿐 아니라, 그 인쇄 문자와 제본은 매우 저급하고 구체(舊體)였습니다. 한마디로 그 단편적 성경들에서는 기독교의 경전(經典)다운 모습이 도무지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서울까지 와서 명동성당의 서점에 들려 성경전서를 사려고 했더니, 서점의 주인이 없다고 하고는 필자를 쳐다보면서 ‘성경은 왜 구하느냐?’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필자는 어이없는 충격을 느꼈고, 천주교의 고의적(故意的) 우민정책의 실상을 직접 체험으로 깨달았었습니다. 천주교의 연옥교리(煉獄敎理)는 이 복음을 아는 사람에게는 용납될 수 없는 우매한 교리인데, 그런 교리가 그들에게 믿어지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천주교, 성공회, 루터교 등의 이 우민정책과 무지주의(無知主義)가 기독교의 전파에 얼마나 큰 장애(障碍)가 되고 있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오늘의 지식인들이 불교나 무속종교(巫俗宗敎)를 천시(賤視)하고 돌아보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그들의 무지주의(無知主義) 때문이 아닙니까? 그런데 천주교의 성직자들이 무당과 승려들과 다를 바 없는 제복(祭服)을 착용함으로서 기독교도 무속신앙이나 불교와 동일시되는 결과 기독교 전도에 실로 큰 방해를 그 복장들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개신교의 목사들이 예배시 복장의 변화로 이 천주교의 우민정책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율법을 가리켜서 “몽학선생”(蒙學先生)이라고 불렀고(갈3:24-26), 신약시대에도 구약시대의 의식종교를 따르는 사람들은 “육체의 초등학문(初等學問)을 좇는 어리석은 사람들”이라고 단정했던 사도 바울(갈3:1-5, 4:9, 골2:20-23)은 그런 사람들이 “이미 무너진 것을 다시 세우는” 구속사(救贖史)의 역행자들이라고 책했습니다(갈2:16-17). 그는 또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로 할례 받게 함은 저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인하여 핍박을 면하려함 뿐이라 할례 받은 저희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로 할례 받게 하려 하는 것은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니라”(갈6:12)고 경고한 바와 같이, 천주교나 성공회, 루터교의 성직자들은 십자가의 참 뜻을 오해하기 때문에 ‘육체의 모양을 내려는‘ 저급한 종교 정신에 서서 구약시대의 제복(祭服)을 고집하는 것입니다. 또 그들은 그런 방법으로 바울 사도의 말 같이 복음신앙자가 세상에서 받는 핍박(시련)을 회피(回避)하려는 의도도 있습니다. 오늘 한국 사회에서 개신교는 천시되고 천주교는 제법 행세하는 종교 노릇을 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천주교, 성공회, 루터교의 그 큰 과오를 모르고 그 성직자들의 찬란한 의관(衣冠)에 미혹된 일부 개신교의 목사들도 사실은 미개인(未開人)들이나 따르는 그런 구습이 현대의 지식인에게는 멸시와 조소의 대상뿐임을 속히 깨닫고, 전도의 길을 막는 제복을 착용하지 말기를 부탁합니다.
(9) 히브리서 9:1-10, 11:36-40, 12:12
히브리서 기자는 9:1-7에서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이 성막(聖幕) 안에서 드린 예배 의식을 대략 기록한 후에 다음과 같은 놀라운 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의지하여 드리는 예물과 제사가 섬기는 자로 그 양심상으로 온전케 할 수 없나니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라”(히9:8-10).
이 놀라운 말씀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밝은 빛을 우리에게 비쳐 줍니다. 첫째는 옛 이스라엘의 성막 안의 제사나 오늘의 천주교, 성공회, 루터교 등의 의식주의 기독교는 모두 다 동일하게 ‘육체의 예법’ 뿐으로서, 참 기독교의 ‘신령과 진정의 예배’와는 전혀 별개의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둘째는 구약의 성막 안에서의 예배자들과 오늘의 의식주의 예배자들에게는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구원과 아직도 관계가 없다는 선언입니다.
끝으로 구약의 성전 예배와 신약시대의 의식주의 예배는 다같이 ‘개혁’되야 한다, 즉 소멸되야 한다, 일소(一掃)되야 한다는 선언입니다. 칼빈, 쯔빙글리, 부쳐 등의 견해를 따라서 필자도 목사의 예배용 복장 사용은 그 논의부터 일소(一掃)하자고 감히 제안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닌다.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라”는 단언(斷言)은 “사람에게 보이기 위하여 하는 예배 행위”(마23:5), ‘육체를 모양 내어 자랑하려는 신앙‘(갈6:12-13)은 소멸될 때가 이미 지나갔음을 선언합니다. 
이어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런 말로 신약시대의 성도들을 격려합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저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라”(히12:12).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셨고 지금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는” 주님을 바라보면서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믿음의 경주를 경주하는” 긴급성(緊急性) 있는 삶에 전념하고 몰두하는 신약시대의 성도들에게는 화려한 제복(祭服)을 입고 신도들 앞에서 자신의 존귀를 지키려는 저급(低級)의 노력은 도리어 참 ‘무거운 짐’, 영성의 활기와 양심의 자유를 심히 속박하는 걸림돌 자체일 뿐입니다. 
우리는 히브리서의 복음을 깨닫고 “이미 개혁된, 지나가 버린, 소멸된” 의식과 의관들을 다 버립시다. 그리고 실질검소(實質儉素)한 간편한 옷차림으로 내 믿음의 경주를 활기 차게 달리며, 주의 백성들을 수종듭시다. 그 길만이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진정한 능력자들의 길입니다.
(10) 베드로전서 2:4-10, 계시록 1:6, 5:10, 20:6
복음 교리들 중에서 ‘만인제사장설’(萬人祭司長說)은 중요하고도 복된 교리입니다. 이 교리는 이미 구약시대부터 나타났고, 신약성경에서는 매우 현저(顯著)한 기록들에 의해서 분명히 계시되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들 중에서 특별히 택하심을 받았던 레위지파 만이 제사장 지파의 직분을 감당했는데, 그들의 의무와 특권은 매우 큰 것이었습니다. 구약시대의 제사장들은 여러 면에서 다른 지파와 구별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율법을 주시기에 앞서서 이미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하나님에게 “제사장 나라가 되리라”고 말씀하심으로서 제사장의 특별한 의무와 권리가 레위지파만의 것이 아님을 말씀하셨습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列國)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19:5-6). 이 말씀의 뜻은 ‘하나님께 대한 제사장’의 직분은 그 성질상 너무나도 귀하고 복된 직분이어서 열두 지파 중에서 어느 한 지파만이 누릴 수도 없고, 또 감당할 수도 없는 직분이라는 것입니다(사61:6).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는 그의 예언의 끝 부분에서 장차 이방인들까지도 하나님에게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게 되리라는 신약시대의 복음을 이미 주전 700 년경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자손이 예물을 깨끗한 그릇에 담아 여호와의 집에 드림 같이 그들이 너희 모든 형제를 열방(列邦)에서 나의 성산 예루살렘으로 말과 수레와 교자(轎子)와 노새와 약대에 태워다가 여호와께 예물로 드릴 것이요 나는 그 중에서 택하여 제사장과 레위인을 삼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사66:20-21).
‘만인제사장론’의 복된 계시는 이와 같이 구약에서부터 분명했기 때문에 신약에서는 훨씬 더 풍부히 나타났습니다.
앞서 고찰한 바 있는 마12:1-8에 나타난 예수님의 교훈은 가장 현저(顯著)하게 빛나는 ‘만인제사장론’의 근거의 하나입니다. 다윗이 아직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도 전이었고 유랑(流浪)의 신분뿐이 아니라 한 끼의 식물을 위해서 거짓말까지 하는 나약한 죄인의 몸으로서 놉의 성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자신과 종자(從者)들까지 먹었는데, 예수께서는 다윗을 ‘무죄하다’고 선언하신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다윗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은 다 다윗 같은 죄인이지만 “성전보다 크신 이, 안식일의 주인”이신 그리스도의 속죄 공로를 믿음으로서 즉시 구원받고, 하나님의 성전에서 먹고 일하는 제사장까지 될 수 있음을 웅변적으로 완벽하게 계시하셨던 것이 예수님의 그 말씀이였습니다. 
베드로사도는 그의 서신에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사람에게는 버린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奇異)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4-5, 9).
베드로사도의 이 말씀은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까지도 ‘산 돌’이신 예수님 안에 들어오면 누구든지 하나님께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되며, ‘왕 같은 제사장’도 된다는 선언입니다.
개신교의 성직자가 지금도 예배 인도시에 평복을 입는 이유는 이상과 같은 성경의 원리를 따르기 때문이며, 목사들 개개인이 원칙 없이 정한 관행이 결코 아닙니다.
‘만인제사장론’ 교리가 요한계시록의 여러 구절들에서 뒷바침되고 있는 점은 이 책이 전체 성경의 결론이기 때문에 특히 우리의 주의를 끌만 합니다. 더욱이 요한계시록에는 구약의 의식적 예배의 여러 요소들, 예컨대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 이십 사 장로, 예루살렘성과 그 성문들, 제단, 촛대들, 기타 성전에 관한 언급(言及)들이 여러 차례 나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시록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만국의 성도들을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여러 번 호칭하고 있는 것은 성경 전체가 구약에서부터 신약의 끝까지 ‘만인제사장론‘의 복음을 뒷받침하고 있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계1:5-6).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印封)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하리로다 하더라”(계5:9-10).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하리라”(계20:6).
그런데 천주교나 성공회나 루터교의 성직자들은 그들의 입는 그 특별한 옷이 마치 자기들만이 하나님께 받은 제사장직의 특권의 표시처럼 오해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계시된 교회의 지도자들과 평신도들 사이의 구별은 그런 복장 같은 것으로나 나타낼 수 있는 저급(低級)의 것이 아닙니다. 그 구분은 성직자의 바른 복음신앙과 ‘만인제사장론’의 진리를 바르게 이해하고 또 가르치는 그들의 참된 자격과 신도들에 대한 그들의 활기찬 형제애(兄弟愛) 등에 의해서만 표시되는 구분입니다.
개혁교회의 성직자는 이상과 같은 신구약성경의 복음과 만인제사장론의 교리에 입각해서 내적(內的)으로는 불가침(不可侵)의 권위로 평신도들과 엄연히 구별되는 신분에 서 있으나, 겉으로는 복장 같은 것으로는 결코 표시될 수 없는 그리스도의 사신(使臣)으로서의 그들의 권위와, 평신도들과 동등인 하나의 몸의 친근성(親近性)을 위해서 간소한 복장으로 예배를 인도하는 것입니다.


IV. 신약 교회의 전통
이제 끝으로 우리는 16-17 세기 종교개혁기 이후 개신교 성직자들의 예배 인도시의 복장에 관계되는 요한 칼빈 선생의 견해를 이상에서 소개한 성경들의 실제적 적용(適用)의 뜻에서 잠시 더 고찰하고, 1643년 영국에서 제정되어 1646년에 영국 의회에서 비준(批准)되었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관계 조문 등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요한 칼빈 선생(1509-1564)은 그의 ‘기독교강요’ 4권 10장 18-19절에서 이와 같이 기록했습니다.(초역)
‘양식 있는 인사(人士)들은 로마 교회의 의식과 전례(典例)들의 집성(集成)이 하루 아침에 교회에 들어온 것이 아니고, 점차적으로 숨어서 들어온 사실을 압니다. 사도들에게 가장 가까웠던 거룩한 감독들은 예배시의 질서와 규율을 위해 약간의 제도들을 정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충분한 사려(思慮)가 없고, 지나친 호기심(好奇心)과 탐욕을 가진 자들이 계속 일어나서, 언제나 그렇듯이 뒤에 오는 자들이 앞선 자들보다 더욱 열심을 내어, 이 어리석은 경쟁을 하기를 원했습니다. 동시에 그들은 후세인(後世人)들의 칭찬을 기대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고안물(考案物)들이 멀지않아 폐지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그 허식(虛飾)들의 준수(遵守)를 더욱 엄격하게 요구하는 조문들을 첨가했습니다.
이같은 사악(邪惡)한 열심히 오늘날 로마교회가 사도적(使徒的)이라는 미명(美名)으로 위장(僞裝)해서 우리에게 물려준 의식들의 대부분을 낳게 하였습니다.
성찬식에서도 사도시대에는 매우 단순한 예식만이 있었습니다. 그 후 속사도(續使徒)들은 이 오의(奧義)의 위엄을 지키기 위해 몇 가지 의식들을 첨가했었는데, 그것들은 비난할 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일어났던 우매한 후계자들이 잡다(雜多)한 단편(斷片)들을 계속 첨부한 결과 오늘 우리가 로마교의 성찬식에서 보는 바와 같은 사제(司祭)들의 그 복장(服裝)들과 제단의 장식들과 그들의 몸짓(table gestures)과 교황의 강복(降福) 손가락 놀림, 기타 무용한 의식들이 전승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칼빈의 이 언급은 기독교 목사의 예배인도시의 복장이 간소한 평복이어야 함을 의심의 여지 없이 밝혀 주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21장 ‘예배와 안식일’조(條) 1절에서는 이와 같은 규정을 볼 수 있습니다.
‘자연의 빛은 우리에게 한 분 하나님이 계시는 사실을 보여 주는데, 그는 만물의 주재이시며, 주권자이시며, 그 자신이 선하시고, 만물에게 선을 베푸시는 분으로서, 모든 인간이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경외하고, 사랑하고, 찬양하고, 기도를 드리고, 선뢰하고, 섬겨야 할 분입니다. 
그러나 이 참되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합당한 방법은 하나님이 친히 정하셨으며, 인간의 상상들(imaginations)이나 고안들(考案, devices)이나, 사탄의 암시(暗示)에 의한 어떤 눈에 보이는 것들에 의해서나, 성경에 기록된 방법들 이외의 어떤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예배하지 아니하도록 하나님 자신이 제한(制限)하셨습니다.’
여기에 대해 G.I.윌리암슨 목사의 해설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구약시대의 장막과 성전에는 상징적인 장식들이 가득했던 것은 사실입니다(출31:1-). 그러나 이것은 오늘날 신약시대에 교회가 벽화나 색유리 창문 등에 그리스도의 화상 등을 나타낼 수 있다는 근거가 되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첫째는 구약시대의 이와 같은 보이는 것들의 의식제도는 모두 소멸됐기 때문이요, 둘째 이유는 구약시대의 의식제도들은 인간의 지혜의 산물이 아니고 하나님의 계시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그와 같은 의식제도들이 오늘에도 유용하다면, 구약에 기록된 성막과 꼭 같은 제도만이 유용하다고 주장해야 할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칼빈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사상을 한국교회의 개신교 지도자들은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칼빈)는 로마 카톨릭적인 잔재를 일소(一掃)하기 위해 벽화나 초상 같은 것들을 깨끗이 제거했고, 오직 설교하는 강대만이 예배의 중심이 되도록 하였습니다. 모든 예배의 의식은 지극한 엄숙함과 경건을 위주로 했고, 성경적이며 순수한 사도적 초대교회의 예배방식을 모범으로 삼으려는 것이 그의 목표였습니다. 칼빈에게 있어서는 로마 카톨릭교의 의식을 조금 수정해서 사용한다거나 조금 발전시켜 본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으며, 전체를 근본적으로 개혁하여 순수한 성경적인 사도적 초대교회의 모범을 찾아 돌아가려는 것이 그의 근본방침이었습니다’.
‘칼빈은 모든 성례의 의식에 있어서 비복음적 요소를 제거하고 간소화시키며, 동시에 예배의 의식을 회중화(會衆化=신도 중심화) 시키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루터파나 영국 앵글리칸파보다도 더 과격하게 과거의 모든 예배의 전통적 형식을 버렸습니다. 교회의 모든 장식들은 우상숭배의 흔적이라고 하여 모두 벗겨 버렸습니다. 예복(禮服), 예전(禮典), 예식 등은 모두 최소한도로 축소시켰버렸습니다’
‘따라서 그는 사치라든지 허례 같은 것들을 금하고 실용적인 면을 장려했습니다. 예를 들어 의복에는 귀금속이나 보석류를 붙이는 일을 전부 금하고 ... 색채 있는 의복을 금했습니다’.
‘신약교회는 참 교회의 그림자입니다. 그러나 속사도교회 때부터 이미 신약교회의 모습을 잃기 시작했습니다. 고대교회의 신약적 형태는 무지한 인간들의 무감각한 성품 때문에 점차 훼손되고 변질되어 왔습니다. 그리하여 교회는 점점 거짓과 부정(不淨)에 오염되어 마침내는 중세기의 부패한 교황권과 같은 것이 생겨날 처지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로마교로부터 참 교회가 분리된 정당한 근거가 있습니다. 칼빈은 평화를 위해 진리를 희생시킬 생각은 전혀 없었으며, 따라서 이에 대한 칼빈의 교리는 다른 개혁자들보다 더욱 날카로왔습니다. 즉 칼빈은 평화보다 진리에 대해 더욱 충실한 점에서 특기할 만한 개혁자였습니다‘.
또 칼빈은 ‘기독교강요’를 프랑스 황제에게 바치는 헌사(獻詞)에서 말하기를 
‘참 교회는 지금 눈앞에 보이는 교회 밖에 있으며, 이것은 식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참된 가견적(可見的) 교회는 어느 시대에 있어서나 극히 소수의 집단이며, 인간이 깨닫지 못하는 방법으로 그리스도께서 그의 진정한 교회를 친히 지키심으로서 그것은 유지되고 계속됨을 확신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진정한 교회는 비록 가견적 교회가 변질(變質)해 버렸을 때에도 복음을 계속 보존하며,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을 찌라도 다만 ‘신앙의 통일 안에서 성도들 간에 계승된다’고 주장했습니다. 


V. 제언(提言)
유서(由緖)있는 교회들은 그들의 전통에 충실해야만 합니다. 그 전통에 변화가 와야할 때는 개개인이나 개교회의 취향(趣向)과 판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반드시 철저한 성경적 고증과 전체 교회의 숙의(熟議)와 합의(合意)를 거쳐서만 허용되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16세기의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와 천주교의 너무나도 상이(相異)한 교리와 예배의식이 같은 이름으로 증거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에 얼마나 큰 장애(障碍)가 되었는가 하는 문제는 생각만해도 소름이 끼치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제 한국 개신교회 마저도 선교 100주년을 지나기도 전부터 예배의식 중에서 가장 사람의 눈을 끄는 목사의 복장을 놓고 분열하므로서 교회의 복음 증거에 균열(龜裂)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4세기 이후의 유럽의 교회가 걸어온 과정에 비추어 볼 때에 오늘의 우리의 이 작은 분열은 앞으로 얼마나 큰 불행의 시발점이 될는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필자는 위에 인용한 칼빈선생의 제안 같이 먼저 우리 개신교의 여러 교단 사이에 이 문제에 대한 ‘신선한 논의’(fresh conflicts)가 다시 있어지기를 제의하는 바입니다. 그 후에 개신교는 팔을 벌리고 천주교나 성공회나 루터교 등 예배 의식에서 구약적 의식주의를 고수(固守)하는 교회들과도 허심탄회(虛心坦懷)한 논의를 거치면서 ‘하나의 교회의 하나의 증거’를 위한 노력을 계속해 나가게 되기를 삼가 제의하는 바입니다.
이를 위해 먼저 개신교의 여러 교파에 다음과 같은 의제(議題)들을 제출합니다.
1. 성경의 교훈과 우리 나라 개신교의 초기부터의 전통에 입각하여 개신교의 목사는 예배 인도시에 가운 같은 특별한 예복을 착용하지 않고, 평복을 착용할 것을 제안합니다.
2. 현재 많은 개신교 교회들이 사용하고 있는 소위 ‘제네바 가운’을 당분간 계속 사용할 경우에는 검은 색으로 통일하고, 그것을 조만간 교단적 합의 끝에 폐지할 것을 제안합니다.
3. 예배당의 건축양식이나 강단 등의 구조와 찬송가의 곡조나 악기 사용 등에서 이른바 토착화(土着化), 즉 한국의 고유한 전통을 가미하려는 경우에는 예배의식과 성직자의 복장과 일반으로 먼저 반드시 성경적인 고찰과 교단의 연구와 합의를 거쳐서 신중하게 진행하기를 제안합니다. 
4. 성가대원, 기도 담당자, 헌금 수금위원 등의 가운 착용은 가능한대로 제한하고, 예배의 경건성과 질서를 위해 착용케 하더라도 교단의 합의와 타 교파와의 의논을 거쳐서 착용시키기를 제안합니다. 이 절차들이 버거롭다고 조급하게 처리할 문제는 결코 아닙니다. 
5. 근년 한국에서 흔히 보는 바와 같이, 천주교나 성공회 등에서 예배당 건물을 정치운동의 장소로 사용하거나 성직자들이 그들의 제복을 방패로 삼고 시위 군중 앞에 도열하는 방식 등으로 정치나 인권운동에 직접 개입하지 말 것을 제안합니다. 이런 탈선들이 성직자들의 예배용 복장의 문제 등을 일으키는 단서가 되기 때문입니다.
6. 본래는 하나이던 기독교회의 일치 복원을 위해 노력해온 교회의 역사를 계승하여 먼저 개신교의 각교파 사이에서와 천주교나 성공회나 루터교 안에서의 이 현안(懸案)에 대한 활발한 논의들(flesh conflicts)이 마치 초대교회에서처럼(행15장) 있어지기를 제안하며, 그 후에 개신교와 구교 각파와의 격의 없는 회합(會合)까지를 거쳐서, 적어도 성직자의 복장이 금일과 같이 다양함으로 복음 전도에 입히는 손해를 방지하는 일에 모든 교파들과 교단들이 앞으로 계속 협력할 것을 제안합니다.
7. 신약성경의 복음은 예배의식에도 자유를 선포한 사실을 성경 밖에서가 아니라 성경 안에서 찾기 위해, 그 자유에 걸맞는 성경의 연구를 우리 모두가 다 함께 계속하기를 제안합니다. 
VI. 맺는말
세계의 그리스도의 교회는 이제 21세기를 맞아 더욱 복음전파의 사명에 최후의 충성을 다 바쳐야 할 시기에 와 있습니다. 복음전파 사명은 지상 교회가 복음의 순전성(純全性)(고후2:17)을 더욱 높이고, 교회의 일치성(一致性)을 한층 드러냄으로서 보다 효과적으로 수행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교의 각 교파나 신교의 각 교파들이 고백하고 전파하는 복음의 교리를 계속 성경에 비추어서 명료하게 재확립해야 하겠으며, 예배의식은 복음의 탁월성(卓越性)에 걸맞는 영적이며 내적인 존엄미(尊嚴味)와 실질검소함과 단순성을 회복해야할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의 전파자들이 그렇게 할 때에 13세기에 구라파에 일어났던 르넷산스의 지적(知的) 활기와 그 활기를 이어받아 16세기에 그곳에서 불길 같이 타올랐던 종교개혁의 신령한 열기가 동시에 하나로 합쳐서 우리 목사들의 영성(靈性)과 온 교회에서 파도 같이 솟아오를 것입니다. 지금도 “자다가 깬 자 같이, 포도주로 인하여 외치는 용사 같이”(시78:65, 사42:13, 렘20:11, ) 우리에게 고하시며, “번개와 음성과 뇌성 중에 우리레게 말씀하시는 하나님”(계4:5, 11:19, 16:18)과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시는 예수님(마8:21)의 능력이 우리를 도우십니다.
만일 교회가 이런 노력과 경성(警醒)을 등한시하여 이 시기를 놓지면 그 만큼 주의 재림을 앞둔 말세의 교회가 귀중한 복음전파의 기회를 상실할 것입니다.
먼저 필자의 소속교단인 장로교의 여러 파들과 기타 개신교의 여러 교파들과 나가서는 천주교와 성공회와 루터교 지도자 제현(諸賢)의 재고(再考)를 거듭 요청하면서, 붓을 놓는 바입니다.
끝으로 필자의 연구에 귀중한 참고서가 된 토마스 레쉬만의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법’을 번역, 출판하시는 일에 수고하셨고, 또 ‘목회자신문’에 이 주제와 관련된 글들을 실어주신 정장복 교수님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며, 붓을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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