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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칼럼

성숙한 인격의 특징에 관하여(Allport의 성격이론을 중심으로..)

성숙한 인격의 특징에 관하여(Allport의 성격이론을 중심으로..)


노승수 목사


1. 광범위하게 확장된 자기의식
이것은 무의식의 의식화를 일컫는 다른 말이다. 무의식이라고 하니 거창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무의식은 우리 삶 곳곳에 베여 있다. 사람들은 상당한 정도의 무의식적 행동을 한다. 이것은 이상한 일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예컨대, 운전을 처음 배우는 사람은 1,2,3,4단으로 기아 변속과정의 과정 하나 하나를 인식하지만 나중에 숙달이 되면 자연스레 하나의 과정으로 묶이게 되고 어떤 때는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로 4단에 가 있는 경우도 있다. 때로 집에서 나올 때, 문을 잠궜는지 그렇지 못한지를 기억치 못하는 것도 이것이 하나의 무의식적 패턴화 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성숙이란 이런 무의식적 패턴화가 줄어들고 그것을 제대로 인식하고 결정하고 반응할 수 있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인간의 성장과 노화의 자연스런 과정이기도 하다. 
이전의 관점은 3세 정도까지 뇌가 발달하는 것으로만 여겼지만 최근 연구에 의하면, 인간의 뇌발달은 사춘기까지 계속된다고 한다. 뇌 신경세포는 끊임없이 확장하고 발달하는 과정에 사춘기까지 계속된다는 것이다. 이런 정상적 발달의 과정이 지나고 나면, 뇌는 자연스럽게 불필요한 신경세포들을 정리하고 주로 사용하는 신경다발들에 에너지늘 집중하는데 이 과정에서 일정한 패턴화가 이루어진다고 보면 된다. 이것이 일종의 자연환경을 비롯한 인간 유기체가 처한 제반 환경에 대한 적응인데, 문제는 이 환경이라는 것이 늘 균형이 잘 잡혀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또한 어린 시절의 환경이 나주에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의 환경은 성장기의 환경과 다름에도 불구하고 성장이에 굳어진 일련의 패턴 가지고 환경과 사람들과의 관계에 반응한다면 그 반응의 효율성이 있겠는가? 그나마 그것이 사회가 허용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라면 문제가 적거나 혹은 인정받는 것이라면 나름 잘 적응되었다고 말할 수 있기도 하겠지만 성숙한 인격의 특질이란 환경에 따라 적절한 반응을 인격자 스스로 결정하여서 개별적 상황에 따라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러려면 자기 의식이 특정 패턴으로 고착화되지 않고 자기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갖추어야 한다. 흔히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고 하지 않던가? 


2. 타인과의 따뜻한 관계
여기에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다만 병리적인 관계에도 따뜻함은 존재한다. 예컨대, 상호의존적 관계의 경우에도 서로를 향한 애틋함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근본적으로 따뜻한 관계란 타인을 지배하지 않고, 타인에게 지배받지 않으면서 서로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 묻어 나는 관계를 말한다. 우리는 쉽게 타인에 대해서 지배적이 된다.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배운 노래를 듣고 싶을 때, "오늘 배운 노래 해봐!"라고 바로 아이의 행동과 동기를 결정해버린다. 따뜻한 관계를 생각하는 사람은 아이의 사생활과 취향을 존중한다. "아빠가 오늘 니가 배운 노래 듣고 싶네 해줄 수 있어"라고 묻는다. 상대가 아이가 되었든지 어른이 되었든지 한 인격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해주는 관계 그것이 타인과의 따뜻한 관계이다. 


3. 정서안정과 자기수용
정서가 불안한 가장 근본적 이유는 자기 자신을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죄책감이었든지 아니면 열등감이었든지 어떤 감정이었든지 간에 힘든 정서적 문제들로 인해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수용하지 못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성숙이란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인정할 줄 알게 되는 것이다. 다른 말로 자신감이기도 하다. 자신감은 결코 유능함과 동의어가 아니다. 매우 유능하면서 자신이 없어 하는 사람도 있고 별로 실력도 없는데도 자신감으로 문제를 해결해 가는 사람도 있다. 전자는 자신의 가치없음을 여러가지 실력과 요즘 흔히 말하는 스펙으로 메꾸려 시도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반드시 실패한다. 왜냐하면 자신감이란 기본적으로 자기 자신과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자신과의 화해는 하나님과의 화해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아담이 자신의 벗었음을 인하여 부끄러워 한 것은 죄의 결과가 결국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수용하기 힘든 자기와의 불화라는 사실을 보여주기도 한다. 


4. 현실지각
사람들에게 있어서 현실은 제각각이다. 왜 그럴까? 무표정한 얼굴은 사실 많은 해석의 여지를 사람들에게 안겨준다. 사실 그것의 객관적 진실은<중립>즉, 표정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그저 표정이 없다로 인식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화가 났다고 인식하고 어떤 사람은 근심이 있다고 인식하고 어떤 사람은 그런 사실에 대한 인식자체를 꺼리기도 한다. 왜 어떤 사람은 화가 났다고 인식을 할까? 사람은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화가났다는 인식은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인 셈이다. 이처럼 우리의 현실지각은 정말 많은 왜곡의 여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사실조차 자각을 못한다는 사실이다. 성숙은 바로 이런 사실을 자각하고 내가 지각한 것을 사실로 믿기보다 항상 상대에게 되물어 확인을 한다. 그래서 물어 볼 줄 아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인 것이다. 대체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물어보지 조차 않고 곧바로 오해모드로 들어간다. 자신의 인식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5. 자기통찰과 풍부한 유머감각 
자기 통찰은 유머 감각과도 관련 있다. 이는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한 자각을 통해 자신을 비웃을 수 있는 능력에서 생겨나기 때문인데 이로 인해 타인에게 자신의 부정적 속성을 투사하지 않는다. 유머는 성숙의 한 단면이다. 성숙하지 못한 인격은 웃자고 얘기한 것을 죽자고 달라든다. 성숙지 못한 인격의 다른 특징은 앞서도 이야기 했지만 투사가 많다는 것이다. 이들의 주특기는 자신의 문제를 남에게서 주로 발견한다. 길가다가 다른 사람이 웃었다고 그와 시비가 붙는다. 자신을 비웃었다는 것이다. 정말 그랬을까? 그보다는 자신 안에 큰 열등감이 끊임없이 자신을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 너무 괴로운 것이다. 그러던 중에 누가 웃는데, 그 웃음이 자신의 열등감과 결탁이 된다. 결국 상대가 나를 비웃었다고 여기게 된다. 이에 비해 진정한 유머는 자신을 비웃을 수 있는 능력이며 이것은 자기 통찰에서부터 비롯된다. 컬투라는 개그맨들은 자신의 머리가 크다는 사실을 가지고 개그의 소재로 삼는다. 자기인식과 수용, 그리고 그것을 비웃을 수 있는 능력에서부터 비롯하는 것이다. 머리가 커서 별명이<만대>라고 한다.<대가리만 만평>의 준말이란다. 사실은 나도 머리가 크다. ㅋㅋㅋ 그래서 별명이<모여라 꿈동산><3000cc><대갈장군>등등 고교시절 별명으로만 치면 1등이었다. 친구들이 나를 비웃었고 나는 그게 싫었다. 물론 지금은 오히려 내가 유머의 소재로 나 자신을 삼는 편이지만, 그 땐 참 힘들었다. 자신에게 물어보라 나는 나를 비웃을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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