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 없음의 재능
"白技不如一 誠이요 千思不如一行이라"
백가지 기술이 있어도 한가지 성실함만 못하며
천가지 생각이 있어도 실천하는 한가지 행동만 못하다.
노승수 목사
백가지 기술이 왜 한가지 성실함만 못할까요? 대체로 재능있는 사람들의 약점이 있습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기술이 백가지나 되니, 어떤 마음이 있겠습니까? '이거 아니면 내가 뭐 할 게 없나?' 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지요.<자존심>혹은<자긍심>의 도를 넘는 경우가 많게 됩니다. 그래서 인간관계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갈등을 다른 사람에 비해서 많이 일으키기도 하고 사소한 갈등을 잘 견뎌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리저리 옮겨다니기를 많이 하게 됩니다. 꼭 그런 마음이 아니더라도 갈등이 닥치게 되면 다른 길이 있음으로 해서 쉽사리 지금의 갈등을 정리하려는 마음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달리 다른 길이 없는 사람들은 꿋꿋하게 그것을 견디어 가지만 재능이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피할 길이 있는 셈이지요. 사실 재능이라는 것은 성실함의 열매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때론 하늘이 그들에게 부여한 천부적인 것인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러니 이 재능에 그의 인격를 갈고 닦음이 없다면 성실한 것 만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실함이란 그러므로 갈등을 견디고 인내함의 열매라 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5장은 환난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연단을 낳는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연단은 우리의 성품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성품이 장래의 천국에 대한 소망의 근거가 된다고 말합니다. 백가지 기술이 있어 교회에서 이런 저런 재능으로 섬기는 일이 한가지 성실함만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대체로 유명한 예술가들하면 보편적으로 떠오르는 특징이 무엇입니까? 고약한 성격이나 까다로움, 이런 것은 흔히 그가 가진 예술적 완벽주의에 표현이라고 좋게 이해해주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가 그런 재능을 가진 고로 오히려 그의 인격이 연단될 기회를 잃어버린 것이지요. 그러므로 하늘이 준 재능을 부러워말고 한가지 일에 성실함으로 내 인생을 꽃을 피워야 합니다.
천가지 아이디어가 있더라도 한가지 실천만 못하다는 것은 사실 그리스도인들을 정말 새겨들어야 할 이야기 입니다. 성경이 바른 진리를 잘 아는 것 정말 중요합니다. 진리를 알고 실천하지 못함은 그것을 모르는 것만 못한 법입니다. 그러나 근대라는 시대가 열린 이후로 사람들은 자신의 지식과 자신의 삶을 격리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근대의 발원은 지식을 대상으로 여긴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니 나와 그다지 밀접한 관련이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대상에 대한 지식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이것은 교육의 현장에서 더 적나라하게 들어납니다. 인격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단지 정보 전달을 잘해주면 그는 훌륭한 선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지요? 선생이란 칭호는 유학이 융성하던 조선시대에는 아무나 받던 칭호가 아니었습니다. 우암 송시열이나 퇴계 이황, 남명 조식 정도가 선생의 칭호를 얻었습니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학문을 익힘은 인격 도야와 거의 같은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조정이 인물을 중요할 때, 그의 기능이나 기술을 본 것이 아니라 경전을 읽으며 그가 얼마나 인격을 갖추고 그것을 실천할만한 인물인가를 물은 것입니다. 그래서 조선의 과거시험의 과제가 늘 시를 짓는 일이었습니다.
현대는 인문학이 천시를 받는 시대입니다. 대학에서 점차 인문학은 설자리를 잃어버리고 심지어 고등학교에서 조차 인문학의 핵심(문학과 역사와 철학)인 국사를 선택과목으로 바꾸어버렸습니다. 교회라고 예외일까요? 바른 교리를 배우고 그 교리를 세우기 위해서 논쟁하는 일은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논쟁 이전에 참으로 논쟁을 할만한 인격적 자세를 가지고 있는지를 살펴야겠지요. 그것은 항상 실천으로 드러납니다. 그래서 천가지 생각이 한가지 실천만 못한 것입니다. 로마서 10장은 믿음을 두 가지 특성으로 정의합니다. 10:1-3절은 지식을 좇아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믿음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에 비해서 10:16이하는 믿음이 곧 순종에 다른 말이 아님을 설명합니다. 우리가 진리를 아는 것은 곧 그것에 순종함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래서 천가지 생각보다 한가지 실천이 낫다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실천하는 것만큼 내가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블로그 > 목회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학적 세례 (0) | 2018.03.03 |
---|---|
성숙한 인격의 특징에 관하여(Allport의 성격이론을 중심으로..) (0) | 2018.03.03 |
건강한 의사소통 VS 불건강한 의사소통 (0) | 2018.03.03 |
일라이(The Book of Eli) (0) | 2018.03.03 |
인생은 겸손을 배우는 학교입니다. (0) | 2018.03.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