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신세례
언뜻 순환논리인 것처럼 보이지만, 바른 신앙이 무엇인지를 반성할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그에게 바른 신앙의 기본적인 내용들이 은혜로 주어져 있어야 한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2장 13절에서 이 성신세례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됐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즉 사람은 성신세례에 의해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임을 받는다. 그러므로 이것은 바로 구원을 의미한다. 그러나 여기 성신세례에서 의미하는 것은 단순한 구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을 구성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바로 이 동일한 몸을 구성한 사실 때문에 그는 진리를 깨닫게 되고, 동일한 성신세례에 의해 한 몸을 이룬 다른 사람들과 함께 동일한 신앙체험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요한복음 10장에서 우리 주님께서는 이것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시기를 목자의 인도를 받는 양무리로 표시하셨다. 그리고 그 양의 특성을 가리켜서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가되”라고 말씀하셨다. 즉 성신세례를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임을 받고, 그리스도의 양무리에 속해서 그리스도의 음성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그리스도의 음성을 아는 것은 하나님께서 먼저 은혜로 주신 사실에 의해 아는 것이지 사람이 자기 지혜로 아는 것은 아니다.
성신세례에 대해서 오늘날 여러 가지 견해가 혼란스럽게 소개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성신세례와 관련된 다른 문제들은 여기서 자세히 다룰 수 없지만, 한 가지 지적하고 넘어갈 것은 성신세례의 해석에서 고린도전서 12장 13절이 가진 무게이다. 신약성경에 성신으로 세례를 준다는 말은 전부 7 회 나타난다. 그 중에서 여섯 번은 오순절 성신 강림에 대한 예언, 혹은 그것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리고 나머지 한 번이 바로 고린도전서에 등장하는 바울의 언급이다. 그러므로 오순절 사건이 있은 지 약 25 년 뒤에 쓰인 이 서신에 등장한 바울의 언급은 그 오순절 성신강림 사건의 의미에 대한 사도 바울의 종합적이 해석이 되기도 한다. 바로 여기에 성신강림 해석에서 고린도전서 12장 13절이 가지는 심중한 의미가 있다.
어쨌든 모든 신자는 ㅡ“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ㅡ 다 한 성신으로 세례를 받아서 한 몸을 이뤘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신앙의 보편성을 발견할 수 있으며 다시 거기서 우리는 신앙체험의 보편성과 동질성을 추론할 수 있다. 물론 사람마다 기질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며 그가 신앙을 가지게 된 계기도 다르므로 그가 자기 신앙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 어느 정도 표현상의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신앙내용을 자세히 분석해보면, 만약 그것이 참된 신앙이라면 거기에는 동질성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동질성이다. 그 좋은 예가 바로 아브라함의 신앙과 우리 신앙의 동질성이다. 로마서 4장에서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의 구원이 행위로 인한 것이 아니고 은혜로 인한 것임을 논증해 가면서, 아브라함을 은혜로 구원 받음을 믿고 구원받는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고 말하고 있다. 바로 그 점에서 아브라함은 신약의 성도들이 체험하는 이신칭의의 신앙체험을 가졌던 것이다.
신자가 성경을 공부하고 자기 신앙을 반성할 때에 하는 것이 바로 이런 참 믿음의 보편적 특성을 자기가 체험하고 있는지를 반성하는 것이다. 물론 기독교사에는 여러 가지 믿음의 체험이 소개되며 그 중 많은 것들은 이단으로 정죄되거나 아니면 바르지 못한 체험으로 규정된 것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바른 신앙의 체험은 언제나 존재해왔고, 그 신앙체험에 의해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위해 죽음이라도 불사하는 자리에 들어갔던 것이다. 그들은 자기가 가진 그 신앙은 바로 우리 주님께서 가르치신 신앙이며, 주님께 배운 사도들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써 가장 순결한 형태로 전해준 신앙임을 알았다. 그리고 그런 신앙은 성신세례에 의해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뤘다는 것이 그 근거가 됨을 알았던 것이다. 자신의 신앙을 반성해 봤을 때, 자기가 바로 그런 선지자와 사도의 터 위에 선 것임을 확신하는 기쁨이란 얼마나 큰 것인가!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엡 1: 20]
***황영철 [신비체험과 신앙](서울:도서출판 나비, 1989) 42쪽~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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