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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신학/교회론

성찬에 대하여(summary)

성찬에 대하여(summary)
김홍전 목사
성례에는 세례와 성찬 두 가지 밖에 없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구원의 거룩한 도리를 알게 하셔서
그 사람이 믿음을 갖게 되면 오직 그 사실 때문에 그는 구원의 은혜 가운데 참여하게 된다.
그 밖의 다른 보이는 형태의 수단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말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성례라는 표증이 구원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하거나 그것이 아니면 구원받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가당치 않은 얘기다.
성례란 하나님의 백성에게 특별한 증표로 내리신 것이지 모든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내리신 것이 아니다.
구약에도 성례가 있었지만 그것은 아브라함 때부터 있었지 그 이전에는 성례라고
구체적으로 표시할 수 있을만한 무엇이 없었다(ex무지개-‘이것은 내 언약의 표증이다’창9:13).
카톨릭은 말씀보다도 오히려 성례, 그 중에서도 세례라는 것이 구원에 절대로 필요한 요소라로 생각한다.
성례만으로 전연 없던 믿음이 발생하는 예는 없다. 성례는 이미 믿음이 속에 있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지,
안 믿는 사람에게 주는 법이 없다.
말씀과 성례의 같은 점과 다른 점
1. 같은 점
1) 제정하신 분이 같다.
2) 말씀과 성례의 중심 내용이 같다 - 그리스도
3) 중심 내용을 소유하는 방도가 동일하다 - 믿음
2, 다른 점
1) 말씀은 구원에 절대로 필요한 것이지만, 성례는 그렇지 않다.
2) 목적에 있어서도, 말씀은 믿음을 일으키기도 하며, 연약한 믿음을 보강해 주기도 하지만
그러나 성례는 오직 믿음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서 공급되는 것이며 믿음이 약할 때에는 보강하는 사역만 한다.
성찬이란 무엇인가
상징(유월절)이 물러가고 실체(그리스도)가 오심
구약시대 유월절 절기 때에는 생명을 공급하는 상징으로서 양의 고기를 먹었지만
오늘날 신약 시대에 와서 주께서 제정하신 방식대로는 고기보다 떡을 들어 가지고
‘이것이 내 몸이다’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양고기로 표시하지 않고
떡으로 표시했다. 유월절의 의미가 그대로 오는 것인데 유월절의 양의 고기와 피가 상징했던
그 실체가 예수님 안에 다 있는 것이다.
누가복음 22장 1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위 말씀은 유월절 잔치가 가지고 있던 상징적 의미가 끝이 났다는 것이다. 이제는 예수님께서
실체로서 당신님의 살과 피를 내주시는 것이다. 실체가 오고 상징이 뒤로 물러나면 상징은
더 이상 소용이 없게 된다. 그리고 이제 임하는 새로운 경륜하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특수한 양식을 취할 것이다. 중보자 왕이신 예수님께서 직접 십자가상에 이루신 공효 때문에
아버지가 그에게 내려 주신 특수한 양식을 취하게 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구시대적인 것으로 상징하기 보다는 새로이 제정하신 의식으로 표징하겠다는 것인데
그것이 곧 성찬이다. 할례와 유월절 양이라는 것이 세례와 성찬으로 대체된 것이다.
그런즉,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실 필요가 없다”고 하셨다.
교회의 일체성
성찬은 떡 한 덩어리를 가지고 사례(감사)를 하고 나서 떡을 떼고, 그 다음에는 주는 것이다.
‘준다는 것’은 하나가 다른 하나에게 주는 것인데 그것은 서로서로의 연합이라든지 교통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렇게 주는 것이 의미가 있기 때문에 떡을 주고 받는 것은 그리스도의 생명의 요소를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가 서로 그것을 같이 나누어 먹고 산다는,
거룩한 교회의 일체성이라는 것을 그것으로 상징해 주는 것이다.
1. 성찬에 대한 교회의 바른 자세
말씀을 제하고 성찬만 독특하게 홀로 구속의 은혜의 방도로 독립된 작용을 하지 못한다.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 말씀을 이미 받고 어떤 부분을 확실히 믿고 이미 구원을 받은 사람들에게 이것을 줌으로써,
그 은혜를 풍성하게 하고 믿음을 더 보강해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찬을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ex 고린도 교회)
고린도전서 11장 21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이는
시장하고 어떤 이는 취함이”
고린도 교회는 이렇게 성찬을 잘못 행함으로 징계를 받아서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았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였다.
고전 11장 30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31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32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죄 정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아무런 준비도 없이 마음에 확실한 생각도 없이 그저 자기 앞에 닥치니까 하는 수도 있다.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은 은혜를 자기가 분명히 받았노라 하면서도 그 은혜가 자기에게
능력으로 존재하지 아니하여서 여전히 자기 속에는 ‘자기’라는 것이 강하게 지배하고 있거나,
형제에 대한 미움이나 투기나 시기를 그냥 계속 가지고 있으면서 성착식에 임한다면 그것은 부정당하다.
하지만 이런 것이 죄 없는 사람만 오라고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죄가 있는 것을 알라는 것이고,
둘째는 그것을 원통히 생각하고 주님 앞에 진정으로 고백하는 사람은 참여하라는 것이다.
주님의 힘이 아니면 남을 미워해서 형제를 살인하는 자기가 스스로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그것 때문에 원통히 생각하고 괴롭게 생각하는 사람이거든 주께 나와서 구하고 이 성찬에 참여하라는 것이다.
2. 성찬이 주는 참된 은혜를 분명히 받아야 함
모든 성례가 다 하나의 표증이요 증거이다. 성찬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면 이제 더 큰 문제는
그것이 나에게 실제적인 효력이 있어야 한다.
성찬식의 떡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살과 피로 홀연히 변화하는 것도 아니고(카톨릭-화체설),
거기에 피와 살이라는 요소가 함께 있는 것(루터-공재설)도 아니다. 우리가 비록 물질인 떡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지만 그러한 방도를 통해서 다른 방도로써 유치할 수 없는 신령한 예수님의 피와 살이
직접 내 안에서 일으키는 은혜의 사실들을 내가 받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성찬에서 분명한 은혜를 받도록 해야지
성찬은 그저 예식으로 집행할 뿐(쯔빙글리-기념설)이라면 의미 없는 것이다.
3, 성찬이 상징하는 것들
1)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을 상징함
고린도전서 11장에 있는 말씀같이, “너희가 이 떡을 마시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
이것은 구속에 있어서 가장 중심적인 사실이다. 내가 받을 영원한 형벌, 주께 속한 모든 자들이 받아야 할
영원한 형벌을 예수님 당신님이 받지 아니하시면 하나님의 의의 요구를 충당 할 수 없는 까닭에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의 법정의 선포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참된 구원이 오히려 필연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 이라는 사실이 있어야 하는데, 이 죽으심이란 사실을 우리에게 상징하기를 성찬으로 하는 것이다.
2) 주님의 죽으심과 신자의 참여
성찬은 신자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에게 자기도 동참한다 하는 것을 상징한다.
그 떡을 먹고 그 잔을 받아 먹음으로써 그것이 내 속에 들어가서 이제는 나와 분리될 수 없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징적인 행동으로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해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 경우,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중심인 대속의 죽으심에 내가 연합한다는 사실, 즉 그리스도에게 동참한다는 사실을
표상적으로 말할 때 “인자의 살을 먹으며 그의 피를 마신다”(요6:53)는 표현을 쓴다.
신자가 이것을 먹고 마실 때 그리스도의 희생의 죽음으로 확보된 바 그 은택들을 상징적으로 자기 것을 삼는 것이다.
3) 영혼에 생명과 힘과 기쁨을 주는 효과
포도주를 마시고 떡을 먹음으로써 힘과 기쁨과 신선한 능력을 얻는 것처럼 그것들이 상징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음으로써 힘과 기쁨과 신선한 능력을 얻는 것처럼 그것들이 상징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영혼에 생명력과 신선한 힘과 기쁨을 또한 얻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내가 직접 취하고 있다는 것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성찬을 그런 은혜의 방도로 주셨기에 우리가 그렇게 믿음으로 행하면 성령으로 임재하신
그리스도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성찬이 은혜의 방도인 것이다.
떡도 한 조각이고 포도주도 한 모금 정도에 불과하지만 그것은 상징일 뿐이고 그 안에 포함된
주님의 약속을 풍성히 받는 것이다. 주님께서 제정하신 예식을 신성하게 높여서 말씀을 순종하는 태도로 받을 때
언약대로 여러 가지 은혜의 내용을 받는 것이다.
4) 신자 상호간의 연합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한 몸의 지체로서 신령적인 통일성을 형성하는데, 동일한 떡을 먹고 동일한 포도주를 마신다.
고린도전서 10장 17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
동일한 근원에서 생명을 얻어서 생활을 경영해 나가는 것인즉 성례란 신자 상호의 연합이라는 것을 상징한다.
비록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할지라도 상호의 거룩한 연락이 있는 것이다. 이런 영적인 연락은
지금 살아 있는 사람끼리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보편의 교회 안에도 존재하는 것인데
이런 것이 ‘성도의 교통’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성령의 역사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는 신비한 사실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 신체를 보더라도 이 손과 저 손이 서로 떨어져 있더라도 한 신체 안에 있을 뿐 아니라
하나의 혈맥으로 늘 힘이 통하여 순화하는 것이다.
4. 성찬이 증거하는 것
1) 그리스도의 위대한 사랑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대체 우리에게 무엇을 증거하는 것인가?
그것은 무엇보다도 우리를 사랑했다는 증거이다. 바로 목숨까지 내어 던지실 정도로 사랑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지극히 큰 사랑을 우리에게 증거해 주는 것이다.
성찬이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표한다면 그 죽으심은 또한 내게 일보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하는 것이 됩니다.
성찬은 그 예식의 참여자에게 참으로 위대하고 빈틈없고 의심할 여지가 없는 큰 사랑을
마치 도장으로 꾹 찍듯이 확증해 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사랑은 과거의 어떤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살아계시고 영광 가운데 계신
주님께서 수찬자에게 그가 자신의 끊임없는 사랑의 대상이심을 증명해 주시는 것이다.
성찬에 참여하면서 그러한 사랑을 보아야 한다.
2) 거룩한 언약의 허락
성찬을 믿음으로 받고 참여하는 신자들에게 성찬은 전적으로 충만히 이루어진 구속의 성업(聖業)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를 확실히 보장해 준다. 또한 거룩한 구속 사역을 이루신 구주로서
믿음으로 성찬에 참여하는 신자에게 그 큰 사랑과 은혜를 확증해 주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언약의 모든 허락과 복음의 모든 풍성한 은혜를 거룩한 선물로 내려 주셔서
완전히 그의 것으로 삼아 주시는 것이다.
여러 가지 은혜가 있겠지만 첫째는 ‘속죄의 사실’이다. 거기에는 새로운 생명의 사실도 있고,
새사람으로서 살게 하시며 은혜를 보존하시는 사실, 또 우리를 세우시사 마침내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거룩한 열매를 맺게 하시는 사실, 그리고 마침내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사실도 있다.
따라서 수찬자는 성찬식 때, 자신이 받은 복음적인 풍성한 선물 내용을 기억하고 다시 새롭게 하라는 것이다.
귀한 것을 지니고 있지만 살아가면서 때가 묻어서 빛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은 것이 누적되어서 일시적인 안락함 가운데 빠져서 씻어 내거나 고칠 줄 모른다면
결국 나쁜 면역성이 생기게 된다. 그러면 은혜를 받아도 은혜인 줄 모른다.
그런즉 성찬을 행하는데서 다시 신선하게 하라는 것이다.
3) 구원의 복록에 대한 확신
성찬은 그 예전을 믿고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의 풍요한 허락들을 확실히 확인해 줄 뿐만 아니라
다시 그 구원의 복록(福祿)이 실제로 그의 소유라는 것을 확증해 준다. 구원의 복록이 지금 현재 나의 소유라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모든 은혜와 복록을 약속하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면서 목적을 향하여
영광의 길을 걸어 나갈 때 필요한 필요한 모든 것을 언제든지 공급해 주신다는 것이다.
그런고로 성찬을 받을 때 그러한 큰 약속에 대하여 다시 새롭게 생각하라는 것이다.
우리의 육체가 떡을 먹고 포도주를 마심으로 영양을 얻고 새롭게 힘을 얻어 신선하게 되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믿음으로 받은 영혼은 현재도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을뿐더러
앞으로 항상 영생의 모든 기능이 더 새롭게 된다는 말이다. 주님은 이런 사실을
‘영생을 얻고 또 얻는다’라는 말씀으로 표현하셨다.
4) 신앙고백으로서의 서약
성찬이 그리스도의 것으로 연합한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처럼, 이 의식을 믿고
거기에 참석하는 신앙의 수찬자들에게는 그것이 신앙을 증언하는 한 표지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떡을 먹고 포도주를 마실 때, ‘나는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는 사람입니다’ 하는 것을 당연히 고백한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단순히 내 구주로만, 제사장으로만 믿는 것이 아니라 나를 다스리시는 왕으로서 모시고 있음을 고백한다.
그런즉 나는 그리스도께서 구주로서 끼치는 은혜만 받고 있지 않고 나를 통치하시고 나를 주장하시는 분, 곧 왕으로 모시고 그분께 충성을 다해야 할 처지에 있음을 고백한다.
성찬의 표증
성찬의 증거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
그리스도의 사랑
신자와 그리스도의 연합
죽으심으로 인한 은혜의 허락
영혼에 생명과 힘과 기쁨을 주심
구원의 복록의 실제성
신자끼리의 연합
신앙고백으로서의 서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