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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신학/기타미분류

스프라울에 대한 김명도 박사의 견해

스프라울에 대한 김명도 박사의 견해

1. 세대주의에 대해 설명하는 글에서...
그래서R.C. sproul 같은 학자가 진행하는 National Conference 에 John Piper 나 Sinclair Ferguson 과 같은 신학자와 함께 강사로 초청되기도 합니다. 물론 그의 발표 분야는 조직 신학 분야 가 아니고 설교 분야로 주로 “강의설교법” 을 강의하지만 (그는 철저하게 강해 설교를 주장함) 그가 그런 National Conference 에 초빙되는 것을 보면 Sproul 박사도 그의 신학을 문제 삼지 않는다는 증거가 됩니다. 물론sproul 자신도 Thomas Aquinas 를 좋아하는 Natural Theology 를 믿는 분이지만 어쨋던 이들은 모두 현재 미국의 신학계에서는 인정받는 분들입니다. 필자는 맥아더 목사의 책을 읽으면서 내용을 취사선택하여 받아 드리고 있습니다.
2. 평신도가 읽어야 할 참고서적 목록이라는 글에서...
그러나 R.C. sproul이라는 사람이 쓴 Now That's a Good Question 이라는 책은 사지 말 것. 이 분의 신학이 근자에 와서 문제가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분이 쓴 How to Interpret the Scripture 는 건전하지만 요지음에 와서는 짐승도 사람과 같이 예수님의 피로 구속함을 받아서 천당에 간다고 그 책의 201쪽에서 가르치고 있다. 옛날의 보수주의 신학자들이 근자에는 하나씩 둘씩 잘 못되어가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3.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설명하는 글에서...
우리가 분명히 아는 것은 짐승의 세계에는 종교란 존재하지 않는다. 짐승은 태어나서 어느 정도 살다가 죽으면 그것으로 끝난다. 소멸된다. 영어로는 extinction 이라고 한다. 동물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적이 없고 따라서 하나님에게 책임질 일도 없다. 동물은 인간을 위해서 지음을 받았다.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동물의 이름을 지어 주어주었다.
그러나 사람은 다르다. 사람은 짐슴이 아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은 하나님에게 자기 삶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사람은 아무렇게나 짐승처럼 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은 하나님에게 책임을 져야하는 만물의 영장이다. 하나님은 만물을 지으시고 마지막 날에 인간을 마드시고 만물을 주장하도록 하셨다. 이것을 문화명령 즉 cultural mandate 라고 한다. 인간은 만물을 주장하되 그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하나님을 따라<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이다. 진리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은 선지자의 직분을 행하도록 지음을 받았다는 말이고 의로 지음을 받았다는 말은 왕의 직분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말이며 거룩함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말은 제사장의 직분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말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은 처음에 죄를 짓기 전에는 아담이 모든 일에 하나님에게 순종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며 만물을 하나님이 해석하는 대로 해석했다. 
그러나 사정은 달라졌다. 그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치 않고 범죄한 후에 그런 속성은 남아 있지만 그의 속성은 더 이상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마비되었다. 성경은 우리 모두가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거리가 멀어졌다고 했고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다고 가르친다<하나님을 알만한 것>은 분명히 우리 안에 있다.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짐승들이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알 리가 없다. 짐승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지 아니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짐승에게는 어떠한 종교심도 없다. 이 세상에 서 자연의 법칙에 따라서 태어나서 얼마동안 살다가 죽으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 
그런데 요즘 재미있는 일은 미국의 굴지의 유명한 신학자 한 사람이 성경에 관한 질의 문답 책을 썼는데 그 책의 290면에서<짐승도 천당에 가는가?>라는 질문을 다루면서 대답하기를<우리 집에 애완동물이 있는데 이사야서 11:6절 이하를 읽어보니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니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땐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라는 말이 있으니 우리 애완동물도 천당에 가면 볼 수 있을것으로 안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 유명한 신학자는 사람은 R.C. sproul이고 그 책의 이름은 Now, That's a Good Question 이라는 책이고 이 글이 실린 곳은 290면이다. 
이사야가 이런 말을 한 것은 실제로 그렇게 어린애들이 독사의 굴속에 손을 넣고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눕는 일이 천당에서 일어난다는 말이 아니라 이사야는 나중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에 그렇게 서로 조화된 상태가 도래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말하고 있을 뿐, 천당에서 그런 일이 실제로 있을 것을 예언함이 아니다. 마찬 가지 이유로 계시록에도<머리가 일곱이고 뿌리가 아홉인 괴물이 올라온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정말 실제로 그런 기물이 올라온다는 말이 아니라 사탄의 흉악함을 상징적으로 가시적 효과를 위해서 그렇게 표현한 것 뿐이다. 이런 것을 수사학에서<Imagery>라고 한다. 이사야도 요한도 모두 유대인이다. 유대인들은 유대인의 묵시 문학 (Apocalyptic Literature) 이 이다. 
성경기록자들은 아무도 모르는 독특한 말 (jargon) 을 도입한 것이 아니고 그들이 평시에 알고 있는 인간의 말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계시를 기록했다는 것을 잊지 말자. 가령 로마서 12장20절의 말씀도 문자 그래도<원수의 머리 위에 “산 숯불을 얹으라” 는 말이 결코 아니다. 유대나라의 풍속과 속담에 그런 말이 있다. 누가 해를 끼치고 원수처럼 대하면 “그 사람 머리에 산 숯불을 얹어 주어라” 라고 말하는데 문자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되고 그 나라의 속담으로 생각해야 한다. 만일 성경이 한국어로 기록되었다면 “미운 사람 떡 한 개 더 주어라” 라고 기록되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또 다른 속담은 누가복음 7:34절에 나오는 말인데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을 즐기는 자” 라는 말이 나온다. 같은 말이 구약 신명기 21:20에 나온다. 자식이 “먹기를 탐하고 술에 잠긴자라 하면 동리 장로들이 그를 돌로 처 죽일 것이요” 라고 말한다. 누구든지 “몹쓸 사람” 을 매도하는 유대인의 속담이다. 가령 누가복음 13:32에 나오는 “여우” 가 누구인가? 정말 짐승인 여우를 말하는가? 아니다. 헤롯을 말한다. 이렇듯 성경은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안 되는 부분들이 있다. 성경은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로 수사학을 동원해서 기록되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이사야서 11장에 나오는 말씀을 근거로 천당에서 표범과 이리가 같이 노는 일이 있다고 생각 하거나 우리 집의 고양이나 강아지가 천당에 가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비성경적이다. 그들에게는 천당이 없다. 죽으면 그뿐이다. 하나님이 짐승에게 그런 특권을 주신 일이 없다. 

4.<짐승도 천당에 가는가?>라는 글...(짧지만, 이 문제만을 다루기 위해 쓴 글 같습니다.)
짐승도 천당에 가는가?
짐승도 천당에 간다고 주장하는<정통신학자>가 있어서 세인의 눈길을 끌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R.C.sproul. 그는 몇년전에 책을 저술하여 발간했는데 그 책의 이름은 Now That's a Good Question ! (Tyndale House Pub. 1996, 612p.pb.). 
Sproul 교수는 Florida주 Orlando 에서 Legonier Ministry 를 운영하는 존경받는 건전한 개혁주이자 인데 그는 이 책에서 기상천외한 말을 하고 있다 .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그가 한 말을 직접 그가 쓴 책에서 그가 말한대로 들어 보고나서 이야기를 계속하자. 여기에 인용 전문을 편집없이 그냥 그대로 소개한다 (quoted verbatim from R.C.sproul. Now That's a Good Question!)
"Whenever heaven is described, though it may be in highly imaginative language, it is a place where animals seem to be present. Whether these are animals newly created for the new heavens and the new earth,or they are the redeemed souls of our pets that have perished, we can't know for sure. All of this is sheer speculation, but I would like to think that we will see our beloved pets again someday as they participate in the benefits of the redemption that Christ has achieved for the human race." (p 291).
(번역: 천당을 묘사할때마다 비록 그것이 매우 상상력을 도원하는 언어이긴 해도, 짐승이 그곳에 존재하고 있는듯이 보인다. 이 짐승들이 신천지에 살도록 새로 지음을 받은 짐승들인지 아니면 이미 죽은 동물들의 구속받은 영혼들인지 확실히 알수는 없다. 이 모두가 추측에 불과하지만 우리들의 사랑하는 애완동물들이 그리스도가 인류를 위해서 이룩한 구속의 은택에 참여하는 그 어느 날 그들을 우리가 만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291면).
요즘의 기독교의 문제는 신학자들이 하나씩 둘씩 대거 성경적인 진리에서 이탈하여 성경적인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 을 들고 나온다는 것이다. 성경은 "다른 복음은 없다" 고 분명히 가르쳐준다. 갈라디아 1장 8절과 9절에서 사도바울은 지극히 격앙된 어조로 "토 헤테론 유앙겔리온=<다른 복음>이라는 헬라어) 을 전하면 저주를 받으리라고 한다. 여기서 분명히 sproul 박사는 짐승도 영혼이 있고, 짐승도 성도들 처럼 구원 얻는줄 알고 있다 그러나 진실은 동물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지 않았다. 사람만이 하나니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창 2:7). 하나님의 형상 (Imago Dei) 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을 닮아 지.정.의 가 모두 하나님의 풍성을 닮았다는 말이다. 이 말은 엡 4:24 과 골로새 3:10에서는 하나님을 닮아 "지식, 의와 거룩함" 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말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지음을 받았으니 선지자의 직분이 우리에게 있다는 말이다. 의로 지음을 받았으니 왕권을 가졌다는 말이며 거룩함으로 지음을 받았으니 제사장의 직분을 받았다는 말이다. 그리스도가 삼중직 (three offices) 를 갖고 있듯,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입은 인간도 삼중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공경하도록 지음을 받았다. 하나님은 아담에게<문화 명령 =cultural mandate>을 주었다.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도록 명령했다. 짐승은 우리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 인간이 필요에 따라서 사용한다. 그리고 짐승이 죽으면 그것으로 그들의 사명은 끝나고 extinction 한다. 그들은 호흡은 있어도 (하나님이 지은 생물이므로), 영혼은 없다. 그러므로 죽은 다음에 하나님에게 책임질 일도 없다. 죽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인간은 짐승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모든 인간은 예외없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기에 죽은 다음에 하나님에게 잭임을 져야 한다. 요한복음 5:28 은 분명히 심판이 있음을 말해 준다.요한복음 3장도 마찬가지이다. 고린도후서 5:10 은 구원여부의 심판이 아니고 믿는자의 상급의 심판이므로 이를 제외한다해도 성경은 인간의 심판을 명확히 맗한다. 모든 인간은 심판을 받는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소요리문답 제 56문은 바로 이를 말하다.<악한 인간이 (동물이 아님)사람으로부터는 심판을 피할수 있어도 하나님으로부터의 심판은 결코 피할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이 글을 읽는 방문자께서는 Shorter Catechism of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Question #56 : "Why was the third commandment annexed?" 항목을 자세히 읽어 보기 바란다. 앞으로 얼마든지 기독교의 교리는 많은 신학자들에 의하여 변질되어 그릇되게 가르치게 될 것이다. 정신 채리지 아니하면 결단난다. 이미 세상에 잘 못 가르치는 많은 소위 "정통" 신학자들이 교회를, 신학교를, 세미나를, 부흥회를 누비고 있지 않은가? 부흥회를 가보라, 무슨 무슨 세미나 나 영성훈련이니 가 보라. 무엇을 느끼는가? 무엇인가 이전보다 다른 가르침을 발견하지 못하는가?
만일 그런 것들을 눈치챘다면 깨어 있는 증거이고 성경을 제대로 알고 있다는 증거이다. 반면에 아무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은 성경에 익숙치 못한체 피상적으로 성경을 알고 있는 분들이다. 성경에서 교훈하는 진리를 가장 정확히 하는 법은 성경을 여러번 정독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좋은 참고서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전문 33장을 다섯번 이상 정독하라. 그것이 어려운 분은 반드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소요리문답 (전문 107 문) 을 열번 이상 정독하라. 그러면 오늘의 기독교가 얼마나 잘 못되어 가는가를 실감하게 되고 통탄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본 튤립교육 선교회의 활동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주님은 눅 18:8에서 "인자가 올때 이땅에서 "믿음"을 보겠는가?" 라고 탄식하셨는데 바로 그 말씀이 우리들의 눈앞에서 현실로 닥아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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