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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칼럼

신나게 비난 받는 법

신나게 비난 받는 법
노승수 목사
"만약 세 사람이 당신을 말이라고 부른다면, 인정하고 안장을 장만하라." 
타인의 비난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비록 다른 사람들이 문제가 있고 때로는 병적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비난이 계속된다면, 자신의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할 때이다. 비록 병적인 사람 3명이 당신을 동일하게 비난한다면 자신의 내면의 문제를 인정하고 성찰할 때이다. 이 때 치유와 변화와 성장이 가능케 된다. 다른 사람들의 비난을 두려워하고 거부하는 사람은 결코 자기 성장을 이룩할 수 없다. 

Albert J. Bernstein의 『정서적 흡혈귀』중에서
⑴ 자기 얘기지 내 얘기가 아니다.
비빔밥을 만들지 말라. 그의 눈에 그렇게 비쳤을 뿐이다. 그가 그렇게 나를 본다고 해서 내가 그렇게 되거나 그런 사람으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보지 못한 수많은 내 모습이 존재하고 그것을 그 사람이 다 아는 것도 아니다. 그게 전부는 아니란 말이다. 사람들은 너무나 주관적이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자기 보고 싶은 대로 본 것에 괜히 내가 내 문제를 비빔밥할 이유는 없지 않는가? 

⑵ 그가 그렇게 말하는 것은 그의 자유이다. 
그가 어떻게 생각하든지 그것은 그의 선택이지 그가 그런 선택을 한데 대해서 내가 관여하거나 그의 생각을 바꿀 권리가 내게는 없다. 우리는 한 가지 신화를 가지고 있다. 아무도 나를 미워하거나 비난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예수님도 적이 있지 않았는가? 그가 그렇게 선택했다면 굳이 변명하거나 바꿀 필요가 없다. 내가 설명해서 바뀔 수 있다면, 해명은 필요하지만 그런 것이 구차할 땐 그냥 그의 선택을 존중하라. 그 나름대로 즐길 만하다. 

⑶ 때로는 상대방의 비난도 나에게 도움이 된다. 
갈등은 삶에 대한 하나님의 가르침이다. 내가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어지는 특권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라. 

⑷ 그의 말에 내 필름을 돌리지 말라. 
그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들어라 나의 잘못된 해석으로 스스로 상처를 자초하지 말라. 내 필름은 과거에는 현실이었는지 몰라도 적어도 지금 현재에 있어서만큼은 현실이 아니라는 것은 명명백백한 사실이다. 이 부분에서 1 정도를 고치라고 하는 말에 "그래 내가 할 줄 아는 게 뭐 있나? 내가 원래 그런 놈이야"라는 식의 반응은 명백한 내 문제에 의한 오버이다. 상대방은 1 정도 고치라는데 나는 10 정도로 반응하는 게 정당한가? 그리고 그게 나를 행복하게 하는가? 아니지 않은가? 

⑸ 비난을 받아들이지 않을 권리가 내겐 너무나 있다. 
비난하는 것이 그 사람에 권리이듯이 나는 이 세상의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을 권리가 있다. 내가 받아들이지 않는 한 이 세상에 어떤 것도 나에게 영향을 미칠 수 없다. 그것은 환경이나 나의 신체상에 고통을 강압적으로 가져다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의 마음만큼은 너무나 자유롭지 않은가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백조를 오리들이 미운 오리라고 조롱한다고 백조가 미운 오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내 문제와 상대의 문제를 구분하라. 자기 관점으로 보고 있을 뿐이다. 그것에 상처받을 이유가 없다. 

⑹ 그럴 수도 있다. 그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일뿐이다. 그에게는 그 나름대로 나를 비난해야만 할 너무나 합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로서는 그것이 그의 최선이다. 일어난 일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현실을 부인하는 것은 나에게 아무 것도 도움이 안 된다. 차라리 그를 이해하려 한다면 거기에는 미래가 있지 않은가? 

⑺ 비난으로 인해 화를 내거나 좌절, 낙심하는 것은 나에게 아무 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화를 내면 나의 상한 마음이 보상 받을 수 있는가? 좌절한다면 내가 겪는 아픔이 덜어지는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함에도 왜 우리는 다른 선택을 하지 못하는가? 조금만 눈을 돌리면 우리에게 새로운 선택이 기다리고 있다. 

⑻ 비난하는 사람이 더 힘들다. 
맞은 놈은 발 뻗고 자지만 때린 놈 심정이야 오죽하겠는가? 

⑼ 나는 비난받아서는 결코 안 된다는 것은 진리일 수 없다. 
나는 완벽하지 않고 따라서 실수 할 수도 있고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근데 왜 나는 비난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가? 비난도 들어보면 꽤나 나름대로 즐길만하다. 자존감이 높다면 우리는 보다 쉽게 실수를 인정하고 상대의 비난에 대해서도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일 여유가 생긴다. 

⑽ 그가 나를 비난했다고 해서 나의 모든 것 또는 존재자체가 모두 나쁜 것은 아니다. 
비난받은 것을 단지 나의 일면일 뿐이다. 그가 나를 비난하는 것이 나의 전부는 아니다. 잘 찾아보면 나의 단점이나 비난꺼리가 더 많을지도 모르고 반대로 좋은 점도 많을 것이다. 유머러스하게 말해보라 "아니 그것 밖에 못 봤단 말이야 비난 할 것들이 그 보다 훨씬 많이 있는데... 감사하네... 그 정도로 봐 주어서..."

⑾ 보는 눈에 책임지고, 보여 지는 모습에 책임지라.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차라리 비난과 만나보라 생각보다 꽤 견디기 쉬울 수도 있다. 괜히 지레 겁먹고 피했다가 더 큰 어려움을 만들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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