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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칼럼

언약의 통일성

개혁파 신학의 핵심 중 하나는 언약의 통일성이다. 바울이 로마서에서 언약이 파하여졌느냐는 반론에 맞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그럴 수 없고 문제는 그 언약의 상대 당사자인 사람이 이 언약을 배반했다는 것이다(롬 3:3-4, #어떤_자들이_믿지_아니하였으면_어찌하리요_그_믿지_아니함이_하나님의_미쁘심을_폐하겠느냐 #그럴_수_없느니라_사람은_다_거짓되되_오직_하나님은_참되시다_할지어다_기록된_바_주께서_주의_말씀에_의롭다_함을_얻으시고_판단_받으실_때에_이기려_하심이라_함과_같으니라) 특히 3:4은 언약적이며 법정적 맥락을 드러내어 보여주는데 판단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는 장치는 언약적인 일관성, 곧 언약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기대어 있다.

행위언약도 같은 맥락 안에 있다. 행위 언약이 폐기된 것은 우리 편에서 지킬 사람이 없어서이지 하나님께서는 그가 맺으신 이 언약을 버리신 적이 없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이 언약을 신실하게 순종하신 것이다. 이것이 그가 지상에 사는 모든 생애 동안 율법의 모든 요구에 온전히 순종하셨다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전가다. 이것이 종교개혁의 핵심 개념일 수밖에 없는 것은 중세적 공로주의가 발디딜 틈을 이 능동적 순종의 전가가 원천 봉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기 개혁자들의 글에 칼뱅을 비롯해서 우르시누스와 올레비아누스까지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전가를 고백하는 것이다. 문제는 균형점의 문제인데 이 문제에 천착한 것이 박재은 교수의 칭의 균형있게 이해하기이다. 칭의의 법정적 성격을 고수하면서도 신자의 윤리적인 삶을 잘 벼려낸 것이 칭의와 성화를 분리하지 않고 구분한 신학적 체계다. 이에 대한 더 자세한 이해는 이 달에 곧 출간 될 #핵심감정_성화 를 참고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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