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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칼럼

생식법에 의한 원죄 중 오염의 전달

생식법이라는 개념은 행위언약 체계의 일부이며 동시에 원죄 교리의 주요한 부분입니다. 행위언약의 구조를 제대로 이해해야 그리스도의 순종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게 건축 구조물 같아서 특정 개념의 훼손을 가하면 전체 언약 신학의 구조가 무너집니다. 전체로 이해하실 수 있도록 간략히 정리를 했습니다. 참고하세요.

1. 죄책은 행위의 책임과 형벌의 책임을 포함합니다. 
2. 원죄가 발생한 아담의 최초의 죄에서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따먹는 행위가 첫째 책임이며 반드시 죽는다는 것이 형벌의 책임입니다. 
3. 그런데 행위의 책임을 중세 교회는 사해지는 것으로 형벌의 책임을 감해지는 것으로 그리스도의 대속을 설명했습니다. 
4. 이 때, 가톨릭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사역에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개념이 없습니다. 
5. 그래서 공로신학이 들어오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종교개혁 신학은 몇 가지 조치를 취합니다.

5-1. 첫째, 행위의 책임은 누구한테고 전이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5-2. 둘째, 형벌의 책임이 "행위 언약"에 의거해서 법률을 따라서 그 후손에게 다른 매개 없이 직접 전가되는 구조로 설명을 했습니다. 
5-3. 셋째, 동시에 남에게 전해질 수 없는 행위의 책임을 확장해서 법적 책임으로부터 존재의 오염 개념을 터툴리안의 실재론을 따랐던 어거스틴을 동원해서 오염 개념을 확립합니다. 
5-4. 그리고 이 오염은 생식법에 의해서 부모를 매개로 그 후손에게 전달되는 것으로 설명했습니다. .
5-5. 이 구분법은 칭의와 성화의 구분과도 무관치 않습니다. 칭의가 법정적이고 성화가 우리 본질을 변화시킨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6. 그 결과, 죄는 죄책과 오염을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설명되었습니다. 이 말이 가지는 함의는 적어도 세 가지 입니다.

6-1. 부패(오염)는 죄책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
6-2. 아담의 최초의 범죄 행위에서 알 수 있듯이, 죄책은 부패(오염) 없이도 성립한다.
6-3. 그렇게 형성된 죄책에는 항상 부패(오염)가 따른다.

7. 인죄론에서 죄의 구조는 죄책과 오염입니다. 
8. 구원론에서 구원의 구조는 칭의와 성화입니다. 이 둘은 구분되지만 나뉠 수 없습니다. 
9. 칭의는 행위언약으로 전가된 형벌의 책임인 죄책을 해결합니다. 
10. 성화는 행위언약으로 부모의 생식을 매개로 후손에 전달된 오염을 해결합니다. 
10-1. 오염이 생식법이어야 하는 이유는 성화가 존재 본질의 변화를 의미하기 때문이고 이는 중세의 "의화" 개념을 "칭의와 성화"로 구분하되 나누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11. 이처럼 인죄론은 구원론과 거울처럼 맞보고 있습니다. 
12. 구원론에서 이 칭의와 성화의 근거는 나뉠 수 없지만 구분되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의 의가 그 근거입니다. 
13. 우리에게 전가되는 이 의는 그리스도의 본질적인 의가 아니라 율법에 순종하시며 그 순종의 극치인 십자가 대속의 의입니다. 
14. 그것이 본질적 의일 수 없는 이유는 그렇게 되면 성자와 우리가 동일본질로 오해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5. 1위2성의 그리스도에게서 칼케돈의 고백처럼 분리되지도 나뉘지도 혼합되지도 섞이지도 않은 채 신성과 인성이 위격을 통해서 연합해 계십니다. 
16. 하나님은 언약을 하시고 폐하실 수 없으신 분입니다. 그런데 행위 언약은 왜 폐기되었습니까? 그것은 로마서가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폐기하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언약에서 실패한 것입니다. 
17. 언약의 통일성을 따라, 이 언약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그리스도의 능동적이며 수동적인 순종을 통해서 이 행위 언약의 요구를 성취하신 것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로마서 5:12-21을 주해 및 석의해야 합니다. 
18. 그리스도의 순종은 우리를 사망의 형벌에서 도망치게 할 뿐만 아니라 최초의 행위 언약의 약속 곧 영생을 얻는데 이르게 합니다. 
18-1. 사망에서 도망침이 대속 곧 수동적 순종을 담고 생명을 얻음이 능동적 순종을 담는 표현입니다. 
18-2. 그리스도가 율법에 온전히 순종하시므로 대속제물로서 효력있게 되시는 것입니다. 
18-3. 이 둘은 불가분리적이며 능동적 순종의 개념이 부정될 때 공로신학 같은 율법주의와 그 반대 극단인 반율법주의가 형성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추후 반론에서 설명하겠습니다.
19. 행위 언약 자체에는 영생이 없지만 "반드시 죽는다"는 말씀은 반대로 순종하면 영생한다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20. 따라서 행위 언약과 은혜언약은 전혀 상반된 다른 두 언약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의 행위 언약의 성취로서 은혜 언약이며 이 언약에 접붙임을 받는 유일한 방편은 바로 "믿음"인 것입니다.

#원죄의_오염_부패는
#생식법을_통해서 
#후손에게_전달되는_게 
#아담으로부터_직접이_아니라
#부모를_매개로_간접_전달_되는_게
#정통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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