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겸손을 배우는 학교입니다.
노승수 목사
인생은 겸손을 배우는 긴 여정입니다. 왜 이렇게 길어야 하냐면, 그것이 그리 쉽사리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어서 그렇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고 밤의 한 경점과 같을 뿐입니다(시 90:4) 시간이란 이처럼 상대적인 것이지요. 우리에게 겸손을 배우는 여정이 이다지도 길게 느껴지는 까닭은 인생은 근본적으로 겸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정받기를 바라고, 대접받기를 바라며, 남보다 낫고자 하며, 잘난 척과 아는 체, 예쁜 체를 해야만 하는 그런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많은 것을 가지고자 합니다. 재물도 많이 가지고자 하고 시간도 많이 가지고자 하고 실력이나 재능도 많이 가지고자 합니다. 그렇게 마음에 만족을 얻을 때 비로서 자신이 성공했다고 믿으며 행복하다고 믿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생의 행복과 성공의 비결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가지느냐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성경은 이 땅을 사는 우리의 정체성이 나그네라고 합니다(벧전 1:17, 2:11). 여행자에게 많은 짐은 짐스럽고 거추장스럽게만 한 것이지요. 짐은 적을수록 마음은 가벼울수록 좋은 것입니다. 여행을 가면서 에어컨이나 냉장고를 싸들고 가지는 않는 것처럼 그것이 더위를 피하는 데 꼭 필요하고 음식을 신선하게 보관하는데 꼭 필요하더라도 그것에 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그가 인생으로부터 겸손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겸손이라 하여 그것이 비굴함과 동의어가 될 수는 없는 법입니다. 겸손하기에 하나님 외에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가진 것이 적기에 두려워할 것도 적은 법입니다. 이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지요.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 90:12)
저는 기회가 닿으면 꼭 오지 마라톤이라는 것을 한 번 해보고 싶습니다. 사막이나 극지방을 달리는 대회라고 하더군요. 사막의 밤은 참 아름다울 것 같습니다. 수 많은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사랑이야기를 떠올릴지 모릅니다. 또 광활한 우주 가운데 홀로 있는 나, 지극히 작고 보잘 것없는 나, 작은 육체적 어려움에도 한 없이 낮아지는 나를 발견할지 모릅니다. 목사에게 이런 기회가 올지는 잘 모르지만 혹여 나중에 안식년이라도 교회에서 주시게 되면 꼭 그걸 해보고 싶습니다.
이런 바램은 우리가 나그네 곧 여행자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우리가 여행하여야 하는 곳은 어쩌면 우리가 가보지 못한 어떤 미지의 땅이나 나라가 아니라 우리 마음의 미지의 공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마음은 마치 손톱으로 달을 가리우려 들기 때문입니다. 작은 것으로 큰 것을 헤아리려 듭니다. 내가 아는 그저 짧은 지식으로 모든 것을 헤아리려 듭니다. 목회자는 성경을 가르치는 자입니다. 그래서 누구보다 성경의 연구에 대한 직접적인 필요가 있는 사람이지요. 그러나 자칫 성경의 연구가 성경보다 우리의 이성이나 논리를 우위에 놓는 오류를 범하기도 합니다. 때론 신비를 신비대로 남겨둘 줄 아는 것이 겸손이겠지요.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것을 억지로 풀려고 드는 것은 인생의 기나긴 나그네 여정을 가는 이유가 아닙니다. 그저 겸손하게 그가 가르쳐 주시는 것을 알아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상담이나 정신의학에 working alliance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흔히 '치료 동맹'이라고 번역되는데, 여기서<얼라이언스>라는 것은 상호간에 도움을 주는 관계를 말합니다. 그래서 흔히 생각하기를 상담자나 정신과 의사는 그냥 도움을 베풀기만 하는 관계로 생각하지만 오히려 반대로 '환자로부터 배우기'도 합니다. 세상을 제대로 살아낼 힘이 없어서 또는 용기가 없어서 혹은 그런 자원을 부모로부터 물려 받지 못해서 이런 저런 이유로 자신의 삶에서 후퇴해서 자신의 내면에 웅크리고 있는 그들에게서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배우게 됩니다. 그러나 이 배움이라는 것은 겸손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동시에 환자의 삶에 대한 경외심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사실 그들은 엄청난 현실을 너무나 절실하게 견대내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내가 그런 상황에서 저렇게 견대낼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그것은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겸손히 배우게 됩니다.
나는 매일 이렇게 고백하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나는 어제보다 오늘이 더 겸손합니다"라고 말입니다. 이 말은 내가 어제보다 더 나 자신의 보잘 것 없음을 배웠다는 뜻이며 하나님의 광대하심을 알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풀 한포기 하늘을 나는 새 한마리로부터 가르침을 베푸셨던 주님처럼 깊은 저녁 고요함 가운데 울려 오는 작은 풀벌레 소리로부터도 배움을 얻는 인생이길 소망합니다. 그래서 많이 가지는 것보다 내가 얼마나 가진 것에서 자유로운가 그것이 우리의 삶의 질을 결정할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겸손을 배우는 학교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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