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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칼럼

자기 공감과 기독교 신앙의 데칼코마니

상담자가 특히 더 심하다고 생각되는데 대상관계나 이런 걸 좀 공부하면 마냥 유치한 자기를 인정받기를 희망하는 거 같다.

그런데 문제는 이 유치한 자기는 자기 어둠을 소외시킨 채 그저 자기 보고싶은 것만을 보려드는 자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앞 포스팅이에서 방탄소년단이 자기 그림자를 통합해내는 수준도 못 미쳐 있는 것이다.

이런 걸 자기 공감이라고 착각을 한다. 이것은 신자이건 불신자이건 관계없이 자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문제 곧 자기의 어두운 면과 건강한 면을 함께 받아들이는 과정으로서 공감이 되지 않으면 아무런 성장이나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기독교 상담을 공부한다면서 여전히 유치한 수준에 자기긍정으로만 이해받기를 원하는 마음들로 가득한 경우가 많다. 이런 경향 때문에 교회에서 긍정주의나 기복주의가 독버섯처럼 피고 질 줄 모르는 것이다.

도리어 세속의 심리학이 인간을 더 깊이 이해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어제도 잠깐 나누었지만 게시규정을 따라 달라는 말에 자기 옳음에 동조해주지 않았다고 차단하는 모양새를 하는 것이 오늘 우리 기독교 신앙의 현주소다. 예전 해바라기 노래말 중에 "바람만 불어도 고개를 돌리는 우리"라는 가사처럼 자기 아픔이나 어둠을 1도 인정하려 들지조차 않고 받을 수도 없는 사람에게 내적인 평화란 없다.

미움과 시기, 분노와 탓, 원망과 비난으로 그 영혼이 병들어 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