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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칼럼

자녀의 공부 방법 지도 어떻게 할 것인가?

자녀의 공부 방법 지도 어떻게 할 것인가? 
노승수 목사
현명치 못한 지도방법 1>>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당장 공부하라고 닦달하면 아이는 공부를 못하게 된다.
이유>>
공부란 원래가 참 힘든 일이다. 아침 일찍부터 오후 늦게까지 작은 책상에 앉아서 머리를 쓰며 선생님 말씀을 듣고 필기하는 일은 정신적으로도 과도한 스트레스일 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중노동에 속한다. 그렇게 힘든 일을 하고 온 종일 자녀에게 쉴 틈도 주지 않고 즉시 공부를 시작하라고 하는 것은 잔인한 일인 동시에 어리석을 짓이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므로 지치고 피로한 상태에서는 아무리 공부를 하려고 해도 소용이 없다. 오히려 피곤이 기하급수적으로 누적 되어 몸은 책상에 앉아 있다 하더라도 실제로는 거의 공부가 되지 않는 것이다.
대안>>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힘든 일터에서 돌아온 사람을 맞이하듯이 정말 수고 했다는 격려와 함께 웃는 얼굴로 맞을 일이다. 그리고 귀가 후 얼마간은 아이가 편안히 쉴 수 있도록 불필요한 잔소리를 하지 말고 야단도 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특히 토요일 오후에는 절대로 공부를 하지 말도록 하고 대신 땀을 흘릴 수 있는 운동을 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일주일 동안 쌓였던 공부 독(毒)이 빠져서 심신이 원기를 회복할 수 있는 것이다.
현명치 못한 지도방법 2>>자주자주 아이의 공부방을 들락거리면서 자녀가 공부를 하는지 감시하라. 그러면 아이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점 더 공부를 못하게 될 것이다.
이유>>
공부는 머릿속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이가 진짜로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는 옆에서 보는 사람도 알 수가 없다. 책상에 하루 종일 앉아 책을 보고 있어도 머릿속으로 딴 생각만 하면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공부는 스스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몰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다시 말하면, 하지 않으려는 사람에게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억지로 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다.
부모가 공부를 강요하고 또 감시를 계속 하면 아이는 공부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시키니까, 야단맞지 않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일단 그런 생각이 자리 잡게 되면, 상사의 눈치만 보면서 요령만 부리는 게으른 직장인처럼 감시, 감독하는 사람이 없으면 전혀 공부를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설사 부모가 지켜보고 있어도 겉으로만 하는 척만 할 뿐이지 실제로는 몰래 다른 짓만 하게 되는 것이다.
대안>>
공부는 전적으로 아이 자신에게 맡겨라, 절대로 부모가 더 안절부절, 안달복달해서는 안 된다. 공부를 잘 하든, 못하든 부모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임을 아이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아이가 공부를 좀 잘 했다고 해서 부모가 복권이라도 당첨된 양 너무 좋아할 일도 아니요, 아이가 성적이 좀 떨어졌다고 해서 하늘이 무너진 양 낙담을 할 일이 아니다. 성적이 올랐다고 큰 돈을 주거나 지나친 선물 하는 것도 좋지 않다. 그렇게 버릇하면 자녀는 마치 임금노동자처럼 앞으로 “돈을 올려주어야만 계속 공부를 하겠다.”라고 할 것이다. 물론 자녀가 공부를 잘하고 못함에 따라 부모도 기분이 달라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부모가 마치 자신들의 인생 목표를 오직 아이들의 공부 잘하는 것에 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자녀에게 지나친 부담감을 줄 뿐만 아니라 부모님을 위해 공부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만듦으로 공부하는데도 역효과만 생기게 된다.
현명치 못한 지도방법 3>>공부를 잘 안하려고 하는 아이에게 ‘공부에 취미를 못 붙이니까 그렇지. 엄마는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얼마나 좋아했었는데. 공부에 재미를 붙이도록 해.’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자주하면 아이는 갈수록 공부를 더 못하게 된다.
이유>>
원래 공부는 재미없고 힘든 것이다. 영어, 수학, 국어, 국사, 물리, 화학, 독일어, 불어……. 그 많은 과목을 어떻게 다 재미있게 잘 할 수 있단 말인가? 중·고등학교의 10과목 이상을 모두 재미있게 공부한 사람은 역사상 한명도 없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런데, 부모님은 공부에 취미를 붙여 재미있게 공부했다니! 그런 말을 하는 분은 오히려 학교 문턱에도 못 가본 사람이거나 혹은 새빨간 거짓말쟁이 임에 틀림없다. 공부를 많이 해 본 부모들 중에는 지금까지도 중·고등학교 시절에 시험 보는 꿈, 학교 지각하는 꿈 등의 악몽을 꾸는 분들이 많다. 부는 정말 괴롭고 지겨운 것임을 아는 분들, 그런 분들이 사실은 공부를 잘했던 분들인 것이다.
아이에게 공부에 취미를 붙이라고 말을 자주하면 아이는 점점 더 공부에 자신감을 갖지 못하게 된다. 왜냐하면 엄마, 아버지는 공부를 재미로 하셨다는데 자기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공부에 취미가 붙지 않으니 나는 공부에 적성이 안 맞는 사람인가 생각할 수밖에 없다.
대안>>
‘엄마(아버지)는 중·고등학교 다닐 때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공부에 취미를 갖고 열심히 했었다’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할 것이 아니라 ‘정말 나도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공부하기가 참 싫었었다. 그래,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시절은 참 힘든 시기야, 나도 네가 얼마나 어려운 일을 하고 있는지 이해가 된다. 얼른 이 힘든 고비를 넘겨야 할 텐데’ 하시며 아이의 상황을 공감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자녀도 부모의 위로를 통하여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고, 그럼으로써 또 다시 힘겨운 노력을 계속해 나갈 수 있지 않겠는가?
현명치 못한 지도방법 4>>빨리 성적을 올리라고 닦달한다. 매번 시험 볼 때마다 이번 시험 성적에서 몇 등 올리겠냐고 부담을 준다.
이유>>
대학 진학이 목표하면 그것은 마라톤 시합이다. 마라톤은 초반에 무리(오버페이스)를 하면 후반에는 뒤로 처지게 되어있다. 중학교 때나, 고등학교 저학년 때에도 기본 학습에는 충실해야겠지만 너무 무리하여 체력이 떨어지거나 공부에 아주 신물이 나게 되면 막상 입시를 앞둔 고등학교 3학년 때 오히려 성적이 떨어져 입시에 실패하기 쉽다. 
또한 공부 방법에는 당장의 시험에서 성적을 높일 수 있는 공부 요령이 있는가 하면, 그와는 반대로 단기간에는 성적이 크게 오르지 않지만 장기적으로는 점차 성적이 향상될 수 있는 공부법이 있는데, 그 두 가지 공부법은 서로 크게 다르다. 전자는 원리는 이해하지 않고 ‘결과만 외우는 방식’인데 반하여 후자는 진도는 늦더라도 기본 과정을 꼼꼼히 따져가며 ‘이해하는 공부 방법’이다. 대학 진학에 성공하려면 물론 후자의 ‘원리 이해 방식’으로 공부해야 한다.그런데 만약 부모가 자녀에게 이번 시험에서 몇 점 이상(혹은 몇 등 이상) 올리라고 닦달하면, 자녀들은 급하고 불안한 마음에 결과 암기식 학습 방법만을 사용하게 되어 결국은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기초 실력마저 부실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되어서는 시간이 갈수록 성적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대안>>
부모들은 당장의 성적이 곧 대학 입시에서 당락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실 우리나라 고등학교 학생 중 대부분은 한때는 공부를 썩 잘하는 학생들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그 성적이 끝까지 유지되어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는 학생은 소수에 불과하지 않은가? 당장의 성적보다는 기초 실력을 튼튼히 쌓고 있는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럴 수 있으려면 부모 자신이 공부 내용을 잘 알아 자녀의 공부 방식을 확인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결론>>
결국 공부는 자녀가 철이 들어 스스로 알아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자녀가 초등학생 시절이라면 부모님의 열성 여하에 따라서 성적이 크게 달라지겠지만, 자녀가 중고등학생이 되고 나면, 그 이후로는 자기가 스스로 하려고 하지 않으면 부모가 아무리 애를 써도 소용없다. 그러려면, 학생은 학생대로 철이 들어 자기 스스로 알아서 공부해야 할 것이고, 부모님은 부모대로 공부만 더 하라고 몰아세울 것이 아니라 자녀의 건강을 염려하여 오히려 자녀를 제대로 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자녀와 부모 중 누가 먼저 그 일을 해야 하나? 누가 먼저 해선 결코 안 되며, 양측이 동시에 시작해야만 한다. 오늘 이 시각부터 자녀, 부모 모두 동시에 여기서 제안한 바로 그대로 각자 자기 역할을 시작해야 한다. 제발, 자녀들은 부모님이 먼저 감시를 안 하셔야 공부를 알아서 할 수 있겠다고만 말하지 말 것이며, 부모님들께서는 자녀가 먼저 알아서 공부를 해줘야, 가서 말리든 말든 할 것이 아니냐고 또 말씀하시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것처럼 결론을 내릴 수 없는 논쟁이 될 뿐이다. 결국은 누가 먼저랄 것이 없이 자녀와 부모가 동시에 자기 역할을 시작해야만, 이 일은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자녀는 자녀대로, 부모는 부모대로 상대방 탓만을 할 것이 아니라, 각자 자기 역할만 충실히 하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