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블로그/목회칼럼

장사도 목회도 사람이다.

장사도 사람이다. 이태원 클래스에서 본 대사 중 하나다. 장사도 물건이나 이익을 보면 순간 이득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미묘한 상품이나 용역의 차이가 사람이 떠나게 하고 점차 매출이 하향곡선을 그으면서 문을 닫게 된다. 이태원 클래스에서 박서준이 상권이 죽은 동네에 들어가서 이웃 가게를 돌보는 것을 두고 직원이 반대를 하자. 이 골목이 살아야 우리 가게가 산다고 말한다.

 

예전에 김준곤 목사님에게 들은 설교 예화 중에 이런 게 있었다. 어느 마을에 어부가 둘이 있었는데 하루는 새로운 어부가 한 명이 이사를 왔다. 그 중 한 어부는 "저 놈이 내 고기를 다 잡아 가겠구나"고 생각했고 다른 한 어부는 "저 친구와 함께 잡으면 더 많이 잡겠구나"라고 생각했다면서 어떤 어부가 되길 원하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목회도 비슷한 거 같다. 예전에 개척했을 때, 이웃 교회에 서명을 받는 절차가 있어서 교회를 방문 했는데 2시간을 넘게 기다렸는데 결국 싸인을 받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자기 교회에 와야할 성도가 빼앗긴다고 생각했을까? 물론, 그 목사님의 생각을 내가 알 수도 없고 내가 상관할 바도 아니다.

 

목회는 장사보다 더 사람을 생각해야 하는 자리다. 이태원 클래스의 식당은 몸에 필요한 것을 먹이는 식당이지만 목회는 사람의 영혼에 필요한 것을 먹이는 곳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생각한다는 것이 그들의 환심을 산다는 의미가 아니다. 몸에 좋은 음식은 고객이 알듯이 영혼에 필요한 양식은 성도들이 안다.

 

사람을 깊이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것이 설교며 목양이다. 그런데 심지어 식당이나 매장보다 사람을 귀하게 보지 않는 곳이 교회이기도 하다. 교회같이 냉혹한 데도 없다. 온갖 고혈을 다 빨고 정작 그 성도에게 돌봄이 필요한 시기에는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가 자신에게 좋은 것을 먹이듯이 목양은 양무리에게 양질의 꼴을 먹이는 자리여야 한다. 사람을 생각하고 그 영혼에 꼭 필요한 양식을 먹이는 곳이어야 한다. 목회도 장사도 사람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웃한 교회들과 잘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 승자독식의 자본주의 경쟁 패러다임에도 서로 공생하는 목회적인 숲이 형성되어야 한다.

 

사람이 서로 성향이 같지 않고 그래서 다 받을 수 없다. 그럴 때 이웃에 믿을 만한 교회가 있어야 한다. 그렇게 맹그로브 숲처럼 공생적인 자연환경과 같은 교회의 숲이 이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