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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칼럼

전가교리와 새관점

원래 어거스틴이 펠라기우스와 논쟁하면서 형성한 원죄 교리는 생육법, 곧 번식에 의해 후대에 전달(propagation)된다는 교리였다. 언약 교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희미하였고 인죄론과 언약론을 제대로 연결하지 못했다.
이것이 제대로 연결된 것은 종교개혁 시기에 이르러서다. 구원론에서 의의 주입 교리가 다시금 펠라기우스주의를 살아나게한 현실을 타개한 방식이 칭의를 전가(imputation)로 설명한 것이다. 전가란 그리스도가 얻으신 의가 회개하고 믿음을 얻은 자에게 주입되지 않고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 안에 여전히 있으면서 믿음이란 도구를 통해 그 의에 동기화되는 방식이다. 칼뱅의 워딩을 빌리면 연합 교리라 할 수 있다. 이는 없는 것을 지어내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표현된 진리를 가장 이해하기 수월한 방식으로 정의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교리는 이런 성격을 지닌다.
루터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의 표현을 목적격으로 해석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톰 라이트 등은 이를 속격으로 해석해 그리스도의 믿음, 곧 그리스도의 신실함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흔히 새관점이라 하는데 특히 톰은 전가를 부정한다. 하나님의 의 안에 들어가는 것(getting in)과 거기 머무는 것(staying in)으로 설명하며 칭의를 종말까지 유보한다. 그래서 유보적 칭의론이라 불리며 이는 다른 의미에서 펠라기우스주의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얼핏 해석싸움 같지만 유럽이 겪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트라우마와 이에 대한 정치적 반응일 뿐이다. 웃간 건 이들이 루터의 종교개혁을 이런 식으로 비난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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