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아래 인간의 도모는 괴로움이라는 깨달음 때문에 모든 즐거움을 시도한다. 지혜를 견지한 체 즐거움을 추구하였다. 이것이 다 한 숨의 입김에 불과했다. 인생의 즐거움도 다 헛된 일이다. 코헬렛은 그렇다고 허무주의를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그 즐거움이 잠깐의 춘몽일 뿐이라는 말이다. 한 줌의 입김은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코헬렛은 영원에 대한 사모함을 담고 있다. 이 점이 허무주의와 다르다. 인생에서 즐거움이 유익한 일이지만 거기에 붙들려 영원을 잃어버리는 삶을 고발하는 것이다. 영원에 대한 사모가 경외를 부르고 그 관계가 인생의 낙이 한 줌의 입김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전도자 코헬렛의 지혜다.
아이의 발달 중 특정 시기의 위로나 즐거움이 고착을 만든다. 그 즐거움을 버려야 성장할텐데 성장 과정의 고통이 그것에 집착하게 만든다. 전도자는 인생의 낙들이 이런 종류의 고착과 같다고 말한다. 인생이 고통이고 그래서 찾게 되는 즐거움도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선 그저 입김 한 조각 같을 뿐이다. 코헬렛의 허무는 영원을 위한 동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