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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수의 강해설교/전도서강해

전도서 9장

4 모든 산 자들 중에 들어 있는 자에게는 누구나 소망이 있음은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기 때문이니라 9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 (전 9:4, 9 NKR)
4장과는 사뭇 다른 설명이 등장합니다.
2 그러므로 나는 아직 살아 있는 산 자들보다 죽은 지 오랜 죽은 자들을 더 복되다 하였으며 3 이 둘보다도 아직 출생하지 아니하여 해 아래에서 행하는 악한 일을 보지 못한 자가 더 복되다 하였노라 (전 4:2-3 NKR)
물론 4장은 1절의 "학대"라는 문맥이 존재하지만 모든 것이 헛됨으로 돌려진 결과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같은 결론을 내야 할 듯 한데 둘은 상반된 결론입니다.
그러나 둘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4장은 인생의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서 헛된 입김에 불과한 존재라는 점을 드러내 보여주고 한다면 9장은 그런 헛된 인생을 사는 자세, 또는 태도를 드러내보여줍니다.
이것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신학자가 어거스틴입니다. 사실 철학사에 있어서도 어거스틴은 엄청난 공헌을 했습니다만, 지금 우린 그보다 전도서의 이해에 더 큰 초점을 두고 그의 말을 이해해보고자 합니다.
그는 시간을 시계로 잴 수 있는 ‘물리적 시간’과 마음으로 잴 수 있는 ‘마음의 시간’으로 구분했는데 4장의 헛됨은 바로 물리적 시간이며 9장의 시간은 마음의 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리적 시간은 화살이 날아가는 것처럼 끊임없이 흘러가는 시간이기에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아서 없으며 과거는 이미 지나가버려서 없습니다. 오직 현재만이 존재합니다. 이런 시간을 ‘크로노스(chronos)'라고 부릅니다.
그에 비해, 마음, 곧 기억 속의 시간은 과거와 미래가 언제나 현재 속에 함께합니다.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라는 노래 가사 중에 우리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고 했던 바로 그런 시간입니다. 과거는 ‘기억’으로 현재에 속하고, 미래는 ‘기대’라는 이름으로 현재에 속합니다. 어거스틴은 이런 마음의 시간을 ‘카이로스(kairos)’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마음의 시간으로서 현재는 헛된 인간이 영원에 맞닿는 유일한 시간입니다. 유한하고 제한적 존재가 영원과 소통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래서 이 어거스틴의 시간론은 그의 행복론과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
코헬렛이 말하는 인생의 헛됨과 덧없음 속에서 그가 즐거울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즐거움의 본질에는 영원이신 하나님에 대한 경외가 있어야 이 카이로스에 머물 수 있는 우리 본질이라는 자연적 이유가 존재합니다.
우리 즐거움을 생각해보면 단지 지금, 여기를 즐거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장기청약저축"을 하면서 집을 살 기대로 오늘을 즐거워 하며, 내 지나온 시절을 돌아보며 그 추억이 깃든 장소에서 즐거워합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의 시간은 우리 도덕의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부도덕한 행동이나 비양심적 태도를 삼가야 하는 이유도 우리가 크로노스가 아니라 카이로스를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흘러가버릴 시간을 살지 않고 그것을 오늘이라는 시간 안에서 의미를 만들며 살기 때문입니다. 그 경험들이 우리 미래에 대한 "기대"를 만들고 그래서 어거스틴이 말한 우리 리비도를 억누르고 도덕적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조금만 비겁하면 인생이 즐겁다”라면서 부도덕한 일과 현실과 타협하면서 사는 것은 크로노스 속에서 현재만 있고 내일이 없는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 마음의 시간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영원의 "모형"입니다. 그분은 영원하시기에 도덕적 존재일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분의 도덕은 필연입니다. 인간은 짐승처럼 그저 현재와 본능(libido)에 따라 자연에 적응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연을 다스리는 존재이기에 역시 같은 방식으로 도덕은 필연입니다.
코헬렛이 헛됨을 말하니 "염세주의"를 떠올리기 쉽지만 "헛됨"과 함께 강조되는 것이 "경외"입니다. 입김같은 인생이 영원이신 하나님과 맞닿는 그 카이로스의 시간이 인생의 시간입니다.
크로노스의 시간에서 인생은 그저 헛되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카이로스의 시간 안에 산다면 그것이 산 자의 소망이며 아내를 분복으로 누리는 코헬렛의 행복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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