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20:5에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고 소개한다. 사실 이 번역은 적절하지 못하다. 열왕기에서 엘리야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고소할 때, 자신이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나다고 하는 표현도 같은 히브리어 표현이다. 이 카나라는 동사를 형용사형으로 혹은 명사형으로 변형한 단어다.
열심이나 질투라는 단어로는 이 단어의 의미를 잘 드러내기 어렵다. 우리말이나 영어에 적절한 개념의 단어가 없기 때문이다.
이 단어는 공동체 내의 죄와 악에 대해서 보이는 하나님의 분노와 그것을 유발하는 공동체 밖의 적에 대한 진멸하는 전쟁이라는 개념을 담고 있다.
마치 서양 고전의 일리아스에서 진노와 전쟁 그리고 죽음으로 그 핵심 서사가 그려지듯이 카나라는 단어 역시 이런 개념을 담고 있다.
엘리야가 공동체 안에 만연한 바알 숭배의 죄악과 그것을 유발한 이세벨의 선지자들을 진멸하는 것은 바로 이 카나라는 단어가 담고자 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이 개념은 바리새인들에 의해서 달리 사용되기도 한다. 바리새인들은 공동체 밖의 죄를 세리나 창기와 같은 문제로 생각했다. 그들에게 죄는 공동체 밖의 문제였다. 그것들로부터 자신을 구별해서 바리새파였다.
그러나 이 카나는 구약에서부터 이미 영적 개념을 담고 있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벌할 때, 그 진멸의 전쟁은 여호와의 군대장관을 대면하는 데서 시작한다. 또한 아간의 범죄나 아나니야와 삽비라의 범죄는 카나가 보여주는 하나님의 진노와 진멸의 전쟁이 내부적인 것임을 시사한다.
그리스도가 선포한 하나님 나라는 이런 것이었다. 공동체 내부에 죄와 악에 대해 진노하시며 그 발단이 된 대적을 진멸하시는 전쟁에 의해서 완성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온전히 진멸된다.
우리의 진멸전쟁은 "선행으로 악을 이기는 데"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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