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니아의 밀레토스파의 철학자들은 자연철학으로 만물의 원리(아르케)가 무엇인지를 물었었다. 한나 아렌트는 이들의 정치관인 이소노미아(isonomia, 비지배)가 아테네에서 민주정치로 수용되었다고도 했다.
아무튼 철학자들은 이전의 미토스, 곧 신화적 세계 설명을 로고스에 의한 세계 설명으로 가져가고자 했다는 점에서 인류사의 진보라 할 수 있었다.
철학자들의 관심은 소크라테스에 와서는 좀더 사회적인 주제에 천착한 경향이 생겼고 행복이라든지, 덕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논의하는 윤리적 성격을 띠게 되게도 했다.
칸트의 삼부작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은 철학의 이런 경향을 잘 보여주는 것을 진리가 무엇인가? 선이란 무엇인가? 미는 무엇인가?를 다루었다.
그중에서도 17세기에 이르면, 진리에 대한 열망으로 유럽의 철학은 인식론이 되다시피 한다. 주제 의식은 인간은 어떻게 진리를 인식하는가 하는 것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언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언어의 의미가 진리와 일대일 대응을 한다는 "지시론적 의미론"이라는 형이상학적 가정을 붕괴시켰다.
언어란 그 "사용법"에 의해서 의미가 정해진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런데 신학에서도 이런 치열한 결론을 수용하는 편이지만, 여전히 킷텔 사전과 같은 방식, 그러니까 어원 연구에 의한 의미론에 더 기울어 있는 거 같다.
문맥을 떠난 단어의 의미에 대한 어원적인 천착은 원래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바에서 벗어나는 결과를 불러 올 수 있다. 단어의 의미에서 가장 첫째 고려 사항은 문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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