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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종교개혁사

참고 견디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칼빈은 항상 자신의 견해를 관철시키지는 못하였으며, 자신이 폐지할 수 없는 것들은 참고 견디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시의회가 치리법원에게 확실한 출교권을 부여해 준 것은 칼빈이 1555년 리버틴(자유인)들을 상대로 최후의 승리를 거둔 이후였다. 이러한 사실들로 미루어 볼 때, 우리는 주로 비난의 의미로 칼빈이 그토록 자주 ‘제네바의 교황’이라고 불려져 온 것에 대해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칭호가 사실과 다르지 않다면, 그것은 그의 천재성과 성품에 대한 본의 아닌 찬사이다. 왜냐하면 그는 어떠한 세속적인 권력도 가지지 못했으며, 결코 사적인 유익을 위해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한 적도 없기 때문이다. 제네바인들은 그를 잘 알았기 때문에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그에게 순종한 것이다.”


- 필립 샤프, <교회사전집 8권 - 스위스 종교개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