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경신학/구약신학

창세기 1-2장의 해석에서 고려할 점

창세기 1장과 2장은 사람들에 의해서 너무나 많이 읽혀지는 본문이지만 의외로 잘못 이해되거나 부정확하게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이 글이 창세기 1장과 2장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1. 창조의 순서


창세기 1장: 하나님께서 여섯째 되던 날에 동물을 다 만드시고 사람을 만드심. 
창세기 2장: 하나님께서 아담을 먼저 만드시고, 동물을 만드신 다음, 하와를 만드심. 


2장은 좀더 설명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지으시고 독처하시는 것이 좋아 보이지 않으셔서 그를 위해 맨처음 만드신 것은 하와가 아니라 동물들이었다. 하지만 동물들 중에 아담의 배필이 될만한 것은 없었고 하나님은 여자를 만드셔서 배필이 되게 하셨다. 그렇다면 순서상으로 보았을 때 1장과 2장은 우리가 보기에 명백한 차이가 보인다. 어느 것이 맞을까? 엄격한 순서는 2장이 맞지만 1장이 틀렸다고 볼 수도 없다. 1장은 아담과 하와 둘 모두가 완성되었을 때야 비로서 사람이 창조되었다고 본 것이다. 성경기자가 역사를 보는 시각과 현대의 우리가 역사를 보는 시각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우리는 잘 알아야 한다. 성경기자는 다른 두 사건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처럼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종말에 대한 이야기는 그러한 특징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준다. 


2. 성숙 창조론


창조를 설명하는 이론 중 가장 신빙성이 있는 이론으로 성숙 창조설이라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지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어떤 별이 80억 광년이라고 치자. 그렇다면 그 별 빛이 지구에 도달하는 기간은 80억년이라는 말이 되고 그 별은 적어도 80억년 전에 있었다는 말이 된다. 하나님이 그 별을 만들었다고 할 지라도 그 별 빛이 지구에 도달하는 시간은 80억년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넷째날 별을 만들고도 수십억년이 지나야만 우리가 볼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우리는 창세기 기사에서 아주 중요한 구절을 보게 된다. 독자들이 주목하기 쉽지 않지만, 하나님은 그 별을 만드셨을 뿐만 아니라 "그 빛이 땅에 비취게 하셨다." 즉 하나님은 80억년의 시간을 극복하신 것이다. 즉 우리가 보기에 그 별은 80억년 전의 별이지만 실제로는 하루도 지나지 않은 것이다. 별의 창조 자체도 대단한 일이지만 그 빛을 단번에 지구에 비취게 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인 것이다.
하나의 예를 더 들어 보자. 에덴 동산에 있는 나무에는 나이테가 있었을까? 또 만약 우리가 타임머쉰을 타고 그 당시로 갔다고 했을 때, 거북이를 보고 몇살이라고 과학적으로 추정할 수 있을까? 궁극적으로, 하나님은 몇살짜리 지구 혹은 우주를 창조하셨을까? 하나님은 단지 우주를 어린아이로 만드신 것이 아니라 성년으로 만드셨다는 것이 성숙 창조론의 핵심 주장이다. 아담이 창조되었을 때, 우리가 보기에는 성년이지만 실제로는 1살도 되지 않은 성년이다. [이 점에서 하나님은 계란이 아니라 닭을 먼저 만드심이 분명하다]


3. "모양"과 "형상"


하나님은 인간의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개념은 성경적 인간론을 이해하는 핵심이다. 하나님이 우리 처럼 눈과 손과 발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칼빈은 우리의 몸의 각 기관도 하나님의 형상과 전혀 무관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형상이란 영적인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1) 다스림으로 보는 견해


이 견해를 따르는 사람들은 주로 구약학자들인데, 형상을 동상과 같은 개념 속에 넣는다. 옛날에는 왕이 어떤 땅을 정복하면 그곳에 자기의 동상을 세워서, 자신의 영역임을 표시하였듯이 하나님도 아담이라는 형상을 땅에 두어서 자신의 통치를 행사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실제로 하나님의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구절에 의해서 강력하게 뒷받침되고 있다. 


2) 의, 거룩, 참지식으로 보는 견해


이 견해는 신약의 관점에서 구약을 이해하려는 시도이다. 타락 이후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 버렸음으로 그 당시의 형상이 어떠하였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는 생각에 근거하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참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을 이해하려고 한다. 여기에서 에베소서 4장과 골로새서 2장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대부분의 개혁신학자들은 이 견해를 취하고 있다. 


3) 사랑으로 보는 견해


위의 두 견해가 다 좋은 견해이지만 결정적인 흠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왜 자기 형상을 창조하심에 있어서 남자만 창조하지 않으시고 여자도 창조하셨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남자 혼자서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이 다스림이나 의, 거룩, 참지식을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인간의 형상을 이해함에 있어서 남자와 여자, 둘 다를 고려하지 않을 때,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질 수 없다. 남자와 여자가 하나님의 형상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보는 데 대한 가장 큰 반론은 하나님께서 짐승도 암컷과 수컷으로 만드셨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께서 둘을 하나로 만드셨다는 사실에 주목함으로써 극복될 수 있다. 하나님은 단순히 두 성을 만드신 것이 아니라[그렇다면 우리는 짐승과 다를 바가 없다], 그 두 성을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신 것이고, 이것이 사랑이신 하나님의 본질을 나타낸다. 그리고 이 부부간의 사랑은 에베소서 5장이 말씀하듯 그리스도와 교회의 원형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해는 기독론적인 이해를 넘어서 교회론적인 이해로 확대되고 삼위일체론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점에서 2)번의 견해보다 훨신 포괄적이다. 


4. "흙"으로 빚었다?


우리나라 성경에 나오는 "흙"은 먼지나 "티끌"로 번역되었으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흙이라는 단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한글 성경에도 없는 "빚었다"는 말이 첨가되고 있는 실정이다. 하나님은 토기장이시기는 하지만 토기장이처럼 사람을 "빚어서" 만드시지는 않았다. 우리가 또 알아야 할 것은 사람 뿐만 아니라 공중의 새와 들짐승도 하나님께서 흙으로 만드셨다는 것이다(창세기 2장).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 수많은 동물들도 일일이 빚으셨을까? 흙으로 창조된 것은 사람에게만 독특한 것이 아니다. 어린아이들에게 부정확한 성경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았으면 한다. 만약 오늘날 모세가 성경을 썼다면 하나님께서 입자(분자 혹은 원자)로 사람을 만드시고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