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 곰팡이 목에 속하는 엔토모프토라 무스카에(entomophthora muscae)라는 곰팡이가 있습니다. 이 곰팡이가 집파리와 집파리를 감염시켜 파리의 신경계를 조정함으로 번식하는 생화학적 메커니즘이 밝혀졌습니다.
2018년 캐롤린 엘리야(Carolyn Elya)를 비롯한 여러 연구진들이 "Robust manipulation of the behavior of Drosophila melanogaster by a fungal pathogen in the laboratory"라는 논문을 통해서 초파리의 배에 곰팡이를 감염시킨 후 행동 변화를 관찰한 결과물을 내놓았습니다. 감염 후 96시간이 지나면 곰팡이에 감염되어 파리의 몸과 뇌가 곰팡이에 정복당해서 이상행동을 하게 됩니다. 파리는 높은 곳을 찾아서 올라가고 주둥이가 점차 길어지고 입에서 점액을 분비해서 그 자리에 몸을 주둥이로 고정시킵니다. 이런 행동은 곰팡이가 숙주의 신경과 뇌를 장악한 증거로 보입니다. 그리고 날개를 들어올리는 행동을 10분 동안 한 후 생을 마감합니다.
파리의 이런 행동은 곰팡이의 번식을 위한 행동으로 보입니다. 파리가 죽은 후 파리의 등에서 돌기 형태로 쏟아 오른 곰팡이는 총을 쏘듯이 곰팡이 포자를 멀리 쏘는 방식으로 번식을 합니다. 마치 연가시가 사마귀의 신경계를 조정해서 물가로 가도록 만들고 그를 통해서 번식의 싸이클을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죠.
연가시나 곰팡이에게 지능이 있어서 이런 설계를 했다고 보기는 어렵죠. 물론 진화론자들은 이것이 자연선택이라는 우연의 산물로 설명할 것입니다만, 이런 자연선택이 있기 전까지 곰팡이는 어떤 방식을 통해서 이런 번식의 계대를 구성할 수 있게 되었을까요?
초파리도 계대가 짧습니다만 거기에 기생하는 곰팡이는 더 계대가 짧을 수밖에 없고 우한 폐렴 같은 바이러스나 세균류는 더 짧은 계대를 보입니다. 이 계대들 속에서 변종이 발생하고 이 변화가 진화론자들의 눈에는 우연히 일어난 자연선택의 진화로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과정 파리를 높은 곳에 올라가게 하고 거기에 주둥이로 고정하게 하며 날개를 들어올려 포자를 멀리 퍼뜨리기 좋은 상황으로 초파리의 신경계를 조정하는 이 곰팡이의 생존방식은 자연 선택의 결과일까요? 창조의 디자인이자 하나님의 섭리의 결과일까요?
사실 이런 관찰은 관찰 자체가 객관적이라기보다 이론부하적(Theory-laden)이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은 명백한 과학임에도 그들의 관찰은 천체 현상을 하늘이 움직이는 것을 가정한 관찰이었습니다. 이 과학과 신앙은 한동안 등식으로 놓였고 그 결과 중세 신앙은 큰 위기를 맞았습니다. 최근에 번역된 브라켈의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예배에도 이런 천동설의 옹호가 등장하죠.
우리는 자연을 통해서 명백하게 하나님의 계시를 일부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화와 대립하는 창조라는 프래임에 갇히게 되면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과 거기에 속한 생물의 종들이 지닌 유전학적 유연성에 대해서 경직된 태도를 취하게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북극 여우는 위도를 내려올 수록 그 털이 회색으로 변하며 핀치 섬의 새는 가뭄 동안에 태어난 계대들은 이전 계대보다 더 큰 부리를 지닙니다. 종은 그 자체가 자연에 적응하는 유연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기사에서도 보듯이 뱀은 특별한 섭리에 의해서 다리가 없어지고 기어다니게 되는데 이 과정은 새로운 창조라기보다 하나님의 창조 디자인 안에 포함된 것으로 섭리의 일부로 해석될 여지가 존재합니다.
생물의 각양 종들이 지닌 구조적 특징들과 유전자 정보가 지닌 체계성, 심지어 초파리조차 인간의 유전자 정보와 60프로를 공유하는 설계자의 시그니쳐 등은 진화의 흔적이 아니라 창조의 흔적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창조를 더 잘 변호하기 위해서라도 창조가 종 자체의 결정성 혹은 무변화성을 함의하는 것으로 해석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 당장 인간만 보아도 아담과 하와라는 동일 조상에게서 여러 다양한 인종적 특성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창조를 경직된 종특으로 규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60678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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