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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신학/예배학

칼뱅이 이해한 공예배와 예전적 영성

칼뱅이 이해한 공예배와 예전적 영성 
엘시 맥키 교수 
“성경만으로”(sola scriptura)에 대한 개혁주의적 이해에서, 성경은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 믿어야 할 모든 것에 대한 유일한 권위일 뿐만 아니라, 교회생활에 필요한 바른 조직에 관한 한 권위다. 신약성경에서 예배의 패턴을 찾는 것은 구원을 위해 절대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이렇게 성경의 안내를 받는 것은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것이고, 이를 무시하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위가 된다. 신약성경에 나타난 안내들은 문자적으로 적용해야만 하는 고정된 규칙들은 아니지만 성령께서 목회와 예배의 질서를 위해 주시는 도움의 수단이 된다. 이 글은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부분은 예배와 그 구성요소에 관해 말하는 성경 구절에 대한 칼뱅의 이해고, 두 번째는 칼뱅이 당시 예전적 시간(liturgical time)의 개념을 어떻게 새롭게 했는지를 살피며, 마지막은 예배를 구성하는 예전을 스케치해본다.
칼뱅주의자들은 어떻게 공예배가 조직되었는가에 대한 핵심 구절이 사도행전 2:42, 즉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라고 생각했다. 이 말씀은 저자인 사도 누가가 초기 교회의 생활에 대해 묘사하는 짧은 요약인데, 칼뱅과 다른 이들은 이를 모든 교회가 따라야 할 모델이라고 간주했다. 칼뱅은 이 구절에 나타난 네 가지 요소는 온전한 공예배를 위해 적절하면서도 필수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네 가지 요소가 모든 경우에 다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패턴은 전체적으로 중요한 가이드라인이 되었다. 여기서 ‘사도의 가르침’은 성경 봉독과 설교였다. ‘떡을 떼며’는 성만찬이고, ‘기도’는 말로 하는 기도와 시편찬양, ‘교제’는 교인들 간에 이루어지는 상호적인 자비나 사랑인데 가난하거나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돈을 제공하거나 평화의 키스를 나누는 방법도 있었다. 칼뱅은 가난한 자를 위해 구호금을 거두기를 원했다. 그는 스트라스부르에 있을 당시 성만찬 시에는 난민 회중들에게 이를 실시했다. 제네바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집사들의 보호를 받았다. 비록 구호금이 하나의 이상(ideal)으로 간주되었고 다른 지역에 있던 칼뱅주의 교회에서는 행해지기도 했지만, 제네바에서는 구제 헌금을 하는 것이 필수적이지 않았다.
개혁주의 전통에서 성만찬의 역할은 때때로 소홀히 여겨졌다. 그러므로 칼뱅이 세례와 성만찬을 매우 심각하게 다루었고 교회에게 주어진 풍요로운 선물로 여겼다는 사실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다른 개신교도들처럼 칼뱅은 중세 교회가 성사(성례, sacraments)라고 부르던 것들 중 병자성사(혹 종부성사, extreme unction)와 입교성사는 성사로 인정하지 않았고, 혼배성사, 고해성사, 신품성사 등은 성사는 아니지만 중요한 행위라고 다시 정의했다. 개신교도들에게 두 가지 성례는 세례와 성만찬이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것으로 특별한 약속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죄 사함과 양자로 받으심의 약속을 기억하고, 그리스도의 몸과 피(떡과 잔)에 참여하며, 그를 증거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명령하신 표식(sign)을 동반한다. 나아가 성례적 표식이 행해지면 약속은 선포되어야 한다. 그래서 성례는 성경적 설교 없이 집행될 수 없고, 이 성례에 참여하는 자는 말씀을 듣고 그것을 받아야 한다.1 칼뱅은 성사란 교회에 주어진 약속이고, 그것은 약속에 대한 이해와 선포를 동반하며, 교회에 모인 회중이 받아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표식 그 자체로는 충분하지 않다. 하나님이 성례를 통해 주시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고, 그렇기에 사람들의 일상 언어로 설교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공예배와 정기적 설교에 대한 새로운 사상은 개신교도들이 예배를 조직하는 데 중요한 변화를 만들었다. 이것들 중 어떤 것은 교회에 비치하는 물건들과 관련된다. 즉 어떤 것은 없애고 어떤 것은 보충했다. 개혁주의 전통은 종교적인 헌신을 위해 미술의 요소를 거부했고 조상(彫像), 그림, 그리고 다른 종류의 예술품을 제거했다. 그들은 또한 사제석과 회중석(nave)을 구분하기 위해 특별히 마련된 거룩한 성당소(chancel; 사제와 성가대가 앉는 제단 옆자리)를 없애는 것과 같이 교회 내부 모습을 변경했다. 
만인사제설에 관한 개신교의 가르침에 발맞추어 예배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곳에서 드려졌다. 중세 사람들이 미사에 참석할 때는 그들이 보통 그랬던 것처럼 주일이나 거룩한 날이었고, 보통 서서 보거나 무릎을 꿇어 기도를 읊조리곤 했다. 그러므로 보통 중세 교회에는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좌석이 없었다. 하지만 연장자들이나 환자들을 위해 한쪽 옆으로 의자를 배치했고, 중요한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의자를 마련해두곤 했다. 사실상 회중석은 빈 공간이었기 때문에 예배 중에도 사람들은 돌아다닐 수 있었다. 많은 교회에 설교단(pulpit, 강대 혹은 독서대)이 있었지만, 설교가 미사의 필수 부분이 아니었기 때문에 없는 교회도 많았다. 개신교는 예배를 새롭게 이해했고 그들의 예배는 성경을 가르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앉아서 설교를 들을 수 있는 좌석을 필요로 했다.
제네바에서는 교구도 새롭게 조직되었고 도시의 다른 지역 또 다른 시간에 정기적으로 설교를 배치해 교인들이 쉽게 예배에 참석할 수 있도록 했다(당시 사람들은 집을 비우고 나갈 수가 없었다. 누군가가 불을 지키고 집안일을 돌봐야 했다. 그래서 식구들이 돌아가면서 예배에 참석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예배에 참석할 수 있도록 다른 시간에 예배를 배치하는 것은 필수였다). 개신교는 종교적인 공간에 대한 이해를 바꾼 만큼 영적인 시간의 개념도 변화시켰다. 중세 라틴 세상에서 달력은 거룩한 날과 속된 날이 가득하게 교차했다. 즉 주일과 대강절-성탄절-할례-주현절, 재의 수요일(성회 수요일, Ash Wednesday)-사순절-종려주일-고난주간-성금요일-부활절-오순절-성삼위일체 주일 그리고 많은 날들이 그리스도와 구원에 연결된 거룩한 날들이었다. 그러나 또한 다른 많은 날들이 성인들, 혹은 특별한 헌신과 관련된 거룩한 날들이었다. 마리아의 수태, 회당에서 아기 예수를 드림(presentation), 수태고지, 엘리자베스를 방문함, 그리스도의 탄생 후 마리아의 정결예식(purification), 승천 등은 그리스도를 위한 특별한 축하의 사건들로 많은 사람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그리고 지역적으로 혹은 넓은 지역에서 다른 많은 성인들이 중세 달력을 장식했다. 각각의 거룩한 날에는 그날에 맞게 선택된 성경 구절이 있었다. 아마도 에베소서 3장의 일부분과 마가복음 8장은 주일에 읽혔을 것이다. 그후 빌립보서와 요한복음의 구절들이 읽혔을 것이고 만성절(All Saints Day)에 읽는 구절도 따로 있었다. 
모든 개신교는 성인들을 공경하는 사상을 거절했다. 성인들과 관련된 대부분의 날들을 달력에서 제거하고, 하나님이 사역하신 증거가 되는 성경의 용어로만 기억했다. 그리스도와 관련된 거룩한 날들 역시 조금 변경되었다. 즉 코푸스 크리스티(Corpus Christi, 성찬에서 축성된 떡과 잔을 높이는 것) 같은 것을 제거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개신교는 대강절-성탄절-주현절-사순절-고난주간-부활절-성삼위일체 주일과 같이 전통적인 교회력은 계속해서 지켰다. 이것은 전통적인 교회력에 따른 성경 본문을 지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특별한 날들 중 많은 날은 성경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 사실 성경에는 대강절이나 사순절, 재의 수요일, 혹은 종려주일 같은 것은 없지 않은가. 게다가 그들은 전통적으로 선택되어온 교회력이 포함하는 성경 본문을 따르고 않고 그것을 빼거나 없애버렸다. 칼뱅과 같은 개혁주의 목사들은 매 주일 교회력이 제시하는 선택된 성경 본문들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 대신 성경 전체를 읽어가며 설교했다. 이것이 성경 연속강해(lectio continua)다. 예를 들면 츠빙글리가 1519년 1월 1일에 취리히로 가서 목회를 시작했을 때, 마태복음 1:1~2로 설교하기 시작했고 그 이후 매일 전날에 이어 마태복음의 구절들을 본문으로 설교했다. 칼뱅의 설교 시리즈에 관해서는 지난 호에 충분하게 설명했기 때문에, 여기서는 그의 예전적 시간 배치에 초점을 맞추겠다.
예전적 영적인 시간에 대한 칼뱅의 이해와 연관하여 두 가지 중요한 요소를 알아야 한다. 첫 번째, 다른 개혁자들과 마찬가지로 칼뱅은 주일을 크게 강조한다. 주일은 주의 날로 그리스도인에게는 가장 중요한 날이다. 예전적 영적 시간에 대한 다른 요소는 칼뱅의 독특한 점으로 역사적 시간, 즉 그가 살고 있는 시간에 대해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다. 제네바 사람들은 계속적으로 12월 25일에 가장 가까운 주일에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했고, 승천, 부활절, 오순절 등도 그날에 가장 가까운 주일에 축하했다. 이들 외에는 전통적인 교회력을 따르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주일을 강조하면서 주중 기도의 날에는 그들의 현재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의식하는 데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두 번째 요소다. 이것은 칼뱅에 의해 발전된 개혁주의 예배(마르틴 부처에 근거한)의 특징으로, 매 주일마다 제네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성경 시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셨던 것처럼 지금도 현존하시면서 그들 가운데서 일하고 계시는 것을 상기시켰다. 일어난 모든 일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고, 우리에게 나쁜 것으로 보이는 것도 하나님이 사용하실 수 있는데, 이는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키며, 우리의 죄를 기억하게 하고, 형제와 자매를 위해 기도할 것을 기억하도록, 혹은 특별한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일 수 있다. 어떤 경우든 그리스도인은 그들의 은사를 인식하고, 그것에 감사하는 데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우리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즉각적인 임재를 의식하는 이러한 면은 칼뱅의 예배와 영성에서 특별히 두드러지는 면이다.
영적 시간에 대한 칼뱅의 관심을 보는 다른 방법은, 제네바에서 성만찬이 거행된 때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칼뱅은 성만찬이 자주 시행되기를 바라면서(사도행전 2:42은 성만찬이 매주 행해져야 할 것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사람들이 성만찬을 받기 전에 얼마나 적절하게 준비돼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사람들이 성찬을 바로 받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과 우리의 구원은 그리스도의 은혜에만 근거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내적인 것으로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외적인 준비도 있는데 이것이 갖추어졌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교회의 책임이다.

성만찬을 받는 준비의 외적인 형태 중 하나는 믿음의 기본을 이해하는 것이다. 칼뱅에 의하면 성만찬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 첫 번째 그리고 가장 중요한 목적은 우리의 믿음을 강화하고 확증하는 하나님 약속의 인치심을 받는 것이다. 두 번째는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믿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이것은 적어도 우리가 무엇을 믿는지를 알고,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을 알 필요가 있으며, 왜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는지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만찬을 대하는 준비는 진정한 지식, 신앙(학습)교육을 포함했다. 제네바에서 신앙교육은 불어로 주기도문, 사도신경, 십계명을 외우는 것, 또한 세례와 성만찬에 관한 지식을 갖는 것을 의미했다. 어린이들은 신앙수업에 참석하는 것이 필수였고 성만찬을 받기 전에 기본에 대해 알아야 했다. 자신의 언어로 주기도문이나 기타 기본적 교리지식을 전혀 배운 적이 없는 나이든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이 원칙이 적용되었다. 성만찬을 위한 또 다른 종류의 준비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행동하는 것과 영적으로 준비된 상태와 관련이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회개와 화해다. 만약 성만찬에 참여하는 것이 당신의 믿음을 증거하는 방법이라면, 모든 종류의 비도덕성, 싸움, 중상모략 등은 아주 나쁜 증거가 된다. 어떻게 사느냐는 우리가 하나님에 관해 무엇을 믿는지를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짓, 간음, 모욕, 싸움 등은 하나님에 대한 아주 나쁜 증거를 만든다. 사람들은 마음속에 증오심 혹은 쓴 뿌리, 분노를 품고 성만찬에 나와서는 안 된다. 그런 사람들은 공동체의 일원으로 성만찬을 나눌 준비를 하기 위해 또한 가족으로 성찬을 나누기 위해, 갈등이 있는 식구나 이웃과 먼저 화해해야 한다. 사랑은 성찬을 위한 준비의 한 부분일 뿐만 아니라, 이웃에 대한 사랑이 늘어가는 것은 성찬에 참여한 열매의 하나일 수 있다.
제네바에서 교회의 훈련과 치리가 얼마나 엄격했는가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어떤 것은 마치 모든 사람들이 출교당한 것처럼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두(oral) 징계만 받았다. 컨시스토리 회의록을 연구한 가장 중요한 학자 로버트 킹던(Robert M. Kingdon)은 컨시스토리를 가리켜 “강압적인 상담서비스”라고 표현했다.2 왜냐하면 싸움이나 다른 공동체의 문제가 있을 경우 그 진실을 밝히고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회개하고 화해하도록 설득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의 만찬을 나누는 가장 중요한 준비의 하나는 서로 상담하고 교회의 모든 사람들이 성찬에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준비가 되었는지를 확인해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드리는 예배는 근본적으로 함께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의 모든 몸이 함께 모여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화해하는 것이다. 몸의 모든 지체는 그리스도와 그리고 서로 서로와 바르게 연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성찬은 우리의 믿음과 사랑을 강화하는 하나님의 방법이고, 교회의 식구들이 이 은사를 함께 나누며 우리를 먹이시는 하나님께 더 의지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인 이웃을 더 사랑하는 것으로 반응하게 하는 것이다. 
만약 성례에 대한 개혁자들의 심각한 관심이 잊혔다면,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초기 개신교 개혁자들의 예배에 관해 쓴 글이나 예배 시 사용한 예전이 상당히 놀랍게 보일 수 있다. 비록 그들이 내내 사용되어왔던 전통적인 예전을 반대했더라도, 개혁자들은 예전 형태를 갖는 것 자체를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잘못된 것은 이러한 예전 형태는 그것이 행해지는 자체로 구원의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사실상 이러한 신학적인 문제를 정리하고 난 후, 개혁자들은 예전을 만들고 사용하는 것을 기뻐했다. 이때 예전이란 참여자들을 가르치고 교화하는 공적 예배를 이끌어가는 형태를 말한다. 개혁자들은 예배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그들은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교육받지 못했고, 또 개신교에서는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배웠다는 것을 알았다. 일반적인 교인들은 예전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배워야 했으므로, 상당한 교육이 필요했다. 전통적인 성례전의 고정된 예전과는 달리 개신교의 예전들은 영원히 고정되는 것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역사적 정황과 지역적 차이를 충분히 고려하여 변화를 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그러나 목사의 만족을 위해 자주 예전들을 바꿔서는 안 되었다. 회중에게 혼동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주일은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었고 제네바에서는 유일한 휴일이었다. 주일에는 네 번의 예배가 있었다. 새벽예배(여름에는 4시, 겨울에는 5시)는 설교와 기도로 구성되었고, 정오예배는 신앙교육에 초점이 맞춰 있었다. 칼뱅이 예전을 준비한 대예배는 주일 아침예배로 보통 8시에 드렸다(16세기 사람들에게는 아침 시간의 중간 즈음에 해당되는 시간이었다). 이 예배에는 시편 찬양, 기도와 설교, 일 년에 네 차례 성찬을 하는 것을 포함했다. 주일 오후예배는 3시에 드렸으며, 시편 찬양, 기도, 설교(성만찬 불포함)로 오전 예배와 유사했다. 기도문은 예전의 일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고, 목사가 자유롭게 자신의 기도문을 만들 수 있었다. 칼뱅은 약간의 변화를 주긴 했지만 거의 항상 같은 형태의 기도를 사용했다. 주중에는 삶의 모든 곳을 하나님께 드려야 했기에, 또한 교화적인 설교는 매일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고 보았기에 예배의 중요한 시간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므로 제네바에서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예배가 있었다. 주중의 날들을 위해서는 예전이 특별히 사용되지 않았다. 성경의 순서를 따라 설교하고 그 다음에 목사가 준비한 기도가 있었다. 칼뱅이 출판한 예전을 준비한 날은 기도의 날이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것은 회개, 중보, 감사에 초점을 맞춘 특별한 예배였다. 주일예배와 같이 시편 찬양 또한 포함했다. 다만 기도의 날에 사용된 시편 찬양은 보다 통회하는 시편이었고, 주일에 사용하는 시편은 보다 기쁨이 충만한 찬양이었다.
The Form of Prayers라고 불리는 칼뱅이 출판한 예전은 세례와 성찬을 집례하는 예전적 형태를 포함한다. 칼뱅은 믿는 부모에게 태어난 어린이는 이미 언약의 사람들의 일부가 되었으므로 어린이가 혹 세례 전에 죽더라도 구원에서 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산파나 다른 방법으로 세례를 줘야 할 긴급 상황은 없었다. 이제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들은 공동체가 예배를 위해 모일 때 아이를 교회에 데려오면 되었다. 매일 예배가 있었기 때문에, 제네바에서는 아이들이 어떤 날이든지 세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외곽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주일에야 세례를 받을 수 있었는데, 주중예배는 없이 주일예배만 있었기 때문이다. 중세 교회에서는 평신도가 성찬을 받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개신교가 시작되었을 때, 사람들에게 성찬을 자주 받도록 설득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제네바 정부는 성찬은 일 년에 네 번만 시행되면 된다고 말했다. 칼뱅은 더 자주(매월) 성찬을 할 것을 주장했지만,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자 정부의 제안을 수용했다.
결혼을 위한 예전도 있었다. 결혼은 성례는 아니었지만 공동체 앞에서 교회의 식구와 함께 나누는 계약(covenant)의 약속이 된다고 이해했다. 주중에 행해지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지만, 사실 대부분의 결혼은 주일 오후에 거행되었다. 그러나 성만찬이 있는 주일에는 결혼식을 하지 않도록 해서, 성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결혼 축하연으로 인해 바른 태도를 갖는 데 방해를 받지 않도록 배려했다. 칼뱅의 예전은 목사가 예배를 인도하고 회중들이 예배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책이었다. 그러므로 병자들의 목회심방에 대한 지침도 포함했다. 이것은 목회자의 일과에 중요한 부분이었다. 목회자의 과제는 걱정이 많은 영혼, 병자들에게는 믿음에 관해 이야기하며 그리스도의 은총을 의지하도록 격려하고,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도록 촉구하는 것이다. 목회자는 병자의 육체적 상태에 대해 물어보고 그들의 육체적·물리적인 필요도 도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또한 병자들의 이름이 매일 예배의 기도에 포함되어 모든 교회가 어려움에 처한 교인들을 기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이것은 특별히 기도의 날에 더욱 그러했다. 그러나 칼뱅이 예배를 인도하는 한 다른 날에도 이것을 실천했다).
제네바 사람들의 예배생활은 The Form of Prayers에 의해 주로 인도되었지만, 예전이 함께 편집된 다른 두 권의 책도 사용되었는데 시편찬송가와 신앙교육서다. 신앙교육서의 중요한 기능은 사람들에게 기도가 무엇인지 설명해주는 것과 몇몇 기도문을 외울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다. 초기 개신교도들은 기도를 제대로 하기 위해 기도문을 외워서 하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고 믿었다. 이것은 기도에 형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다. 다만 신앙교육서가 요약하는 대로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지, 즉 성경이 가르치는 것을 아는 것을 의미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중심되는 기도는 주기도문이었다. 칼뱅은 주기도문을 모든 바른 기도의 모델이라고 믿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언어로 외워 다른 기도를 위한 안내서처럼 사용해야 했다. 이것은 사람들이 기도할 때 주기도문의 말들만 사용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주기도문에 나온 모든 간구들에 따라 자신들의 모든 기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다른 개혁가들처럼 칼뱅은 그의 신앙교육서에 자신이 쓴 여러 개의 기도문(주기도문의 도움을 받아)을 포함시켜 사람들이 하루 중 특별한 때, 즉 아침에 일어날 때, 식사 전후에, 일이나 학교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그리고 잠잘 때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주기도문 외에 칼뱅주의자들이 좋아하던 기도문은 시편이었다. 사실 시편은 오랜 세기 동안 그리스도인들이 즐겨 사용하던 기도였다. 시편은 거룩한 사람들, 수사들, 수녀들의 기본적인 기도문이었다. 개신교도들은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해 스스로를 구별하는 거룩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모든 사람은 가능한 한 지속적으로 기도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모든 시편을 운율화된 형태로 번역하여 쉽게 배우고 찬양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는 칼뱅이 사람들이 쓴 찬송이 아니라 시편만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시편은 사람들이 소리 내어 기도할 수 있는 기도문이 될 뿐 아니라 내적 영성을 형성해준다. 또한 이를 통해 우리는 칼뱅 자신의 영적 마음을 통찰할 수 있다. 시편 주석서 서문에서 그는 시편을 “영혼 모든 부분의 해부학”이라고 묘사했다. “성령은 모든 슬픔, 서러움, 두려움, 의심, 소망, 보살핌, 당황스러움, 즉 인간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온갖 종류의 혼란한 감정들이 가득한 삶으로 다가오신다. … 여기서 예언자 자신들도, 하나님께 말씀드리듯 우리에게 자신들을 내보이면서, 자신들의 깊은 내면의 생각들과 애착, 부르심을 내보이거나, 우리 각각이 특별히 자신들을 점검하도록 이끈다. …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려고 할 때 우리를 격려하며 돕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 책에는 다 있다.”3 칼뱅은 또한 시편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적절한 음악에 맞춰 찬양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음악가들을 동원하여 각 시편에 대한 적절한 음악을 작곡하게 했다. 제네바 시편 찬송은 정교한 불어 운율시와 각 시편에 어울리는 음으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책이었다. 사실 칼뱅주의자들은 시편을 찬송하는 것을 재정비했고, 대부분의 칼뱅주의자들은 모든 시편의 모든 구절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시편은 그들이 하루 중 어디서나 어느 때나 사용할 수 있는 기도문이었다. 핍박과 고통 중에서도, 자장가로도, 혹은 위로의 말씀으로, 찬양으로, 기쁨에 겨울 때도! 시편은 그야말로 인간의 기도를 위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1. opus operatum이라는 중세적 사상에 따르면, 신부가 성사를 적절한 방법으로 집례할 때, 성사는 집례되었다는 그 자체로 은혜의 수단이 된다. 예를 들면 신부가 설교 없이 라틴어로 미사를 집전했다면, 회중이 그것을 이해하고 나누는 것에 상관없이, 또는 그 자리에 참석함이 없고도, 혹은 산파가 아이가 신부가 도착하기 전에 죽을까 두려워하여 아이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하더라도 은혜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위로가 되는 가르침이다. 왜냐하면 구원의 효과는 목회자의 지식이나 도덕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이다. 개신교도들은 성례의 효과를 목회자의 인격에 의존하지 않고, 성경에 대한 설교와 사람들의 지적인 참여에 의존하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세적 사상은 일종의 마술과 같은 생각이라 하여 거절했다.
2. Robert M. Kingdon, “Calvin and the Family: The work of the Consistory in Geneva,” in Calvin’s Work in Geneva, ed. R.D. Gamble(New York: Garland, 1992), 96.
3. John Calvin:Writings on Pastoral Piety, ed. trans. E. A. McKee (Mahweh, NJ: Paulist, 2001), 56. 
엘시 맥키 프린스턴신학대학교 교회사 교수 / 번역 이 정 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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