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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강의

칼빈의 교회론에 관하여(1)

칼빈의 교회론에 관하여(1)


노승수 목사 

제가 이런 글을 쓰게 될 줄을 몰랐는데, 칼빈의 교회관에 대해서 몇자 적어보려 합니다. 두서가 없다라도 용서를 바랍니다. 이걸 두서있게 정리하려면 또 장시간 여기 심혈을 기우려야 하는데 그럴만한 여력이 없어서요. 우선 이미 말씀 드린대로 루터는 일생 카톨릭 교회에서 떠나려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는 카톨릭 교회를 개혁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루터의 교회관을<아래로부터의 교회>라고 합니다. 즉, 교회를<사람들>로 정의한 것이지요. 이 개념은 매우 중요한데요. 차차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에 비해 칼빈은 교회를 기구(Institution)라고 정의를 했습니다. 이를<위로부터의 교회>라고 합니다. 중세 교회에 교회에 관한 이와 비슷한 신학적 구분이 있었습니다. '배우는 교회'와 '가르치는 교회'가 그것입니다. 라틴어 찾고 하면 시간이 걸려서요 우리말로만 씁니다. 알아서들 검색해보시길 바라며, (참내 내가 쓰면서도 저렴하네요 ^^) '배우는 교회'는<성도>를 가리키고 '가르치는 교회'는<사제들>을 가리킵니다. 물론 칼빈은 이 구조를 그대로 가지고 오지는 않습니다. 우선<직제>상 목사와 장로는 말씀을 섬기는 자지 제사를 집전하는 사제가 아니기 때문이며 더군다나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보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는 이미 다 아실 줄 알고 아무튼 이런 구조와 형식을 가져와서 교회를 설명합니다. 우리가 흔히 종교개혁의 정신을 생각하면,<만인 제사장>을 떠올리지요. 그래서 루터의 교회관을<아래로부터의 교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루터가 생각했던대로 카톨릭 교회는 개혁되지 못했습니다. 아우구스부르그 회의(이도 기억에 의존해서 정확치 않네요 검색에 하시길... 참 저렴하다 ㅠ.ㅠ)는 카톨릭 교회와의 신학 논쟁을 통해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던 루터의 노력이었습니다. 결국 신학적 일치의 길을 걷지 못하고 둘은 다른 길을 가게 되지요...
이게 칼빈에 오면 거의 고착화가 됩니다. 칼빈의 고민은 2000년 지상 교회의 정통성이 우리들에게 있음을 성경과 역사를 통해서 논증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당시 칼빈의 왼쪽에는 재세례파가 있었고, 칼빈의 오른쪽에는 교황주의자들이 있었습니다. 사실 칼빈은 교황주의자들만큼이나 이 재세례파를 싫어했습니다. 아니 어쩌면 더 혐오했을 겁니다. 재세례파의 주장은 이전의 모든 게 다 무효라는 것이지요. 부패했으니 싸그리 갖다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니케아 이전의 현저한 이단인 말시온주의 망령의 부활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어거스틴 시대의 도나투스파처럼 신령하지 않은 사제에게서 받은 세례가 부정하다고 여기고 그들에게 재세례를 베풀어야 한다는 주장을 한 것이지요. 물론 우편에는 교황주의자들이 있었고 이는 제가 따로 말씀드리지 않아도 잘 아시리라 이미 너무도.... 
이런 상황에서 칼빈은 2000년 교회의 정통성이 우리에게 있음을 신학적으로 변증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칼빈의 교회관은 우리가 흔히 하는 만인제사장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습니다. 칼빈이 교회를 기구라 정의한 것은 다른 기구가 아니라<말씀을 전파하는 기구>로 이해한 것입니다. 이는 다름 아니라<직제>곧 교회의 자격있는 직원에 의해서 교회가 교회 다워진다고 정의한 것이지요 그래서 칼빈의 교회관을<위로부터의 교회>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가르치는 교회>로서 장로회를 중심한 교회관이지요 그래서<대한예수교장로회>라고 부르는 것이기도 합니다. 자격있는 직원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그리고 바르게 받드는 직원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오른 쪽에 있는 교황주의자들에게 교회의 자격있는 직원은 하나님의 말씀과 우리 선배들이 남긴 신앙고백을 바르게 이은 우리가 바로 교회의 정통이다고 주장을 한 것이지요. 
그리고 왼편에 있는 재세례파들에게는 도나투스파에게 어거스틴이 했던 것처럼 그 성직자 개인의 경건과 그의 성결과 관계 없이 역사적 교회가 행한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행해진 세례와 그 역사적 교회의 정통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한 것이지요. 이 제세례의 문제는<배우는 교회>로서 성도들과 직접적 관련이 있습니다. 특별히 기독교회의 특이한 점이 한가지 있다면 삼위일체신이신 하나님에 대해서만 신앙고백을 하지 않고, 사도신경에 의하면 거룩하고 보편적 교회에 대한 신앙고백을 한다는 점입니다. 니케아의 고백을 따르자면 사도적이며, 우주적이고, 거룩한 보편 교회에 대한 신앙고백을 하는 것이지요. 이는 역사적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고 우리가 그들 위에 서 있음을 천명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칼빈의 개혁은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이듯이 그들로부터 떨어져 나오는 분파주의가 아니라 참되고 바르게 우리가 교회의 참된 정통 위에 서 있다고 천명한 것입니다. 
즉, 교회의 정통성이 로만 처치(Roman Church)에 있지 않고 말씀 위에 서 있는 우리에게 있다고 본 것입니다. 한국교회가<오직 성경>에 대해서 가진 혼동 가운데 한가지는<성경만 있으면 다 된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이<오직 성경>을 외칠 때 그것은 성경이 유일한 권위이다라고 외친 것이 아니라 성경이 기타 여러 권위보다 최종적 권위임을 외친 것입니다. 따라서 카톨릭 교회가 베푼 성례와 그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에 대해서 칼빈은 용인하지 않은 것이지요. 교회가 부패했다고 해서 아이를 씻은 물과 함께 아이를 함께 버려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로마교회가<가르치는 교회>로서 부패하여 성례를 바르게 시행하지 못하고 말씀을 신실하게 받들지 못함으로<거짓교회>가 되었으나 여전히 그들이 바르게<세례>를 시행하고 있다고 본 것이지요.<가르치는 교회>로서<자격 없는 직원>에 의해 시행된 세례라 하더라도 그것이 바르게 시행되었다면 온당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어거스틴의 전통에 따른 것입니다. 그런 점에 로마카톨릭을 이단이라 부르는 것은 사실 정당하지 못합니다.<거짓 교회>라는 말과<이단>란 말이 등식을 이루는 것처럼 보이지만 꼭 그렇지 않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잘못을 개혁할 때 다 갈아업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칼빈은 성경만이 유일한 권위라 하지 않고 기타 이미 교회에 세우신 여러 권위들을 존중한 것이지요 그 중에 세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는 뭐 한국교회만 같은 특이한 현상이 아니라 세계 모든 개혁교회가 이 원리를 따라 카톨릭의 영세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칼빈과 루터 쯔빙글리 사이에서<세례>의 문제는 격론이 없이 일치를 거의 본 반면,<성찬>의 문제는 격심한 논쟁이 벌어진 이유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즉,<가르치는 교회>로서 로마 카톨릭 교회가 가르치는<성찬>의 교리는 분명 잘못된 가르침이요 이는<거짓된 교회>임이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 2000년의 뿌리 전체를 개혁교회가 그 정통을 수호하고 있다고 말하는 마당에 거기서 행해진 영세를 받은 자들 특별히 그것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행해진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위에 베풀어진 세례를 어떤 권위로 부정한다는 말입니까? 또한 그렇게 영세를 받은<배우는 교회>의 성도들은 그들이 참된 가르침을 베푸는<가르치는 교회>인 목사와 장로들에 의해서 말씀과 성찬과 세례와 권징이 행해지는 이 공동체로 올 때 그들을 교회의 일원으로 받아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이것을 부정하는 것은 어기스틴 시대에 이단으로 정죄된 도나투스 파의 길을 따르는 것이며, 구약의 하나님은 쓸모없으니 버리고 바울 서신 속에 있는 사랑의 하나님만 참 하나님이라는 말시온주의가 남긴 길을 가는 것입니다. 교회는 광야시대로부터 역사 속에 면면히 이어오던 하나님의 교회이며 그리스도가 피값을 주고 산 교회이며 오순절 성령께서 역사 속에 개입해 들어오시고 우리 가운데 내주 함으로 세워진 역사적 공동체입니다. 로마 카톨릭의<가르치는 교회>가 그 가르침이 성경에서 떠나<거짓 교회>로 들어 났다 하더라도 여전히 세례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바르게 시행되고 있으며 그<배우는 교회>들 속에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이 나타남으로 교회사적으로 또 교회론적으로 카톨릭 교회를 이단이라 부르는 것은 그 지향하는 바가 정확히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배 때마다 고백하는<거룩한 보편 교회>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재세례파처럼 말시온처럼 도나투스파처럼 그렇게 이전의 역사 전체를 부정하고 마치 자신만이 정통이라 주장하는 과오를 범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지요. 
참 놀라운 것은 칼빈의 후예들이 칼빈이 전혀 동거를 거부했던 어쩌면 교황주의자보다 더 미워했던 이 재세례파와의 동거를 오히려 자연스런 것으로 여기는 시대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근본주의적이며 매카시적으로 그 사상과 신학을 전체로 평가하지 않고 이름표 달기를 즐기는 그래서 교회 정치의 희생물로 만드는 에피나니우스 같은 오류를 범하는 그런 무리와 동류를 이루어서야 어찌 칼빈의 후예라 하겠습니까? 칼빈은 어느 로마 카톨릭 주의자들보다 교부들의 전통에 익숙했고 철학자들의 글에 익숙했습니다. 기독교 강요 곳곳에 그런 흔적이 배여 있습니다. 아마도 칼빈이 들으면 기뻐하지 않을 일입니다. 칼빈은 일생을 성경으로 돌아가길 열망했습니다. 두서가 없습니다. 논리도 숙고하고 쓴 글이 아니라 지금 생각나는데로 친 것이라 스킵된 부분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자구 하나하나를 들어 반박을 들어오거나 딴지를 걸어오지 마시고 글 전체에 담긴 사상과 전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살피시길 권면합니다. 제가 이미 말씀드린대로 저질체력이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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