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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신학/신학서론

칼빈의 신학원리로서 성경의 사용: 기독교 강요를 중심으로

칼빈의 신학원리로서 성경의 사용: 기독교 강요를 중심으로
안명준교수 (평택대, theologia.co.kr)
I. 서론
부패한 기독교를 근본적으로 새롭게 개혁하기 위하여 종교 개혁자들이 강조한 sola scriptura원리는 그들에게 신학적, 해석학적 원리의 근본적인 뼈대를 만들어 주었다. 이런 소중한 종교 개혁자들의 유산인 sola scriptura의 관점에서 본다면 사실상 루터의 종교개혁을 성경 해석의 새로운 혁명으로 볼 수 있다. 이 원리는 기존의 교회와 교황에 의한 해석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성경이 성경을 해석하는(scriptura sui ipsius interpres)원리를 탄생시켰다. 루터는 철저하게 이 새로운 원리를 통하여 성경을 연구하여 당시 오류로 범벅이 된 부패한 기독교의 새로운 성경적 지평을 열어 주었다.1)
루터의 경우처럼 성경에 대한 철저한 연구는 오늘날 우리 시대에도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존 머레이(John Murray)는 단순히 습관적으로 성경을 읽는 것을 넘어서 집중적이며, 지속적이며, 헌신적인 연구를 제안한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성경에 대한 진지하며 영혼을 사로잡는 연구이다.
그러나 내가 강조하려는 것은 성경을 부지런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탐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의 본문을 반복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며, 우리 마음과 정신이 성경의 진리로 흠뻑 젖어지게하며, 사상, 감정 그리고 행동의 깊은 근원이 감동받고, 인도를 받는 장기적인 사상과 묵상을 통한 연구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움켜쥐고, 우리를 묶고, 우리를 붙잡고, 우리를 당기고, 우리를 더러운 곳에서 일으키고, 우리를 자만에서 내려놓아, 사상, 삶 그리고 행위의 모든 것에서 하나님의 종으로 만드는 연구이다.2)
종교개혁자 가운데 성경연구에 대한 가장 모범적인 인물로 우리는 칼빈을 말할 수 있다. 평생 그는 성경을 자신의 신학의 원천이며 원리로 삼고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고, 주석하며, 신학적인 논증을 하였다. 이종윤 박사에 따르면 칼빈은 하나님의 말씀의 절대적 권위를 강조하면서 모든 원리의 근원으로 주장한 성경 중심주의자였다고 한다.3)이런 평가는 칼빈 신학의 중심에 있는 원리가 바로 성경이라는 점에서 정당한 주장이다.
최근 위기 속에 흔들리는 한국교회가 칼빈의 신학원리인 성경을 다시 발견하고, 성경이 모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열쇠로 굳게 믿고 따른다면 우리의 소망이 그 말씀 안에서 비쳐 줄 것이다. 본 논문은 학자들에 의해 많이 연구되어온 칼빈의 성경관에 대한 고찰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칼빈이 자신의 유일한 신학 원리로서(Scriptura est unicum Principium Theologiae) 성경을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1559년 최종판 기독교 강요4)를 중심으로 조사하는 것이다.
II. 하나님의 말씀(Verbum Dei)으로서 SolaScriptura
Verbum est supra ecclesiam. Ecclesia nata est ex Dei verbo. 종교 개혁자들은 이런 표어들을 가지고 당시 부패한 로마 카톨릭 교회보다 성경의 권위를 주장하였다.5)개혁자들이 성경의 권위를 새롭게 강조한 것이 그들에게 로마 카톨릭 교회의 전통과 권위에 반대하여 바른 신학을 세우는 토대를 제공하였고, 성경 해석의 중요한 원리들 가운데 하나를 만들어 내었다. Sola Scriptura는어떻게 개인의 양심과 교회의 생활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권위 있게 구체적으로 사용되는지에 대한 개혁자들의 전적인 견해를 보여주는 것이다6). 오직 성경 (sola Scriptura) 이라는 표어는 칼빈을 비롯한 개혁자들의 강력한 무기(arma)였으며,7)이것을 가지고 그들은 로마 카톨릭 교회의 권위와 전통, 그리고 비성경적인 그들의 신학과 싸웠고, 모든 것들 위에 성경의 권위를 최고로 두었다.8)J. I. Packer는 말하기를 ”개혁자들의 기독교에 대한 이해는 sola Scriptura 원리에 의존했다. 즉 그 견해란 성경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유일한 말씀으로서 교회와 양심을 위한 유일한 안내서이며, 하나님과 은혜를 아는 진정한 근원이며, 과거와 현재에 있어서 교회의 증거와 가르침의 유일하게 자격을 갖춘 재판자이다“라고 하였는데 매우 적절한 표현이다.9)
성경의 권위에 관하여 루터는 웜스 회의(the Diet of Worms)에서 그는 자신의 양심이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 잡혔기 때문에 교황과 종교 회의의 권위를 받지 않겠다고 말하였다. 그는 sola Scriptura를 강조하였다.10)루터는 1519년 7월에 에크(Eck)와 라이프치히 논쟁(Leipzig Disputation)에서 성경의 권위를 선택하고 나를 판단할 사람들에게 그것을 권했다고 주장하였다.11)
성경의 권위를 강조했던 종교개혁자들에게 있어서 성경은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이었다(Scriptura est verbum Dei). 기록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과 언제나 동일한 의미로 분명하게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일반적으로 루터나 쯔빙글리, 칼빈, 그리고 개혁자들에게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동일하게 사용되었다. 
지원용 박사에 의하면, 종교개혁자 루터의 사상과 그의 신학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기원했다고 하며, 루터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이란 용어가 성경 이상의 것을 의미하지만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경이 포함하고 있는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12)루터는 하나님의 말씀(Word of God), 성경(Scriptures), 그리고 복음(G 
ospel)을 분명하게 구별하지 않고 같은 문맥 안에서 지속적으로 사용했다고 한다.13)Richard Muller는 루터는 성경을 하나님의 권위있는 말씀으로 동일시했으며, 현재 세대의 신 정통주의 학자들에게 발견되는 것처럼 말씀으로 오직 그리스도와 말씀에 대한 증언으로 성경을 구별하지 않았다.14)
쯔빙글리 역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인간의 모든 말들을 압도하는 교리에서 절대적인 표준을 제공한다고 보았다.15)그가 쓴 On the Clarity and Certainty of the Word of God(1522)에서 "우리 종교의 기초는 기록된 말씀, 하나님의 성경이다"라고 했다.16)그의 후계자였던 Heinrich Bullinger은 절대적이고 자율적인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성경 안에 그리고 성경 자체로서 합당한 지위와 신뢰성을 갖고 있다고 한다.17)
성경을 언제나 동일하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지 않는 학자들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칼빈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주장한다. 존 머레이는 칼빈은 성경을 하나님의 영원한 그리고 손상되지 않은 진리로 말한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이 저자이신 성경 그 자체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분이라는 분명한 싸인을 보여준다고(manifesta signa loquenti Dei) 한다.18)
신복윤 박사는 칼빈은 성경을 인간의 언어로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았다고 한다.19)성경은 인간의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온 하나님의 말씀이다.20)성경관에 있어서 루터와 전적으로 같지는 않지만 칼빈에게 있어서도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었다(Scriptura est verbum Dei).21)결국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과 성경은 서로 교환적으로 사용되었다.22)
III. 신학의 원리로서 성경(Scriptura est unicum Principium Theologiae)
중세 말에 교회는 성경 자체의 권위보다 전통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성경보다는 교회와 교황 그리고 전통을 더 권위있게 인정함으로써 성경의 순수한 진리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다. 이런 결과로 부패한 로마 카톨릭교회를 개혁하기 위하여 개혁자들은 확고한 출발점, 신뢰할 만한 규범 혹은 기준, 그리고 적극적인 원리로서 전통이 아닌 그리스도의 말씀을 주장하였다.23)
성경은 기독교 교리의 가장 중요한 원천으로 개혁자들은 주장하였다. 이 sola scriptura원리는 로마 카톨릭교회와 교황에 대한 비판의 무기였을 뿐만 아니라 올바른 신학의 원리였다. 칼빈은 전적으로 전체 성경에 근거하여 잘못된 신학을 비판했을 뿐만 아니라 성경이 주장하는 그대로의 신학적 원리를 세우기 위해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고 듣고 따르기를 원했던 진정한 성경에 충실한 사역자였다. 칼빈은 성경의 신학자였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신학을 이 sola Scriptura라는 종교개혁 원리에 의해서 체계화하려고 했다.24)예를들면 칼빈의 제네바 신앙고백서(The Genevan Confession)는 그가sola Scriptura 원리를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보여준다.25)여기에서 칼빈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인간들이 고안한 것들을 섞지 않고 오직 성경만으로(Scripture alone)믿음과 종교의 규칙(rule of faith and religion)으로 따르기를 원하는 그의 간절한 열망이 나타나 있다. 
칼빈에게 있어서 신학의 탐구을 위하여 성경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가장 중요한 신학적 원리였다(Scriptura est unicum Principium Theologiae). Wallace는 칼빈이 우리로 하여금 성경의 의미를 접근하기 위하여 신학적인 전제들의 사용을 오직 성경 앞에 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한다.26)이런 그의 주장은 정당한 평가로서 기독교 강요에 나타난 칼빈의 해석학적 작업에서 증거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신복윤 교수도 언급하기를 칼빈은 자신의 사상의 원천을 성경에 두었으며, 자기의 사상의 기초를 성경에 두었으며, 그리고 신앙과 행위 문제에서 성경을 유일하며 가장 안전한 안내자로 확신했다고 한다.27)
유일한 안내자로 성경을 인정한 칼빈은 성경을 저버리고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이르는 다른 길이 있다고 보지 않았다. 칼빈은 이렇게 성경을 저버리고 하나님께 이르는 다른 어떤 길이 있다고 생각하는 자유방임파자들은(Libertine) 오류에 사로잡혀 있다기보다 오히려 광란에 사로잡혀 있다고 한다. 이들은 성경 읽기를 무시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침을 직접적으로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한다.28)
오늘날 다른 길을 받아드리는 John Hick와 같은 종교 다원주의자들에게 사용되는 모든 종교의 경전들은 칼빈에게 참된 안내서가 아니었다. 오직 그에게 있어서 참된 신학의 올바른 트랙은 성경을 쫒아가는 것이다.29)칼빈은 우리가 하나님의 성령으로부터 어떤 유익이나 은혜를 받기 원한다면, 성경을 열심히 읽고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한다.30)
이런 열심과 더불어 칼빈이 강조하는 것은 우리의 사상의 근원적인 원리를 성경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말에 대한 확실한 규칙(regula)을 성경에서 찾아내야 하고, 우리 마음속의 생각과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이 성경과 일치해야만 한다는 것이다.31)칼빈은 심지어 성경에 있는 이해하기 어렵고 복잡한 문제들을 우리가 간결하고 명료한 말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설명해야 한다고 한다.
성경이 신학의 원리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나는 칼빈의 작품들 가운데서 우리는 기독교 강요를 손꼽을 수 있다. 기독교 강요에서 성경의 역할은 근본적인 것이었다. 만일 그가 거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사용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우리가 아는 칼빈의 신학은 존재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분명 기독교강요는 삼위 하나님을 아는 성경의 열쇠였으며,32)성경을 가리켜 주는 칼빈의 집게 손가락이었다. 어찌보면 강요에서 있어서 성경의 수많은 사용이 칼빈의 신학을 존경받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올바른 개혁교회를 세우는데 있는 그 뼈대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요를 정밀하게 연구하는 사람에게 친밀하게 다가오는 것은 칼빈이 성경의 권위와 올바른 해석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의 교리를 듣고 올바르게 전달하려고 전심한 그의 노력을 보게 된다. 이런 그의 성경 해석에 대한 충성스러운 모습은 강요를 매장 넘길 때마다 나타나는 성경에 대한 인용과 적용 그리고 해석이다. 따라서 기독교 강요는 성경을 이해하기 위한 성경의 학생들을 위한 교과서이다. 강요는 성경없이 존재하지 못하며 성경의 지배를 받지 않고서는 대작으로 성공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바로 강요란 성경을 분명하게 볼 수 있는 칼빈의 자신의 안경이었다.
성경은 칼빈에게 있어서 그의 신학의 출발점이며 또한 신학이 궁극적으로 따라야 할 모델이 되기도 한다. 그는 모든 문제를 성경에서 시작하여 성경의 예를 찾았으며, 성경이 요구하는 방식대로 성경이 의도하는 가르침을 순수하게 탐구하였고 성경이 멈추는 곳에서 자신의 한계를 알고 겸손하게 떨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성경의 신학자로 부른다. 성경은 그의 신학의 토대에 있어서, 신학의 방법에 있어서, 기독교의 모든 문제에 대한 궁극적 판단에 있어서 유일한 최고의 권위로서 받아드려 졌다.33)모든 신학적 교리들은 칼빈에게 있어서 말씀에 의한 검증적 대상이었다. 심지어 자신의 주장까지도 성경적으로 확실한 증거 위에 성경과 일치되었는지 언제나 겸허하게 시험 받았다. 칼빈은 사도행정 17장 11절 주석에서 베레아 사람들도 성경의 규칙과 잣대(square)에 의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조사했으며 성경은 모든 교리들을 당연이 시험하는 참된 시금석(the true touchstone)이라고 했다.34)
바빙크는 성경에 일치하며, 성경에 기초한 모든 고백을 믿고 유지해야 한다고 하며, 모든 기독교 교회는 성경이 신학의 기초(Holy Scripture is the foundation of theology)라고 고백하는데 하나이다라고 한다.35)종교개혁은 만장일치로 성경이 유일한 원리로(principium unicum) 인정하였다고 한다.36)이런 후대 개혁신학자의 주장은 칼빈이 말한 것과 동일한 것이다. 
현대 신학자들 가운데 불트만이나 에버하르트 융겔 그리고 폴 틸리히와 같은 학자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지 않는다.37)특히 폴 틸리히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며 인간에게서 나온 교회사의 한 부분으로 간주한다. 성경을 신학의 원천으로 간주하고 신학을 연구하는 자도 교회사에 의한 연구자라고 한다.38)그렇다면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을 바르게 이해 할 수 없고 오직 교회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에 관한 연구들 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칼빈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신학의 유일한 원리임을 성경적으로 증명하여 올바른 신학의 체계를 세웠다. 칼빈은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 즉 완전한 지혜와 유일한 표준(regula)으로 만족하지 않고 자기 두뇌에 의해 신기한 것을 조작하는 자들은 주의 이름으로 모인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39)
칼빈은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모든 것을 탐구할 때에 주의 말씀만이 우리를 인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verbum Domini unicam esse viam), 우리가 주께 대하여 보아야 할 모든 것을 보려고 할 때에 우리의 눈을 비추어 주는 유일한 빛은 오직 주의 말씀뿐이라는(verbum Domini unicum esse lumen) 사실을 알아야 한다 주장한다.40)이렇게 칼빈에게 있어서 성경은 그의 신학의 유일한 원리(unicum Principium)이며, 유일한 규범(unicum regula)이며, 그리고 유일한 잣대(unicum square)였다.
IV. 신학원리로서 성경에 대한 칼빈의 전제들
칼빈이 어떻게 성경을 사용하였지를 논하기 전에 먼저 그가 가지고 있는 성경에 대한 전제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즉 그가 성경을 어떻게 이해했으며, 성경에 대한 그의 진지한 태도가 어떠했는지 다루려고 한다.
A. 우리를 위한 성경의 의미
칼빈은 성경을 안경으로,41)거울로,42)거룩한 저울로43)비유한다. 또 성경의 효과에 대하여 말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은 태양과 같아서 말씀이 선포된 모든 사람에게 비쳐준다고 한다. 우리는 말씀의 줄(線)에 의해 인도받지 않는 한 우리는 미로에 빠진다고 한다.44)칼빈이 이런 비유를 사용하는 이유는 성경은 바로 하나님을 알아가는 수단이며 규칙이 되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하늘 교훈이다.45)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가르치는 학교라고 한다.46)성경은 필요하고 유익한 지식은 하나도 빠뜨리지 않는 동시에 유익한 지식이 아니면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는 성령의 학교라고 한다.47)
칼빈에 의하면 성경은 안경의 역할처럼 창조주 하나님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48)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제공해 주며, 어리석음을 제하여 주고, 참 하나님을 보여 준다고 한다.49)부패한 우리 인간의 마음은 그 연약함으로 인해서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의 도움이 없는 한 도저히 하나님께 다가올 수가 없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을 제외한 당시의 모든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 없이 하나님을 찾았으므로 공허과 오류 속에서 헤맬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50)따라서 우리가 미로에서 헤매이고 혼란에 빠지지 않도록 안경을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성경이라고 한다. 칼빈은 성경은 마치 우리가 보기 힘든 것을 잘 보게 해주는 안경 같다고 한다. 우리의 눈이 연로함과 병약함, 그리고 다른 결함으로 인하여 어두워져 안경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어느 것 하나도 분명하게 식별하지 못하는 것과 같이, 우리의 무능함도 그와 같아서 하나님을 탐구할 때 성경이 우리를 인도해 주지 않으면 즉시 혼란에 빠지게 된다고 한다.51)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 내용이 설명되어 있다52), 창조주요 지배자로서 유일하고 참된 하나님을 확실한 표적과 증거로써 장식하고 있다.53)또 성경은 우리의 영혼의 목장으로 영생을 준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 안에서 변화되기 위하여 (성경)이라는 거울(mirror) 속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명상한다. 이 성경은 그가 우리를 그의 백성으로서 다스리는 왕의 홀(sceptre)이자, 그가 우리의 목자가 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는 막대기(staff)다. 또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를 영원한 언약으로 묶기 위하여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그의 연합의 도구(instrument of his alliance)이다. 성경은 우리의 구원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를 알도록 우리의 양심상 평안을 갖게 하는 하나님의 선한 의지의 증거이다. 성경은 우리의 영혼을 영생으로 살지게 하는 유일한 영혼의 목장(only pasture of our souls)이다.54)
또한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 주는 책이다. 성경은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삼는 신앙과 회개의 특수한 교리가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한다.55)요한복음 5장 39절의 주석에서 칼빈은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은 성경이외에 알 수 없다고 하고, 우리는 그리스도를 발견할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성경을 읽어야 한다고 한다(we ought to read the Scriptures with the express design of finding Christ in them).56)
B. 성경연구의 자세
칼빈은 평생 성경을 충실하게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해석하는 삶을 살았다. 이런 그의 사역 속에서 성경연구의 중요성은 회심에서 시작하여 마지막 고별사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루이 구마(Louis Goumaz)에 따르면 성경은 칼빈 회심을 위한 도구(the instrument for Calvin's conversion)였다고 한다.57)그는 인문주의자를 포기하고 회심 후에 성경을 열정적으로 탐구하는 사역의 발길을 옮긴다. 그가 그토록 공들였던 기독교 강요 역시 로마서의 확장이라고 학자들이 보는 관점에서 그의 사명은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는 것이었다. 칼빈은 죽기 한 달전 앞두고 제네바 목사들에게 성경을 충성스럽게 해석하라는 충고를 한다. 
나는 교리에 관하여 신실하게 가르쳤고,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은혜를 주셔서 나의 힘이 닿는 대로 신실하게 글을 쓸 수 있었다, 나는 성경의 단 한 절도 왜곡시키지 않았으며, 비록 난해한 의미를 만나서 그 미묘한 것을 연구하였으나 나의 발 아래에다 그것에 대한 유혹을 던지고, 항상 단순성을 목표로 두었다.58)
칼빈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경건한 삶을 위하여 성경의 내용들을 탐구해야 할 것을 역설한다.
성경에는 헛되거나 유익하지 못한 것은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으며, 이러한 불변의 지혜의 기록들을 꾸준히 개인적으로 공부해 나가면 우리의 경건하고 거룩한 생활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내용을 열심히 공부하고, 그것이 하늘과 땅의 창조주와 섭리자께서 사람과 담화하시기 위해 주신 유일한 책이라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가 우리에게 사용되지 않는 어떤 지식을 가르쳤다고 상상하는 것은 성경의 진리에 대한 비난이 된다. 우리는 그의 훈계는 변함없이 우리의 경건성을 증진시키려 한다는 것을 영원히 기억하도록 해야 한다.59)
기독교 강요에서 칼빈은 성경연구에 대한 그의 몇 가지 자세를 보여 준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존중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배울려는 겸손함이며, 인간 한계에 대한 수용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성령님이 인도함을 받는 것이라고 한다. 
1.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존중
칼빈은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경멸하고 웃음거리로 만들며 교회의 권위와 결정 아래에 두고 있다고 한탄한다. 그러나 참된 하나님의 백성은 겸손과 순종으로 말씀을 대하는 태도를 가져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존중을 가져야 한다고 한다. 칼빈은 성경의 권위를 존귀히 여기며 받아들이도록 우리의 마음을 준비해야 한다고 한다. 성경은 하늘로부터 기원했다라고 간주해야 한다고 한다.60)거기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명예를 떨어뜨려서는 안된다고 한다. 오늘날 하나님의 성언이 매일 내려오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진리를 영원히 보존하는 것이 그를 기쁘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61)
칼빈은 우리가 성경의 그 존엄성을 인정하고 경건하게 받아들이고, 다른 일반 서적들과는 달리 뛰어난 것으로 인정한다면, 이전에는 우리 마음속에 성경에 대한 확신을 강하게 심어 주지 못하고 확고하게 해주지 못했던 논증들이 가장 유용한 도움이 된다고 한다. 신학적 논증을 위해서도 성경의 확실성에 대한 존경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 성경에 대한 존귀한 자세를 가지고 우리가 보다 면밀히 연구한다면, 성경 가운데 담겨있는 하나님의 지혜의 경륜이 실로 훌륭한 질서를 이루어 자리 잡고 있으며, 그 교훈의 성격이 철저하게 천상적인 것이어서 세상적인 어떤 냄새도 풍기지 않으며, 모든 부분이 서로 서로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이런 것들이 우리로 하여금 성경에 대한 강한 확신을 준다고 한다.62)
그러나 성경을 존귀히 대하는 것은 교회에 의해서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칼빈은 교회의 승인에 의해 인정될 때에, 비로소 성경이 그 중요성을 갖게 된다고 하는 주장하는 것은 가장 유해한 오류라고 한다. 이런 교회의 승인을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불가침의 진리가 인간의 결정에 두는 것이며, 성령을 조롱하는 것이며 교회의 권위를 빙자하여 횡포를 부리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행동은 성경을 존귀히 여기지 못하는 것이라고 한다.63)
2. 성경의 제자로서 겸손하게 배우는 자세
어거스틴이 주장한바와 같이 칼빈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성경의 제자가 먼저 되어야 한다고 한다. 그는 인간들이 하늘이나 땅에 보여진 자연 계시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말씀을 가리켜 하나님의 자녀들을 가르치는 학교로 삼으셨다고 했다(hanc esse peculiarem filiorum Dei scholam).64)하나님의 백성들은 성경의 학생(제자)으로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배우고, 순종하며 경외하게 된다고 한다. 칼빈은 말하기를 누구든지 성경의 제자가 되지 아니하면 참되고 건전한 교리를 조금도 얻을 수 없다고 한다. 칼빈은 성령은 우리의 내적 교사라고 말한다.65)우리는 성령을 우리의 교사로 모시면서, 하나님의 자녀의 학교인 성경 안에서, 성령의 제자가 되며 성경의 제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의 제자는 어떤 사람인가 칼빈의 말들을 종합하여 설명한다면, 하나님이 성경에서 자신에 대하여 증거하고자 하신 것을 경건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며, 자신의 한계를 잘 지켜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며,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에게 귀를 기울리는 사람이다.66)
칼빈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할 때, 교만을 버리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려서 순복함으로 하늘의 말씀을 배우는 자세를 가져야 함을 말한다. 그러나 건방진 궤변가들의 자유분방한 혀를 제어하지 않고 경솔함으로 난해한 연구를 시도함으로 인한 불행한 결과를 가져왔다고 한다. 우리는 하늘의 말씀에 순복하여 인도함을 받도록 하자고 한다.67)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본다면 그 말씀이 우리를 앞으로 인도해 줄 것이라고 한다.68)칼빈은 완전한 신앙과 올바른 지식은 순종에서 나오기 때문에 말씀을 연구하는 자에게 말씀에 대한 절대적 순복이 요구된다고 한다.69)
3. 말씀의 한계 안에서 인식
칼빈은 성경의 감추인 비밀들을 우리가 다 알 수 없기 때문에 탐구의 신중한 자세를 가지면서 우리 인간의 한계성를 인정하라고 한다. 인간은 창조주가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형상이기에 자신을 바르게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을 몇 가지로 설명한다. 먼저 우리의 연구는 항상 말씀의 한계를 넘지가서는 안된다고 한다. 제한된 인간이 하나님의 진정한 본질을 알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하나님 자신에게 맡기자고 한다. 말씀의 한계는 다른 말로표현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제외한 어떤 다른 것으로 하나님을 탐구하지 않는 것이다. 심지어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생각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유발되지 않은 어떤 것을 생각하지 않을 것이며, 또한 그 말씀으로부터 나오지 않은 어떤 것을 말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라고 한다.70)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넘어가서는 안되는 근본적 신학적 근거는 우리가 가진 제한된 지식뿐만 아니라 부패된 이성을 가지고 있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넘어가려는 교만으로 인해 참된 하나님의 교훈을 알지 못한다고 한다.71)칼빈은 우리가 말씀의 한계를 넘는 순간 바른 길을 벗어나 암흑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며, 거기서 반드시 헤매며 미끄러져 넘어진다는 것이다.72)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 알려주는 것 이외의 것을 알려고 하는 것은 길 없는 황야를 걸어가려는 것이거나(욥 12:24 참조) 또는 어두운 데서 무엇을 보려고 하는 것 못지않게 어리석은 것이라고 한다.73)
칼빈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때 믿음이 암묵적이라는 사실을74)인정한다. 칼빈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나그네같이 사는 한, 믿음이 암묵적이라는 것을 우리는 확실히 인정한다고 한다. 그것은 많은 사실들이 아직 우리에게 숨기워져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는 많은 오류의 구름에 에워싸여 있어서 모든 것을 다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묵묵히 겸손히 더욱 전진하려고 분투하는데 우리가 육신을 벗어버릴 때까지는 우리가 도달하기 원하는 것에 못미친다는 것은 우리의 경험으로 명백하다고 한다.75)이어서 칼빈은 우리가 믿음의 분량을 가지고 우리의 한도를 벗어나지 말도록 요구한다.
또 칼빈은 말씀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은 말씀이 말하지 않는 것에 대해 침묵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한다.76)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대해서 마음과 귀를 열고 듣는 것을 허락해야 하는데, 만일 주께서 입을 여시지 않을 때에는 우리도 즉시 모든 탐구의 길을 닫아야 한다고 한다. 우리가 지켜야 한도를 배울 때에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야 하며, 하나님께서 가르치시기를 그치실 때에는 우리도 더 알려고 하지 말도록 요구한다.77)또 주님께서 비밀로 그대로 두신 것을 억지로, 과도한 호기심을 가지고 밝히려고 해서는 안된다고 한다.78)
결국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관계되며 유익하리라고 예견하신 범위 내에서 계시하기로 결정하셨기 때문에 말씀을 벗어나지 말고 오직 말씀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분만을 찬탄해야 한다고 한다.79)
4.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는 것
칼빈은 신학은 탐구하는 자의 의무는 귀를 즐겁게 하는 자가 아니며, 진실하며, 확실하고 유익한 것을 가르침으로써 우리의 양심을 강화시키는 것이라고 한다.80)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며, 성령님에 의해 인도함을 받는자이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성경 속에 하나님의 위엄이라는 확실한 능력이 살아서 호흡하고 있는 느끼게 하고, 바로 이 힘에 의해서 우리는 의식적으로 또 자발적으로 이끌리고 자극되어 하나님께 순종하되, 어떤 인간의 의지나 지식에 의한 것보다 더 생생하고 더 효과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게 된다고 한다.81)
칼빈은 경박한 호기심으로 영광을 탐구하는 자에 대한 경고를 한다. 우리가 예정에 대한 모는 점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말고, 유식한 무식이 있기 때문에, 알려고 갈망하는 것이 어리석을 뿐만 아니라 위험하고, 심지어 치명적인 일에 대해서는, 우리는 차라리 자진해서 묻지 않는 편이 좋다고 한다. 경박한 호기심이 우리의 마음을 뒤흔들 때, 우리는 그것을 대항하여 억제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한다.82)
특별히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설명에서 칼빈은 신실한 자들은 성경으로 부터 무엇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가를 묻고 배워는 자들이며, 성령의 인도를 받아 그것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자들이며, 동시에 그들은 하나님이 부르시는 곳이면 어디나 기꺼이 따를 준비가 되어 있는 자들이며 이 섭리 교리에 대한 지식보다 더 유익한 것은 없음을 보여줄 자들이라고 한다.83)
V. 칼빈의 신학원리로서 성경의 사용
칼빈은 먼저 성경은 자신의 신학의 유일한 원리(Scriptura est unicum Principium Theologiae)라고 받아들였다. 이것은 앞에서 언급했지만 그의 회심 이후 부패한 로마 카톨릭교회의 비성경적 미신에 대한 강한 대조를 보여 주는 것이다. 이 원리에 근거하여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성경을 잘못된 사용한 경우를 비판하면서, 순수하게 성경의 바르게 사용해야 할 것을 여러 곳에서 언급하였다. 따라서 칼빈 자신이 주장하는 신학의 원리로서 성경을 어떻게 신학논쟁이나, 교리나 교회에 적용했는지를 검토하는 것은 개혁신학의 핵심을 이해한다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먼저 성경을 잘못한 사용을 경우를 살펴본 후에 성경에 대한 올바른 사용이 무엇인지 그리고 칼빈의 신학적 논쟁에서 어떻게 성경을 신학적으로 적용하였는지 살피보고자 한다.
A. 성경의 잘못된 사용법
칼빈은 성경을 잘못 사용하는 자들은 궤변가들, 로마 카톨릭 교회의 신학자들(소르본 학자들), 중세 성경을 벗어난 롬바르트와 같은 교부들, 그리고 세베르투스와 같은 이단자들이라고 한다. 
칼빈은 성경을 잘못 사용하는 근원적인 원인은 성경말씀에서 벗어나서 탈선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벗어난다면, 우리가 아무리 빨리 달려갈지라도 이미 트랙에서 벗어나 있으므로 결코 골인점에 도달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이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는"(딤전 6:16) 분이라고까지 말한 그 하나님의 광채나는 모습은, 우리가 말씀의 라인(verbi linea)에 의해 인도받지 않는 한 우리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미로와 같은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길을 벗어나 최대 속도로 빨리 달리는 것보다는 이 길을 따라 절름거리며 가는 것이 더 낫다.84)
칼빈은 성경을 교회의 헛된 교리에 묶어버려 성경을 잘못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언급한다. 로마 카톨릭 교회처럼 교회의 권위를 성경의 권위보다 더 높게 여기는자와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판단에 굴복시키는 자들은 성경을 바르게 사용하지 못하는 자들이다.85)성경을 다루는 사제들은 무지로 해석을 제대로 못한다고 한다.86)비 성경적 교리를 증명하기 위해 성경을 잘못 사용하는 자들이라고 한다.87)칼빈은 잘못된 신학자들이란 성경을 바르게 다루지 못하는 자들이라고 한다. 칼빈은 Lombard를 잘못된 학자로 자주 비판하는데, 그가 성경의 빛을 보지 못함은 성경을 바르게 다루는 훈련이 없다고 한다.88)또한 소르본느 신학자들은 아무근거 없이 닥치는 대로 성경 귀절을 제시한다고 한다.89)그들은 성경을 잘못 인용한다고 한다.90)이런 사람들은 성경을 하나의 웃음거리로 만드는 자들이라고 한다,91)이런 잘못된 성경의 사용은 성경의 유일한 신학의 원리로 삼지 않았으며, 오직 교회의 권위만을 내세워 성경이 말하는 가르침을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칼빈이 이들의 성경을 잘못사용하게 된 심각한 오류는 성경 해석의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성경의 순수한 가르침을 찾아내지 못했다고 한다. 또 성경을 유일한 신학의 원리 보지 않는 자들이 하나님이 말씀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목적을 위하여 신기한 것을 조작하는데, 이런 자들은 주의 이름으로 모인 무리가 아니라고 한다.92)이런 사람들은 성경을 닥치는 대로 사용하는 성경의 남용자들이라고 한다.93)이런 사람들은 성경을 전체적인 문맥으로 보지 못하고 부분적인 것을 가지고 지나치게 무리한 해석학적인 순환을 시도하는 것이다.94)이들은 성경의 통상적인 사용법과 단어를 모르기에 실수를 한다고 본다. 이들은 성경을 떠나 제멋대로 상상하며하는 자들이라고 한다.95)세베르투스와 같은 사람은 성경에 없는 말을 사용하는 자들이라고 한다.96)그는 부분에서 전체를 추론하는 잘못된 논법을 사용한다고 한다.97)이런 사람들은 말씀과 무관하게 주장하는 자들이라고 한다.98)이렇게 성경을 바르게 사용하지 못한다면 무익한 지식만을 갈망하는 자들로 된다고 경고한다.99)
B. 성경의 바른 사용법
칼빈은 참된 교훈의 시작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기민한 열망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100)그리고 우리가 모든 일을 탐구할 때에 우리를 인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오직 주의 말씀 뿐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며, 바로 이 사고가 우리를 지배해야만 된다고 한다.101)이것은 우리가 신학 함에 있어서 오직 성경만을 의존하는 사상이다.
이렇게 성경만을 의존하는 사상은 잘못된 사상을 대적할 때 하나의 검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로마 카톨릭 신학자들과 같은 대적들과 싸울 때 바로 말씀의 검을 무기로 사용해야 한다고 한다.102)
칼빈은 먼저 성경을 바르게 사용해야 할 이유를 바로 예수님과 사도 바울에서 찾고 있다. 칼빈은 예수 그리스도가 성경을 바르게 사용하여 사탄의 공격을 물리쳤으며, 사도 바울도 우리의 대적에 대해 영적인 검 즉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로마 카톨릭교회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무기를 주지않고 하나님의 학교에서 학교에서 말씀의 훈련을 받지 못해 사탄의 노예가 되었다고 한다.103)
칼빈에 있어서 성경을 바르게 사용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성경을 바르게 해석한다라는 의미이다. 그의 일생에 있어서 가장 큰 사역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의 단순한 의미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전달하는 것이었다. 이 열정을 위해 칼빈은 성경 해석 방법에 있어서 로마서 주석 서문에서 밝힌 간결성과 용이성(brevitas et facilitas)의 방법을 일관되게 그리고 충성스럽게 평생 사용하였다. 
성경말씀은 성령의 감동으로 된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그 저자가 인간이 아니라 성령님이라고 한다. 따라서 해석자는 성령님에게 해석의 주도권을 양도해야 하며 전적으로 그를 의지할 때 말씀을 이해하게 된다고 한다. 우리는 성령의 조명을 받아야 말씀을 깨닫는다고 한다.104)
칼빈에 따르면 성령님은 최고의 교사이다. 따라서 성경은 최고의 교사 즉 성령의 학교이라고 한다.105)하나님의 백성은 성령님을 최고의 교사로 모시면서 성령의 학교인 성경을 배우는 학생이다. 바로 성령님은 성경의 최고의 해석자이기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성과 지혜를 의지하지 말고 전적으로 그 분을 의지할 때 성경을 바르게 사용하게 된다. 성경 해석에 있어서 성령의 의도를 찾아야 한다. 즉 성경 저자의 참된 의도를 찾는 행위이다. 성령의 조명을 위해서는 믿음과 기도가 필요하다고 칼빈은 주장한다.106). 
우리는 성령의 조명으로 말씀을 깨닫는다. 칼빈 해석학에 있어서 성령의 조명은 중요한 신학적 해석 원리이다. 칼빈은 만일 성령이 우리를 이끌어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그리스도께로 갈 수 없다고 한다. 우리의 영혼은 성령의 조명을 받아서 새로운 통찰력을 얻게 되어 하늘의 비밀을 응시하게 된다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눈이 멀었던 우리는 성령이 우리의 내적 교사가 되셔서 조명하여 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에 들어온다고 한다.107)성경을 바르게 사용하는 것은 성경해석을 올바르게 하는 것인데,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는 것이다(scriptura sui ipsius interpres). 바로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는 원리가 올바른 성경의 사용법이다.
성경만을 절대적인 신학의 원리로 사용한 analogia scripturae 또는analogia verbi는 칼빈에게 있어서 자신의 가르침을 견고하게 만들어 주었다. 칼빈은 자신이 가르치는 것은 모든 점에서 성경과 일치하고, 불합리하거나 막연하거나 모호한 점이 전혀 없다고 확신한다.108)이런 그의 주장은 기독교에 속한 모든 것은 성경에 규정되어 포함되었다는 그의 확신에서 나왔다.109)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적인 지성의 외람된 생각 버리고 성경의 교훈만을 굳게 지키는 안전하다고 한다.110)칼빈은 자신의 가르침의 근거를 철저하게 성경에 의존하였으며, 하나의 구절을 더 친숙한 구절로 이해하였으며, 성경에서 제시하는 방법을 따라 자기의 신학적 진술을 증거하였으며, 하나님의 계시를 철저하게 의존하는 방식이었다.111)
칼빈은 성경을 바르게 사용하는 것은 믿음의 유추(analogia fidei)나 믿음의 표준을(regula fidei) 따르는 것이라고 한다. 칼빈은 바울의 말에 따라서 성경을 해석하는 모든 사람들이 지키기를 요구하는(롬 12:3, 6) 믿음의 유추를 주장한다. 믿음의 표준에 따르는 중요성을 언급한다.112)칼빈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진리를 불신자들에게 증명하려고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오직 믿음으로만 이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113)그는 성경을 인간의 이성이 아닌 믿음의 유추에 의해 이해해야 할 것을 말한다. 칼빈에 있어서 믿음의 유추(analogia fidei)혹은 믿음의 분수는 믿음의 분량(proportionem fidei) 또는 믿음의 법칙(the rule of faith)라는 의미와 같다. 그는 롬 12: 6 주석에서 설명을 자세히 한다.114)믿음의 유추를 우리의 모든 존재를 전적으로 하나님에게만 의존하는 것이다. 
C. 신학의 원리로서 성경에 대한 신학적 적용
성경을 신학의 원리로 간주했던 칼빈은 자신의 신학적 논쟁과 교리, 신조, 회의, 그리고 교회에 관련된 신학적 문제에 대한 해석에서 성경만이 유일한 원리이며, 이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보여준다. 
1. 신학적 논쟁
칼빈은 신학적 논쟁의 원인은 진정한 성경적 진리에 대한 믿음을 흔드는데서 시작된다고 보았다. 칼빈은 공격의 주인공으로 사단을 언급하는데 우리의 믿음을 그 뿌리로부터 뽑아버리기 위하여, 삼위일체와 같은 신학적 주제에 대하여 언제나 맹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켜 왔다고 한다. 바로 논쟁의 배후에 있는 사단은 거의 전 세대에 걸쳐 불경건한 자들을 선동하여 이 문제를 가지고 정통주의 교사들을 괴롭혔다고 한다.115)칼빈은 강팍하고 논쟁적인 대적들과 싸움을 피하려고 했으나 진리를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신학적 논쟁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칼빈이 대적들과 논쟁에서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매우 신중하게 성경의 감추인 비밀들에게 접급해야 할것을 당부하며, 항상 우리의 생각이나 지혜가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가 허락하지 않는 한계를 넘어서지 않도록 경고한다.116)
칼빈은 잘못된 신학적 문제들에 대해 논의가 필요할 경우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성경이 분명히 제시하고 있으므로 자기 자신의 주장의 말보다 성경 말씀을 인용해서 주장을 세웠다.117)신학적 논쟁을 다루는 방법에 있어서 어떤 인간의 문헌을 의존하지 않고 제일 먼저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서 성경적 근거를 찾는 모습을 보여준다.
신학적 논쟁에 있어서 사람들은 자기들의 주장을 위하여 성경에서 가져오지만 칼빈에 의하면 실제 그들은 성경 말씀을 잘못 사용하며, 성경 해석도 왜곡한다고 보았다.118)칼빈은 논쟁을 통하여 성경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세우려 애쓰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고 했다.119)칼빈은 신학적 논쟁점들에 대해 올바른 해결책은 바로 성경을 명료하고 단순하게 해석하는 일로 본다.120)
2. 교리와 신조 그리고 회의
교리와 성경의 관계에 대하여 박윤선 박사는 성경을 교리와 동일시해서는 안되며, 성경은 교리의 표준이며, 정당한 교리의 원천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성경에 부합한 교리를 우리가 받아들이되 교회가 성경적 근거없이 교리를 만들거나 배척할 독자적 권세를 가지지 못한다고 한다.121)
바빙크는 신앙고백이 성경의 유일한 권위와 양심의 자유를 헤치며 지식의 성장을 저해한다는 저항파의 주장을 반대하며, 신앙 고백이나 신조들이 성경을 뒤로 밀어놓어서도 안된다고 한다.122)우리는 신앙 고백이나 신조나 교리들이 성경을 이해하는데 바른 도구의 역할을 한다면 그 효능이 유익할 것이며, 그 사용과 한도에 있어서 오직 성경만이 최고의 표준으로 하고 모든 신조들과 교리들과 교회의 회의들을 검증하는 성경만을 유일한 원리로서 언제나 받아들여진다면 기독교 신학을 세우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바빙크는 그의 책<개혁교의학>에 서론 가운데 교의학의 방법과 조직을 다룰때 성경만이(Scripture alone) 믿음과 삶의 표준이며 규범(norma et regula fidei et vitae)이라고 한다. 모든 교리와 고백서들이 성경과 일치할 때 믿을만 하다고 한다.123)
칼빈은 모든 교리와 신조는 성경의 규정에 따라서(ad normam Scripturae) 판단되어져야 한다고 한다. 예를 들면 칼빈은 그의 책<영혼의 수면에 대하여(Psychopannychia)>에서 자신은 영혼이 사후에 존재하는 중간 상태는 영혼이 의식적 상태라는 것을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 가르치는 대로 그리고 성경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지고 주장한다.124)교리가 하나님의 말씀의 규정(by the norm of Scripture)에 의거하지 못한 로마교회의 잘못된 교리를 칼빈은 자주 비판한다. 우리의 요구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해야 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구하기를 원하시는 바를 규정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결정하실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율법이나 복음에는 죽은 사람을 위한 기도를 허락하는 말씀이 한 군데도 없다고 한다. 125)
교리에 대한 판단을 시도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해석하는가 였다. 교회와 교황이 해석의 주장자가 아니라 칼빈은 성경을 해석할 때 성령의 분별을 더해야 한다고 하면서, 신실한 사람들은 모든 교리를 그들의 인도자요 안내자로 성령님과 함께 성경을 따라서(according to the Scriptures) 판단해야지 성경 밖에서(out of) 다른 것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126)
칼빈은 신학의 원리로서 말씀에 근거한 진정한 합법적 회의와 말씀을 무시한 회의에 대하여 말한다. 먼저 칼빈은 회의에 대한 정당한 권위는 그리스도의 약속에서 분명히 나타난다고 한다. 많은 회의들이 기독교 안에 있었지만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감독이 많이 모인 회의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계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는 회의라야 진정한 것이라고 한다. 회의는 반드시 다른 사람이 믿을 수 있는 성경적 증명을 해야 한다고 한다. 칼빈은 하나님의 말씀에 가감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결정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자들, 그리고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 즉 완전한 지혜와 유일한 표준으로 만족하지 않고(qui non contenti Scripturae oraculis, hoc est unica perfectae sapientiae regula,) 자기 두뇌에 의해 신기한 것을 조작하는 자들은 주의 이름으로 모인 것이 아니라고 한다.127)
칼빈은 참된 회의의 표준은 하나이다. 즉 모든 것을 복종시키는 표준을 성경이라고 한다.128)특히 회의들이 서로 일치하지 않을 때 판단하는 확실한 원칙이 바로 성경이라고 한다. 성경 전체를 곡해하는 회의는 정당성를 갖지 못하지만 성경만을 표준으로 회의만이 합법적이라고 본다. 이런 기준에 근거하여 칼빈은 칼세돈 회의는 정당성을 인정하지만 제2차 에베소 회의를 배척한다.129)
3. 교회의 모든 가르침
칼빈은 교회의 모든 것을 성경이 가르치는 것에 근거해서만 통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130)칼빈은 하나님의 권위를 근거로 성경에서 이끌어 낸 법들, 곧 인간이 만들었지만 하나님에게서 온 법들만을 인정하다고 한다.131)칼빈은 오직 성경에 기초한 교리와 신학을 통하여 교회를 개혁하려고 했다고 주장한다.132)
칼빈은 성경을 원리로 사용해야 할 교회가 해석의 독재를 하며,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교회가 성경을 승인하는 권리를 갖는다고 가르치는 잘못된 교리에 대하여 비판을 한다. 교회가 내린 해석이 옳은가를 문제로 삼는 것을 불법이라고 주장한 로마 카톨릭교회에 대해 칼빈은 거부한다. 칼빈은 성경을 승인하는 권리에 대한 그들의 가르침을 무시한다고 한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판단에 굴복시키며 하나님의 말씀의 타당성을 사람의 변덕에 의존하게 만든다는 것은 입에 담을 수 없는 모독이라고 한다. 133)
칼빈은 로마 카톨릭 교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다른 어느 곳에서 그들의 수위권과 같은 자신들의 교리를 주장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서 그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비판한다.134)칼빈은 교회에서 원칙을 세워야 할 것은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거나 교회 내에서 자리를 내주지 말아야 하며, 교회 내에서 인정된 교수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지시와 표준을(the prescription and standard of his Word.) 따르는 것이라고 한다.135)
칼빈은 만일 교회가 가르치는 것과 명령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만을 근거로 한 교회의 합의로 만들 것이라면 아무도 그것을 멸시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그러나 교회는 성경이 없는 새로운 교리를 만들어 내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또 주의 말씀에 계시되지 않은 것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가르치며 주장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고 한다. 136)
VI. 결론
종교개혁자들의 후예라고 자처하는 수 많은 신학자들이 종교개혁의 진정한 유산이 오직성경(sola scriptura)이라고 모두가 인정하지만 진정 칼빈처럼 자신의 참된 신학의 원리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모든 학문적 탐구의 영역에서 충성스럽게 사용했던 신학자는 많지 않다. 칼빈 탄생 500 주념을 일년 앞두고 모두가 칼빈이 이룩한 것들의 위대함을 극찬하지만, 진정 칼빈을 칼빈으로 이해하는 것은 그가 성경을 자신의 신학의 유일한 원리로(unicum principium theologiae) 삼아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석한 성경의 제자였다라는 것이다. 
한 세기가 막 지난 한국교회가 이제 무너지기 시작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최근 한국교회가 세속화을 벗어나 성경으로 돌아가야 할 것을 선언하고 이런 방향으로 연구가 진행되는 것은 하나의 소중한 희망이다. 
이런 희망적 사역을 위하여 칼빈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성경을 오늘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살아있는 음성으로 듣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우리가 공손히 받아드리며, 칼빈이 사용했던 성경적 원리들을 따르며 더욱더 발전시켜 나갈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한국교회가 가는 길의 등불이요, 성경 말씀은 한국 사회의 어두움을 몰아내고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는 햇빛이다. 
칼빈 자신을 말을 다시 한번 기억해 보자. 우리는 월등한 유익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며, 자신의 한계를 잘 지켜서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으로, 즉 성경의 제자가 되지 않고는 아무도 참되고 건전한 교리를 극히 일부분도 얻을 수 없다고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이 성경에서 자신에 대하여 증거하신 것을 경건한 마음과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참된 이해의 시초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완전하고 모든 면에서 원만한 신앙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일체의 올바른 지식은 다 순종에서 나온다고 한다.137)
칼빈이 사랑했던 성경 즉 하나님의 말씀은 그의 신학의 유일한 원리였다. 자신의 모든 것들을 이 성경원리로 검증했으며, 모든 신학의 주제들을 이것으로 평가하였다. 오늘 이 시대에도 우리는 신학의 원리로서 성경을 근거로 바른 신학, 바른 교회, 바른 기독교 세계관을 발전시키고 그리고 바른 기독교인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1) 루터의 성경 연구에 대한 참고문헌으로안명준, "존 칼빈의 신학적 해석학: scriptura sui ipsiu interpres원리를 사용한 brevitas et facilitas방법론," 『장로교회와 신학』, 1 (2004): 167-10; A. Skevington Wood, Luther's Principles of Biblical Interpretation (London: The Tyndale Press, 1960), 6; A. E. McGrath, "Luther," in A Dictionary of Biblical Interpretation, ed. R. J. Coggins and J. L. Houlden (London: SCM Press, 1990), 415; Paul Althaus, The Theology of Martin Luther, trans., Robert S. Schultz (Philadelphia: Fortress, 1989), 3; David W. Lotz, "Sola Scriptura: Luther on Biblical Authority," Interpretation35 (1981): 258-73.
2) John Murray, Collected Writings of John Murray, Vol. 1, The Claims of Truth(Edinburgh: The Banner of Truth Trust. 1976), 3.
3) 이종윤, "장로교 정체성 회복을 위하여," 『장로교회와 신학』,1 (2004).10.
4) John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1559), Trans., Ford Lewis Battle (Grand Rapids: Eerdmans, 1960). 이후로 Inst., 표기한다.
5)John T. McNeill, "The Significance of the Word of God for Calvin," Church History28 (1959): 131.
6) J. I. Packer, "Sola Scripturain History and Today," in God's Inerrant Word, ed. John Warwick Montgomery (Minneapolis: Bethany, 1974), 43. 
7) Inst., 3. 23. 3. OS IV. 396. 27. "Tacendo potest Deus ita compescere hostes suos. Sed ne illos sacrum nomen suum impune ludibrio habere patiamur, armaquoque adversus eos nobis ex verbo suo suppeditat."H. Bavinck,Gereformeerde Dogmatiek, Bd. 1, (Kampen: J. H. Kok, 1928), 449. "Inderdaad hebben de kerken der Hervorming tegenover Rome geen machtiger wapen dan de Schrift."
8) 물론 로마 카톨릭 교회도 성경의 권위를 받아들였지만 성경을 교회 다음에 두었다. Cf. C. J. Wethmar,Dogma en Verstaanshorison: 'n Histories-sistematiese ondersoek in verband met die hermeneutiese funksie van die kerklike dogma met besondere verwysing na die teologie van Gerhard Ebeling(Amsterdam: Rodopi, 1977), 177. "Die Rooms-Katholieke kerk wil die Skrifgesag aan kie kerk bind deur die uitleg van die Skrif as prerogatief van die kerklike oorlewering daarvan voor te behou. Aan die kerklike tradisie word, ten opsigte van die Heilige Skrif, sowel 'n interpretatiewe as 'n aanvullingsfunksie toegeken."
9) J. I. Packer, "Sola Scripturain History and Today," 48-9.
10) David W. Lotz, "Sola Scriptura: Luther on Biblical Authority," 258-73.
11) Bernhard Lohse,Martin Luther: An Introduction to His Life and Work, ed. Robet C. Schultz (Philadelphia: Fortress, 1986),47-8.Cf. Martin Brecht, Martin Luther: His Road to Reformation 1483-1521, trans. James L. Schaaf (Minneapolis: Fortress Press, 1981), 299-348; WA 2. 282, quoted in A. Skevington Wood, Captive to the Word: Martin Luther, Doctor of Sacred Scripture(Grand Rapid: Eerdmans, 1969), 70.
12) 지원용, 『루터의 사상』(서울: 컨콜디아사, 1991), 119-131.
13) David W. Lotz, "Sola Scriptura: Luther on Biblical Authority,"260.
14) Richard A. Muller, Post-Reformed Dogmatics,vol. 2, Holy Scripture: The Cognitive Foundation of Theology (Grand Rapids: Baker, 1993), 55. 
15) 맥그래스, 『종교개혁사상』(서울: CLC, 2006), 239.
16) Ibid.
17) 맥그래스, 『종교개혁사상』, 242.
18) John Murray, "Calvin's Doctrine of Scripture," Collected Writings of John Murray, Vol. 4, Studies in Theology(Edinburgh: Banner of Truth, 1982), 163.
19) 신복윤, 『칼빈의 하나님중심의 신학』(수원: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2005), 30.
20) OS III. 70. 26. "hominum ministerio, ab ipsissimo Dei ore ad nos fluxisse."
21) Inst., 1. 8. 13. "But those who wish to prove to unbelievers thatScripture is the Word of Godare acting foolishly, for only by faith can this be known." OS III.81,29, "Sed inepte faciunt qui probari volunt infidelibus, Scripturam esse verbum Dei." 참고로 Wilhelm H. Neuser, ed., " Calvins Verstandnis der Heiligen Schrift," in Calvinus Sacrae Scripturae professor: Calvin as Confessor of Holy Scripture (Grand Rapids: Eerdmans, 1994), 53-54. Richard A. Muller, Post-Reformed Dogmatics, vol. 2, Holy Scripture: The Cognitive Foundation of Theology, 62. 멀러는 Warfield, Dowey, Gerrish, Kantzer, Johnson 그리고 Forstman들과 같은 학자들의 연구는 축자적 영감론으로 이해된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적 활동에 근거하여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는 후기 개혁파를 칼빈의 연속성에서 보지만, Doumergue, Niesel, Reid, McNeill과 같은 학자들은 칼빈이 역동적인 성경관을 가르킨다고 하는데, 성경이 그리스도의 계시가 될 때만 그리스도만이 참된 말씀이며, 성경이 말씀이라고 본다. 성경과 하나님의 말씀과의 완전 일치에 관한 논의를 위해 박완철, " 말씀과 경험의 통합 관점에서 본 존 칼빈의 신학," 『개혁주의 설교의 원리』(수원: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2007), 31-67.
22) Inst., 1. 13. 21.
23) 바빙크, 『개혁교의학 개요』, 원광연 옮김 (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 2004), 143
24)John H. Leith, "John Calvin. Theologian of the Bible," Interpretation 25 (1971): 330
25) First we affirm that we desire to follow Scripture alone as rule of faith and religion, without mixing with it any other thing which might be devised by the opinion of men apart from the Word of God, and without wishing to accept for our spiritual government any other doctrine than what is conveyed to us by the same Word without addition or diminution, according to the command of our Lord. The Genevan Confession (1536), in Calvin: Theological Treatises, The Library of Christian Classics, trans., J. K. L. Reid (Philadelphia: The Westminster Press, 1954), 26.
26)Ronald S. Wallace, "Calvin the Expositor," Christian Today18 (1964): 9.
27) 신복윤, 『칼빈의 하나님 중심의 신학』,68. 칼빈의 성경중심의 신학원리 후대 개혁파 신앙고백서에 나타나는데 특별히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는 종교상의 논쟁, 회의, 교리에서 있어서 궁극적으로 성경에 호소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성경은 모든 문제에 있어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는안내서이며, 우리의 삶 즉 윤리 문제에 열쇠이다. . . 그리고 그 말씀은 우리가 삶의 방식을 살아가는 필요한 원리를 제공하는 원천이다. 참고로, 안명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신학적 윤리학,“ 『조직신학연구』, 8 (2005): 293-315.
28) Inst., 1. 9. 1.
29) Inst., 1. 9. 1.
30) Inst., 1. 9. 2.
31) Inst., 1. 13. 3. "petenda certa ex Scripturis et cogitandi et loquendi regula, ad quam et mentis cogitationes omnes et oris verba exigantur."
32) 안명준, "칼빈 신학방법론의 길잡이: 기독교 강요의 이해를 위한 칼빈의 신학적 전제 요소들," 『조직신학연구』,제 10호 (2008), 17-21.
33) 칼빈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성경과 성경의 권위에 관한 논의를 위해서 최근의 귀중한 논문은 이승구, “칼빈과 성경의 권위,” 『칼빈과 성경』(부산: 고신대학교 개혁주의학술원: 2008). 여기서 다루는 내용은 칼빈은 성경에 대한 최고의 존중을 교리 문제에서, 교회문제에서, 예배문제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규범에서 온전하게 잘 드러내었다고 주장한다. 
34)Comm. on Acts17:11. "they did only examine Paul’'s doctrine by the rule and square of theScripture, even as gold is tried in the fire; for the Scripture is the true touchstone whereby all doctrines must be tried."
35) H. Bavinck, Reformed Dogmatics, Vol, 1 (Grand Rapids: Baker, 2003), 87.
36) Ibid.
37) 박윤선, 『개혁주의 교의학』, 67-68.
38) 박윤선, 『개혁주의 교의학』, 67. Paul Tillich, Systematic Theology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67), 36
39) Inst., 4. 9. 2. "qui non contenti Scripturae oraculis, hoc est unica perfectae sapientiae regula, de suo capite novum aliquid comminiscuntur."
40) Inst., 3,21,2 "Haec cogitatio si apud nos valeat, verbum Domini unicam esse viam quae ad investigandum quicquid de eo teneri fas est nos deducat, unicum esse lumen quod ad perspiciendum quicquid de ipso conspici oportet nobis praeluceat"
41) Inst., 1. 6. 1.
42) Inst.,2. 2. 11. 여기서 칼빈은 성경이란 신실한 거울에 비추어 보아 자신을 올바르게 인식하기를 요구한다(약 1:22-25).
43) Inst., 2. 8. 58. 칼빈은 성경이라는 거룩한 저울을 가지고 나와 그 저울로 어느 것이 더 중한 죄인가를 달아보아야 한다고 한다.
44) Inst., 1. 6. 3.
45) Inst., 1. 6. 2. 
46) Inst., 1. 6. 4.
47) Inst., 3. 21. 3. 
48) Inst., 1. 2. 1.
49) Inst., 1. 6. 1.
50)Inst., 1. 6. 4. "Nam quum humana mens pro sua imbecillitate pervenire ad Deum nullo modo queat nisi sacro eius verbo adiuta et sublevata, omnes tunc mortales, exceptis Iudaeis, quia Deum sine verbo quaerebant, necesse fuit in vanitate atque errore versari."
51) Inst., 1. 14. 1.
52)Inst.,1. 6. 1.
53)Inst., 1. 6. 2.
54) CO 9. 823; John H. Leith, "Calvin's Theological Method and the Ambiguity in His Theology," In Franklin H. Littell, ed., Reformation Studies: Essays in Honor of Roland H. Bainton(Richmond: John Knox Press, 1962), 111.
55) Inst., 1. 6. 2.
56)Comm. on John5: 39. "Again, we are taught by this passage, that if we wish to obtain the knowledge of Christ, we must seek it from the Scriptures; . . .First, then, we ought to believe thatChrist cannot be properly known in any other way than from the Scriptures; and if it be so, itfollows that we ought to read the Scriptures with the express design of finding Christ in them".Cf.Comm. on Rom. 10; 4. 
57) Ford Lewis Battles, "Introductio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1536) (Grand Rapids: Eerdmans, 1975), xxviii.
58) "Calvin's Farewell to the Ministers of Geneva, On Friday, April 28, 1564," In Selected Works of John Calvin: Tracts and Letters, eds., Henry Beveridge and Jules Bonnet (Grand Rapids: Baker, 1983), 375.
59) 사무엘 던, 『요한 칼빈의 신학진수』, 김득용 옮김 (서울: 성광문화사, 1992 ), 13.
60) Inst., 1. 7. 1.
61) 사무엘 던, 『요한 칼빈의 신학진수』, 13
62) Inst., 1. 8. 1.
63) Inst., 1. 7. 1.
64) Inst., 1, 6, 4. OS III. 64.20. "hanc esse peculiarem filiorum Dei scholam."
65) Inst., 3. 2. 34. 
66) Inst., 1. 6. 2. 고광필, "분명하고 자연스러운 성경의 의미," 『개혁주의 신학 연구논문』,1집 (2000), 23.
67) Inst., 1. 13. 21. 
68) Inst., 4. 20. 25.
69) Inst., 1. 6. 2, Inst., 3. 3. 5.
70) Inst., 1. 13. 21. 
71) Inst., 3. 21. 3.
72) Inst., 3. 21. 2.
73) Inst., 3. 21. 2.
74)Inst., 3. 2. 4. "Nos vero fidem, quandiu in mundo peregrinamur, implicitam esse concedimus,non solum quia nos multa adhuc latent: sed quia multis errorum nebulis circundati, non omniaassequimur". Battles는 다음과 같이 번역한다. "We certainly admit that so long as we dwell asstrangers in the world there is such a thing as implicit faith" 이 번역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로마 카톨릭 교회가 맹목적인 신앙 말하는 implicit faith와 오해의 소지가 보인다. 따라서 다음의 번역이 좋을 듯하다. Insi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trans., Henry Beveridge (Grand Rapids: Eerdmans, 1981)."We grant, indeed, that so long as we are pilgrims in the world faith is implicit, not only becauseas yet many things are hidden from us, but because, involved in the mists of error, we attain not toall."
75) Inst., 3. 2. 4.
76) Inst., 3. 21. 2. 
77) Inst., 3. 21. 3.
78) Inst., 3. 21. 4.
79) Inst., 3. 21. 1.
80) Inst., 1. 14. 4. "Theologo autem non garriendo aures oblectare, sed vera, certa, utilia docendo,conscientias confirm!!are propositum est. Si librum illum legas, putes hominem de caelo"
81) Inst., 1. 7. 5.
82) Inst., 3. 21. 2.
83) Inst., 1. 17. 3."Quin potius ex Scriptura, quid Deo placeat inquirent ac discent, ut Spiritu duce illuc nitantur: simul Deum quocunque vocat sequi parati, re ipsa ostendent nihil huius doctrinae cognitione esse utilius."
84) Inst., 1. 6. 3. "Ab eo si deflectimus, ut nuper dixi, quamlibet strenua enitamur celeritate, quiatamen extra viam cursus erit, nunquam ad metam pertingere continget. Sic enim cogitandum est:fulgorem divini vultus, quem et Apostolus inaccessum vocat , esse nobis instar inexplicabilislabyrinthi, nisi verbi linea in ipsum dirigamur; ut satius sit in hac via claudicare quam extra eam celerrime currere."
85) Inst.,4. 9. 14.
86) Inst., 4. 5. 5.
87) Inst., 3. 15. 4. 
88) Inst., 3. 15. 7.
89) Inst. 3. 18. 9.
90) Inst. 3. 18. 10.
91) Inst.,4. 9. 9.
92) Inst., 4. 9. 2. 
93) Inst., 4 16. 10.
94) Inst., 4. 17. 8.
95) Inst., 4. 17. 36. Inst., 4. 19. 17.
96) Inst., 4. 16. 31.
97) Inst., 4. 16. 31.
98) Inst.,1. 13. 31, Inst.,3. 20. 24.
99) Inst.,3. 25. 11.
100) Inst.,1. 7. 5.
101) Inst., 3. 21. 2.
102) Inst., 3. 23. 3 
103) 사무엘 던, 『요한 칼빈의 신학진수』, 19. "그리스도가 그의 방패로 성경을 사용한 것은 주목 할 만한 일이다. 우리가 승리를 얻기 원한다면, 이것이야 말로 올바른 싸움의 방법이 된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영적인 검이라 부르고 우리에게 믿음의 방패로 무장하라고 한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카톨릭교도들이 성경의 발매를 금지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유일하게 그들의 구원을 옹호할 수 있는 무기를 빼앗았을 때, 마치 그들이 사탄과 언약한 것인양 우리의 영혼을 사탄의 처분대로 멸망 당하도록 했을을 알 수 있다. 그들에게서 이 무기를 빼앗고 매일 하나님의 학교에서 훈련받지 않는 그들은 매순간 사탄의 노에가 될 말하며 사탄에게 무장하지 않은 자신을 팔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진실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그의 말씀에 대한 모욕과 태만함을 처벌하신다는 이유 외에 사탄이 아무거리낌 없이 모든 곳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유혹하는 다른 이유는 없다."
104) Inst., 3. 2. 4, Inst., 3. 2. 36. 
105) Inst., 4. 17. 36. 
106) 성경 해석에 있어서 성령의 조명에 대한 연구로 안명준, 칼빈의 성서해석학에 사용된 성령의 조명," 『칼빈 신학 해설』(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8), 91-105; "칼빈의 신학적 해석학," 『신학적 해석학』, 상 (서울: 이컴비즈넷, 2005), 212-249.
107) Inst., 3. 2. 34.
108) Inst., 4. 17. 19.
109) Inst., 4. 19. 9.
110) Inst., 4. 18. 12.
111)analogia scripturae에 관한 이해를 위하여 안명준, 칼빈 신학방법론의 길잡이: 기독교 강요의 이해를 위한 칼빈의 신학적 전제 요소들,", 21-23.
112) Inst., 4. 17. 32.
113) Inst., 1. 8. 13. "Sed inepte faciunt qui probari volunt infidelibus, Scripturam esse verbum Dei. quod nisi fide, cognosci nequit."
114) 안명준, "칼빈 신학방법론의 길잡이: 기독교 강요의 이해를 위한 칼빈의 신학적 전제 요소들," 25-27. "칼빈에 따른 믿음 분수(analogia fidei)는 우리의 모든 존재가 하나님에게 의존하고 있으며, 우리의 덕과 선이 우리에게 없으며, 우리는 죄의 노예이며, 장님이며, 절름발이로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 할 약한 존재이며, 우리의 자랑과 공로를 제거하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는 것인데 바로 이런 것들은 신앙과 일치(fidei convenientius)하는 것이라고 한다. 공로가 되는 선행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는 것이 신앙에 적합하고, 신앙에 일치하는 것이라고 한다."
115) Inst., 1. 13. 21.
116) Inst., 1. 13. 21.
117) Inst., 3. 14. 6.
118) Inst., 3. 15. 4.
119) Inst., 1. 7. 4.
120) Inst., 4. 1. 6.
121) 박윤선, 『개혁주의 교리학』(서울: 영음사, 2003), 13.
122) 바빙크 『개혁교의학 개요』, 137.
123) H. Bavinck, Reformed Dogmatics, Vol. 1, 86.
124) 이승구, "칼빈과 성경의 권위," 43. 
125) Inst., 3. 5. 10. 
126) Comm. on Acts 17:11. "If any man say that this kind of trial is doubtful, for as much as the Scripture is oftentimes doubtful, and is interpreted divers ways, I say, that we must also add judgment of the Spirit, who is, not without cause, called the Spirit of discretion, [discernment.] But the faithful must judge of every doctrine no otherwise then out of, and according to, the Scriptures, having the Spirit for their leader and guide."
127) Inst., 4. 9. 2.
128) Inst., 4. 9. 8.
129) Inst., 4. 9. 9. 
130) 이승구, "칼빈과 성경의 권위," 46-54.
131) Inst., 4. 9. 30. 
132) 오덕교, "장로교회의 원리: 역사적, 신학적 고찰," 『장로교회와 신학』,1 (2004): 55-57.
133) Inst., 4. 9. 14.
134) Inst., 4. 6. 15.
135) Inst., 4. 8. 8.
136) Inst., 4. 4. 1.
137) Inst., 1. 6.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