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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칼럼

칼빈 500주년을 즈음하여....

칼빈 500주년을 즈음하여....

노승수 목사 

서양사에서 근대의 발전은 지리상의 발견과 맞물려 있다. 그런데 이 지리상의 발견이 식재료 그 중에서도 향신료 때문이었다는 사실은 실소를 자아낸다. 중세 봉건 사회의 영주들은 자신의 지위와 권세를 뽐내기 위해 후추와 같은 향신료를 음식에 많이 뿌렸고, 그 가격은 유럽 사회에서 천정부지였다고 한다. 중세 사회가 얼마나 허영과 사치 그리고 부패로 만연했었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저마다 후추를 찾아 바다로 나섰고, 그 결과, 신대륙, 인도등의 지리상의 발견이 이루어졌다. 
뿐만 아니라 이런 산업적 면모들은 중세의 봉건적 질서를 붕괴하도록 촉진했다. 중세의 질서는 토지를 중심한 질서였다. 경제 역시 토지를 중심한 지배 구조가 고착화 되어 있었다. 토지의 주인인 봉건 영주와 그 토지에서 소작을 하는 농노로 이루어진 단순한 지배구조였다. 그러나 향신료를 찾는 여행들은 상업과 공업의 발전을 가져왔다. 동양의 신문물이 들어오고 상거래가 활발해지면서, 기존의 왕, 봉건영주, 농노의 사회구조는 변화를 맞게 된다. 소위 부르주아즈의 출현이 그것이다. 
게다가 로마카톨릭의 부패로 인한 종교개혁은 부르주아즈에게 이념적 정당성을 안겨준다. 당시 절대다수의 도시 상공인은 개신교 신앙으로 개종한 사람들이었다. 일례로 영국의 산업혁명은 프랑스의 위그노 대학살인 바르톨로뮤 대학살이 그 배경이 된다. 영국은 산업혁명전 2-30여년 전만해도 프랑스에 비해 산업적으로 현격하게 뒤쳐진 나라였다. 왕위 서열에 앞서 있던 나바르는 -훗날의 앙리 4세- 개신교 신자였다. 그는 카톨릭 신자였던 마르그리트와 결혼하게 되는데, -"여왕 마고"라는 영화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프랑스 개신교도들인 위그노들은 이 결혼식이 자신들의 신앙의 자유를 가져다 줄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기대와는 정반대로, 결혼식장이 프랑스 개신교도들의 대학살인 바르톨로뮤 대학살의 장이 된다. 그 결과 프랑스 내 위그노들은 대량으로 해외 이주를 하게 된다. 학자들은 이 이주가 영국 산업 혁명의 결정적 이유가 된다고 한다. 
아무튼, 지리상의 발견은 여러가지 변화를 가져왔고, 근대 국가의 탄생을 가져왔다. 왕은 더 이상 봉건 영주와 로마 카톨릭 교황의 눈치를 보지 않으면서도, 자신을 경제적으로 후원할 수 있는 든든한 백그라운드인 부르주아즈를 얻었고, 부르주아들은 영주들의 간섭 없이 보다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외연의 발달에는 종교개혁이라는 정신적 측면이 매우 강하게 작용했다. 당시 유럽 사회는 기독교 문화였고, 이런 산업 발달을 뒷받침할 사상적 구조가 필요했다. 사실 외연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종교적 결속으로 인해, 이와 같은 종교개혁사상이 아니었다면, 실제적 변화는 아마도 불가능했거나 다른 방향으로 흘렀을 것이다. 그런데, 그 역할을 종교개혁이 한 것이다. 루터가 직업이 하늘의 소명이라는 이야기를 함으로 절대 다수의 도시 상공인들은 개신교 신앙을 택한다. 당시 기득권의 만연한 부패와는 달리 개신교 신앙의 금욕적 삶은 자본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독일의 사회학자 베버는 6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학자라고들 한다. 그의 저서 "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주의 정신"은 이런 사회적 맥락을 가지고 있다. 
같은 자본주의 국가들 중에서도 사회적 책임과 복지적 성격을 강하게 가진 나라들은 지금도 역시 대부분 북유럽이 국가들이다. 북유럽 국가들의 공통적 특징은 종교개혁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종교적 국가들이라는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독일 모든 시민은 종교세라는 걸 낸다. 그리고 이 종교세로 독일 교회의 목사들의 월급이 나가고, 교회가 유지된다. 이들은 돈을 벌지만 자신의 사회적 책무를 등한히 하지 않는다. 많이 벌면 많이 세금을 내는 것을 당연시 생각한다. 얼마전 신문에도 나지 않았던가? 독일 정부가 아니라 독일 고소득자들이 스스로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일이 외신-獨 부자들 "우리들이 세금 더 내자"(한국일보 5월 21일자)-에 났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도 같은 맥락이다. 이는 불어인 Noble(귀족)과 Obliger(준수하다)의 합성어로서 19세기 초 프랑스의 정치가인 가스통 피에르 마르크(1764-1830)가 처음 사용한 말인데,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지도자층의 도덕적 사회적 책임을 말한다. 즉 사회적으로 우위에 있는 사람들이 지켜야 하는 의무와 역할이라는 의미이다. 북유럽의 자본주의국가들은 이런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이 투철하다. 즉, 하나님이 자신에게 많은 재물을 맡긴 것은 그 만큼의 책임이 있기 때문이라는 기독교 정신의 발화이다. 이는 다 종교개혁의 정신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이에 반해, 한국의 자본주의를 천민자본주의라고 하는 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제가 어려운 시점에 정부는 대규모의 부자 감세를 했다. 경기 부양을 위해서 수십조의 재정을 사용했고, 그 재정악화를 우려해서 비교적 조세저항이 적은 간접세를 절대 다수의 서민들에게서 거둬들일 갖은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이것은 엄연한 부조리임에도 우리 사회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통용된다. 부자들 스스로도 세금을 응당의 의무라 생각지 않고, 나가지 않아도 될 돈을 뜯기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자본주의는 프로테스탄트 정신을 제대로 이어받지 못했다. 이 말은 뒤집으면 한국교회가 바로 종교개혁의 정신을 제대로 계승하지 못했고, 천박한 기독교로 전락했다는 말이 된다. 교회 안팎에는 교회를 향한 비난의 소리가 높다. 이 비난은 교회가 가진 교리 때문이 아니라 교회가 가진 거룩성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맘몬(돈)을 신으로 섬기는 교회의 천박성에서 기인한다. 
오늘은 칼빈 선생이 탄생한 지 500주년이 되는 날이다. 만약 칼빈과 루터가 살아서 한국교회에 돌아온다면, 뭐라고 말할까? 오늘날 한국개신교회는 종교개혁 당시의 로마카톨릭의 면모를 그대로 갖추고 있다. 면죄부를 팔았던 당시 교회처럼 신앙의 이름으로 세상의 축복을 약속한다. 믿음에서 거룩한 삶은 내팽개침으로 거룩한 삶이 없는 기독교인들을 양산해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적 체험은 하지만 그것이 거룩한 삶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중세가 스테인그라스와 신비로운 찬송에 열을 올렸던 것처럼 오늘날의 교회들도 분위기와 자신의 삶과 전혀 다른 가사를 자신의 감정에 심취해서 불러댄다. 칼빈에게 있어서 믿음은 단순한 지식 그 이상이었다. 자신의 심장을 주님께 드리는 일이었다. 이런 한국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종교개혁자들은 정말 어떠 말을 할까? 칼빈 500주년을 맞아 갖은 행사에 열을 올릴 것이 아니라 그 종교개혁의 참된 정신을 한국교회가 이어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賤民資本主義[독, Pariakapitalismus]
(상략)이와 같이 베버는 근대 이전의 자본주의를 근대자본주의와 엄격히 구분하여 비합리적 자본주의, 정치기생적 자본주의 등으로 불렀는데 천민자본주의도 이러한 표현의 하나이다. 베버가 이 기묘한 표현을 쓰면서 염두에 두었던 것은 중세에 ‘천민민족 Pariavolk’으로 불리며 주로 상업, 금융업에 종사했던 유태인이었지만, 보통은 근대 이전의 낡은 자본주의의 특징을 가리키는 말로서 사용되고 있다. ‘천민’이라는 표현이 붙은 것은 중세의 상인금융업자가 일반적으로 특수한 신분을 형성했으며 그 직업이 종교적, 도덕적으로 천하게 여겨졌었기 때문이다. 이 용어는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용어로서 사용되지는 못하고 있으며 특히 자본주의를 시대를 초월한 현상으로 보는 입장에 대해서는 많은 비판이 가해지고 있다.(경제학 사전, 풀빛편집부 편, 조용범/박현채 감수) 간단히 말하면, 천민자본주의란 프로테스탄티즘으로 대표되는 도덕성과 윤리 의식이 결여된 자본주의의 타락한 형태를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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