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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칼럼

탁월함과 열등감의 함정

모든 교만에는 탁월함이 내포되어 있다. 탁월함이 없는 교만은 찾기 어렵다. 만약 찾는다면 약간 다른 형태를 취하는데 열등감으로 드러난다. 열등감이란 원래 자기 분수 이상의 것을 생각함에 그 기원을 둔다. 역시 자기보다 높은 자리를 넘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어깃장을 놓게 된다. 여기서부터는 탁월함을 동반한 경우나 열등감의 경우가 같은 행동으로 나타난다. 바로 거친 행동이다. 여기서 거칠다는 말은 "무시" "제껴버림" "휘두름" "얼름" "압박" "신경질을 부리는 것" 등의 다양한 형태로 자기 탁월함이나 열등감을 다른 사람을 압박하는 주요한 동기로 사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단번에 다른 사람의 말을 이해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타인이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예민한 신경질을 부린다. 예배에 탁월함 감각을 가진 사람은 예배에 부주의한 행동을 보면 이 때 거친 행동이 나타낸다. 흔히 천재들이 보이는 까칠하고 예민하게 구는 행동이 바로 거친 행동이다. 그래서 탁월함을 지녔든지 열등감을 지녔든지 그 교만이 드러나는 장면은 바로 "거친 행동"이다. 이 신호를 잘 감지하고 다스리는 일은 정말 중요하다. "까대는 설교"도 같은 맥락이다. 설교가 거칠어지는 것이다. 그런 행동과 태도는 항상 선을 넘게 되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보수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가능성이 높다. 성경은 가난하고 핍박받는 자의 하나님을 매우 자주 빈번하게 그리고 중요하게 강조한다. 성경이 동성애를 죄로 지적하고 그것이 미칠 심판을 언급한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분량과 빈도로 강조한다. 그리고 그 엄중함이란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렇게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먹는 자를 보수하신다.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는 속담처럼 거친 행동은 반드시 징벌을 초래한다. 거친 행동은 온유 곧 겸손과 대척점에 있다. 우리가 탁월함이라고 착각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기실 교만이다.

 

우리에게서 거친 행동이 억제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거친 행동이란 분노가 내재된 행동을 말한다. 분노란 내 정당성에 대한 거부나 좌절을 의미한다. 자기가 옳다고 믿지 않고는 거칠게 굴 수 없다. 몽테뉴는 수상록에서 분노를 잔혹하게 억제해야 한다면서 그는 이것보다 힘든 것을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역설적이게도 그리스도께 의를 두지 않는 모든 의는 이처럼 자기정당화가 부르는 거친 행동의 함정에 빠진다. 그렇게 정죄하고 비난하고 헐뜯으며 자기 의를 높이게 되는 것이다. 잠언은 백성이 계시가 없으면 방자해진다고 했다. 결국 우리를 경계하는 말씀, 보수하시는 하나님을 대면하는 일이 없으면 그 탁월함은 곧바로 거친 행동으로 변모한다. 다윗을 향해 창을 던지던 사울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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