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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신학/신약신학

하나님의 나라 그 성취의 이중성(눅 19:11-27)

하나님의 나라 그 성취의 이중성(눅 19:11-27) 

최낙재 목사(강변교회)
예수님의 천국선포와 천국의 기본적인 개념들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 이 말씀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시작하실 때에 맨 처음 하신 말씀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관하여 배우는 바가 많다. 
첫째,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께서 오래 전부터 준비하셨고 옛 선지자들을 통하여 예언하셨다’는 사실이다. 예수께서 이와 같은 선언을 하셨을 때,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것이라고 설명하심도 없이 그냥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라고 하셨다. 또 백성들은 이 말씀에 관하여 찬반간 어떤 반응을 보였다. 이미 구약에서 배운 바가 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이사야 40:10에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고 예언하였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 나라 고려 시대나 이조 시대에 누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고 외쳤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모르긴 몰라도 환영하는 사람도 없었을 것이고, 반발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너 무슨 소리하느냐?’하며 도무지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아무 의미도 없는 말로 여겼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가정해서 대조해 보면, 하나님의 나라를 하나님께서 잘 예비하셨다는 것이 얼마나 큰 차이를 내는가 하는 것을 잘 나타낸다.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서 하나님은 미리미리 수백년 수천년 전부터 예비하셨기 때문에 예수께서 와서 말씀하실 때 찬반간 즉각적인 반응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계획하시고 준비하셔서 예언자들을 보내셨고, 때가 되어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둘째,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사상을 이어받아 하나님 나라의 일에 몸을 바치셨다. 예수님의 첫마디가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말이었으며, 누가복음 4:43에 ‘내가 다른 동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로 보내심을 입었노라’고 하심으로써 하나님 나라의 일이 맡은 바 사명이라고 하셨으며, 그 후의 산상보훈이나 천국비유들도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가르침으로 베푼 것들이었다. 소경을 보게 하고,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고, 귀머거리를 듣게 하고, 죽은 자를 살리신 것도 하나님 나라의 일로서 하셨다. 제자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천국을 먼저 추구하라고(마 6:33) 하셔서, 기도할 때에도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겨지도록’기도하고, 바로 이어서 ‘나라이 임하옵시며’라고 기도하도록 하셨다. 
셋째,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하셨을 때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여 하신 말씀이다. 글로 썼다면, 하나님이란 말에 밑줄을 쳐야 하고 말로 할 땐 힘을 주어야 할 것이다. ‘이제, 하나님의 왕권이 나타날 것이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라는 뜻이다. 나라(하나님의)는 바실레이아로서 (1)통치, 왕권이란 뜻 (2)통치의 영역, 국토란 뜻이다. 동적인 개념인 통치란 뜻이 우선적이며 압도적으로 많고, 또한 여기에서 가까이 왔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가 곧 있으리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라, 하나님께서 주권을 행사하시는 나라, 주가 되시는 나라란 뜻이요, 하나님께서 그 큰 힘으로 이루시는 나라를 말한다. 그 앞에서 사람은 낮아지고 죄인은 회개해야 할 것이다.
이 말씀을 듣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상태와 천국관
당시 이 말씀을 듣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떤 상태에 있었던가? 구약의 예언자가 그치고 약 400년동안 천국을 기다리며 오는 가운데 대체로 두 갈래의 생각을 하였다. 장차 메시야의 나라가 올 것인데 그때에 전우주가 새롭게 될 것이며, 죽은 자가 살아나고 온 세상이 심판을 받을 것이요, 하나님의 백성은 낙원에서 영원히 살 것이라는 초자연적인 구원의 시대를 기다리기도 하고, 다윗의 자손이 나타나서 이스라엘을 그 모든 원수의 손에서 해방시켜 나라를 회복하고 모든 나라를 복종하게 하리라는 소망을 가지기도 했다. 대체로 바리새인들도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거기에다 하나님의 율법을 철저히 지켜야만 그 나라에 들어가는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때때로 사람들은 특히 도움이 필요할 때, 주께 ‘다윗의 자손이여!’하면서 부르짖었으며, 주께서는 그것을 받아 주셨다. 마태복음 1장과 누가복음 3장은 예수께서 다윗의 자손임을 증명한 성경이다. 주님은 ‘내가 다윗의 자손이다’라고 선언하지는 않으셨으나,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짖을 때에, ‘아니다’라고 하시지도 않고 그냥 받아 주셨다. 그들이 그 약속의 교훈을 받아서 이렇게 하기는 하였으나, 교훈을 잘못 받았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하였다. 
지난 천 몇 백년의 이스라엘 역사에서 배울 것이 있다면 ‘사람이 율법을 지켜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사람은 죄인이요, 부패하여 율법을 지키지 못한다’라는 사실일 것이다. 어느 시대에 자기 나라가 율법을 잘 지켰던가? 항상 범죄하여 징계받고 그 결과로써 이웃 나라에 종살이하고 회개하면 구원하여 주셨고, 그러나 얼마 못 가서 또 죄를 짓고, 더 큰 징계를 받고, 계속 그렇게 지내 왔던 것이다. 율법은 그것을 지켜서 구원받으라고 주신 것이 아니요, 지킬 수 있든 없든 간에 하나님의 뜻이니까 주셨고, 특히 죄를 깨닫도록 주셨던 것이다. 참으로 율법을 알았더라면 ‘우리들도 다른 나라 사람들과 본질상 다를 것이 없고 역시 죄인이다’라고 인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율법을 매우 피상적으로 알아서 사람의 피를 흘려야만, 목숨을 끊어야만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을 어긴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미워하면 벌써 살인한 것임을 가르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이렇게 율법의 겉만 지키면서 ‘우리들은 선민이므로 메시야가 오면 모든 나라가 우리에게 복종하리라’고 생각하였다.
예수님의 책망, 하나님 나라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이러한 종교 지도자들과 그들을 따르는 백성에게 예수께서는 ‘회개하라’고 하셨고,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 소유의 나라이며 선민의 소유의 나라가 아니라고 하셨다. 무리에게 가르쳐 주신 전형적인 기도에서도 ‘이름을 거룩하게 하옵시며’라고 하셨으며, ‘나라이 임하옵시며’에 이어서 ‘뜻이 ... 이루어지이다’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기도할 때 앞에와 뒤에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과 뜻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신 점도 그 나라가 하나님의 소유이며, 하나님을 위한 나라인 것을 뚜렷이 가르친다. 이스라엘 백성 위주의 나라가 아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고자 하실 때에는 사렙다 과부나 수리아 사람 나아만 같은 이방인도 회개하고 그 나라에 들어올 수 있음을 가르치셨다. 
그래서 되지 못하고서 된 줄로 생각하는 그들에게,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다른 나라에서 들어올 것을 예수께서는 가르치셨다. 주 예수의 선구자 요한도 그들을 향하여서 너희가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마 3:9)고 하였다. 자기들이 죄인이요 무가치하고 무능한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들 중심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면서도 그 생각을 바꾸지 않을 때,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도 하나님의 자비와 능력에 있는 것이지, 너희가 잘나서 된 것이냐? 너희가 이 돌들보다 낫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신랄하게 책망하신 것이다.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우리가 얻는 교훈
이러한 사실은 오늘날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준다. 죄인인 사람의 성향은 늘 자기 중심적이다. 아브라함의 자손은 혈연으로 뭉쳤다. 우리의 주변에서도 혈연이 있고 지연도 있어서 그런 것으로 뭉친다. 이는 우리 나라의 역사에서도 말해 준다. 그런데 이런 것이 교회에까지 들어와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전라도에 전라도인의 교회가 있고 경상도에 경상도인의 교회가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서울에 전라도 교회가 있고, 서울에 경상도 교회가 있다는 것, 6?25가 지난 지 30여년이 되었는데도 이북 노회, 무지역 노회 등이 있다는 것은 괴이한 현상이다. 교회가 다른 지역의 사람을 사랑으로 포용하지 못하면 교회의 성격을 잃고 만다. 이처럼 사람이 하나님의 율법의 깊이를 모르며, 자기 죄를 모르고 자기를 인정하며, 자기를 중심으로 한 자기 지방, 자기 나라만을 위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성격을 모르는 소치이다. 학교에서나 교계에서 자기 지방을 중심으로 한 그룹을 지어 그룹 활동을 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는 있을 자리가 없다. 지방색이란 천국에서는 자리할 곳이 없다.
구약에서 예언한 하나님의 나라와 메시야
그러면 하나님의 통치가 나타날 때, 즉 하나님의 주권이 행사될 때에는 어떠한 일이 있으리라고 구약은 예언하였는가? 그때에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나타나서 그 백성의 죄를 용서하시고 죄의 모든 결과에서 구원하시며 따라서 그 원수의 모든 세력에서 구원하실 것을 예언하셨다. 스바냐 3:9,13에 ‘그 때에 내가 열방의 입술을 깨끗케 하여 그들로 다 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일심으로 섬기게 하리니’(9절),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행치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며 입에 궤휼한 혀가 없으며 먹으며 누우나 놀라게 할 자가 없으리라’(13절)고 하였다. 
첫째로, 입술은 그 사람의 사람됨을 나타낸다. 그 사람이 어떠하면 그 입술이 그것을 발표한다. ‘열방의 입술이 깨끗하리라’고 한 것은 ‘그 죄의 씻음을 받아 깨끗하게 되리라’는 것이고, ‘먹으며 누우나 놀라지 아니하리라’함은 평안이 있을 것을 뜻한다. 또 이사야서에서는 ‘그 날에는 귀머거리가 들을 것이며(29:18), 소경이 보며(35:5), 저는 자가 뛰고 벙어리가 노래하며(35:6),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며,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리라’(25:8). 또 이사야 26:29에 ‘주의 죽은 자들이 살아나고, 우리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거하는 자들에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를 내어 놓으리로다’고 하였다. 딴 세상이 될 것이다. 이사야 11:6,8에 보면,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거하고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리라고 하였다. 
그때에는 구원의 완전함과 동시에 심판도 있을 것을 말했다. 이사야 40:10에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으며’라고 했으며, 다니엘 2:44엔 ‘이 열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의 예언은 영원한 구원을 예고했고, 동시에 세상 끝을 예고하였다. 즉, 새 질서를 예언하였다. 
구약에서 이러한 예언과 나란히 메시야의 예언도 또한 있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서 국가를 형성한 맨 초기에 벌써 이런 예언이 있었다. 민수기 24:17에는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라고 하였고, 18,19절에는 ‘그 동시에 이스라엘은 용감히 행동하리로다. 주권자가 야곱에게서 나서 남은 자들을 그 성읍에서 멸절하리로다’라고 하였다. 또 이사야 9:1-7에는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케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누는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의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이는 그들의 무겁게 멘 멍에와 그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의 갑옷과 피묻은 복장이 불에 섶같이 살라지리니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라고 하였다. 그 왕으로 말미암아 그 나라가 굳게 설 것이다. 이와 같이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예언했으며 또 메시야의 올 것을 예언했는데, 결국 그 메시야가 올 때에 하나님의 나라가 굳게 설 것을 예언했던 것이다.
예수께서 천국의 건설자로 일하심
이와 같이 복되고 영원한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시고 회개하라 하셨으므로 큰 기대를 가지게 하셨고 또한 회개하며 정신을 차리게 하셨다. 이와 같이 의미 심장한 선언을 하신 후에 이어서 갈릴리에 두루 다니시면서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가운데 병든 자와 약한 자를 고치셨다. 그 가르치시는 말씀이 권세가 있어 백성들이 보고 놀랐다. 옛사람들에게서 받아 온 이런 교훈을 너희가 알고 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른다’라고 세상에서 무비의 권위를 가지고 말씀하셨다. 옛날 예언자들은 항상 자기들의 말이 자기들의 입을 통하여 나오지만, 자기들의 말이 아니고 하나님에게서 받아서 전하는 말임을 표시하여 ‘여호와의 말씀이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라고 말을 해나갔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런 형식을 취하시지 않고 ‘내가 너희에게 이른다’고 말씀하시고 또 마태 복음 5:17에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법을 좌우하시는 입법자이심을 보이셨다. 때로는 ‘네 죄사함을 받았다’고 사죄를 선언하셨다. 이어서, 병을 고쳐주심으로 그 권세가 꾸민 권세가 아니고 실질적인 효력을 발휘하는 말씀임을 보여 주셨다.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들린 자, 불구자를 데려오자 그들을 고쳐 주시고 죽은 자를 살리셨다. 죄와 죄의 결과가 백성을 짓누르는 가운데서 그들을 구하여 냈다. 그리고 한 번은 귀신들려 눈 멀고 벙어리된 자를 고쳐 주시며 ‘내가 하나님의 성신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었으며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고 하셨다.
천국의 성취에는 이중성이 있음을 가르치심
이러한 예수님의 활동과 선언으로 말미암아 백성들의 관심과 기대는 높아졌다.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마 12:23)와 ‘이스라엘을 회복하는 때가 언제인가?’하는 관심이 일어났다. 세상 끝날을(마 24장) 생각하게 되었고 하나님 나라가 당장 나타날 줄로 기대하게 되었다(눅 19:11). 요한이 옥중에서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께 묻기를 ‘오실 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하고 물은 것도 당시의 이러한 분위기에서 물었다. 메시야의 오심은 천국의 실현과 긴밀하게 관련되었으므로 결국 ‘천국이 온 것입니까? 더 기다려야 합니까?’라고 질문한 것이다. 그는 이미 ‘내 뒤에 오시는 이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고 알곡을 거두는 구원과 쭉정이를 태우는 심판을 함께 예고했었다. 하나님의 나라가 올 때에 따라올 것 두 가지가 있으리라고 구약에서 예언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의 구원이 있을 때에는 세상의 심판도 반드시 따라올 것이라고 기대하였다. 
예수께서는 이 문제에 대하여 여러 가르침과 비유로 대답하여 주셨다. 예를 들면, 천국은 씨를 뿌리는 자가 나가서 씨를 뿌리는 것과 같다. 아주 평이한 말씀으로써, ‘천국 말씀이 전파되면 이미 천국은 온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추수 때가 아니고, 씨가 여러 상태로 뿌려지고 자라야 할 때다.’ 가라지 비유에 이유가 더 선명하게 나타난다. ‘가라지와 알곡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아직은 추수 때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쳐서 각종 물고기를 모으는 그물과 같다’고도 가르쳤다. 그물에 가득 찰 때까지 물고기를 모으는 기간이 있고, 가득 차면 물가로 끌어내어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버릴 때가 있는 것이다. 세상 끝에도 그러하다고 하여 이미 물고기를 모으는 활동이 있으며 천국이 시작되었으며, 가득하게 모으는 기간이 세상 끝 날까지 있음을 말씀하셨다.
새로운 계시로 내린 천국 성취의 이중성과 그 의미
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는 한 번에 오는 것이 아니라 두 단계에 거쳐 오는 것임을 보여 주셨다. 당시엔 아무도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요한까지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는 마치 멀리서 볼 때에는 두 산봉우리가 겹쳐져서 이어진 산 같이 보이지만 다가가서 보면 이 봉우리와 저 봉우리 사이에는 큰 평원이 가로놓여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 나라의 시작과 세상 끝 사이엔 장구한 기간이 있음을 볼 수 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올 때에 이런 구별이 없이 앞에 생길 것과 뒤에 생길 것을 총괄적으로 이야기했다. 예수께서 요한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실 때에도 모세와 선지자는 요한 때까지라고 하며, 구약의 경륜 가운데 속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래서 요한도 구약에서 예언한 입장으로 밖에는 천국을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막상 그것이 실현 되었을 때에는 처음 시작과 세상 끝에는 큰 간격이 있는 것임을 가르치셨다. 
그럼 왜 하나님께서는 이런 장구한 기간을 그 사이에 있게 하셨는가? 이 기간의 의미는 무엇인가? 씨 뿌리는 자의 비유, 가라지와 알곡의 비유, 또 겨자씨 비유, 마가복음 4:26의 어떻게 자라는 줄 모르고 자라는 식물 등의 비유들은 씨를 심어 곡식을 거두는 일로 천국을 비유하였는데, 씨를 심은 뒤 상당한 기간이 지나 추수 때가 될 때까지 그 씨가 무럭무럭 자란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마침내 열매가 익는다. 그러기 위하여 기간이 필요하다. 오늘 심고 내일 거두는 것이 아니요, 이 기간은 무의미한 댇가 아니요 천국이 성장하는 때요, 그 종들이 바쁘게 일할 때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 나타날 줄로 아는 자들에게 므나의 비유를 주셨다. 누가복음 19:11이하에 나타난 므나의 비유에서 여러 가지 배울 것이 있겠지만, 거기서 현저히 배울 수 있는 것은 ‘어떤 귀인’의 비유이다. 귀인은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나라로 갔다. 여기에 상당한 기간이 있음을 보여 주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고 하였다. 상당한 기간, 할 일이 있는 뜻 있는 기간이었다. 세상 끝이 되면 구약의 모든 약속대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참으로 이 세상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아픈 것이 없을 것이며, 병이 없을 것이며, 고통하는 것이 없고, 죽는 것도 없고, 그래서 곡하는 일도 없을 것이라 했다. 따라서 큰 평안이 있으리라 했다. 우리의 몸도 변화될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누구이며, 아닌 자가 누구인지 뚜렷이 판명이 될 것이다. 
오늘날은 속이야 어떻든지 간에 겉은 모두 같으니까 너나 나나 별것이 아니라 하겠으나 그 날엔 그렇지 않을 것이다. 분명히 자타가 공인할 만큼 하나님의 자녀와 아닌 자가 구별될 것이다. 그래서 만물도 하나님의 자녀가 나타나기를 고대한다고 했다. 또한 무생물까지도 고대한다고 했다. 심지어 니이체까지도 ‘너는 과연 하나님의 자녀다’라고 인정할 것이다. 온 세상이 또한 변할 것이요, 죄 때문에 온 저주들, 즉 환경 오염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주께서는 그런 것을 소망하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왔다고 가르치시는 것이다. 우리가 죽어서 천당에 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성경에서 중점적으로 가르치는 것은 이와 같이 놀라운 하나님의 나라가 올 것을, 곧 올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나라가 올 때까지 우리는 가만히 기다리기만 할 것이냐 하면 그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미 하나님 나라가 온 것이 사실이므로 회개하고 그 나라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 부지런히 일해야 할 것임을 가르친다.
결어
하나님의 나라에는 이런 중대한 의미가 있다. 주께서는 그 종들에게 이 두 면을 하나도 포기하지 않고 다 잘 받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그 큰 영광에 참여하려면 이 땅에서 부지런히 수고할 것을 명령했고 고난 가운데서라도 그 고난을 잘 견디고 하나님 말씀을 따라 일하도록 가르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