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홍콩 느와르를 보면 비장미가 넘친다. 영웅본색 주윤발의 의리와 초개같이 생명을 던지며 비장하게 죽어가는 모습에 감동을 했었다.
어쩌면 한국교회는 이런 비장함에 신앙이 윤색된 게 아닌가 싶다. 한국 교회가 존경하는 손양원 목사님은 왜 모든 성도를 다 떠나보내고 혼자 남아 예배당 건물을 지키다 순교했을까 그가 계셔야 하는 곳은 예배당 건물이 아니라 성도들 곁이 아니었을까
이번 코로나 사태를 마주하는 한국 교회의 태도를 보면 천장지구의 유덕화와 영웅본색의 주윤발의 기독교 버전인 손양원 목사님이 떠오른다.
미국 교회의 상식적 태도와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총장인 Peter Lillback은
"회중예배를 드리지 않는 것은 소극적인 도피가 아니라 '적극적인 사랑이고 순종이고 신뢰입니다!(active love and obedience and of trust)'"고 흑사병이 한창이던 1527년에 루터가 쓴 "Whether One May Flee from a Deadly Plague"를 인용하면서 밀했다. 그에 비해 한국 교회의 쉽게 흥분하고 어깨 뽕이 잔득 든 듯한 태도 때문에 정부가 마득치 않은지도 모르겠다.
교회가 지켜야 할 것은 성도의 안전과 시민의 생명이다. 그러나 이런 비장미 넘치는 영웅적 태도는 비단 지도자들만의 태도는 아니었다. 거기서 배운 대다수의 성도들의 태도이기도 했다. 89년 마닐라에서 선교대회가 있었을 때도 정국의 불안정과 지진 등으로 다른 나라는 다 불참하는데 죽으면 죽으리라며 한국 CCC만 대거 참석해 대회 흥행을 주도했다.
아프칸에서 순교했던 배형규 목사님 역시 정부가 여행금지를 내렸음에도 한국교회가 지닌 이 비장함과 영웅심이 만든 참극이 아니었나 싶다. 그때 교회는 참 많은 비판을 받았다. 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한국 교회의 태도는 변함이 없는 거 같다. 여전히 성도들의 곁을 지키지 않고 예배당 건물을 지키며 의도적 순교로 스스로를 내몬 손양원 목사같은 어른은 우리 신앙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많은 부분에서 존경할 어른이지만 이런 모습까지 반복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언제까지 이런 영웅주의적 비장미를 신앙이라고 착각할텐가
주변 사람들의 안전을 지키며 성도의 삶을 돌아보는 게 진정한 예배며 신앙이며 이웃 사랑이 아닐까?
https://m.youtube.com/watch?feature=youtu.be&v=utFttyw3yx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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