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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칼럼

환대 연대 창대

보기와 달리 난 해병대 출신이다. 해병대 훈련소는 주말마다 구보를 시킨다. 일단 3보 이상은 구보이지만 첫 주말엔 반바지에 운동화 차림으로 4킬로를 구보한다. 구보 간에 군가는 필수다. 2주차가 되면 단독 군장에 소총없이 4킬로 구보를 한다. 3주차에는 단독군장에 소총들고 4킬로, 4주차는 완전군장에 4킬로, 5주차는 완전군장에 6킬로, 6주차는 완전군장에 8킬로 구보다.

구보시 구급차는 항상 따라 다닌다. 게다가 난 6월 군번이었다. 훈련소를 수료할 때는 어느덫 7월 중순이었다.

사실 혼자 그렇게 뛰라면 절대로 못 뛴다. 20대 가장 좋은 체력에도 못 한다. 대입 학력고사에서도 체력장 1킬로 달리기도 겨우 했던 나였다. 입대 전 몸무게가 80킬로였다. 6주 훈련소 마치고 군복에 워커를 신고 68킬로였다.

혼자는 힘들지만 전우들과 함께했기 때문에 달릴 수 있었다. 동료는 이렇게 큰 자원이다. 물방울 하나는 바다에 이르기 어렵지만 수없이 내리는 비방울들이 모여 바다에 이른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신비롭게도 성경은 칭의는 개인적인 믿음의 요인으로 설명하는 반면 성화는 항상 공동체적으로 설명했다. 교회는 환대의 공동체다. 혐오와 배제의 편향이 아니라 용서를 실천하는 공동체이며 자비를 분배하는 공동체이며 사랑을 중재하는 공동체이고 정의를 구현하는 공동체이다.

그런 환대들이 모여 연대가 일어난다. 연대된 공동체는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전도서도 이렇게 말한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4:12)

연대는 혼자할 수 없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혼자서 전도하면 미쳤다고 하고 여럿이서 찬양하며 전하면 전도하나보다 하지만 연대한 큰 무리의 전도는 사람의 영혼을 흔든다.

그렇게 환대는 연대가 되고 연대는 창대한 공동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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