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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칼럼

16세기와 17세기 신학의 연속성

#좁은#넓은#직접#간접#전가#주입#능동#수동 등은 스콜라 정통주의 스탠스를 취하는 개혁파 신학이 개념적 범주로 가지는 설명의 방식 중 하나다. 벌코프를 읽다보면 자주 만나게 된다. 바르트는 17세기라는 정통주의 정거장을 통과하지 않고는 칼뱅에게 갈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그를 #신정통주의 라고 부르며, 그의 방에는 칼뱅과 모차르트의 초상을 걸어 두었다고 전해진다.

하물며, 개혁파의 후예이며 장로교 신학을 계승한 우리는 얼마나 더 17세기 정통주의라는 신학적 정거장을 제대로 이해해야 하겠는가? 칼뱅과 종교개혁을 정확히 알려면 필수불가결하다. 이것을 사변이라 치부하고서는 결코 종교개혁의 신학과 정신에 가 닿을 수 없다.

17세기를 건너 띠고 16세기 칼뱅과 루터로 가려는 사람들은 자유주의자였던 슐라이어마허의 테제를 따르고 있는 셈이다. 마틴 로이드존스의 후임이었던 R. T. 켄달은 J. I. 패커의 지도로 박사논문을 통해 칼뱅과 칼뱅주의자의 불연속성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이를 슐라이어마허 테제라고 한다. 간략히 말하자면, ‘루터와 칼뱅이 세운 생명력 있던 종교개혁 신학은 16세기 말의 멜란히톤과 베자에 의해, 그리고 17세기 개신교 스콜라주의 신학자들에 의해 죽은 정통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칼빈 세미너리의 리처드 멀러는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서 이 테제를 뒤집었고 이를 흔히 "멀러 테제"라고 한다. 17세기는 16세기와 연속성이 더 강력하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역사적 장로교회 신학에 서 있으면서도 바르트보다도 못한 스탠스로 16세기와 17세기 신학을 바라보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17세기를 정거장 삼은 바르트를 비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17세기 신학을 후대의 신학이라는 주장이 더 자유주의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 물론 우리는 17세기의 어깨를 딛고 역사적 장로교회의 신학과 신앙을 더 진보시켜야 할 위치에 서 있다. 이 시대의 사명이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면 더더욱 우리가 서 있는 위치에서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 하는 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