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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일기

2009.02.24 15:25

목회란 참 어렵다. 벧엘교회에 와서 그런 경험을 더 많이 하는 거 같다. 사람같이 연약한 존재가 또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든다. 아무리 선한 의도도 때로는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니 말이다. 사람들은 위로를 구한다. 내가 속한 장로교회가 고백하는 신앙고백서, 하이델베르그 신앙고백서는 사나 죽으나 인생의 유일한 위로는 그리스도라고 말한다. 그러나 성도들이 교회에서 구하는 위로는 때로는 그리스도 외의 것인 거 같다. 내 형편의 딱함을 호소하는 것이거나 자신이 처한 고통의 어떻게 줄어들지에 온갖 관심이 쏠려 있거나 아니면 그리스도의 손에 들린 선물들에 더 많은 관심과 위로를 경험한다. 우리 속담에 제사보다 잿밥이라고 했던가? 그런 까닭에 사람은 예배 속에서도 위로를 경험하지 못한다. 성경은 염려를 그치라고 하지만 염려가 그치지 않는다. 재물을 섬기지 말라고 하지만, 마음이 재물에 가 있다. 하나님을 최고의 즐거움으로 삼으라지만 세상의 일락이 그들의 위로가 되어 있다. 
죄로 연단된 마음 까닭에 마음은 길가 같고 돌짝밭 같으며 가시떨기 밭과 같다. 그런 밭들에는 그리스도가 위로가 아니며 염려가 그칠 횡재가 위로이며, 물질이 위로이며, 자기 중심적 즐거움이 위로가 된다. 그러나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 밭을 기경하신다. 인간의 연약함을 친히 아시는 까닭에 우리에게서 원인을 찾을 수 없는 위로로 찾아오신다. 이전의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았음에도 염려가 떠나고 마음에 평안이 깃든다. 여전히 물질은 부족하지만 위로를 받는다. 세상의 일락과 즐거움이 아니라 그리스도 그 자체가 우리 심령의 참된 위로요 복으로 경험이 된다. 
목회는 이렇게 죄로 연단된 마음을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다시 연단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전엔 자신의 상처로 인해 애통하던 마음을 그리스도의 의를 인하여 애통하는 마음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전엔 물질에 주리던 배를 이제 의에 주리도록 마음을 바꾸는 것이다. 사람은 본성상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한다. 하나님이 결여된 곳에는 반드시 상처가 있다. 외로움이 있다. 괴로움이 있다. 연약함이 있다. 염려가 있다. 그곳에 그리스도라는 위로의 복음을 씨뿌리는 것이 내가 경험한 목회이다. 
나는 참으로 사람들의 영혼이 진리의 말씀으로 새로워지는 것을 경험케되기를 희망한다. 나의 연약함은 이들의 모든 필요를 다 채울 수 없으며, 다 함께 할 수도 없다. 그래서 더더욱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그리스도가 그들의 위로가 되기를 소망한다. 이것을 위해 내가 충성해야 하는 일은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들어 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 또 수없는 상처와 아픔들을 만날 것이다. 그것이 만나지는 까닭은 말씀이 드러난 까닭이기에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그들의 아픔을 받을 것이다. 위해서 기도하며, 말씀으로 가르치며, 이런 결심들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목회는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나 스스로가 연약한 사람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요. 말씀이 증거되는 과정에서 들어나는 상처들을 볼 때, 나의 상처들이 기억이 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게 이 일은 힘겹다. 나 혼자를 지고 가기도 버거운 길을 다른 이의 짐을 함께 진다는 일은 나 스스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길에 서 있는 까닭은 주께서 내게 이 사명을 맡기신 까닭이요. 사명만 맡기시지 않고, 또 이를 감당할 힘을 주실 줄 신뢰하는 까닭이다. 스펄전 목사님은 소명의 증거를 일컫기를 "그 일이 쉬워야 한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아직 많이 모자라는 햇병아리 목사인가보다 목회가 쉬워지는 날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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