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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수의 성경해석과 주해

에스더서의 잔치

에스더서의 잔치 

노승수 목사

에스더서의 주제가 되는 반복적인 단어는 “잔치” 이며 주제가 된 모티브는 “이 날에 유대인이 대적에게서 벗어나서 평안함을 얻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哀慟)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으니 이 달 이 두 날을 지켜 잔치를 베풀고”(9:22)라는 표현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한쪽 극단에서 다른 한 쪽 극단에 이르는 놀라운 변화를 잔치라는 상황으로 묘사한다. 잔치는 기쁜 일의 표현이다. 결혼을 한다든지, 자녀를 얻었다든지, 하는 가족사의 기념할 만한 일들에 대한 기대되는 기쁨의 표현이 잔치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표현되는 기쁨은 단순한 가족사의 기념할 만한 기쁜 일이 아니라 죽음으로부터, 절망으로부터, 슬픔으로부터, 애통으로부터의 정반대로의 반전이다. 그렇기에 이 기쁨은 사뭇 다르다. 그것을 잔치라는 것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마치 유대인들이 애굽의 압제와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날로서 유월절이라는 절기가 갖는 의미와 유사한 의미가 잔치 속에 반영되고 있다. 이 책은 유대인의 잔치일인 부림절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잔치라는 단어가 총 21번이나 등장하고 있고, 1장은 아하수에로(Xerxes)의 잔치로부터 시작하고, 마지막은 이스라엘의 부림절 잔치로 막을 내린다. 아하수에로왕의 잔치(1:3)와 왕후 와스디의 잔치(1:9) 그리고 에스더를 위한 잔치(2:18)는 후에 일어날 일에 대한 복선이다. 최고의 자리에서 몰락과 추락, 기억되지 않던 보잘 것 없는 여인에서 왕후가 된 여인을 위한 온 제국의 잔치가 유대인의 대적 하만과 유대인과 모르드개의 상황과 비슷한 흐름을 가지고 있다. 


유대인의 대적 하만과 유대인 사이의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것을 발견한다. 유대인을 해하여도 좋다는 아하수에로의 조서가 발표되었을 때를 상황을 나레이터는 이렇게 나레이션하고 있다. “왕은 하만과 함께 앉아 마시되 수산 성은 어지럽더라”(3:15) 하만에게는 여유로움과 즐거움이 수산성의 어지러움과 대조를 이룬다. 이 대조는 또 다른 대조, 즉 정반대의 상황의 대조를 향해 나아간다. 유대인의 슬픔과 하만의 승승장구(乘勝長驅)함은 네러티브가 흐르면서 서서히 그리고 급격하게 반전된다. 그 반전 역시 에스더가 베푼 아하수에로와 하만을 위한 두 번의 잔치로부터 일어난다. 에스더는 성급히 자신이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다시 한번 두 사람을 자신의 잔치에 초대한다. 첫 번째 잔치를 마친 이후에 하만의 즐거움과 성문 앞에 재를 무릅쓰고 앉은 모르드개의 슬픔의 대조가 눈길을 끈다.1) 이야기는 느린 듯하면서 빠르게 전개되어가고 절묘한 타이밍이 일을 반전시킨다. 모르드개를 교수(絞首)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그를 높이는 일이 된다.(5:14-6:10) 서서히 흐르는 이야기는 급류를 타게된다. 에스더의 왕을 위해 준비한 두 번째 잔치는 하만의 몰락과 유대인과 모르드개의 기쁨과 회복의 서곡을 알리는 잔치가 된다. 에스더가 베푼 첫 번째 잔치는 모르드개와 유대인들의 슬픔의 잔치이고 하만의 기쁨의 잔치이지만 에스더가 베푼 두 번째 잔치는 모르드개와 유대인들에게 기쁨의 잔치이요 유대인의 대적 하만에게는 죽음의 잔치가 된다. 이 책의 기자는 잔치라는 장면을 통해서 어떤 종류의 메시지를 전하려고 하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결정적 사건의 전환은 모두가 잔치로부터 이루어진다. 7:1-8의 잔치는 하만의 종말을 고하는 잔치이다. 이것은 3:15의 장면과는 대조를 이룬다. 


에스더서에서 “잔치”는 네러티브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것은 유대인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된 잔치로서 부림절의 의미를 기자는 계속적으로 잔치를 통해서 보여주려는 의도, 모티브를 가지고 있는 것이 확실하여 보인다. 또한 “잔치”는 문학적 기법으로 암시적 요소로도 등장한다. 본문은 바사제국의 잔치로부터 시작한다. 단순한 잔치와 관련 있다는 정도의 암시가 아니라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된다는 모티브를 반복적으로 나타내주는 암시적 요소로서 잔치가 사용되고 있다. 


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에스더서의 잔치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섭리의 손길을 보여주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에스더의 첫 번째 잔치와 두 번째 잔치 사이에 섭리적 사건들이 샌드위치처럼 들어 있다. 모르드개의 공에 대한 논공행상(論功行賞)이 없었던 일, 마침 생겨난 아하수에로의 일시적 수면장애, 잠을 청하기 위해 읽게 된 책이 역대 일기이며 모르드개의 이야기라는 점, 모르드개에 대한 논공행상이 없었음을 확인하는 순간, 하만이 모르드개의 교수를 청하기 위해 왕의 대전에 들어서는 과정, 모르드개를 교수하려는 하만의 시도는 순식간에 모르드개를 높이는 일이 되고, 채 정신을 수습하기도 전에 왕의 내시들에 이끌리어 두 번째 잔치에 나가게 되고2) 그것이 결정적 반전을 가져온다. 이 우연적인(?) 사건들의 연속은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단으로 그와 그의 민족이 금식하며 기도하고 왕 앞에 나아간 후 연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본문에는 하나님이 섭리하셨다는 언급이 전혀 없다. 그러나 네러티브는 독자로 하여금 이것이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의 간섭이라는 것을 느끼도록 만들고 있다. 이러한 우연적 사건들의 연속은 에스더의 첫 번째 잔치와 두 번째 잔치라는 시간적으로 짧은 시간, 그러나 세밀하게 그것을 묘사함으로서 네레이션 타임(Narration Time)과 네레이트 타임(Narrated Time)의 변화 있는 배열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이것을 확연히 느끼도록 만들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비교적 짧은 시간임에도 포커스가 맞추어져서 그 짧은 시간들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4장 전반부까지 짧은 네레이션 타임이 4장 후반부부터 그 흐름이 길어지면서 5,6,7장은 리얼타임(Real Time)에 근접한 방식으로 사건들을 묘사하고 있고 이것이 에스더의 두 번의 잔치 사이에 놓여져 있다. 이 두 번의 잔치는 전후에 등장하는 잔치와는 확연히 구분된다. 이 두 번의 잔치는 긴장과 불안과 갈등이 가득한 플롯을 형성하고 있다. 생각하여 보라! 잔치가 갖는 일반적인 뉘앙스는 즐겁고 기쁘고 조금은 이완(弛緩)되고 긴장과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유쾌한 것이다. 그러나 에스더의 잔치는 갈등과 긴장으로 독자들의 가슴을 죄여 오고 있다. 여기서 잔치는 네러티브 플롯의 갈등의 정점과 해소를 알리는 무대적 장치와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 


구조적 측면에서 볼 때, 잔치라는 단어가 가지는 또 다른 측면은 히브리 네러티브에 자주 등장하는 교차대구법(Chiasm)적인 구조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에스더의 두 번의 잔치가 내용상 반전을 알리는 구조적 축을 이루고 있는 듯하다. 마치 팽이가 그 중심을 축으로 회전할 때 그 긴장으로 중심을 유지하고 넘어지지 않듯이 에스더의 잔치는 그러한 긴장을 자아내고 있다. 


1) 5:9 이 날에 하만이 마음이 기뻐 즐거이 나오더니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있어 일어나지도 아니하고 몸을 움직이지도 아니하는 것을 보고 심히 노하나
2) 6:14 아직 말이 그치지 아니하여서 왕의 내시들이 이르러 하만을 데리고 에스더의 베푼 잔치에 빨리 나아가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