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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신학/신론

섭리(攝理)란 무엇입니까? 섭리(攝理)란 무엇입니까? [ 본문: 히브리서 1장 3절, 시편 104편 ] 이승구 우리는 지난번에 창조 사실과 창조 신앙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이 우주와 심지어 보이지 아니하는 모든 것들의 시작이 되는 창조의 사실을 믿고 전능하신 창조자를 생각하는 일은 피조된 이성적(합리적) 존재들에게는 당연하고 옳은 일입니다. 그러나 창조와 창조주를 믿는다는 것만으로는 하나님을 바로 믿고 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17세기말부터 영국에서 시작되어 유럽 대륙과 당시의 신대륙인 미국에까지 번져간 이신론(理神論, deism) 또는 자연신론(自然神論)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창조하신 후에는 이 세상이 그 나름의 법칙에 따라 움직여 나가게끔 하셨다고 생각합니다.1 그래서 이신론자들은 피조계를 경이에 찬 눈.. 더보기
칼빈의 예정론에 대한 고찰 칼빈의 예정론에 대한 고찰-'타락전선택설/타락후선택설 논쟁'과 칼빈의 예정론이승구일반적으로 죤 칼빈(John Calvin)하면 예정론을 떠올리는 것이 신학계는 물론 비신학계에서 의 상례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신학계에서는 물론, 신학계에서도 칼빈의 예정론 에 대한 무수한 오해가 난무하고 있다. 이런 오해들 중에는 예정론이 칼빈 신학의 출발점인 가, 아니면 그의 신학의 논리적 결과의 하나인가에 대한 그의 신학 전체에 대한 해석의 문 제와 관련된 것도 있고, 이중 예정을 말하는 성경을 따르려는 칼빈의 심정에 대한 심리적 오해도 있으며, 칼빈이 제시하는 예정론의 정확한 성격에 대한 오해들도 있다. 이 마지막에 진술한 문제와 연관되는 것으로 칼빈의 예정론을 시대적으로 후에 나타나고 있는 예정론에 대한 .. 더보기
칼빈의 삼위일체론 칼빈의 삼위일체론유해무(고려신학대학원 교의학교수)삼위일체론은 신학 교과서에만 있는 지식인가? 비록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지만, 대부분의 신자들은 일상적인 삶에서 사실상 '단일신론'을 따르고 있다. 비록 매주일마다 성부, 성자, 성령께 송영을 돌려드리면서 예배를 마치지만, 설령 삼위일체론이 거짓으로 판명되어진다 하여도 기독교 경건 서적의 대부분 바뀌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처럼 삼위일체론이 창조론, 기독론, 은혜론 교리 뿐만 아니라, 성도들의 경건과는 거의 분리되어 있다. 가령 삼위일체론이 없어도 기독론에 결정적인 변화를 끼치지도 않을 것이다. 실제로 현대 기독론 연구는 대부분 주석적이지만, 삼위일체론이나 성령론적으로 통합되어진 연구는 흔치 않다. 성령 안에서 성자의 이름으로 성부께 기.. 더보기
삼위일체되신 하나님 삼위일체되신 하나님 바르트가 하나님 계시에 관한 교리를 전개하는 구조는 하나님 말씀의 세 가지 양태에 유비적으로 상응한다. 즉 “계시자(der Offenbarer)” 성부 하나님, 계시(die Offenbarung) 그 자체인 성자 하나님, 그리고 계시하는 존재(das Offenbarsein) 성령 하나님의 삼위일체론적 신적 계시는 “기록된 말씀”, “계시된 말씀”, “선포된 말씀”에 상응한다. 이러한 삼중적 구조에 상응하게 바르트는 제2장 하나님의 계시론 제1절에서는 말씀을 통한 계시의 3중성과 “계시자”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에 관하여(KD I/1, 쪮쪮 8~12), 제2절에서는 “계시 그 자체인” 성자(말씀)의 화육, 곧 화육된 말씀에 관하여(쪮쪮 13~15), 그리고 제3절에서는 “계시 존재”인 성령.. 더보기
칼 바르트의 삼위일체론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더보기
칼 바르트의 삼위일체론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더보기
니케아 - 콘스탄티노플 신조와 바른 삼위일체론 니케아 - 콘스탄티노플 신조와 바른 삼위일체론 김명용 교수서언기독교 교리 가운데 삼위일체론은 일반적으로 이해가 거의 불가능한 극난한 교리로 알려져 있다. 한국교회의 성도들 가운데 삼위일체론을 바르게 아는 사람들은 매우 적고, 많은 이들은 삼위일체론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아서 포기하기도 한다. 삼위일체론은 정말로 이해가 안 되는 그런 극난한 교리일까? 삼위일체론이 이해가 안 되기 때문에 한국교회 안에는 이단적으로 보이는 잘못된 삼위일체론이 활개를 치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삼위일체론은 성서에 근거가 없고, 교회가 발전시킨 사변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셋이 하나가 되고 하나가 셋이 되는 그런 신관이 성서 안에 어디 있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먼저 밝혀야 하는 것은 “예수 .. 더보기
칼 바르트의 삼위일체론 칼 바르트의 삼위일체론 위격(person)과 양식(mode) 위격의 개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위격이라는 개념의 한계점을 극복하기 위해 좀더 보강된 용어로서 양식(mode)이라는 새로운 용어로 이를 대치하고자 했다. 위(person in the trinity)의 통념적 이해를 지적하는 쉬이벤(M.J.Scheeben)의 주장을 근거하여 위로는 표현이 부정확한 부분을 양식이라는 새로운 용어로 보충 설명하려 한 것이다. 왜냐하면 위라는 용어로는 삼위일체 안에서 삼위 사이에 존재하는 각각의 상대적(비교적) 특성(relative signification)을 구체적으로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곧 삼위에서 아버지도 위이고, 아들도 위이고, 성령도 위로서 일위(the first person), 이위(the seco.. 더보기
삼위일체적 관점에서 바라본 "휠리오크베"(Filioque) 논쟁 삼위일체적 관점에서 바라본 "휠리오크베"(Filioque) 논쟁 복음주의 신학회 산하 조직신학회 발표 신문철교수(개혁신학연구원) I. 들어가는 말 20세기가 시작되면서 교의신학에 두 가지 중요한 변화가 발생하였다. 그 하나는 전통적 신론에 대한 재해석으로서 하나님을 삼위일체적으로 이해하기 시작 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령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부각된 것이다. 본 정기 학술 세미나에서 필자가 발표하고자 하는 휠리오크베(filioque) 교리는 이 두 가지 신학적 흐름 속에서 다시 논의되기 시작한 중요한 교리이다. 역사적으로 휠리오크베(filioque) 교리는 서방교회가 성령의 발출에 대하여 초대 교회가 고백한 "성령은 성부로부터 발출된다"는 고백에 "그리고 성자로부터"라는 휠리오크베(filioque) 구.. 더보기
최근 신학에서의 경륜적 삼위일체와 내재적 삼위일체 최근 신학에서의 경륜적 삼위일체와 내재적 삼위일체 오상호 Fred Sanders, Entangled in the Trinity: Economic and Immanent Trinity in Recent Theology, dialog: A Journal of Theology 40/3 2001 Fall Fred Sanders is Assitant Professor in the Torrey Honors Institute at Biola University in La Mirada, California. John Donne의 Holy Sonnet 16에는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는 표현이 있는데 그 시는 하나님의 아들이 구원의 유익들을 자유롭게 나누기 때문에 격찬하면서 동시에 "해결곤란한 삼위일체에 있어서 그의 유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