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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강의

“중생”개념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1) 조직 신학에서 말하는 “중생”개념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i)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단어들 - “영생” “거듭남” “믿음” 등 --은 구원의 전반적 과정이나 양상을 가리키는 포괄적인 용어로 간주되어야 한다.


(ii) 이것은 심지어 성경에서의 용어 사용조차도 그러하다.


 ①성경은 교의학에서 채택된 용어들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으며, 종종 다른 명칭들이나 다른 수사적 표현들(figures of speech)을 활용하고 있다 (666-2-9~10).

 ②게다가 성경은 이제는 교의학에서 매우 제한적(definite)인 전문 의미를 획득한 용어들을 보다 넓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661-2-10~11).

 ③성경에서 “중생”(regeneration), “부르심/소명(召命)”(calling), “회심”(conversion), “갱신”(renewal)과 같은 단어는 항상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난 변화 전체를 지칭한다 (661-2-11~13).

(iii) 따라서 조직 신학에서 어떤 용어를 다룰 경우, 그것이 어떤 제한적이고 특정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지 유념해야 한다.


 (2) 조직 신학에서는 구원에 연관되는 변화가 -- 예를 들어, 중생의 경우 -- 잠재 의식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것으로서 우리가 의식할 수 없다고 말하니(cf. 718-3-1~2), 이는 상호 모순이 아닌가? 


(i) 예컨대, 성경에서는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요일 5:13)또는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중생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 3:3)고 말하고 있다.


(ii) 예수께서 중생이 인간의 책임인 것 - 혹은 최소 인간의 의식 하에 이루어지는 것 -으로 말씀하시는데, 이는 상기한 바 조직 신학에서의 정의와 정면으로 반대되는 것이다.


(iii) 근본적 해결책은 이미 첫 번 째 질문에 대한 답변에 나타나 있다.


   ① 위의 답변 중 (ii)의 ③이 바로 이러한 난궁에 좋은 방향 제시가 될 것이다.

      성경에서 “중생”(regeneration), “부르심/소명(召命)”(calling), “회심”(conversion), “갱신”(renewal)과 같은 단어는

      항상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난 변화 전체를 지칭한다 (661-2-11~13).

   ② 요 3:3 (혹은 요일 5:13)에 언급된 “중생” (혹은 “영생”)은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변화 전체를 지칭하는 것으로서, 

      조직 신학에서의 용어 규정보다 훨씬 포괄적이다.

   ③ 따라서 성경의 용어들은 의식에서의 변화까지 포함하는 그런 넓은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iv) 결론적으로, 성경의 용어들과 조직 신학의 용어 사이에는 모순이나 충돌이 없다. 더 넓게는 포괄적으로 계시를 이해할 수도 있다. 개념은 이해의 도구이지, 이해를 가로막기 위한 것이 아니다. 조직신학적 개념들은 성경 해석의 틀이다. 


(3) 중생은 완전히 잠재 의식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인가?


(i) 그릇된 답변.

     ① 중생의 두 요소.

a. 발생(generation)/재발생(begetting again): 영혼 안에 새로운 영역의 원리를 심어 넣는 것.

b. 발출(bearing)/표출(bringing forth)/신생(new birth): 새로운 생명이 감추어진 심연으로부터 표출되는 것.

     ② 그릇된 답변의 내용.

a. 중생에 있어 첫 요소 -- 좁은 정의 --의 경우에는 절대적으로 잠재 의식과만 연관이 된다.

b. 그러나 둘째 요소는 잠재 의식에서 의식으로 전환하는 것이므로, 이미 의식의 문턱으로 진입한 것이라 하겠다.


(ii) 오류의 교정.

     ① 중생은 그것이 좁은 의미이건 넓은 의미이건 잠재 의식의 영역과 연관이 된다.

     ② 넓은 의미의 중생도 아직은 잠재 의식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일이다 (물론 좁은 의미의 중생보다는 좀 더 의식의 영역쪽으로 진행했겠지만, 그래도 어쨌든 잠재 의식의 영역에 머무른다).

(iii) 잘못 생각하게 된 근거.


     ① 근거 1: 부르심과 중생의 관련 순서 때문에.

 a. 내용: 넓은 의미의 중생 전에 이미 효과적 부르심이 들어가 있다. 

효과적 부르심은 의식적인 것이다: 이는 “인간의 의식 영역에서 역사한다” (719-4-1).

그렇다면 넓은 의미의 중생은 그 다음 단계이니 분명 의식의 영역과 연관이 되었을 것이다.

b. 올바른 해석.

효 과적 부르심에서 그리스도인이 의식하는 것은 전파되는 말씀에 대한 자신의 반응 -- “내적 부르심에서 인간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회심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될 것이다” (741-3-4~5) -- 이지, 심령에 심겨진 새생명의 원리에 대한 것이 아니다.

물론 전파되는 말씀에 대한 자신의 반응으로부터 이런 식의 추론 -- “아하, 내가 이렇게 반응하는 것을 보니 내 안에 새생명의 원리가 심긴 것이로구나!” -- 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것은 중생 자체 -- 새생명의 원리가 심령에 새겨진 것 --에 대한 의식이 아니라, 중생이 일으킨 효과에 대한 의식일 뿐이다 [※ 이것이 바로 “(중생)은 인간에 의해 직접적으로는 인식될 수 없는 하나님의 은밀하고 불가사의한 사역이다 … 중생 이후에 있어서도 인간은 단지 ‘그 결과에 있어서만’ 중생을 지각할 수 있다” (718-3-1~2, 4)는 말의 의미일 것이다.]


② 근거 2: 중생의 특성에 대한 설명 때문에.

a. 내용: 중생의 특성 가운데 하나가 “영혼의 지배적 성향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것이고, 이 변화는 전인적으로 일어난다” (717-7-2~3)는 것이다.

전인적인 변화는 지성, 의지 그리고 감정을 포함한다 (717-7-3~718-1-1).

그런데 지성, 의지 그리고 감정은 우리의 의식을 전제하는 기능들이므로, 적어도 넓은 의미의 중생만큼은 의식의 영역으로의 진입과 연관된 것이라고 생각함.

b. 올바른 해석.

중생 시에 전인격적 변화가 이미 시작되었지만, 이것은 잠재 의식의 영역에서 일어난 바이기 때문에 우리가 의식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중생으로 인한 변화가 지성, 의지, 감정을 포함하는지 아는가?

이것 역시 희심 시 우리의 변화로부터 추론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이다.

-중생 시 심겨진 새생명은 죄인이 회심할 때 그의 의식 영역에서 적극적으로 표출하게 된다 (741-2-3~4).

-중생 시 잠재 의식에서 야기된 변화회심에서는 의식으로 침투하게 된다 (741-2-4~5).

따라서 회심 시 우리에게 나타난 변화로부터 소급을 해 올라가면 중생 시 우리에게 시작된 변화의 모습도 알 수가 있다.


 중생 시 시작된 전 인격적 변화                     회심 시 전 인격적 반응


지성 (717-7-3)                추론              지성적 요소 (735-6-1)

의지 (717-7-4)                              정서적 요소 (735-7-1)

감정/정서 (718-1-1)              소급해 올라감                의지적 요소 (736-2-1)

                        잠재 의식의 영역                              의식의 영역


(iv) 결론: 중생은 좁은 의미이건 넓은 의미이건 잠재 의식의 영역에서 일어난다. 


덧붙임 : 성경에서 “중생”(regeneration)과 같은 단어는 항상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난 변화 전체를 지칭한다 (661-2-11~13)

            회심은 의식의 영역에서 일어난다. 중생은 잠재의식의 영역에서 일어난다. 

           이것이 17세기 신학자들이 중생과 회심을 교호적으로 사용한 이유이며 

           동시에 현대 개혁주의가 중생과 회심을 분리해서 사용하는 이유이다. 

           튜레틴의 수동적 회심이 중생으로 불리는 이유이고 능동적 회심이 두번째 중생으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17세기 신학자들은 보다 더 성경의 문맥과 용법에 유의했던 것으로 보인다. 

           후대로 오면서 개념적인 정교화 작업을 거쳐서 

           중생과 회심이 현재와 같이 한 사건의 두 가지 다른 영역을 설명하는 테크니컬 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