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와 불신자를 가르는 기준은 믿음이다. 그러나 믿음은 내밀한 것이라서 우리는 그 진의를 파악할 수 없다. 다만 그의 신앙고백을 통해 확인하고 그의 입술의 고백과 삶의 열매로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우리 판단은 그 고백에 정초해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우리가 짐작할 만한 증거는 있기 마련이다.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가 말하듯이 보화인 복음을 발견한 자는 자기 소유를 팔아 그 밭을 사기 마련이다. 내것을 팔지 못하는 이유는 보화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거룩한 교환(divine exchange)이 십자가에서 이루어졌다. 내 죄와 그리스도의 의가 교환되었다.
신자의 긍정과 자신감은 그리스도의 의에서 나온다. 신자의 자존감은 그리스도 그 자체다. 허나 이는 거룩한 교환에 앞서 자기 죄를 대면하여 비참에 직면한 자가 교환 후에 누리는 기쁨이다.
자기 상처를 싸매고 방어하는 자는 이 교환에 나설 수 없다. 그에게는 생명을 바친 그리스도의 사랑을 읽는 눈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낙심하지 말라.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리의 어떤 방어도 허물어뜨린다. 그 블멸의 사랑이 감화시키지 못할 이가 없다. 어리석게 혼자 해보려 말고 주께 나오라. 와서 값없이 은혜를 사라. 그게 네게 요구되는 유일한 일이다. 감출 필요도 없다. 애쓸 필요도 없다. 그저 내 생긴 대로 주께 오라.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시 126:6,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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