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대화
노승수 목사
한 7-8년 전의 일이다. 내가 근무하던 상담실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떤 남자 내담자가 상담비 문제로 무척이나 힘들어 하길래, 측은한 마음에 “상담비 힘들면 안해도 되요”라고 문자를 보내주었다. 그런데 이게 빌미가 되었다. 나는 분명 “상담비 힘들면 안해도 되요”라고 문자를 주었는데 이 분은 “상담비 힘들면 (상담) 안해도 되요”라고 이해한 것이다. 그래서 격분해서 상담시간에는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분은 선생님”이라고 하던 분이 곧 바로 나에게 상처받았다며 화를 내었다. 사실 황당한 일이다. 그런데 우리 삶에는 이런 일들이 자주 일어난다. 상대방이 하지 않은 말인데 내 마음에 있는 말과 생각들이 그 사람이 말할 때 덧붙여지고 그래서 상처를 받는다. 이런 경우, 누가 나에게 상처를 주었다기보다, 자기 스스로 상처를 받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상처를 받아서 떠난다고 말하는데, 주변의 이야기를 보면 오히려 상대방들이 이 사람에 의해서 상처를 받는 경우가 매우 많다.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시선이 왜곡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다른 사람을 탓하며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옮겨 다니게 된다.
이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몇 가지가 있다. 우선은 나의 느낌에 대해서 혹은 내가 지각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상대방에게 먼저 물어보라. 예컨대, 내담자 중에 어떤 분은 상대가 화를 내는 것에 매우 민감한 분인데, 상대가 전화를 퉁명스럽게 받으면 곧바로 “내가 뭘 잘 못했지?” 이런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곧 바로 그 사람에게 확인을 하게 했다. 그랬더니, 그 날 아침에 부부가 싸움을 해서 상대가 기분이 별루 안 좋은 상태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걸 자신한테 무엇인가? 화가 나있어서 그렇다고 생각해 버리고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찾기에 급급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면 매사의 대인관계에 자신이 없어지고 의기소침해지게 된다. 그래서 건강한 사람은 언제나 잘 물어보는 사람이다.
또 시도해 볼 수 있는 것은 상대에 의사에 대해서 먼저 확인하라는 것이다. 느낌이나 지각은 미묘한 것이어서 때론 민감하지 못하면 확인이 힘들지만 의사는 분명하게 확인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어떤 내담자와 상담을 종결하고 나서 감사의 표시로 식사를 한 적이 있다. 그래서 “나는 뭐 좋아햐느냐?” 고 물었는데, “아무거나”라고 대답을 했다. 그래서 내가 아무거나라는 메뉴가 없다고 했더니 “선생님 좋아하는 거면 뭐든지 괜찮아요”라고 했다. 그래서 근처 식당을 찾다가 순대국밥 집에 들어가려고 하자. “그건 못 먹는다.”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이전에 말한 “아무거나”는 사실 아무거나가 아닌 셈이다. 이런 경우, 상대방도 황당하고 본인도 당황스럽게 된다. 자신의 의사에 대해서 먼저 명확히 해야 한다. 그리고 난 다음, 상대가 의향이 어떤지를 물어야 한다. 이것이 인격적 대화와 인간관계의 본질이다.
그런데, 약간의 신경증적인 경향을 가진 사람들은 이런 경계선이 불분명하다. 상대가 싫다고 하는데도 밀고 들어가서 떼를 쓴다. 신경증적 내담자는 상담자의 집에까지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통상 상담실에선 상담자의 신상에 관한 정보를 내담자들에게 제공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러므로 건강한 대화는 마치 탁구를 치는 것과 비슷해야 한다. 이편에서 공을 넘기는 것은 내 일이지만 그가 공을 어떻게 받는가는 그의 일이라는 경계가 분명해야 한다. 상대방에게 자꾸 어느 쪽을 강요하면 이미 게임의 묘미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어떤지를 즉, 어떻게 느끼고 지각하는지를 자각하고 그것에 대해서 상대에게 확인하고 상대방의 의사에 대해서도 내가 판단한 것이 정확한지를 묻고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그의 감정이나 생각에 대해서 존중하는 것이 건강한 대화의 출발점이자 왕도이다.
이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몇 가지가 있다. 우선은 나의 느낌에 대해서 혹은 내가 지각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상대방에게 먼저 물어보라. 예컨대, 내담자 중에 어떤 분은 상대가 화를 내는 것에 매우 민감한 분인데, 상대가 전화를 퉁명스럽게 받으면 곧바로 “내가 뭘 잘 못했지?” 이런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곧 바로 그 사람에게 확인을 하게 했다. 그랬더니, 그 날 아침에 부부가 싸움을 해서 상대가 기분이 별루 안 좋은 상태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걸 자신한테 무엇인가? 화가 나있어서 그렇다고 생각해 버리고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찾기에 급급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면 매사의 대인관계에 자신이 없어지고 의기소침해지게 된다. 그래서 건강한 사람은 언제나 잘 물어보는 사람이다.
또 시도해 볼 수 있는 것은 상대에 의사에 대해서 먼저 확인하라는 것이다. 느낌이나 지각은 미묘한 것이어서 때론 민감하지 못하면 확인이 힘들지만 의사는 분명하게 확인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어떤 내담자와 상담을 종결하고 나서 감사의 표시로 식사를 한 적이 있다. 그래서 “나는 뭐 좋아햐느냐?” 고 물었는데, “아무거나”라고 대답을 했다. 그래서 내가 아무거나라는 메뉴가 없다고 했더니 “선생님 좋아하는 거면 뭐든지 괜찮아요”라고 했다. 그래서 근처 식당을 찾다가 순대국밥 집에 들어가려고 하자. “그건 못 먹는다.”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이전에 말한 “아무거나”는 사실 아무거나가 아닌 셈이다. 이런 경우, 상대방도 황당하고 본인도 당황스럽게 된다. 자신의 의사에 대해서 먼저 명확히 해야 한다. 그리고 난 다음, 상대가 의향이 어떤지를 물어야 한다. 이것이 인격적 대화와 인간관계의 본질이다.
그런데, 약간의 신경증적인 경향을 가진 사람들은 이런 경계선이 불분명하다. 상대가 싫다고 하는데도 밀고 들어가서 떼를 쓴다. 신경증적 내담자는 상담자의 집에까지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통상 상담실에선 상담자의 신상에 관한 정보를 내담자들에게 제공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러므로 건강한 대화는 마치 탁구를 치는 것과 비슷해야 한다. 이편에서 공을 넘기는 것은 내 일이지만 그가 공을 어떻게 받는가는 그의 일이라는 경계가 분명해야 한다. 상대방에게 자꾸 어느 쪽을 강요하면 이미 게임의 묘미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어떤지를 즉, 어떻게 느끼고 지각하는지를 자각하고 그것에 대해서 상대에게 확인하고 상대방의 의사에 대해서도 내가 판단한 것이 정확한지를 묻고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그의 감정이나 생각에 대해서 존중하는 것이 건강한 대화의 출발점이자 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