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의 고대신 가이아는 태초의 혼돈에서 태어난 가장 원형적인 어머니 신이다. 그녀는 하늘의 신 우라노스를 낳고 우라노스와의 관계에서 2세대 12명의 티탄신을 낳는다. 그러나 우라노스는 외눈박이 거인인 키클롭스와 50개의 머리와 100개의 팔을 가진 헤카톤케레이스를 싫어하여서 가이아의 뱃속에 묻어버린다.
이 이야기는 고대적 소재나 판타지로만 들리지만 의외로 우리 현실이 가까이 있는 편이다. 상담 과정에서 내담자들은 어머니를 꿈에서 종종 귀신이나 괴물로 등장시킨다. 이 기괴하고 공포스러운 절망적인(abject) 모성을 극복하지 못하면 박해적 두려움은 정신증적 발달을 초래한다(조현숙, “모성의 반전, 괴물엄마의 살해와 영혼의 어둔 밤에서의 주체 탄생,” 「목회와 상담」19(2012): 172.)
유아들의 꿈에서 귀신이나 괴물의 소재는 대체로 이 절망적인 모성의 무의식적 양식이다. 오딧세이아에서 트로이 전쟁을 마치고 돌아오던 오딧세우스가 한 섬에서 만난 괴물, 키클롭스처럼 생긴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에게 잡아먹히는 상황에서 자신은 "아무도 아냐"가 되고 만다. 폴리페모스의 눈을 멀게 하고 섬을 떠나가는 오딧세우스는 자신을 "나는 라에스테스의 아들, 이타카의 왕, 오딧세우스다"라고 말한다.
우리 전래 동화에 호랑이가 두려움의 대상이 된 것도 같은 이유다. 공교롭게도 호랑이는 엄마를 잡아 먹고 엄마 옷을 입고 나타나 아이들을 잡아먹으려 든다. 우물의 비친 아이들을 보는 장면이라든지, 하늘에 올라 해와 달이 되는 장면들은 이 이야기가 지닌 상징적 풍성함을 잘 드러내준다. 6-70년대 화장실과 망태 할아버지가 두려움이 대상이 된 것도 주로 엄마들이 "망태 할아버지가 잡아간다"고 말하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주체적으로 무엇인가를 하려는 소망과 엄마의 처벌에 대한 공포를 상징물로 드러냄으로 아이들의 행동을 통제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우리 엄마들은 감각적으로 아이들의 상징체계를 이해하고 있었다. 상상과 상징들이 내면적 적개와 공포의 감정을 분출하는 도구였다. 그것은 괴물로 드러났다. 오래 전 개봉했던 픽사의 에니메이션 "몬스터 주식회사"에서 몬스터들이 벽장이나 침대 밑에서 나오는 것은 이것이 서구의 아이들에게 두려움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클라인의 그 제자들은 이 절망적인(abject) 모성을 불안이란 단어로 묘사하기에는 너무 약하다는 생각했다. 그래서 ‘멸절의 고통’, ‘ 파국’, ‘이름없는 불안(nameless dread)'이라고 묘사했다. 이 괴물을 어머니가 담아 줄 수 있어야 하는데 Bion은 이것을 “어머니의사랑은 몽상(reverie) 안에서 표현 된다”고 묘사했다(Bion,『 경험에서 배우기』, 79.). 무력한 아이의 무의식적 공포와 불안을 투사하는 것을 엄마가 담아줄 때, 그 공포와 괴물은 잠들고 아이는 진정한 의미의 자신이 된다. 그런데 이 현대 심리학의 성찰은 놀랍게도 그리스 신화 속에 은유와 상징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키클롭스와 헤카톤케레이스를 담아내는 가이아를 통해서 그 장면을 목격할 수 있다.
성경은 자녀들에게 부모를 공경하라고 가르치고 부모들에게는 아이들을 노엽게 하지 말라고 권면한다. 더 깨지기 쉬운 그릇인 아이들은 그 마음에 분노와 적개를 담을 능력이 안 된다. 이 분노는 담아내지 못함으로 인해서 곧 불안과 공포가 되고 그 공포는 다시 부모에게 투사된다. 이 불안과 공포를 부모가 거세하려고 들 때, 아이들에게서 자살 충동과 정신병리가 시작된다. 그 분노와 공포로 대변되는 괴물은 공상을 통해서 엄마가 담아낼 수 있어야 하고 그렇게 당당하게 자란 아이라야 두려움을 이기는 사랑을 하게 된다. 아이의 심연의 키클롭스와 호랑이와 겨루어 이길 때, 진정으로 부모의 가르침에 순복하는 주체가 된다. 하나님과 우리가 맺는 인격적 교제란 바로 이런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 얼굴을 우리에게 감추시고 그의 현현을 드러내지 않으심은 하나님과 인간이 지닌 존재적 격차가 너무나 광대해 그 얼굴을 목격하고는 생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같은 방식이 아이들을 양육하는 과정에 작동한다. 그렇게 건강한 주체로 선 아이라야 사랑과 협업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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