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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신학/교회론

교회

교회(敎會)
[1] 보편적 교회 또는 우주적 교회는 무형적이다. 이 교회는 머리 되시는 그리스도를 중심을 하여 그 아래 하나로 지금까지 모여들었고 지금 모여들고 있고 장차 모여들게 되는 택함을 받은 모든 사람들로 구성된다. 이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요 몸이며,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의 충만이다.
엡1:10,22,23 5:23,27 골1:18
[2] 유형교회 또한 복음 시대에는 보편적이요 일반적인 교회이다(이전 율법시대처럼 한 민족에게만 제한되어 있지 않다) 이 유형교회는 전 세계적으로 참 교회를 신봉하는 모든 사람들과 그들의 자녀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 교회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이며 하나님의 집이며 권속이다. 이 교회를 떠나서는 즉 교회 밖에서는 통상적으로 결코 구원 받을 수가 없다.
고전1:2, 12:12,13 시2:8 계7:9 롬15:9-12 고전7:14 행2:39 겔16:20,21 롬11:16 창3:15 17:7 갈3:7,9,14 롬4장 사9:7 마12:50 엡2:19 행2:47
[1]-[2] 의 교훈
(1) 하나님의 입장에서 본 교회의 본질을 보여준다. 
(2) 인간의 입장에서 본 교회의 본질을 가르쳐 준다. 그렇다고 해서 별개의 다른 두 교회들인 유형 교회와 무형교회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히12:23에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머리 되시고(엡1:22,23 5:23,27등) 모든 세대의 모든 택함 받은 자들이 지체들로 구성되어 있는 몸이다. 이러한 지체들은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예정을 입었고”(엡1:11) “창세전에 택하심을 입었다”(엡1:4)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기도하신 신자들의 몸이다(요17:9) 그것은 시간과 공간 양면에서 전충성(塡充性)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지구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이르며 창세로부터 종말에 이르기까지 뻗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비록 그것이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마음을 절대 확실하게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자기에게 속하는 자들을 미리 아신다.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였느니라(딤후2:19)
그러나 다른 교회가 아닌 바로 이 교회가 이 세상에서 사람들의 눈에 보이게 된다. 즉 참 유형 교회가 있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참 교회가 세상에서 자체를 드러내는 것이다. 참 교회가 자체를 드러내는 때와 장소를 통해 – 즉 절대적 의미로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그 교회가 그 시간과 그 장소에서 우리에게 보이게 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참 교회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자들을 통하여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그 자체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같이 드러난 유형교회는 전체(무형) 교회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게 되는데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불완전한 까닭에 제한이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 유형 교회 또한 어떤 의미에서 보편적이다. 왜냐하면 그 유형 교회가 전 세계에 걸쳐서 현재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인 모든 자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참 교회의 가견성 (可見性)을 흐리게 하는 두 가지 요인들이 있다. 
(1)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는 지상의 각 지체의 불완전성과 
(2)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의 외양을 흔히 흉내내는 불신자들의 위선이 바로 그 요인인 것이다.
참 신자들에게도 그들이 세상에 머물고 있는 동안에는 악이 있고, 불신자들에게도 외견상 믿음과 의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 참 교회가 유형적으로 드러난 것인지의 여부는 결코 완전하게 우리로서는 식별할 수가 없는 것이다. 달리 말해서 그리스도의 교회는 어떤 특정의 교파나 단체에 결코 완전하게 나타날 수가 없다. 그러기에 어떤 교파나 단체에 결코 완전하게 나타날 수가 없다. 그러기에 어떤 교파나 단체도 하나님의 무형자체가 지니고 있는 것과 동일한 분계선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완전한 교회를 실현 시키고자 하는 모든 사도는(즉 교회의 구성원 모두가 신자들이요 그것도 참 신자들인 뿐인 교회를 실현시키려는 노력) 결국 실현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 목표가 실현되는 때라야 만이 우리 눈에 보이게 될 그러한 의미로는 그 교회가 보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참 유형교회에 대해서 말할 때 바로 그리스도의 그 몸이 지니고 있는 것과 같은 분계선을 그 교회가 가지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참 유형교회가 이 속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참 유형교회가 오히려 참된 것은 그것의 회원이 됨으로 해서 택함 받은 자로 동일시되기 때문이 아니라 그 교회가 참 신앙을 고백하고 성경의 참된 교리와 성례들에 대한 가르침을 베풀고 그 하나님의 율법에 의하여 요구되는 권징을 시행하기 때문이다. 말씀전파와 성례와 권징을 충실히 행하는 곳에 참 유형교회가 있다. 그리고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중요한 점은 이 같은 참 유형 교회가 다름아닌 지상에서 자체를 드러내고 있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이다. 만일 이것은 겉모양만 교회가 아니었을까? 온통 위선자들의 회중으로서 그들 중의 한 사람도 사실상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아니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참으로 전하고 성례를 집행하고 권징을 시행하기 위해 함께 모인 것이 아니었을까? 라고 묻는다면 결코 그렇게만 생각할 수 없다고 대답할 수 있다. 
위선자들이 참 신자들의 집단에 가담할 가능성이 있고 실제로 그렇다. 그러나 사탄이 하는 일을 파괴적이요 모방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사탄은 위선자들의 전 집합체로 하여금 하나님의 참 교회의 특징들을 나타나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신약에서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전1:2 비교 고후1:1 살전1:1 롬16:4,16 갈1:2,22 계1:4,11,20 등) 사도들이 어떤 특정한 장소에 있는 교회에 대해서든지 또는 어떤 지역에 있는 교회들에 대해서 말하든지 그곳이 다름 아닌 그리스도의 몸인 하나님의 그 하나의 교회가 나타나 있기 때문에 사도들은 개별적인 유형 교회들은 언제나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참 신앙이 고백되고 말씀전파와 성례집행과 권징이 시행되고 있는 회중을 보는 곳에서마저도 그들은 그리스도의 보편 교회의 참된 현현(아무리 분쟁과 죄악으로 흐려져 있다고 할지라도)을 보고 있다는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신앙고백서에는 “유형 교회는 전 세계적으로 참 종교를 신봉하는 모든 사람들과 그들의 자녀들로 구성되어 있다” 라고 진술되어 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불신자들이 참 유형교회의 지체가 될 가능성이 있고 또한 실제로 그러하다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 우리는 이것이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임을 믿는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도 아니며 또한 결코 아닐 자들을 그의 참 유형교회에 포함되게 작정하셨다는 것을 생각하면 당황할 수가 있다. 그러나 우리의 당황은 진리의 척도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과 에서가 다 같이 할례를 받도록 명하셨다. 그래서 그들은 외형상으로는 교회의 지체들로 동일시되었다. 그렇지만 에서가 무형 교회에 가담하지 않도록 되어 있었던 것이 이미 계시되어 있었다. 성경에는 또한 유다가 저버리고 갈 장소가 말씀되어 있지 않은가? (행1:25) 이는 곧 그가 유형 교회에서 한자리를 차지했지만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는 아무 자리도 결코 차지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 교회가 가견적이 되는 것은 사람의 동일시에(모두 택함 받은 자로 여기는 –역자 주) 의해서가 아니라 참 신자들이(비록 그들 가운데 위선자들이 섞여 있을 지라도) 행하게 될 어떤 일들이 드러남으로 해서 자체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즉 그들은 참 신앙을 고백하고 참 유형 교회에 요구하는 바의 말씀과 성례와 권징에 충실할 것이다. 택함 받은 자들의 이 같은 활동들이 현존함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몸이 가견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3] 이 보편적인 유형교회에서 세상 끝 날까지 이 세상에서 성도들을 모으는 일과 온전케 하는 일을 위하여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성직과 성경과 성례를 제정해 주셨다. 그리고 그의 약속을 따라 그 자신의 임재하심과 또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이 효과적으로 모아지며 온전케 되는 것이다.
고전12:28 엡4:11-13 마28:19,20 사59:21
[4] 이 보편적 교회는 때로는 더 쉽게 볼 수가 있고 때로는 보기가 더 어렵기도 하다. 그 보편적 교회에 속하는 개 교회들은 그들 안에서 복음의 교리를 가르치고 받드는데 따라 성례가 시행되고 공동 예배를 순수하게 행하고 안 하고에 따라 더 순수하기도 하고 덜 순수하게도 되는 것이다.
롬11:34 계12:6,14 계2-3장 고전5:6,7
[5] 지상에서는 아무리 순수한 교회들일지라도 혼잡함과 과오를 범한다. 그리고 어떤 교회들은 극도로 타락하여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라 사탄의 공회당이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자상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에게 예배 드리는 교회가 있을 것이다.
고전13:12 계2-3장 마13:24-30,47 계18:2 롬11:18-22 마16:18 시72:17,102:28 마28:19,20
[6] 주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교회의 머리 되시는 분이 달리 아무도 없다. 그리고 로마의 교황 역시 어떠한 의미에서든지 교회의 머리가 될 수 없다. 다만 교황은 적그리스도요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며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 및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에 비하여 자신을 높인다.
골1:18 엡1:22 마23:8-10 살후2:3,4,8,9 계13:6
[3]-[6] 의 교훈
(1) 교회가 가견적이 되는 정도에 차이가 있다. 
(2) 각개의 교회는 그 교회의 ①교리 ②예배 ③권징에 의하여 판단해야 한다. 
(3) 어떤 교회도 전적으로 순수할 수는 없다. 
(4) 어떤 교회들은 배교 상황에 빠지기도 한다.
(5) 참 교회의 가견적 현현이 어느 정도는 언제나 있게 된다. 
(6) 그러나 로마 교회의 경우는 교황이 적그리스도이기 때문에 참 교회일 수가 없다. 
유형 교회가 한때 완전한 순수성과 통일성을 지니고 있었던 것처럼 그 한때 완전한 교회에 대해서 말하는 자들이 있으나 그들은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초대 교회의 경우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얼마 못 가서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는 일이 있게 되었다(행2:44,6:1)
우리는 참 교회의 숭고함과 함께 그 교회의 가견적인 불완전성을 또한 보게 되는 것이다.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을 없도록 하라”고 기독교인들에게 권하였던 바로 그 사도가 곧 이어서 그들 가운데 분쟁이 있었다는 것일 인정하였다(고전1:10,11) 그는 심지어 그 같은 분쟁들이 필연적이었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말이 내게 들리니라”고 그는 말했다. “너희 중에 분쟁이 있다 함을 듣고 대강 믿노니 너희 중에 편당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고전11:18,19) 편당(이단)이 극소수에 머물 때 하나님의 보편 교회가 최대한으로 나타나게 되고, 편당이 최고도로 득세하는 때에는 바로 그 보편 교회가 아주 큰 어려움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사도의 글들을 연구해 볼 때 그 교회가 통일성과 순수성을 나타내려고 함에 있어서 겪는 어려움을 분명하게 직시할 수가 있다. 
악한 사람들이 가만히 들어오되(유4) 멸망케 할 이단을 끌어들여 왔던 것이다.(벧후2:1) 이로써 어떤 사도의 교회들은 곧 그리스도의 교훈들에서 떠났다(갈1:6 계2,3장) 어떤 교회들은 다른 교회들에 비하여 훨씬 더 용감하게 이 악들에 대항하여 싸웠으나 어떤 교회들은 무관심하거나 부주의 하다가 엄습을 당하여 넘어졌다.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글을 쓰던 당시에 아시아의 일곱 교회들 간에 큰 차이가 있었다(계2,3장) 적어도 몇몇 교회는 배교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에 따르게 된다. 어떤 교회가 “귀환 불능점”에 도달한 것을 어떻게 알 수가 있는가? 언제 신자가 그러한 교회의 배교를 선언하고 그 교회에서 나와 분리되어야 하는가? 이것은 심각한 문제요, 주의해서 대답되어야 하는 문제인 것이다.『벨직 신앙 고백서』(29항)가 여기에 다소 도움이 된다."참 교회"를 알아볼 수 있는 특징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복음의 순수한 교훈이 그 안에서 전파되고, 그리스께서 제정하신 대로 성례가 순수하게 집행되며 교회의 권징이 죄를 벌함에 있어서 실시된 것 등이다. 
요약하자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순전한 말씀대로 되어지고 그 말씀에 어긋나는 모든 것들이 거부되며, 예수그리스도가 교회의 유일한 머리로 인정되는 것 등이다. 이로써 참 교회를 확실하게 알아볼 수가 있는 것이며, 이 같은 교회로부터는 아무도 분리해 나갈 권한이 없다. 『벨직 신앙 고백서』의 2항에는 거짓교회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교회 자체와 그것의 규례들에 더 많은 권한과 권위를 돌리며 그리스도의 멍에에 예속하지 않는다. 라고 또한 진술되어 있다. 분명코 성경에 대한 필수적인 충성을 아주 분명하게 나타냄으로써 아무런 의심을 받지 않는 교회들이 있는가 하면 성경에 충실하지 않은 것이 여실히 드러나 있는 교회들도 있다. 어떤 교회도 결코 완전하게 순수하지는 못하다. 그러나 어떤 교회들은 그들이 참 가견 교회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게끔 말씀과 성례와 권징의 순수성을 충분하게 갖추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것들에 대한 희미한 요소가 조금도 남아 있지 않는 교회는 아마 결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성경에 대한 충실성의 결핍이 너무나도 명백함으로 해서 그러한 교회들이 참 가견 교회들이 아니라고 하는 데는 이의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 대한 충실서의 결핍이 너무나도 명백함으로 해서 그러한 교회들이 참 가견 교회들이 아니라고 하는 데는 이의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떤 교회이든 불완전 하지 않는 교회가 없고 모든 교회는 (인간적으로 말한다면) 배교하기 쉽다. 만일 어떤 신자가 교회가 지니고 있는 불완전성 때문에 교회에서 분리해 나가야 된다고 하면, 그는 결코 아무 유형교회에도 속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유형교회가 진리에서 크게 이탈함으로 해서 교회로부터의 분리가 요구되거나 정당화 될 수 있는 때도 있을 수 있다. 진리에서 이탈한 교회가 그 회원들에게 죄에 가담하지 않을 수 없게끔 할 때에는 “귀환 불능점”에 이른 것으로 볼 수가 있다. 이렇게 된 때에는 성경은 분명하게 말한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18:3,4) 
어떤 사람들은 주장하기를 어떤 특정한 교단(또는 유형교회)안에 머물러 있을 수 있는 한 그것을 떠나서는 안 된다고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것을 비 진리와 타협함이 없이 머물러 있을 수 있는 한 특정한 교단을 결코 떠나서는 안 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같이 타협하지 않는 순종에 필요한 조건들은 다음과 같다. 
(1) 그 교단이 전체적으로 기초적인 순수성을 잃지 않고 참 신앙을 고백해야 하며
(2) 실재하는 그릇된 사상들을 대항하여 진리를 위해 싸우는 권한이 제한되어 있지 않아야 하고
(3) 진리를 옹호하고 교회의 순수성을 찾기 위한 적극적인 싸움이 있어야 한다. 
어떤 자들은 그들이 속해 있는 교단이 보수적인 회중교회 또는 장로교회라는 이유만으로 그 교단이 전체적으로 배교하고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머물러 있는 자들이 있다. 이것은 교회의 통일성에 대한 성경적 교훈과 성경의 공동책임 개념에 위배된다(고전11:14-27) 그런가 하면 다른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그들에게 신앙의 근본 원리들을 전파할 수 있는 권리가 아직도 있다.”는 이유로 거짓 교호들에 남아 있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그들의 교회 안에 널리 퍼져 있는 특정한 그릇된 사상을 정죄하여 전하는 것이 더 이상 허락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모든 계획을 전해야 하는 성경상의 의무와, 그릇된 사상을 폭로해야 하는 특별한 의무에 모순되는 것이므로 죄악 된 것이다(딤후2:25,26 4:2-5등) 
또 어떤 자들은 언젠가는 개혁할 수 있을 것을 소망하기 때문에 거짓 교회에 남아 있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그러한 개혁의 노력들이 전혀 관대하게 다루어 지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그러하리라는 것을 그들이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실제로는 전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이것은 전혀 구실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어떤 신자가 오판(誤判) 하여 참 교회인줄로 확신하고서 그 교회의 회원이 되었거나 막상 알고 보니 참 교회가 아님을 알고 그가 그 교회를 떠나고자 할 경우에는 그 교회가 참 교회가 아니라고 하는 이유들을 분명히 밝히고서 떠나야 할 것이다. 또한 보다 더 순수한 참 교회에 가입하기 위해서 덜 순수한 교회를 떠나는 것은 그 동기가 하나님의 영광과 자신의 영적인 유익과 그릇된 견해에 대한 증거를 위한 것이라고 하면 합당할 것이다.(자녀의 영적 유익을 위하는 경우도 합당하다.) 
[6]의 교훈 재 고찰
(1) 그리스도가 교회의 유일한 왕이요 머리이시다. 
(2) 교황은 어떤 의미에서도 결코 교회의 머리가 아니다.
(3) 교황 제도는 그리스도의 참 교회를 파괴하는 악마의 예언된 대리 기관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유일한 왕이요 머리라고 하는 것은 성경의 많은 말씀들 가운데 진술되어 있다(골1:18 엡1:20-23등) 이 사실을 대부분의 종교 개혁자들이 충분하게 인지하였다 그러나 어던 사람들은(로마 카톨릭 교도들처럼) 지상의 유형 교회는 그리스도에 의해 부여된 권위를 갖춘 가견적인 머리(Visible head)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에라스투스주의(Erastianism)는 몇몇 개신교들에 의하여 주장된 교리로서 독일 신학자인 토마스 에라스투스(1524-83)의 이름을 딴 것이다. 이 교리는 공적인 문제들뿐만 아니라 교회의 문제들에 있어서 교회에 대하여 국가의 우위성을 주장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교회 행정에 관한 이론은 역사적으로 스칸디나비아 독일 그리고 영국과 같은 국가 교회들의 형태로 나타났다. 예를 들면 헨리 8세 왕은 “영국 교회의 최고의 머리”로 인정되었다. 그리고 “왕과 그의 후계자들이 영국 교회의지상의 유일한 최고의 머리로 받아들여지고 존경될 것이니라” 는 것이 법률로 제정되었다. 이 교리는 영국 교회의 37조항에 다음과 같이 반영되어 있다.
여왕 폐하는 영국 본토와 그의 다른 자치령들에서 최고의 권력이다. 그러므로 본토의 모든 재산의 경우 그것이 교회의 것이든 공공의 것이든 여하튼 간에 모두에 대한 최고의 통치권이 폐하에게 속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작성되었을 때 제일 먼저 충돌을 빚은 것은 중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에 대한 로마 교황의 주장이었다. 영국 교회의 종교의 형식으로서 참 겨혁주이 종교를 정립할 목적으로 영국 국회에 의하여 웨스트민스터 회의가 소집되었을 때만 해도 왕이나 여왕이 교회의 최고의 머리로 불리울 위험성은 전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이후의 사건들로 인하여 교황만이 유일한 적 그리스도(즉 그리스도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는 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므로 정통 장로교회에 의하여 주장된 바 신앙 고백서의 이 항에 대한 개역이 본래의 진술에 비하여 한 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유일한 머리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대리자요 교회의 머리임을 자처하는 자의 주장은 비 성경적이요 사실상 아무런 보증도 없고 주 예수그리스도를 욕되게 하는 권리 침해인 것이다. 
교황을 성경의 적그리스도와 불법의 사람으로 동일시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아주 어려운 문제이다. 
웨스트민스터 회의는 사탄의 왕국과 사역에 대해 성경에 미리 이처럼 예언된 것들이 역사적으로 구현된 것이 바로 교황 제도인 것으로 간주했다. 그러면 이 같은 동일시에 대해서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1) 적그리스도라는 단어는 요일2:18,22 4:3 요일7에 나와 있다. 거기에 보면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고 되어 있다. 이 말씀은 적그리스도가 전적으로 장래에만 있을 어떤 것이 아니요 또한 한 사람에게 만이 아니라 여러 많은 사람들에게서 이미 나타났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요일2:22) 라고 기록되어있다. 그리스도는 기름 부은 선지자요, 제사장이요, 왕이시다. 적그리스도는 예수가 기름부음 받은 자인 것을 부인한다. 모든 거짓 영은 거짓 선지자와 이단의 스승을 통하여 나타난다(요일4:1) 그리고 이단은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못하는 법이다.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이 말씀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중보자격을 반대하는 것을 원리로 삼은 여러 형태의 많은 적그리스도 세력이 있으리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 안에 적그리스도의 영이 활동하는 모든 자들은 하나같이 그리스도의 중보자 됨을 반대하는 자들인 것이다. 
(2) 불법의 사람이라는 단어는 살후2:3 이하에만 나와 있다. 그 말씀에 보면 그리스도의 가견적 재림에 앞서 있게 되는 큰 배도하는 일에서 일어날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게 되는 것은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그리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저는 대적하는 자로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멸망의 아들이라는 구문은 성경의 다른 곳에서 개인인 배반자 가룟 유다 에게만 적용되어 있다. 그러므로 불법의 사람이란 가도교회의 배도적 분파에서 하나님의 자리를 실질적으로 차지하려고 하는 어떤 특정 개인이었다고 하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듯하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와 하나님의 자리를 차치하는 자 사이에는 명백한 구별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웨스트민스터 회의의 입장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사도 요한은 적그리스도에 대해서 말하였을 뿐만 아니라 특출한 적그리스도( antichrist per excellence) 에 대해서도 말했다.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영이 많은 개인들에게서 나타나고 있는가 하면 그 영이 한 사람에게 요약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바울은 불법의 사람에 대해서 말했을 뿐만 아니라 개인들 안에서 명백하게 이미 활동하고 있었던 불법의 비밀(7절)에 대해서도 말했다. 더욱이 헬라어 접두어 안티가 흔히 대신 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적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자리를 차치하는 자로 보는 것은 아주 지당하다. 
이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아무튼 적그리스도와 불법의 사람의 개념들은 역사적으로 발전하는 제도(조직) 가운데서 성취될 필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결국 인간 편에서 주제넘게 되는 것을 의미하였다. 분명히 웨스트민스터 회의는 교황제도에서 악의 세력들이 활동하여 그 같은 불법이 성취되는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들이 볼 때 교황 제도에는 성경에 예견되고 예언적 사도적 기독교회로부터 변절(배도)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교황마다 적그리스도적인 이 제도를 대표했기 때문에 그는 개인적으로 적그리스도였다. 그리고 교황 제도는 마지막 불법의 사람이 실제적인 자기 신격화(self-deification)의 최종 단계를 취하여 일어나게 될 역사적인 체제로 등장하였다. 
교황의 권력이 쇠퇴한 까닭에 이것이 사실이 아닌 듯하게 보인 때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동방 정교회 측에서와 심지어는 많은 개신교(?) 교파들 측에서 로마 교회와 재결합하려고 하는 진지한 대화, 아니 대화 이상의 것이 있는 이 때에 우리의 신앙 고백서의 이 항목의 체계적 진술은 억지로 갖다 붙인 것이 아닌 듯싶다. 교황 무오 교리(사람이 하나님의 음성으로 말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는 우리의 신앙 고백서가 작성되고 나서 오랜 후에 선포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의 모든 로마 교회의 교리적 선언은 이전 것보다 더욱 적그리스도적(동정녀 마리아에 관한 교리들처럼)이고 불법적(비성경적)이다. 
G.I.윌리암슨, 나용화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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