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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신학/신약신학

구원을 얻는 믿음의 기원(The Genesis of Saving Faith)

구원을 얻는 믿음의 기원(The Genesis of Saving Faith)
장 해 경 교수
1. 서 론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는 고전적 표어는 오늘날도 여전히 교회가 세상을 향해 크게 외쳐야 할 구호이다. 그러나 “믿으라-구원을 얻으리라”는 이 간명한 요청과 약속은 교회 안에서조차 자주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이 말의 형식을 그냥 기계적으로 받아들이는 신자들은 “믿음”-“구원”의 관계를 ‘조건’-‘성취’의 공식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그들은 ‘내가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그 결과로 ‘내가 [약속된]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바로 여기서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면, 신자는 ‘내 믿음’으로 교회에 입문하게 되고, 그 후 줄곧 ‘은혜’가 아닌 ‘율법’ 아래 머물며, 때론 자랑과 교만으로, 때론 좌절과 낙망으로 점철된 불행한 삶을 영위해 나가기 마련이다. 
이 논문은 위에서 언급한 신앙관이 한국교회 안에 상당히 넓게 퍼져 있음을 감지하고 그에 대한 하나의 주경신학적 답변을 제시하기 위해 쓰여졌다. 여기서 필자는 바울의 칭의론 내에서 “믿음”이 차지하는 위치와 기능을 서술하고자 한다. 그가 주장하려는 논지는 다음과 같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iustificatio sola fide)는 바울의 칭의 교리에서 “오직 믿음으로”(sola fide)라는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은혜로”(sola gratia)라는 말과 결합시켜서 이해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믿음 자체도 오로지 하나님이 그의 초자연적 은혜를 통하여 ― 즉 그의 말씀과 그의 영을 통하여 ― 산출하시기 때문이며, 그러므로 믿음은 “칭의”의 ‘근거’/‘이유’(ground/cause)가 아니라 ‘방법’/‘도구’(means/instrument)가 되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논지를 세 단계에 따라 증명하려고 한다. 먼저, 제2절에서는 바울이 칭의와 관련해서 사용하는 “믿음”의 표현형식들을 어떤 의미로 해석해야 할지 ‘언어적-문법적’ 차원에서 고찰할 것이다. 다음으로, 제3절에서는 ‘주석적’ 논의가 이어진다. 여기서는 특히 사람에게 “의롭다 하심을 얻는 믿음(justifying faith), 즉 구원을 얻는 믿음(saving faith)이 어떻게 생기게 되는가?”라는 보다 근원적인 문제에 대하여 빛을 던져 주는 바울서신의 주요 구절들을 다루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4절에서 필자는 앞선 주석작업에 기초하여 바울의 “믿음”에 관한 ‘신인협동론적’(神人協同論的, synergistic) 이해를 반대하는 ‘신학적’ 결론들을 이끌어 낼 것이다.
2. 바울이 칭의론적 맥락에서 사용한 “믿음”-관용구들
신약성경의 저자들 가운데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용어’를 분명히 사용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해설한 첫 인물이 사도 바울이라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바울은 “칭의”에 대해서 말할 때마다 언제나 명사 dikaiosuvnh(“의”) 혹은 동사 dikaiou'n/dikaiou'sqai(“의롭다 하다”/“의롭다 함을 얻다”)를 중심 개념으로 사용하는데, 이 맥락에서 “믿음”(pivsti")은 보통 다음 세 가지 구(句) 가운데 한 형태로 연결된다. 즉 사도는 dikaiosuvnh 혹은 dikaiou'n/dikaiou'sqai를 1) ejk pivstew" 또는 2) diaV [th'"] pivstew" 또는 3) [th/'] pivstei와 결합시킨다. 이 “믿음”(pivsti")-관용구들은 사람이 “하나님의 의”(dikaiosuvnh qeou') ―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하나님의 구원’ ― 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믿음”과 어떤 관련을 맺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위의 세 관용구들은 바울에게서 내용상 서로 별다른 차이 없이 동의어처럼 쓰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ejk pivstew"와 diaV [th'"] pivstew"가 상호교대적으로 사용되는 사실은 롬 3:20과 갈 2:16의 두 진술을 비교해 볼 때 금방 드러난다. 또한 이 두 관용구는 롬 5:1-2과 갈 2:16a/롬 3:28에서 [th/'] pivstei와 동의어로 나타난다. 이외에도 사도는 hJ ejk pivstew" dikaiosuvnh (롬 9:30; 10:6), hJ diaV pivstew" dikaiosuvnh (빌 3:9), 그리고 hJ dikaiosuvnh th'" pivstew" (롬 4:11, 13) 등의 표현들을 실제로 아무런 구별 없이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세 가지 “믿음”-관용구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번역할 것인가? 구체적으로 말해서, 이 관용구들은 사람이 구원에 참여하는 ‘조건’/‘근거’(condition/ ground)를 가리키는가, 아니면 사람에게 구원이 주어지는 ‘방법’/‘수단’(mode/means)을 가리키는가? 만약 전자를 따른다면, 우리는 그것들을 ‘조건적’/‘원인적’(conditional/ causal) 의미로 이해해서 “믿음을 조건으로”/“믿음을 근거로”/“믿음 때문에”(‘on condi- tion of faith’/‘because of faith’/propter fidem) 등으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후자를 따른다면, 우리는 그것들을 ‘방법적’/‘수단적’(modal/instrumental) 의미로 파악해서 “믿음의 방식으로”/“믿음을 통하여”(‘in the way of faith’/‘through faith’/per fidem) 등으로 번역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보통 일반적으로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는 근거로’ 하나님께 구원을 얻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과연 이 근거를 ‘누가’ 세우는가? ― 하나님인가, 아니면 사람인가? 이다. 우리는 심지어 ‘믿음’이 구원에 참여하기 위한 ‘조건’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남게 되는 결정적인 질문은 과연 이 조건을 ‘누가’ 채우고 만족시키는가? ― 사람인가, 아니면 하나님인가? 이다.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관련 구문과 구절들을 단순히 언어적-문법적으로 분석하는 것만으로는 찾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위에서 언급한 세 종류의 “믿음”-관용구들이 모두 경우에 따라서 ‘원인적’(causal)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 ‘방법적’(modal) 내지는 ‘도구적’(instrumental)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ejk pivstew"는 ‘원인적’ 의미(because of/for the sake of/on the ground of faith)로 이해할 수도 있고, ‘방법적’ 의미(through/by means of faith)로 이해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diaV [th'"] pivstew"도 ― 전치사 diav가 소유격과 결합할 때 여러 가지 뜻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 ‘원인적’ 의미와 아울러 ‘방법적’/‘도구적’ 의미도 나타낼 수 있다. 단순 여격 [th/'] pivstei에 대해서는 문법적으로 세 가지 번역의 가능성이 있다. 즉 이 어법은 경우에 따라서 ‘원인적’으로(on the ground of faith), 또는 ‘도구적’으로(through faith), 또한 ‘방법적’으로(in the way of faith) 해석될 수 있다.
그러므로 위에서 제기한 질문에 대한 답변은 바울신학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면서 탐구되어야 한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작업은 각 해당 구문을 단순히 문법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바울의 저작(Corpus Paulinum) 전체를 제기된 문제의 관점에서 신학적으로 관찰하고 통합하는 일이다. 우리가 제기한 문제는 “바울의 ‘칭의’에 있어서 ‘믿음의 기능(function)’은 무엇인가? ― 믿음이 칭의의 조건/근거인가, 아니면 방법/수단인가? ― 를 밝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보다 우선적으로 다루어야 할 근본적인 문제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죄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의롭다 하심을 얻는 (즉 구원을 얻는) 믿음’이 ‘어떻게’ 생기게 되는가?”라는 질문이다. 필자는 믿음의 ‘발생/기원’(gene- sis)에 관한 이 질문이야말로 바울의 믿음 개념에 관한 모든 토론들에서 반드시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필수요건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부터 “사람 속에 ‘의롭다 하심을 얻는 믿음’, 즉 ‘구원을 얻는 믿음’이 ‘어떻게’ 처음 생기게 되는가?”라는 문제에 관하여 가장 교훈적이고도 시사하는 바가 많은 바울의 본문들을 하나씩 고찰해 나가려고 한다.
3. 믿음의 ‘발생’에 관한 바울의 본문들
3.1 로마서의 주제를 밝히는 롬 1:16-17에서 바울은 그가 전하는 “복음”을 가리켜 “모든 믿는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오는] 하나님의 능력”(duvnami" qeou' eij" swthrivan pantiV tw/' pisteuvonti, 16b절)이라고 소개한다. 이 구절에서 어떤 번역본과 주석가들은 pantiV tw/' pisteuvonti라는 어구를 한정적 조건문으로 번역하거나 그런 의미로 해석한다. 예를 들면, B. 바이스(Weiß)의 다음 진술은 그런 종류의 해석을 대변하고 있다: “믿음은 인간 편에서의 조건이며, 그것이 없다면 복음은 인간에게 그러한 능력[즉 구원을 가져오는 능력]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믿음에 관한 이런 ‘신인협동론적’(synergistic) 해석은 바울이 강조한 “하나님의 능력”(duvnami" qeou')이란 개념을 전적으로 마비시킬 뿐 아니라 롬 1:16b에서 묘사하는 복음의 독특한 표지를 사실상 무효화한다. 도대체 인간이 자신에게 구원의 효력을 미치도록 허락할 때에만 비로소 효력을 나타내는 그런 “하나님의 능력”을 상상할 수 있을까? 과연 사도는 인간이 어떤 의미에서건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할 수 있다고 믿었을까? 결코 그렇게 생각할 수 없다. 바울에 의하면, 인간의 구원을 포함한 하나님의 뜻과 길은 그 어느 누구도, 그 어느 것도 간섭하거나 막을 수 없다 (롬 11:33-36). 그러므로 A. 슐라터(Schlatter)는 롬 1:16b를 주석하면서 상기한 해석을 거부하였다. 그는 복음을 듣는 인간이 “그 메시지를 통하여 신자로 회심하게 되고” 이렇게 회심한 신자로서 “구원을 얻는다”고 올바르게 지적하였다. 
16b절의 진술을 뒷받침하는 17a절은 선포된 복음이 “모든 믿는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오는] 하나님의 능력이다(ejstin)”라고 단언한다. 바울에게 “십자가의 도”(oJ lovgo" tou' staurou', 고전 1:18a)로 요약되는 그리스도의 복음은 그 자체로 항상 ― 그것을 듣는 인간 편에서의 반응 여부와 상관없이 ― “하나님의 능력”이었다. 고전 1:18에서도 사도는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다. 그러나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duvnami" qeou' ejstin)”라고 천명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 복음 안에서” 자신의 “의를 나타내고” 계시며, 그 역동적 구원활동의 과정에서 사람들의 “믿음”을 산출하시기 때문이다 (dikaiosuvnh qeou' ejn aujtw/' ajpokaluvptetai ejk pivste- w" eij" pivstin, 롬 1:17절). 바울은 복음이 곧 하나님 자신의 말씀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을 발휘한다고 생각하였다. 사도는 복음이 그 자체 내에 그것이 요구하는 바 ―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 를 산출하고, 그것이 약속하는 바 ―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지금 벌써 주어졌고 또한 최후의 심판에서 주어질 ‘구원’(swthriva) ― 를 창조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고 확신하였다. 
3.2 복음과 믿음의 이러한 관계는 롬 10장, 특히 바울이 신 30:12-14를 해석적으로 인용하고 있는 5-8절에서도 추론할 수 있다. 이 구절에 따르면, “하나님의 구원”(hJ tou' qeou' dikaiosuvnh, 3절)은 믿는 사람에게 임하여 그의 모든 존재를 결정한다 (hJ ejk pivstew" dikaiosuvnh, 6절). 이 구원은 “하늘에서 내려오셨고 음부에서 올라오신” ― 즉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 (4, 6-7절). 그런데 그리스도와 그의 구원은 바로 지금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toV rJh'ma th'" pivstew" o} khruvssomen, 8절), 그래서 사람들이 듣게 되는 “그리스도의 말씀”(rJh'ma Cristou', 17절) 안에 있다. 이 선포된 복음의 “말씀”은 그 메시지를 듣는 사람들에게 “가까이” 있다 (8절). 그 말씀이 청중들의 “마음”과 “입”에서 “믿음”과 “고백”을 산출하며, 이로써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 놓여 있는 구원을 얻는다 (8-10절). 
8절에서 사도가 복음을 가리켜 “믿음의 말씀”(rJh'ma th'" pivstew")이라고 불렀을 때, 그 명칭이 문맥에서 갖는 의미는 ‘믿음을 창조하는 말씀’이다. 거기서 “믿음의”(th'" pivstew")라는 소유격은 “말씀”이 주는 ‘선물’/‘효과’를 가리킨다 (“믿음을 산출하는 말씀,” the faith-producing word). 또한 빌 2:16에서 복음은 “생명의 말씀”(lovgo" zwh'")으로 불리는데, 여기서도 “생명의”라는 소유격은 위와 똑같은 의미로 해석된다 (“생명을 주는 말씀,” the life-giving word). 
그렇다면 롬 10:8의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란 말은 근본적으로 17절의 진술과 일치한다: “믿음은 복음선포[를 들음]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복음선포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근거한다” (hJ pivsti" ejx ajkoh'", hJ deV ajkohV diaV rJhvmato" Cristou'). 믿음을 산출하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복음선포”(=설교, preaching)를 통해 분명히 표출되고, 복음선포는 효과를 낳는 복음의 능력에 참여하기 때문에, 복음선포 자체도 ‘믿음을 산출하는’ 주체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므로 바울은 갈 3:2, 5에서 ― “믿음의 말씀”(toV rJh'ma th'" pivstew")이라는 표현과 유사하게 ― “믿음의 복음선포/설교”(ajkohV pivstew"), 즉 “믿음을 산출하는 설교”(faith-producing preaching)라는 용어를 만들어 사용한다. 
3.3 복음 그 자체가 믿음을 창조하고 생산한다면, 이 복음은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롬 4:17) 창조주의 말씀인 것이 분명하다. 복음이 창조주의 말씀이라는 사상은 고후 2:14-7:4에 인상깊게 반영되어 있다. 바울은 거기서 자신의 사도직을 집중적으로 변호하면서 “복음이, 그리고 그 말씀 속에서 하나님 자신이 세계를 횡단하는 개선의 행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2:14). 이 개선 행렬 속에서 하나님은 사도들을 자신과 함께 나아가도록 “이끄시고” 그들을 통하여 ― 즉 그들이 선포하는 “하나님의 말씀”(lovgo" tou' qeou', 2:17)을 통하여 ―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냄새”(ojsmhV th'" gnwv- sew" aujtou')를 퍼뜨리신다 (2:14). 이 “냄새”를 맡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신적 “영광”(dovxa, 3:18; 4:4, 6)을 알게 됨으로써 “생명에 이르게” 된다 (2:16).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람들은 복음선포를 듣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형상”(eijkwvn tou' qeou', 4:4)이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가 부활하신 “주”시며 (4:5), 그분 안에서 하나님이 “세상과 화해”하셨고 (5:18-19), 멸망 받아야 할 인류의 구원이 그러므로 그분 안에 담겨 있음을 알게 된다 (5:14-21; 6:2).
그렇다면 복음선포를 듣는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복음의 진리를 알게 되고 그리스도를 믿게 되는가? 이 질문의 답은 고후 4:3-6에서 찾을 수 있다. 이 구절은 바울의 ‘믿음’ 개념에 대하여 신학적으로 매우 시사하는 바가 많다. 사도는 여기서 인간이 본래 처한 ‘불신앙’의 상태가 어떤 것이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 또한 인간이 그 상태를 어떻게 벗어나게 되는지를 보여 준다. 
바울은 먼저 복음이 모든 불신자들에게 “가리어져”(kekalummevnon) 있다고 말한다 (3절). 왜냐하면 “이 세대의 신”인 사탄이 그들의 “생각을 어둡게 뒤덮었기(ejtuvflwsen)” 때문이다 (4a절, 비교. 엡 2:2). 그 결과 그들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는 복음의 빛을 볼 수 없게” 되었다 (4b절). 5절에 의하면, 바울을 포함한 사도들은 이런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주(kuvrio")로서 선포”하였다. 하지만 사도들 자신은 “예수를 위하여” 복음을 듣는 사람들의 “종”으로 자처하며 일하였다. 원인접속사(o{ti, because)가 이끄는 6절 문장은 그 이유를 설명한다: “왜냐하면(o{ti) ‘어둠으로부터 빛이 비추어라!’고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 속에 빛을 비추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지식이 밝혀지도록 하셨기 때문이다.” 
5절과 6절의 내용은 첫눈에 논리적으로 잘 연결되지 않는다. 그러나 “왜냐하면”이라는 접속사로 연결된 이 두 진술을 ‘결과’-‘원인’의 방식으로 읽으면, 바울이 여기서 말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파악하게 된다. 바울은 6절에서 ―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 속에 빛을 비추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지식이 밝혀지게 하셨다”는 표현으로 ― 자기에게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빌 3:8)이 처음으로 밝혀졌던 사건, 즉 자신이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던 다메섹 도상의 사건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5절은 사도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스스로 “종”이 되어 “그리스도를 주로서 선포하고” 있으며, 그로써 자신이 받은 것과 동일한 “지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다시 말해서, 바울은 십자가에 달리셨고 부활하신 주 예수 ― ‘인격으로 나타난 복음’(the Gospel in person) ― 를 다메섹 도상에서 처음 만났을 때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이 이제는 복음이 선포되는 “모든 곳에서”(고후 2:14b) 똑같이 일어나고 있다고 믿었다. 그는 복음이 “구원을 가져오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타나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하나님의 “새 창조”(고후 5:17)가 일어난다고 보았다. 
바울은 6절에서 복음이 일으키는 ‘새 창조’의 기적을 하나님이 ‘옛 창조’의 첫째 날에 빛을 만드신 기적과 나란히 놓고 있다. 그 날에 창조주 하나님은 능력이 충만한 말씀으로 어둠과 혼돈이 지배했던 곳에서 빛이 비쳐 나오게 하셨듯이, 지금도 동일하신 하나님은 복음의 창조적인 말씀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빛을 비추셔서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영광을 아는 지식이 홀연히 밝혀지게(lighten up) 하신다. 사도가 세상에 선포되는 복음의 말씀을 창 1:3의 “빛이 있으라!”는 말씀에 유비하였다면, 그는 복음에 접하지 않은 인간의 마음 상태를 빛이 창조되기 전의 원시 우주의 상태와 유사하게 보았음에 틀림없다. 죄 가운데 빠진 자연인에게는 (참조. 롬 1:18-3:20; 7:7-24) 스스로 복음의 진리와 하나님의 영광을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완전히 봉쇄되어 있다. 자연인의 생각은 사탄의 영향아래 “어두워져” 있고, 따라서 자연인에게 “복음은 가리어져” 있다. 이렇게 어둠과 혼돈만이 지배하는 그의 마음 속에서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 믿음에 대한 어떠한 긍정적인 출발점도 찾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불신상태에 있는 인간이 어떻게 거기서 벗어날 수 있는가? 그것은 ― 6절이 가리키듯이 ― 태초에 말씀으로 어둠에서 빛을 창조하신 그 하나님께서 지금 세상에서 선포되고 있는 복음의 말씀으로 불신자의 어두운 마음 속에 “빛을 비추심”으로써 가능하다. 그때에야 비로소 사람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지식이 밝혀지게” 된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이미 창조주의 말씀이 발산하는 “빛”을 받아 “새로운 피조물”(kainhV ktivsi", 고후 5:17)로 변화된 사람이다. 요컨대 고후 4:3-6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창조하시는 말씀’(creating word)에 의해 생성되는 것임을 증명해 준다. 
복음이 인간의 마음 속에서 믿음을 창조한다는 사상은 고후 3:2-3에서도 다른 용어를 통하여 표현되고 있다: 
너희는 우리의 [추천하는] 편지이다 ― [그 편지는] 너희의 마음 속에 쓰여졌고, 모든 사람들에 의해 읽혀지며 알려지고 있다. 너희는 자신들이 우리의 사역에 의해 [쓰여진] 그리스도의 편지 ― 잉크로 쓰여진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쓰여졌고, 돌판들 위에 쓰여진 것이 아니라 육의 마음들 속에 쓰여진 편지 ― 임을 나타내고 있다.
이 구절에서 사용된 여러 가지 은유적 표현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직도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바울이 여기서 말하려는 요지는 명백하다. 그가 선포한 복음은 ― 모세의 율법과 다르게 ― 그 속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이 내재하고 있으며, 이 영을 통하여 사람들의 “마음 속에 쓰여졌다”는 것이다. 사도는 그의 복음을 구약성경이 ― 특히 렘 31(=38LXX):31-34의 예언이 ― 종말에 하나님에 의해 세워질 것으로 약속한 “새 언약”(kainhV diaqhvkh)과 동일시한다 (고후 3:6a절). 고후 3:6-11에서 “새 언약”은 모세에 의해 세워진 ‘옛 언약’과 대조되고 있다 (6-7, 13절). 거기서 바울이 강조하는 새 언약의 본질적 특징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성령”(pneu'ma)이 그 안에 내재하면서 생명을 일으키는 능력을 발휘한다는 데 있다. 
바울은 또한 겔 36:26-27의 약속이 “성령에 의해” 사람들의 “마음 속에 쓰여지고”(3b절) 그 속에서 믿음을 일으키는 ‘복음’ 안에서 성취되었다고 믿었다. 에스겔은 하나님이 장차 그의 “영”을 자기 백성들 “속에 보내 주시고” 그들의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심으로써 그의 “요구/계명들(dikaiwvmata)을 지켜 행하게” 하실 것이라고 예고하였다. 과연 그 예언과 같이, “성령”은 오늘날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하여 사람들 “속에 거하시고” 새 마음을 창조하셔서 그들 안에서 하나님의 “요구(dikaivwma)가 이루어지게” 하신다 (롬 8:4-14). 모세의 율법은 죄와 사망에 처한 인간의 현재 상태(what he is)에만 호소하며 그 상태에 붙들려 있는 반면, 그리스도의 복음은 인간에게 성령이 만드시는 생명을 선물하고 인간을 현재 상태가 아닌 (what he is not) 존재로, 즉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시킨다. 
복음이 사람에게 이러한 선물과 변화를 가져오는 까닭에 사도 바울은 복음을 선포하는 자신의 “직분”을 가리켜서 “의의 직분”(diakoniva th'" dikaiosuvnh", 고후 3:9), 또는 “화해의 직분”(diakoniva th'" katallagh'", 5:18), 또는 “성령의 직분”(diakoniva pneuv- mato", 3:8)이라고 부른다. 특별히 “성령의 직분”이란 말은 그 직분이 성령의 능력 안에서 수행되는 것과 동시에, 하나님이 그 직분을 통하여 성령의 활동을 나타내신다는 것을 뜻한다 (비교. 고후 6:6-7). 바울은 자신으로 하여금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였고 또한 복음선포의 직분을 맡아 “말하게” 하시는 주체가 바로 “믿음의 성령”(pneu'ma th'" pivstew", 4:13), 즉 믿음을 일으키시는 성령(the faith-making Spirit)이라고 인식하였다. 
3.4 선포되는 복음과 생명을 창조하시는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 속에 믿음을 일으키신다는 바울의 신념은 그의 여러 다른 구절들에서도 표출되고 있다. 롬 15:17-19에서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줄곧 “성령의 능력으로”(ejn dunavmei pneuvmato", 19b절) 그를 “통하여 일하셨고”(kateirgavsato CristoV" di j ejmou, 18b절), 그 결과 그에게서 복음을 듣게 된 많은 “이방인들”이 하나님께 “순종”하게 되었다(uJpakohV ejqnw'n, 18c절)고 말한다. 살전 1:5-6에 의하면, 바울은 데살로니가인들에게 “단지 말로만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으로 (ejn lovgw/ movnon ajllaV kaiV ejn dunavmei kaiV ejn pneuvmati aJgivw/, 5b절)” 복음을 선포하였고, 그 결과 그들은 “혹독한 환난에도 불구하고 성령이 일으키시는 기쁨 가운데 그 말씀을 받았다.” 고전 2:4-5에서도 이와 매우 유사한 진술이 발견된다: “내 말과 나의 전도함이 설득력있는 지혜의 말로가 아니라 성령의 증거와 능력으로 행해졌던 목적은 너희의 믿음이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만 의존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곧 이어지는 6-16절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12c절)에 대한 (믿음의) 지식이, 그러므로 믿음 자체가 바로 하나님의 선물이며 그의 영의 작품임을 설명한다. 하나님은 “성령을 통하여” 신자들에게 마지막 때에 “예비하신” ―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 안에서 그들을 위하여 마련하신 ― 구원을 “나타내셨다” (9-10절).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십자가 사건 안에서 그들에게 “주신” 것들을 “안다” (12절).
바울은 갈라디아서 독자들에게 그들이 “믿음의 선포로부터”[=믿음을 산출하는 선포를 통하여](ejx ajkoh'" pivstew", 갈 3:2, 5) 성령을 받았음을 상기시키고 (3:14), 이 성령이 또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고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시며 (3:26) 그들의 양자 된 신분을 확신케 하셨음을 상기시킨다 (4:6; 비교. 롬 8:14-16). 따라서 이 구절들은 ― 고전 12:3의 진술과 마찬가지로 ―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주 예수”에 대한 믿음의 고백이 오로지 성령의 사역에 의한 것이며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언사가 아니라는 점을 밝혀 준다.
그 외에도 바울은 갈 3:23-25에서 “믿음의 도래(到來, ejlqei'n)”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믿음이 오기 전에는 우리가 율법의 감독 아래 갇혀 있었으나 ....”(23a절); “그러나 믿음이 온 후에는 ....”(25a절). 사도는 여기서 “믿음”을 마치 어떤 역사적 실체와 같이 취급하며 의인화한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갈 4:4)나 ‘성령’(갈 4:6), 또는 (의인화된) “율법”(롬 5:20; 7:7-25)이나 “하나님의 의”(롬 10:6-8)가 구원역사의 결정적 시점에서 도래한 것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믿음”의 도래를 말하고 있다. 이 구절에 따르면, “믿음”은 “그리스도와 함께 도래한 구원의 길”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인간이 개별적으로 마음의 결단을 내림으로써 실행하는 하나의 인간적-심리적 현상이 아니라, ‘그리스도-사건’(즉 ‘복음’의 내용)이 성취되고 ‘성령’이 강림하신 후에야 비로소 세상에 열리게 된 신적-역사적 구원의 방도이다.
3.5 바울의 구원론에 담긴 ‘순전한 은혜’의 성격은 그가 ‘이신칭의’(iustificatio sola fide) 교리를 본격적으로 서술하기 시작하는 롬 3:21-28에서 가장 명백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의가 율법과 선지자들의 증언을 받아 나타났으니/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모든 믿는 자들에게<미치는>하나님의 의로서 차별이 없다./ 말하자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취된] 구속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즉 선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 이 예수를 하나님은 그의 피[를 흘림으]로써 믿음으로 [효용 되는] 속죄소(iJlasthvrion)로 세우셔서 자기의 의를 증명하려 하셨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이 유예(ajnochv)하시는 가운데 이전에 지은 죄들을 간과하셨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은] 이 시점에서 자기의 의를 증명하셔서 자신도 의로우시고 또한 예수를 믿는 사람도 의롭다 하려 하셨다./ 그러니 자랑할 것이 어디 있는가? 전혀 없다. 어떤 원리를 통해서인가? 행위들의 [원리를 통해서인가]? 아니다. 믿음의 원리를 통해서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람이 율법의(=을 지키는) 행위들 없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1-28절).
이 본문은 복음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의”에 관하여 세 가지 요점을 명시하고 있다. 첫째, 그 “의”는 이미 오래 전에 “율법과 선지자들에 의해 증언된” (marturoumevnh uJpoV tou' novmou kaiV tw'n profhtw'n, 21b절; 참조 1:2) ‘성부 하나님의 계획과 뜻’으로부터‘기원’하였다. 원래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나 (1:18-3:20), 성부께서는 구원역사의 “이 (결정적) 시점에서” 그가 보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을 위한 “속죄소(iJlasthvrion, 贖罪所)로 세우심”으로써 자기의 의를 증명하려” 하셨다 (3:25-26). 그래서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21a절). 
둘째, 이 칭의는 “그리스도의 피 때문에”(ejn tw/' aujtou' ai{mati, 25b절) 가능하였다. 즉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취된] 구속”(ajpoluvtrwsi" th'" ejn Cristw/' jIhsou', 24절)이 칭의의 ‘근거’와 ‘이유’가 되었다. 일찍이 이스라엘 재판관들에게 의인은 의롭다 하고 악인은 단죄하라고 엄명하셨던 하나님 자신이 “경건치 아니한/불의한 자를 의롭다 하실” 수 있었던 (롬 4:5) 유일한 근거는 바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기”(5:6) 때문이다. 그가 불의한 자들의 죄를 위해 피를 흘리셨으므로, 하나님은 그들의 불의를 그냥 눈감아 주시거나 자신의 의를 포기하시지 않고도 그들을 정당한 방법으로 의롭다 선언하실 수 있었다. 
셋째, 이 ‘하나님의 의’는 “믿음으로”(diaV [th'"] pivstew", 22, 25절) 받는다. 본문에서 두 번 반복된 diaV [th'"] pivstew"는 전체 문맥 속에서 결코 “믿음 때문에”라는 의미를 나타낼 수 없다. 그 이유는 다음 세 가지이다: 1) 만일 이 “믿음”-관용구를 “믿음 때문에”라고 번역한다면, “믿음”은 여기서 칭의의 ‘원인’과 ‘근거’가 된다. 그러나 방금 위에서 고찰했듯이, 바울은 칭의의 근거를 “그리스도의 피”/“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구속”에서 찾고 있다. 2) 사도는 본문에서 “율법을 지키는 행위/일들”(e[rga novmou, works of the law) 때문에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믿는 그릇된 유대적 구원관을 반박하고 있다. 이런 논쟁의 맥락에서 “믿음”은 항상 율법의 “행위/일들”과 대립되는 반대개념으로 사용된다 (27-28절; 비교. 갈 2:16; 3:2-5, 9, 10). 그래서 “일을 하지 않아도 불경건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이 의로 여겨진다(logivze- tai hJ pivsti" aujtou' eij" dikaiosuvnhn)”(롬 4:5). 즉 믿음은 그 자체로서 “의”가 아니라 하나님에 의하여 “의로 여겨진/간주된”(credited/reckoned/counted) 것이다. 만일 여기서 사람의 “믿는 행위”(the act of believing)가 “의”의 근거로 간주된다면, 그 믿음은 사실상 바울이 27절에서 말한 “행위의 원리”에 귀속되고 만다. 3) 본문에서 “믿음으로”(diaV [th''"] pivstew")는 “그의 은혜로”(th/' aujtou' cavriti, 24a절)라는 표현과 병행을 이루고 있다(per fidem//per gratiam). 신자의 “믿음”은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와 함께 가며 그 “은혜”를 “은혜 되게”한다 (롬 4:16a; 11:6; 엡 2:8; 빌 1:29). 그러나 만일 하나님의 의가 신자의 “믿음 때문에” 주어진다면, 그 칭의는 하나님의 “은혜로, 즉 선물로/댓가 없이(dwreavn, 24a절)” 이루어지는 것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은 그 경우에 믿음을 발휘하는 자신에게 공로를 돌리고 자기의 믿음을 의지하며 “자랑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경건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의 칭의는 인간에게 전혀 “자랑”의 여지를 남겨 놓지 않았다 (27a절). 그러므로 본문의 diaV [th''"] pivstew"는 결국 “믿음”이 칭의의 ‘이유’/‘근거’가 아니라 그것의 ‘수단/방법/도구’임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한다.
엡 2:8-9에서도 “믿음”과 “은혜”가 나란히 병행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바울은 이 구절에서 사실상 우리가 지금까지 토의한 모든 요점들을 간결하게 요약하고 있다: 
왜냐하면 너희가 그 은혜로, 믿음으로(=을 통하여) 구원을 얻었기 때문이다 ― 그리고 이것은 너희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다 ― / 행위들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 누구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8a절의 “은혜로”(th/' cavriti/gratia)와 “믿음으로”(diaV pivstew"/per fidem)라는 병행적 어귀들은 모두 구원의 ‘방식’(mode)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서, 하나의 동일한 구원의 방식을 두 개의 관점에서 ― 즉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은혜로”라는 말로, 사람의 관점에서는 “믿음으로”라는 말로 ― 상호보완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두 가지 표현은 또한 9a절의 “행위/일들로”(ejx e[rgwn)라는 말과 대립하고 있다. “행위들”이란 인간의 노력과 공적을 가리키는 모든 형태의 활동을 포괄한다. 8b절의 중성 지시대명사 “이것”(tou'to)은 바로 앞의 “믿음”(pivsti", 여성명사)을 가리키기보다는 앞선 문장(8a절) 전체와, 또한 그것이 함축하는 ‘구원의 전 과정’(1-7절)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8절은 “믿음”을 포함한 신자의 구원과정 전체가 그의 어떤 조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dw'ron)”임을 강조한다 (참조. 빌 1:29, uJmi'n ejcarivsqh … toV eij" aujtoVn[=Cris- toVn] pisteuvein, “너희에게 그를[=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은혜로 주어졌다”). 신자의 구원 얻는 “믿음”까지도 하나님이 ‘댓가 없이 주신’ 것 속에 포함된다면, 그 믿음은 결코 신자에게 공로 있는 행위(meritorious work)로 간주될 수 없으며, 따라서 신자는 자기의 구원에 대해서 뿐 아니라 자기의 믿음에 대해서도 “자랑할” 수가 없다 (9절). 하나님이 구원을 이렇게 인간의 노력/공적과 상관없이 마련하신 목적(i{na, 9b절)은 “자랑”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함이었다.
4. 신학적 귀결
지금까지의 주석적 논의로부터 우리는 ‘의롭다 하심을 얻는 (즉 구원을 얻는) 믿음의 기원/발생(genesis)’과 관련하여 몇 가지 신학적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첫째, 바울의 ‘복음’은 사람들이 각자 원하는 대로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또는 ‘거부할’ 수 있는 (구원에 관한) 어떤 정보나 소식이 아니다. 사도에 의하면, 인간 자신은 스스로 구원에 이르는 결단을 내릴 수 있을 만큼 자유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다음의 인용문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오늘날 널리 퍼진 견해는 확실히 배제되어야만 한다: “[복음의] 메시지를 듣는 사람은 스스로 결단을 내리도록 부름을 받는다. 그는 그 메시지에 대해서 ‘예’ 또는 ‘아니오’를 말할 수 있으며, 그는 그것을 받거나 거절할 수 있다.” 여기서 전제하고 있는 인간은 바울의 생각 속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한낱 허구(fiction)에 불과하다. 만일 구원의 메시지에 대하여 스스로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자유로운 사람이 있다면, 그는 ― 사도가 롬 7:7-24에서 그토록 처절하게 묘사하고 있는 ― “죄에게 [노예로] 팔려 있는 육적(carnal)” 인간이(14b절) 아니다. 그는 또한 “불경건한” 자로서 “하나님의 원수”가 되어 그의 “진노를 쌓고 있는”(롬 2:5; 4:5; 5:6, 10; 8:7) 소망 없는 인간도 아니다.
둘째, 바울신학 전체에 비추어 볼 때 ‘구원을 얻는 믿음’은 순전히 ‘말씀과 성령의 창조물’(creatura verbi et Spiritus)이다. 사도는 ‘성령’의 역사(work)를 따라 선포되는 ‘복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구원을 효과적으로 제시하며 이로써 ‘구원 얻는 믿음’을 산출한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바울은 인간이 하나의 가능성으로서 ‘복음’에 제시된 구원을 그의 자유로운 결정에 따라 취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하신 구원을 그의 ‘창조적인 말씀’과 그의 ‘해방하시는 성령’을 통하여 인간에게 선물하시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셋째, 바울에게는 ‘구원 얻는 믿음’ 자체가 “하나님의 작품이며 선물”인 동시에 복음을 ‘믿는 사람’ 자신도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지으심을 받은 “새로운 피조물”이다 (고후 5:17; 갈 5:16). “죄와 허물 가운데 죽었던” 사람이 복음을 ‘믿기’ 위해서는 먼저 ‘살리심’을 받아야 한다 (엡 2:1, 5; 골 2:13; 딛 3:5). 사도에 의하면, 복음에 대한 사람들의 ‘불신앙’은 궁극적으로 그들의 생각을 어둡게 만드는 사탄의 활동에 기인하며 (고후 4:3-4; 엡 2:2), 복음을 접하기 전의 사람의 마음은 어둠과 혼돈이 지배하기 때문에, 자연인에게는 복음을 스스로 알고 믿을 수 있는 길이 완전히 막혀 있다. 불신상태의 인간이 복음을 ‘믿게’ 되는 것은 오로지 태초의 우주창조에 비견할 수 있는 하나님의 ‘새 창조’를 통하여 가능하다 (고후 4:6).
넷째, 그러므로 “(사람이) 믿음으로(by faith)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바울의 말은 철두철미 “(하나님의) 은혜로(by grace) 구원을 얻는다”는 말과 결부시켜서 이해해야만 한다. 사도가 신자들에게 “너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었다”(엡 2:5, 8)고 말할 때, 그 말 속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마련하셨을 뿐 아니라, 그 구원을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음’까지도 우리 안에 창조하셨다는 사실이 포함되어 있다. ‘구원 얻는 믿음’은 분명히 인간이 능동적이고 전인적(全人的)으로 발휘하는 행동의 요소를 담고 있지만 ― 이를테면 지성적 이해와 동의, 감정의 발로(發露), 의지의 결단과 순복 등 ―, 그 믿음은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의하여 비로소 발동되며, 따라서 인간에게 공로를 돌리는 모든 행위와 업적과는 본질적으로 구별된다. ‘구원 얻는 믿음’의 가치는 ‘믿음’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믿음의 ‘대상’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 하나님은 ‘우리 밖에서, 우리를 위하여’(extra nos, pro nobis) 구속(救贖, redemption)을 시작하시고 완성하셨다 ―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사건 안에서. 바로 이 객관적-역사적 사건이 우리의 칭의와 구원에 유일한 ‘근거’(ground)를 제공한다. ‘믿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구원이 우리에게 흘러 들어오도록 하나님이 고안하신 ‘도구’(instrument)이며 ‘방법’(means)이다. 하나님이 “은혜로” 베푸시는 구원을 우리는 “믿음으로”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이라는 하나님의 구원 ‘방법’은 인간의 모든 “자랑”을 영단번에 몰아내었다. 
다섯째,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의 칭의론적 문맥에서 나타나는 세 가지 믿음(pivsti")-관용구들 ― ejk pivstew", diaV [th'"] pivstew", 그리고 [th/'] pivstei ― 이 모두 기본적으로 ‘조건’/‘원인’의 의미(propter fidem)가 아니라 ‘방법’/‘도구’의 의미(per fidem)를 전제한다고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이 관용구들은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에 참여하기 위한 ‘조건’/‘전제’ ― 즉 “만일 그가 믿는다면,” 또는 “왜냐하면 그가 믿기 때문에,” 또는 “그가 믿는 한에 있어서” 등 ― 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에 참여하는 ‘방식’/‘도구’ ― 즉 “믿음에 의하여,” 또는 “믿음을 통하여” 등 ― 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언제 어디서나 ― 그것에 대하여 인간이 보이는 반응과 상관없이 ― 그 자체로 항상 “하나님의 능력”이다. 하나님은 바울 당시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여전히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세상을 향해 구원을 선포하시고, 선포되는 그 말씀으로 사람들의 마음 속에 ‘믿음’을 산출하시며, 그 “믿음을 통해” 그들에게 구원을 값없이 “은혜로” 주신다. 오직 이 ‘믿음의 방법’으로만 구원을 얻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늘 그의 ‘은혜’를 감사하며 그의 이름만을 찬양하도록 이끄신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soli Deo gl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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