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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칼럼

귀인오류와 인죄론

귀인오류는 흔한 심리적 오류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속담 속에 담긴 경험칙 같은 것이다.

누가 사소한 잘못을 했을 때, 그 잘 못 때문에 내가 내는 화가 정당화되는 것이다. 그러나 잘못에도 크기가 있다. 상대가 1을 잘못했는데 내가 100을 화낸다면 이런 화가 정당화될 수 있을까?

상대의 잘못 때문에 내 분노를 정당화하는 이런 류의 귀인오류가 많다. 이런 시간적인 선후관계 때문에 둘을 인과관계로 묶지만 사실 이 분노나 기타 감정의 실질적 원인은 외부적인 사건이 아니라 내가 켜켜히 쌓아온 지난 삶들에 그 원인이 있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일찌기 카르마, 곧 업이라고 했다. 이 통찰은 기독교 교리에도 그대로 담겼다. 죄는 두 가지 방식으로 우리에게 전가된다.

아담의 최초의 죄로 인해, 언약적으로 행위언약에 의해서 조상이라는 매개 없이 그 죄의 "형벌"과 책임이 사망이라는 판결로 그 후손에게 직접 전가(imputation)된다. 그리고 이 형벌을 원인으로 해서 부모라는 매개를 통해서 생물학적이고 실질적인 형태로 생식법에 의해서 전달(propagation)받는 "오염"이 있다.

다윗은 시편51에서 자신의 죄중에 잉태되었다고 했다. 우리 몸의 전영역에 오염의 편재해 있다. 그 오염을 근거로 우리는 자범죄를 짓게 된다.

우리는 이런 죄를 대면해서 아담과 하와가 가졌던 습관을 그대로 반복한다. 핑계와 탓하는 것으로 죄의 책임을 모면하려는 것이다. 이 귀인오류는 우리 죄의 책임이나 오염을 해결해주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누군가를 탓하면 심리적인 위안을 얻을지 몰라도 그것을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타인은 세상에 없다. 결국 그 핑계들은 죄의 열매들로 내 삶을 습격해온다.

성경이 구원은 믿음을 도구로 그리스도의 대속을 원인으로 설명하지만 심판은 모두 행위를 근거로 설명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행위가 우리 의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우리 어그러진 탓함을 반전시켜 우리 죄를 그리스도의 탓으로 돌리셨다. 그것이 우리가 만난 은혜다.

그러니 더는 핑계치 말고 내 삶의 무게를 온전히 들고 주께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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